초판발행 2026. 9. 14
“배우려는 힘”을 지역에서 찾다
이 책은 한 가지 질문에서 시작한다. 학교 안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일만으로 한 사람을 온전히 길러낼 수 있는가. 학교의 벽 너머에 두껍게 자리 잡은 마을과 기관 과 일터가 학생의 배움과 만날 때 비로소 열리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이며 어떻게 열리는가? 이 물음은 교육학자의 학문적 호기심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니다. 2026년 한국 사회가 마주한 두 개의 거대한 위기 - 지방소멸과 학령인구 감소 - 앞 에서, 학교가 제 안에 갇힌 채로 더 이상 쉽게 풀어낼 수 없는 문제들이 우리 앞에 쌓 여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 풀이를 향한 하나의 답변이며, 답변의 핵심은 한 줄로 모인다. 학교 너 머의 두꺼운 지역이 함께 길러내는 일, 곧 “지역이 학교다”라는 명제. 이것이 한국 진 로교육과 지역균형발전의 다음 단계를 떠받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 책의 출발점에는 한 편의 논문이 있다. 「기관연계형 수업을 통해 본 학교교육 혁신 의미 연구」가 그것이다. 자유학년제로 운영되는 한 공립 중학교, 혁신학교로 지 정된 한 고등학교, 서울시교육청의 전환학년제를 운영하는 한 학교, 이 세 곳이 한 청소년 진로 거점 기관과 협약을 맺어 이어 온 기관연계형 수업을 깊이 들여다본 연 구 결과다. 그 안에서 학교교육혁신의 출발이 학생의 “배우려는 힘”을 되살리는 데 있으며, 그 힘은 학교가 제 지역과 두텁게 연결될 때 가장 풍부하게 자라난다는 결론 에 닿았다.
이 책은 그 결론을 출발점으로 삼았다. 그렇다고 다시 풀어쓰는 작업은 아니다. 본 문은 그 이후 다섯 현장에서 새로 만난 자료, 한국 사회의 정책 진화, 그리고 최근 차 곡차곡 쌓여 온 마을교육공동체와 장소기반교육, 지역성장 인재양성체계(ANCHOR) 에 관한 학술적 논의에 기대어 제 동력으로 풀어 간다.
두 위기와 한 가지 응답
2026년 한국이 마주한 두 위기가 있다. 하나는 지방소멸의 위기다. 한국고용정보 원의 지방소멸지수는 비수도권 시 · 군 다수를 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하고 있다(이상 호, 2023). 강원특별자치도의 소멸위험지수는 전국 3위를 기록하고(강원일보, 2026), 청년이 지방을 떠나고 떠난 청년이 돌아오지 않는 흐름이 지역의 학교와 산업과 의 료 시스템을 한꺼번에 흔들고 있다. 또 하나는 학령인구 감소에서 비롯된 지방 사립 대의 위기다. 출생아 수의 가파른 감소가 학령인구 감소로 이어지고 있으며, 그 부담 은 지방 사립대에 집중된다(교육부, 2024). 두 위기는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한 동전 의 양면이며, 그 동전을 돌리는 힘은 한국 사회의 가장 깊은 구조 변동인 셈이다.
이 두 위기 앞에서 진로교육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답은 분명하다. 진로교육은 학생을 “수도권으로 가는 길”로만 안내하는 일이 아니라, 학생이 제 지역의 가까운 일상 안에서 자기 진로의 의미를 깊게 찾도록 돕는 일이어야 한다. 그러려면 학교가 제 안에 갇혀 있어서는 안 된다. 학교는 제 지역의 다양한 기관과 산업, 문화, 시민사 회와 유연하고도 긴밀하게 연결될 필요가 있다. 그 연결의 한 가지 형태가 기관연계 형 수업이며, 그 연결이 쌓인 것이 곧 지역교육력이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핵심 명제는 한 줄로 모인다. 지역교육력을 되살리는 일이 곧 진로교육을 깊게 하는 일이고, 그 깊어짐이 결국 지역격차 해소와 지역균형발전 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정책의 합의와 현장의 한계
이 명제는 정책의 영역에서도 천천히 합의를 이루어 왔다. 2009년 경기도교육 청에서 시작된 혁신학교, 2013년 도입된 자유학기제, 2015년 시행된 진로교육법, 2020년대 들어 본격화된 고교학점제, 2023년 출범한 특성화지방대학(구 ‘글로컬대 학30’, 명칭변경) 사업, 2025년 전국으로 확대된 지역성장 인재양성체계(ANCHOR, 구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 명칭변경) - 이 일련의 정책은 모두 “학교의 벽을 낮 추고 지역과 결합하라”는 한 방향을 향하고 있다(교육부, 2013, 2021, 2023, 2025). 정 책의 어휘는 시기마다 바뀌었지만, 그 안쪽의 문제의식은 유사했다. “학교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래서 학교를 제 지역의 두꺼운 자원과 결합시키는 노력을 해 왔다.
그러나 정책의 합의가 곧 현장의 변화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정책이 도입되어도 그것이 작동하는 자리는 결국 학교이고, 학교가 자리 잡은 지역의 자생적 두께가 정 책의 효과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지역교육력이 살아 있는 곳에서는 정책이 풍부한 결실을 맺지만, 약한 곳에서는 형식에 그치고 만다. 그래서 정책의 평등이 결과의 불 평등으로 이어지는 한국적 양상이 오래도록 되풀이되어 온 것이다(양병찬, 2018; 김 용련, 2019). 이 되풀이를 끊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그 답을 찾는 일이 이 책의 마 지막을 이룬다.
이 책의 다섯 현장
이 책은 다섯 현장을 토대로 한국 진로교육의 다음 단계를 가늠한다. 첫째, 강원 의 횡성군 단위 지역에 자리한 지방 자율형사립고(민족사관고등학교). 둘째, 서울 한복 판에서 운영되는 시 산하 청소년 진로 거점(서울시립청소년미래진로센터, 하자센터). 셋 째, 한국 공교육의 일련의 정책적 실험을 운영해 온 학교 및 기관 - 자유학년제(서울 문래중) · 혁신학교(서울 휘봉고) · 전환학년제(서울시 오디세이학교) · 고교학점제(제주특별 자치도교육청). 넷째, 진로교육을 운영해 온 서울 도심에 자리한 공립대학교(서울시립 대학교). 다섯째, 지역상생 실험을 시도해 온 강원에 자리 잡은 특성화지방대학(한림 대학교)이다.
다섯 현장은 학생의 발달 단계로 보면 고등학생, 학교 밖 청소년, 대학생을 가로 지르고, 공간으로 보면 강원과 서울을 교차한다. 그 교차 속에서 지역교육력은 어디 에서 강하게 작동했고, 어디에서 부족했는가. 그 답이 이 책의 큰 흐름이다. 특히 다 섯 번째 현장에 해당하는 특성화지방대학의 분석에서는, 2024년 본지정된 한림대학 교가 강원특별자치도 9개 시 · 군에 운영해 온 M-Campus의 실제 PBL 교과목과 해 커톤 · G-Lab 협력 구조를 사례 자료로 활용한다(한림대학교, 2026; 중앙이코노미뉴스, 2025, 2026).
미리 일러두기
이 책의 서술 방침을 미리 적어둔다. 첫째, 다섯 현장의 고유명사를 그대로 드러 내지 않는다. 어느 학교의 어느 자리에서 일했는가는 이 책의 핵심이 아니기 때문이 다. 핵심은 그 자리에서 본 풍경의 성격에 있으며, 그 풍경이 한국 사회의 어떤 단면을 비추는가에 있다. 그래서 다섯 현장은 각각 “지방 소재 자율형사립고”, “서울시 산하 청소년 진로 거점”, “한국 공교육의 정책적 실험들”, “서울 소재 공립대”, “지방 소재 특성화지방대학”이라는 대표 명칭으로 등장한다.
둘째, 한국과 일본의 자료를 균형 있게 활용한다. 학위 논문에서 비중 있게 다루 었던 지역교육력 논의를 가져오는 한편, 한국의 마을교육공동체와 특성화지방대학, 지역성장 인재양성체계(ANCHOR) 같은 최근 정책 자료를 풍부하게 활용한다.
셋째, 이 책에서는 ‘글로컬대학30 사업’과 ‘RISE 체계’를 2026년 현재의 명칭에 따라 각각 ‘특성화지방대학 사업’과 ‘ANCHOR 체계’로 통일해 표기한다. 따라서 과 거 사업 시점을 다루는 일부 서술에서도 현행 명칭을 사용함을 밝혀 둔다. 필요한 경 우 구 사업명을 괄호 안에 병기하며, 자료명 · 문헌명 등 출처의 고유 명칭은 당시 표 기를 유지한다.
이 책은 결국 한 가지 부탁을 풀어쓴 것인 셈이다.
학교만으로는 한 사람을 온전히 길러낼 수 없다는 것, 학교 바깥의 두꺼운 마을과 일상의 어른들이 함께해야 한다는 것, 진로는 정보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자란다는 것, 그리고 지역교육력의 회복이 곧 지역균형발전의 출발점이라는 것.
이 부탁을 다섯 현장의 사례와 한국 사회의 정책 진화, 그리고 그 둘을 이어주는 학술적 토대를 빌려 전하려 한다.
2026년 가을, 춘천과 서울에서
한 민 정, 이 유 림
추천사
『지역이 학교다』.
책 제목이 무척 맹랑(孟浪)하다. 한국어에서 ‘맹랑하다’는 단어는 상황에 따라 엉뚱 하고 터무니없다는 뜻과 깜찍하고 당돌하다는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일상에서 어 떤 아이의 말투가 예상 밖으로 똑 부러지거나, 주장이 매우 도전적이어서 황당하게 느껴질 때도 ‘맹랑’하다는 표현을 쓸 수 있다. 중진 교수의 책 제목을 두고 맹랑하다 는 표현이 좀 실례가 되겠지만, 예전 지도학생의 훌쩍 성장한 모습을 본 ‘감탄사’라고 이해해 주기 바란다. 아무튼 일반적으로 ‘지역은 지역’이고, ‘학교는 학교’다. 그런데 저자는 ‘지역이 학교다’라고 선언해 버렸다. 왜 이런 선언이 나오게 되었을까?
모든 교육이 그렇지만 학교교육도 시대적 소산이다. 전통시대 교육의 공간은 가 정과 학교, 사회 등 세 군데가 유기적으로 작용하였다. 특히 대가족 체제에서는 가정 교육의 중요성이 무척 컸고, 관혼상제 등 일상적 삶 속에서 이루어지던 비형식적 교 육은 사회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중시되었다. 이에 반해 학교교육은 비교적 제한된 소 수에게 제공되었던 교육방식으로, 근대 이후에 보편화되면서 이제는 교육이라고 하 면 곧 학교교육을 먼저 떠올리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교육기본법」(1997)에서 학교 교육(9조)과 평생교육(10조)을 구분하고 있지만, 일본의 「교육기본법」(2006) 제13조 는 “학교, 가정, 지역 주민 등의 상호 연휴(連携) 협력”을 규정하였다. 즉 가정과 학교, 지역사회는 서로 협력하며, 지역교육력을 통해 기존 학교교육을 개선하고자 하였다. 일반적으로 근대 공교육은 학교라는 제한된 공간 속에서 엄격한 규율과 시간 통 제, 획일화된 교육과정을 특징으로 한다. 이러한 학교교육을 개혁하려는 시도는 이 미 19세기 말부터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즉 기존의 교사 중심의 주입식 교육의 대안으로 아동 중심의 교육운동이 ‘신교육’ 혹은 ‘개혁교육학’이라는 이름으로 계적으로 확산되었다. 이 무렵 일본에서도 자유교육론, 창조교육론, 전인교육론 등 ‘8대 교육주장’이 제기되었고, 이는 당시 한반도에도 전해졌다. 1930년대 세계경제 대공황의 영향으로 한동안 본질주의 교육론이 강조되기도 하였지만, 제2차 세계대 전 이후 세계 각국은 무상의무교육의 확대를 통해 효율적인 학교교육 보급에 힘을 쏟았다.
교육을 보는 관점과 관련하여, 국가주의 교육론은 교육의 핵심 목적을 국가와 민 족 공동체에 헌신하는 ‘국민 양성’에 두고 있다. 이에 반해 자유주의 교육론은 교육의 주요 목적을 ‘개인의 발달’과 ‘자아실현’이라 보며, 교육은 사회적 지위 상승의 사다 리 기능을 함으로써 ‘사회적 불평등’ 해소에 보탬이 된다고 보았다. 하지만 1970년 대를 전후하여 학교제도의 구조적 한계를 지적하는 급진적 시각(계급재생산론과 탈학 교론 등)이 나타나게 되었다. 즉 학교가 지식전달의 독점적 지위를 차지하면서, 오히 려 학습의 자유를 억압하고 인간다운 교육을 실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제 인공지능(AI) 시대에 우리는 학교에서 무엇을 가르치고, 무엇을 배워야 하는 가? 우리는 학교를 어떻게 보고 있으며, 어떻게 개혁하여야 하는 것일까? 학교가 제 공해 줄 수 있는 지식은 전체 지식의 양에서 볼 때 점점 그 비율이 줄어들고 있으며, 학교교육에서도 지식 그 자체보다 잘 질문하는 법이 요구되고, 오히려 관계성 회복 이라는 관점에서 인간성지능(HI: Humanity Intelligence)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이제 지식은 특정 시기에 한정되지 않고 평생에 걸쳐 습득해야 하는 것으로, 이로 인 해 교육은 학교뿐만 아니라 가정과 지역사회 등 개개인이 속한 모든 공간에서 실천 되는 평생교육적 사업이 되었다.
이 책은 바로 “학교 안에서의 교육만으로 한 사람을 온전히 길러낼 수 있는가?” 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하고 있다. 교육이 학생들로 하여금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힘 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라면, 과연 기존의 학교교육은 21세기의 변화된 사회에서 요 구되는 다양한 요소를 잘 담아내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이를 학교라는 제한된 공간 에서 온전히 담당할 수 있는가? 이는 교육학에서 오랫동안 논쟁이 되어온 “학력이 란 무엇인가?”라는 문제와도 관련되는 것으로, 이러한 질문의 바탕에는 학교 바깥의 ‘지역’이 학생의 배움과 만날 때, 스스로 ‘배우려는 힘’도 더 잘 길러질 수 있을 것이 라는 기본 전제가 깔려 있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로 구성된다. 1부의 다섯 장은 이 책의 분석 틀을 세우는 작업으로 한국 학교교육이 마주한 현실적 고민과 학교교육혁신의 네 가지 유형(보완, 개 선, 재설계, 전환) 및 세 가지 변화 방향(학습자 행위주체성 발현, 시공간과 문화의 경계 초 월, 배우려는 힘의 양성) 등을 제시해 주고 있다. 특히 교육적 사건의 시간적 흐름을 일 목요연하게 정리해 주고, 문답식으로 항목화하여 설명해 주는 점도 큰 장점이다. 그 리고 2부의 다섯 현장 사례는 지역교육력과 학습자 행위주체성이 각 현장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어떻게 변형되고 있는가를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3부는 다섯 현장이 그린 한 그림을 종합하면서 논의를 개별 사례에서 정책의 차원으 로 끌어올린다. 마을교육공동체에서 ANCHOR에 이르는 지역교육력의 정책 진화를 짚고, 지방소멸 시대 지역격차 해소의 교육적 길을 모색한 끝에, 한국 진로교육의 다 음 단계를 위한 일곱 가지 정책 제안으로 마무리하는 구성이다. 현장의 실증과 정책 적 상상력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는 셈이다.
특히 1990년대 이후 지난 30여 년간 우리나라 학교교육 정책의 거시적 흐름을 ‘학교의 자율성 확장’과 ‘학교와 지역의 결합 강화’로 보고, 학교교육혁신의 구체적인 사례로 ‘자유학년제’와 ‘혁신학교’, ‘전환학년제’ 등 ‘기관연계형 수업’과 이 밖에도 ‘고 교학점제’와 ‘자율형사립고’, 학교 밖 청소년 진로 거점들, 그리고 대학생들의 진로교 육 사례와 특성화지방대학의 지역상생 실험 등을 다루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언론을 통해 이러한 용어들을 익히 들어봤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정작 실제로 어떤 사업이 어떻게 진행되었는가를 정확히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이 갖 고 있는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이 바로 이러한 개혁 사례들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 록 잘 설명해 주고 있다는 점이다.
“지역이 학교다”라는 명제는 학령인구 감소와 지방소멸이라는 21세기의 구조적 위기 앞에서 단순한 슬로건을 넘어, 교육의 생존 전략이자 본질을 회복하는 열쇠어 로 제시된 듯하다. 흔히 존 듀이가 ‘학교는 사회다’라고 말했다고 하지만, 정확히는 “학교는 하나의 제도로서 현존하는 사회생활을 단순화한 축소판이 되어야 한다”는 취 지의 문장이었다. 당시 그는 학교 제도가 사회생활의 축소판이 되어야 한다고 제안했 는데, 이제는 오히려 “지역사회 전체가 곧 학교”의 역할을 해야 할 때가 되었다. 학생 의 내면에 있는 ‘배우려는 힘’은 교실 안의 닫힌 텍스트에서 찾아질 것이 아니라, 자 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삶과 연결될 때 비로소 강력한 에너지를 얻게 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내용을 간단히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즉 최근 우리 나라에서 전개되는 주요 교육정책들은 학교의 벽을 낮추고 지역사회의 자원을 교육 과 연계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들이 어떻게 진로교육과 맞물려 ‘배 우려는 힘’을 키우고, 나아가 지역교육력을 되살리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먼저 초 · 중등 단계에서의 혁신학교, 자유학기제, 고교학점제는 학교 중심의 폐쇄 적 교육을 지역사회 중심의 개방형 교육 생태계로 전환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특히 학교 단위의 ‘혁신학교’와 지역 단위의 ‘혁신교육지구(미래형 교육자치지구 등)’는 학교와 지역사회가 함께 아이를 키우는 ‘마을교육공동체’ 구축의 핵심 기반이 되고 있다. 교실 안의 지식이 지역의 역사, 문화, 산업과 연계되면서 학생들은 “내가 왜 배 워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삶의 터전에서 찾게 된다. 지역 주민이 마을 교사로 참여 하고, 지역의 현안을 프로젝트 수업으로 해결하는 과정에서 학생은 지역공동체의 주 체로 성장하며, 이는 곧 자신만의 고유한 삶의 진로를 탐색하는 출발점이 된다.
중학교 단계에서 자유학기제는 교실을 넘어 일터와 삶터로의 확장을 통해 시험 부담에서 벗어나 자신의 소질과 적성을 찾게 한다. 이 정책이 성공하기 위한 핵심 동 력은 바로 ‘지역사회의 인프라’이다. 지역 내 공공기관, 기업, 소상공인, 문화예술 공 간이 일터 체험의 장으로 개방될 때, 진로교육은 비로소 생동감을 얻을 수 있다. 이 를 통해 학생들은 다채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스스로 진로를 설계할 수 있 는 ‘배우려는 힘’을 기르게 된다.
고등학교 단계에서 볼 수 있는 고교학점제는 지역사회 전체를 배움터로 삼는 맞 춤형 교육이다. 학생이 원하는 과목을 선택해 이수하는 고교학점제는 단일 학교의 교육과정만으로는 다변화된 진로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기에, 인근 학교와 과목을 공 유하는 공동교육과정을 넘어, 대학이나 연구소, 기업과 연계하는 학교 밖 교육과정 운영이 사실상 불가피하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첨단 산업이나 특화된 자원을 활용한 심화 과목을 이수하면서, 학생들은 구체적인 진로 역량을 다지고 지역에 필 요한 인재로 성장할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대학 단계로 접어들면 교육과 진로의 연계는 ‘정주(定住)’라는 생존의 문제와 직결 된다. 교육부 주도에서 지자체 주도로 패러다임이 바뀐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 (RISE)’는 2026년에 다시 ‘지역성장 인재양성체계(ANCHOR)’로 개편되었다. 단순한 대학지원을 넘어 청년 인재의 지역 정주와 양성을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는 취지다. 즉, ‘지자체-지역 대학-지역 기업’의 유기적 연합을 통해 지역소멸을 예방하고 산업 기반을 구축하며 인재를 키워내려는 것이다. 지자체가 지역의 미래 전략 산업을 지 정하면, 대학은 그에 맞춰 교육과정을 개편하고 기업은 현장 실습과 인턴십 및 고용 을 보장한다. 이는 대학생들에게 막연한 취업 준비가 아니라, 내가 자란 지역에 남아 활동할 수 있는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명확한 진로 로드맵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 밖에도 평생교육 활성화를 통한 새로운 지역교육력 확보로, RISE(현 ANCHOR) 체계 속 대학은 학령기 학생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성인 학습자의 재교육(re-skilling) 및 향상교육(up-skilling)을 전담하는 평생교육의 거점으로 기능하게 된다. 지 역 주민과 은퇴자들이 대학에서 새로운 기술과 진로를 모색하고, 그 역량을 다시 지 역 사회에 멘토나 마을 교사로 환원하는 ‘선순환적 진로 생태계’ 완성이 가능해질 것
이다.
결국 초 · 중등 교육의 개방(혁신학교·자유학기제·고교학점제)을 통해 아이들의 내면 에 ‘스스로 배우려는 힘[자학력]’과 지역에 대한 애착심[향토애]을 심어주고, 지역에 뿌리내리는 고등교육체계를 통해 그 힘이 지역 안에서 실질적인 진로와 삶으로 연결 되도록 굳건한 토대를 만들려는 것이다. “지역이 학교다”라는 상징적 명제가 완성될 때, 학교는 통폐합의 대상이 아니라 지역 재생의 컨트롤 타워가 되며, 지역사회는 지 속 가능한 교육력을 갖춘 거대한 배움터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끝으로 이 책에서 자주 보게 되는 순수 우리말로 ‘두께’, ‘설렘’, ‘자라남’, ‘배우려는 힘’ 등의 용어를 통해 저자의 언어사용의 자주성, 즉 행위주체성을 엿볼 수 있다. AI 시대에 학교 중심의 교육만능론이 더 이상 무의미함을 깨닫게 되면서, 가정교육과 지역사회의 교육에 더욱 주목하게 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가방끈의 길이를 따지는 기존의 학력(學歷: 학교를 다닌 이력)보다, 스스로 ‘배우려는 힘’인 학력(學力)에 더 주목 하게 되었다. 이제 어느 누구도 운동선수들이 어느 대학을 나왔는가를 따지기보다, 그 사람의 실력이 곧 연봉으로 인정받는 세상이 되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기관연계형 수업을 통한 학교교육혁신 사례는 시·공간과 문화의 경계를 초 월하여 학습자의 배우려는 힘을 길러줌으로써, 각자의 인생 진로를 주도적으로 이끌 어가는 행위주체성을 키워주게 될 것이고, 이것이 바로 21세기 AI 시대에 인간다움 을 잃지 않는 학교혁신이자 지역교육력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서울특별시평생교육진흥원장 한용진
저자 약력
한민정(韓旼廷, Han Min Jeong)
한림대학교 AI교육혁신원 교육혁신센터장
천년의 시간이 고인 전주에서 자라 서울에서 배웠고, 지금은 다른 중력장의 사유가 열리는 춘천에 서 있다. 고려대학교에서 역사를 전공하며 과거를 읽었고, 중등학교의 교단에서 현재를 가르쳤으며, 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에는 미래를 설계하는 사람으로 선다.
‘학습자는 교육의 수혜자가 아니라 자기 삶과 사회를 다시 쓰는 행위주체다.’ 이 한 문장을 증명하는 데 연구의 전부를 건다. 진로교육과 학교교육혁신, 지역교육력과 학습자 행위주체성을 잇는 길을 걸으며 『AI 시대, 진로의 탄생』과 『대학원, 갈까! 말까?』를 펴냈다. 민족사관고등학교, 서울시립청소년미래진로센터, 서울시립대학교 등을 거쳐, 지금은 한림대학교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성장을 받치고 있다.
e-mail: hanmj@hallym.ac.kr
이유림(李庾林, Lee Yu Rim)
서울시립대학교 입학사정관
광운대학교에서 교육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입학사정관이라는 직업을 통해, 다양한 학생과 학부모, 교사 등을 만나왔다. 특히 학생들의 걱정과 고민, 어려움을 풀어주고 또 성장해 나가는 모습이 나의 성장을 보는 것 같아 시작된 이 직업을 통해 현재, 국립 대학교와 사립 대학교 등, 여러 성격의 대학에서 입학과 관련된 업무를 맡아 경험을 만들었다. 현재 서울 소재 대학의 입학사정관으로 계속해서 근무하며, 다양한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그 안에서 또 같이 성장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e-mail: resbw999@naver.com
프롤로그 “배우려는 힘”을 지역에서 찾다 3
추천사 7
CHAPTER 01 왜 다시 학교교육혁신인가 17
CHAPTER 02 기관연계형 수업이라는 발견 33
CHAPTER 03 학습자 행위주체성— 배움의 주체가 되는 일 49
CHAPTER 04 시공간과 문화의 경계를 넘어서 67
CHAPTER 05 배우려는 힘— 미래사회의 학습 동력 83
CHAPTER 06 지방 소재 자율형사립고— 자원의 선별적 동원과 정서적 정주 101
CHAPTER 07 서울시 산하 청소년 진로 거점— 도시 한복판의 작은 마을 121
CHAPTER 08 한국 공교육의 실험들— 자유학년제 · 혁신학교 · 전환학년제 · 고교학점제 139
CHAPTER 09 서울 소재 공립대— 진로교육과 글로벌 원정대 153
CHAPTER 10 지방 소재 특성화지방대학(구 글로컬대학30)— 지역상생과 정주 모델 171
CHAPTER 11 다섯 현장이 그린 한 그림 195
CHAPTER 12 지역교육력의 정책 진화— 마을교육공동체에서 ANCHOR까지 209
CHAPTER 13 지역격차 해소의 교육적 길— 지방소멸 시대의 응답 227
CHAPTER 14 한국 진로교육의 다음 단계 — 일곱 가지 정책 제안 243
에필로그 학습자 주도성의 시대를 향하여 260
참고문헌 269
부록 1 용어 정리 275
부록 2 주요 통계 자료 278 부록 3 주요 정책 문서 일람 281 부록 4 한 학기 활동 가이드 283
부록 5 분야별 추천 자료 100선 286
부록 6 찾아보기(색인) 2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