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발행 2026. 6. 10
역자 서문
가족기업을 바라보는 “가족 역동”렌즈를 소개한 세계적 명저
어느 중견기업 사장단 대상 리더십 강의 중이었다. 쉬는 시간에 창업자이신 회장님께서 다소 뜬금없는 질문을 던지셨다. “제가 아들이 둘 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첫째, 의욕 넘치는 둘째. 이 녀석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는 실리콘밸리의 혁신 경영 리더십에 관해서 열강 중이었다. “글쎄요. 제가 상황을 모르니 이 자리에서 구체적으로 드릴 말씀은 없지만, 거의 모든 회장님들이 이런 고민을 가지고 계시고, 관련 연구도 많습니다.” 나는 회장님께 너무 사적일까 조심스러워 목까지 올라온 질문들을 거두었다. 하지만, 사장단에서도 회장님의 고민을 이미 알고 있는 눈치였다. 창업주의 자녀 고민은 회사와 모든 경영진의 고민이다. 어느 순간 그 자녀가 상사로 등장할 수 있다. 성장한 창업 기업은 이제 가족기업의 방향을 보고 있었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스페이스 X가 아니라 존슨앤존슨 이야기를 해볼까요?”
삼성, 현대와 같은 글로벌 대기업부터 골목의 작은 맛집에 이르기까지, 한국 기업의 대다수는 가족기업의 형태를 띠고 있다. 부부나 형제가 운영하는 소기업부터 수대에 걸쳐 지분과 경영권을 승계해 온 거대 기업까지 그 규모는 다양하지만, 정작 우리 사회에서 ‘가족기업’이라는 실체는 마치 투명 인간처럼 취급받아 왔다. 산업에서 차지하는 막중한 비중에 비해 경영 전문가들의 논의는 초라할 정도로 부족하며, 그마저도 법률이나 세무 상담에 국한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한국 정서상 기업 활동 전면에 ‘가족’을 드러내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선진국에 흔한 가족기업 연합체 같은 공식 조직도 드물다. 모두가 가족기업을 운영하고 있지만, 정작 그 기업 활동의 핵심인 ‘가족’이라는 변수는 외면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기에 2세, 3세가 물려받은 기업에 창업가와 같은 혁신을 요구하고, 가족기업을 위해 개인의 희생과 헌신은 당연시하면서 그들이 가진 경영권은 특혜로 바라본다. 가족 내에서는 아버지와 같을 것을 요구하는 동시에 아버지와 다를 것을 요구한다.
경제면을 장식하는 상속 갈등과 형제간의 난은 그저 자극적인 가십으로 소비될 뿐이지만, 사실 이 갈등이야말로 오너 가족에게는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결정짓는 가장 치명적인 위협 요소다. 상장사의 지분 이동이 실시간 중계되고, 로열패밀리의 뒷이야기를 파헤치려는 외부의 시선은 집요하다. 누군가는 단순한 호기심으로, 누군가는 경영권 찬탈의 기회로 그 틈을 파고든다. 이들의 공통점은 기업 혹은 가족이라는 단편적인 렌즈로만 이들을 바라본다는 점이다.
그러나 가족기업은 ‘가족이 운영하는 기업’이라는 하나의 총체적인 유기체로 이해되어야 한다. 남녀가 만나 부부가 되었을 때, 그 관계 안에는 단순한 생물학적 특징 이상의 ‘화학 작용’, 즉 역동(Dynamics)이 발생한다. 결혼 전의 각 개인이 살아가던 삶의 궤적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인생의 테두리가 형성되는 것과 같다. 그들이 결혼하지 않았을 때 각 개인이 살아갈 인생을 공간과 법적 테두리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닌, 전혀 다른 삶을 만들어 내는 것처럼 말이다.
“왜 지금 가족기업인가?”
본서는 이러한 가족기업의 특수성을 이해하고 해법을 제시하기 위해 경영학계의 구루와 최고 전문가들이 힘을 합쳐 집필한 결과물이다. 수십 권의 저서를 집필한 맨프레드 케츠 드 브리스(Manfred Kets de Vries) 교수는 2024년 동아 비즈니스 포럼 기조연설을 위해 방한했을 당시, 역자에게 2007년에 출간된 이 책의 번역을 직접 권유했다. 매년 신간을 쏟아내는 경영 구루가 왜 굳이 오래된 책을 지금 한국 사회에 권했을까? 답은 명확하다. “지금의 한국에 이
책이 가장 절실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의 산업 지형은 20년 전 유럽이 겪었던 세대교체의 양상과 매우 닮아 있다. 가내수공업으로 시작한 제조업이 세대를 거치며 정점에 올라선 과정 역시 유사하다. 역자 또한 오래전에 읽었던 책장을 다시 넘기며 확신이 들었다. 강의장에서 만나는 수많은 기업 관계자의 얼굴이 떠올랐고, 이 새로운 시각을 소개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생겼다.
본서는 가족기업의 ‘심리 역동’을 한국어로 깊이 있게 풀어낸 최초의 도서다. 가족기업은 과거에도 존재했고 미래에도 존재할 것이다. 저자들이 강조하듯, 이 책이 현재 한국 산업 현장에서 갖는 시급성과 필요성을 세 가지로 정리해 보았다.
첫째, 가족기업은 가족과 기업이라는 질적으로 전혀 다른 존재가 하나의 활동을 하고 있다. 가족은 가장 돈과 관련이 없는 집단이다. 보통 사람들은 나한테는 돈을 아껴도 부모나 자식에게는 계산 없이 지갑을 연다. 특히 유교 문화를 바탕으로 하는 한국의 가족주의는 서구와 다른 면에서 깊은 유대를 강조한다. 반면 기업은 돈이 가장 중요한 집단이다. 모든 노력과 열정은 숫자로 환산되며, 이익의 극대화가 모든 경영 이론과 행동의 지향점이다. 그러나 가족기업에서는 돈과 가장 관련이 없는 집단이 가족에 대한 희생과 헌신으로 기업을 어느 정도 키운 후에는 갑자기 이 모든 희생과 사랑과 헌신과 관계에 값을 매기기 시작한다. 사랑과 우애는 결국 지분과 배당, 급여 등으로 모두 금전화된다. 승계의 순간은 더욱 잔인하다. 어떤 자식에게 어떤 사업을, 혹은 지분을 얼마나 상속하느냐는 전문경영인을 영입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셈법으로 이루어진다. 여기에는 경영 능력뿐 아니라 가족 간 역동?잘난 자식, 못난 자식, 예쁜 자식, 아픈 손가락, 형제간의 서열, 친밀감, 그리고 질투 등 오로지 정서적인 요소들이 강력하게 작용한다. 장자 상속이라는 사회문화적 담론이 존재할 때는 그나마 불만이 있어도 순응하던 면이 있었지만, 이것 역시 일부 무너지면서 상속 갈등에 참여하는 이해관계자의 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창업자의 죽음 이후에 이 갈등은 잦아들기는커녕 더욱 격화되기도 한다. 우리나라 대기업 중에 왕자의 난 내지는 상속 관련 소송을 겪지 않은 회사가 과연 몇이나 될까? 무난하게 승계를 진행한 것 같은 기업들도 과정이 내부적으로 잘 봉합되긴 했던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의 힘으로 덮어두었던 것인지 모를 문제들이 결국은 경영권의 근간을 흔드는 것을 심심찮게 목격해 왔다. 그런데 대부분의 일반 가족도 이런 문제를 겪는다. 부모가 월세 보증금만 남겨도 형제간 싸움이 난다. 다만 가족기업의 갈등은 경영의 위기가 되어 수많은 사람들의 커리어와 생계에까지 영향을 끼친다는 면에서 더욱 주의가 필요한 것이다.
둘째, 우리나라 상속법은 다른 서구 국가와 달라 상속자들은 아버지의 영광과 유산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경영에 참여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든다.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들은 창업자의 사망 후 상속액의 50~60%에 달하는 상속세를 현금으로 내야 한다. 이는 경영을 위협하는 수치이다. 따라서 서구 선진국처럼 창업자 은퇴 이후 전문경영인이 경영을 하고 가족은 지분을 가지고 의결권을 행사하거나, 의결권과 경영 관여 없이 배당만 받는 형식의 가족 경영은 대를 넘어가면서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진다. 그래도 대기업의 경우는 증여와 상속을 계획적으로 진행하여 3대, 4대 지분 방어를 성공적으로 한 경우들도 많지만, 중소·중견 기업의 경우에는 경영권 방어조차 어렵다. 특히 요즘은 다양한 주체들이 이러한 기업들을 들여다보고 있어, 창업자인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피땀으로 일군 기업을 현금 얼마에 남의 손에 넘기기로 하는 일들이 흔해졌다. 그래서 가족기업에 가족 구성원의 경영 참여가 필수이기 때문에 이 책은 서구의 어느 나라보다 오히려 우리나라 기업들에게 더 가치가 높다고 본다.
셋째, 경영 승계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1960년대 이후 활발해진 산업화에 따라 많은 창업이 일어났다. 창업자들이 이제 2세와 3세에게 경영권을 넘기고 회장님으로, 혹은 직함도 내려놓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그들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창업자 한 사람의 지휘하에 움직이던 경영이 가족 내의 역동까지 떠안아야 하며, 이 안에서 경영에 참여하는 승계자들이 넘어야 할 가장 큰 산은 경쟁사나 시장이 아니라 아버지와 아버지의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에 대한 논의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온 회사가 가족의 역동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 실체를 알고 최선의 방식을 찾아 나아가야 할 시점이다. 구찌는 3세 경영인이 전 부인에게 청부살인을 당하며 비극적으로 공중분해되었으며, 에르메스는 6대가 실질적 경영자로 참여함으로써 세계 최고 부자 가문으로 성장하였다. 창업가의 공을 후대가 길러내는 방식을 학습하고 실행해야 할 때이다.
새롭고 따듯한 새로운 렌즈: 가족과 기업
저자인 맨프레드 케츠 드 브리스, 랜델 칼록, 엘리자베스 플로랑-트레이시는 유럽 최고 경영대학원인 INSEAD의 교수진이다. 이들은 이곳에서 유럽의 거의 모든 주요 리더를 교육하고, 코칭/컨설팅해 왔다. 그들은 단순히 강의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그룹 코칭을 통해 그들의 속사정을 속속들이 듣고 그에 맞는 솔루션을 제공해 왔으며, 개별 기업의 성장을 위한 입체적인 컨설팅을 팀으로 제공하는 최고 전문가 그룹이다. (역자는 이 책이 발행된 직후 맨프레드 교수가 설립한 인시아드 글로벌 리더십 센터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며 세 분의 교수진과 인연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으며, 다양한 프로젝트를 함께 시행하고 있다.)
특히 맨프레드 케츠 드 브리스는 본인을 제외한 집안의 모든 남성이 기업가로 가족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본인 역시 INSEAD에 연 매출 수백억의 그룹 코칭 프로그램을 창시하고 30여 년간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아카데믹 창업가이며, 개인 컨설팅 펌은 딸을 포함한 가족이 운영하며 스스로 “가족기업 임상”을 진행하고 있다. 암스테르담 대학 경제학 석사,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MBA와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은 세계적인 경영학자이며, 개인과 가족의 깊이 있는 심리분석 정식 훈련을 받은 국제 공인 정신분석가이다. 가족과 기업, 그리고 가족기업에 관해서 이보다 더 깊은 이해와 혜안, 그리고 임상경험을 가진 이는 전 세계적으로도 거의 없을 것이다. 가족기업을 단순히 법적으로 정의하거나, 재무제표로 기업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을 넘어 가족이 가진 가치와 그들의 관계, 역동, 그리고 차마 말하지 못하는 그들의 속내를 들여다보는 그의 시선은, 그래서 더욱 공감되고 친절하며 때론 너무나 적나라해 뼈아프지만 무엇보다 애정이 듬뿍 담겨 있다. 독자들은 내가 겪고 있는 문제가 우리 집이나 회사의 고유한 특징이나 나 홀로의 외로운 전투가 아니라 가족기업이 갖는 필연적 어려움임을 알고 그에 대한 대처 방안이 있다는 것에 안심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기업에서도 인간을 먼저 보기를 권한다. 결국 기업도 사람이 하는 일이고, 고객도, 종업원도 사람이다. 창업자는 보통의 사람들이며, 승계를 받는 사람들은 마냥 쉬운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고 수많은 내적·외적 딜레마와 싸워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본다. 창업자는 강인함을 가지고 오랜 시간 사업을 일궜다. 그 강인함은 가족들을 압도하고, 오랜 시간 사업에 집중한 덕에 가족과의 유대는 약해졌다.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 일한다고 하지만, 아버지와 함께하고픈 자녀들은 아버지의 사업과 관심 경쟁을 해왔다. 그리고 가족기업 종사자들은 일반 스타트업이나 오너가 없는 회사에 비해서 충성심을 중시 여기고 전통과 가풍의 개념을 이해하는 사람들이다. 오로지 개인의 능력과 성과로만 평가받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적합한 곳이 아닐 수 있다. 가족기업에는 비합리성이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이 비합리성은 가족 구성원 입장에서는 지극히 합리적인 경우가 많다. 따라서 재단하고 판단하고 비판하기에 앞서 서로 이해하고 대화하고 조율할 것을 권한다.
또한 본서에는 오래전 미국과 캐나다의 기업과 유럽 기업의 예시가 등장한다. 역자가 한국에서 관련 교육을 할 때마다 교육 담당자부터 교육 대상자들에게 매번 듣는 요청이 있다. 우리나라는 미국, 유럽과 다르니 우리나라의 상법에 맞는 사례를 소개해 달라고 말이다. 우리나라는 제조업과 식품산업 등 전통사업은 2세, 길어야 3세, 근대화와 함께 시작한 회사들은 4세가 경영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승계에 성공한 회사는 얼마 없다. 가족기업은 오랫동안 지켜봐야 한다. 가족기업이라는 모호한 정의와 서류상 읽을 수 없는 관계 특수성 때문에 사실상 통계를 내는 것도 불가능에 가깝고, 연구가 있더라도 그 수치가 제각각이지만, 대부분의 나라에서 3대가 넘어가는 가족기업의 퍼센티지는 한 자릿수 내로 보고 있다. 그리고 특히 가족기업 내에서 일어나는 일은 가족의 이야기로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져 있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산업화 초기의 서구 선진국, 특히 제조나 유통과 같은 전통산업의 사례가 풍부한 본서가 국내 기업에도 최고의 가이드임을 자부한다. 필자가 오랜 시간 우리나라 기업 현장에서 들어왔던 사례들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 이들의 역사를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것, 반면교사 할 것을 현명하게 가려내어 학습하는 것이 필요하다. 최근에는 국내 대기업은 물론 2세가 폭발적 성장을 한 성심당, 3세가 비즈니스 모델 변화에 성공한 삼진어묵 등 대를 이어 성장하는 국내 중소기업 사례도 많이 소개되고 있으니 이 렌즈를 사용하면 다양한 규모 기업의 성공 요인을 색다르게 보고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누가 읽어야 하나?
이 책은 모든 가족기업 경영자와 특수관계자, 그리고 투자자 등 기업 구성원에게 기본 필독서라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누구인지,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이해 없이 살아간다. 이는 평생을 고민해도 완전히 알기 어려운 문제일 수 있다. 그러나 완전한 이해가 어렵다고 해서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살아가서는 안 된다. 가족기업은 엄연히 학문적으로도 활발히 연구된 분야이며, 학습할 가치가 높은 사례들이 풍부하게 축적되어 있다. 즉각 적용 가능한 실무적 기법도 존재하지만, 그에 앞서 가족과 기업, 그리고 가족기업의 본질적 작동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래야 다양한 경영 지식과 기법을 선별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안목이 형성된다. 창업은 누구나 비교적 단기간에 시도할 수 있지만, 가족기업은 단기간에 형성되지 않는다. 가족기업은 수십 년, 때로는 그 이상에 걸쳐 가족의 헌신 속에서 축적되며 하나의 가문으로 확장된다. 따라서 단기적 성과 창출과 주주 이익 환원 못지않게 가족 내부의 관계를 공고히 하는 데 시간과 자원을 투자하는 것을 아까워해서는 안 된다. 일반 가정에서의 “자녀”는 가족기업에서는 “후계자”가 된다. 많은 경영서가 시장과 기술 변화에 주목할 것을 강조하지만, 이 책의 저자들은 먼저 자신과 가족을 성찰할 것을 강조한다. 이러한 특수성을 이해한다면 의사결정과 행동 양식 역시 달라질 수밖에 없다.
가족기업 구성원과 함께 일하는 임원들 또한 자신이 속한 조직의 작동 원리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많은 임원들이 MBA나 최고경영자 과정을 통해 합리주의에 기반한 경영 이론을 학습한다. 실제로 경영학 연구는 미국에서 가장 활발히 이루어지며, 미국 기업들은 창업자나 전문경영인이 합리성을 중심으로 경영을 수행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포드나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기업도 창업자 은퇴 이후에는 유사한 구조를 따른다. 가족 구성원은 지분을 기반으로 이사회 수준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의결권 없이 배당만 받으며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많은 경영 이론이 가족 중심의 가치와 정서적 유대를 기반으로 운영되는 가족기업과는 다른 전제를 바탕으로 한다. 가족기업에서 일하는 임원이라면 이러한 합리적 이론이 비합리적으로 보일 수 있는 가족 체계 안에서 어떻게 작동할 수 있는지를 이해하는 통찰이 필요하다.
경영 컨설턴트, 리더십 코치, 세무·법률 전문가, 투자자, 금융인 등 기업 운영에 관여하는 모든 전문가에게도 이 책은 새로운 이해의 틀과 언어를 제공한다. 경영 컨설팅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CEO의 의사결정에 합리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정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맥락을 해석하는 과정에 가깝다. 특히 가족기업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맨프레드 교수의 지도교수이자 하버드 경영대 교수, 정신분석학자였던 고 아브라함 잘레즈닉은 한 논문에서 가족 승계 컨설팅 경험을 통해 흥미로운 통찰을 제시한다. 그는 한 기업의 승계 회의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회의는 과열되고 냉소와 고성이 오가는 상황이었다. 그는 개입하지 않고 침묵을 유지했으며, 회의가 끝난 후 승계 적임자의 역할과 이름이 적힌 메모만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어떤 설명도 덧붙이지 않았다. 이후 1년간 내부 갈등과 조정을 거친 끝에, 결국 그의 제안과 동일한 방향으로 승계가 이루어졌다. 이는 구성원들 모두가 이미 답을 알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는 그 회의가 합리적 토론의 장이 아니라, 오랜 감정이 폭발하는 갈등의 장이자 권력을 둘러싼 마지막 경쟁의 무대임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전문가들이 이 책을 끝까지 읽는다면, 이러한 상황에서 이론과 법령을 앞세워 피상적인 합리성을 강요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게 될 것이다. 가족 갈등에 외부인이 개입해 ‘옳은 말’을 할 경우, 오히려 조직 전체의 반감을 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이 책은 분명히 보여준다. 프라이빗 뱅
커, 승계 전문 법률·세무 전문가, 감정평가사, 사모펀드 운용사 등이 경영권 및 자산 이전을 지원할 때, 가족의 언어와 정서를 이해한다면 보다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의사결정 구조를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번역을 마치고
결국 본서는 산업의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개인과 가족, 그리고 기업의 이야기이다. 다만 사람과 기업은 성장 단계에 따라 활동의 장을 옮기며 새로운 규칙 속에서 작동한다. 그러나 가족기업의 구성원들은 많은 경우 동일한 환경에서 오랜 시간, 기존의 규칙과 새로운 규칙이 혼재된 상태로 살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모호성을 견디고, 불확실성을 감내하며, 미래 세대를 위해 과감한 투자를 감행하고, 가족을 지킨다는 강한 책임감으로 기업을 유지한다. 이러한 특성은 오히려 불확실성이 높은 시대에 경쟁력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강점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구성원 간의 신뢰와 개방적 소통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동안 꺼내지 못했던 불편한 대화도 시작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질문해야 하는지에 대해 본서는 중요한 방향을 제시한다.
역자가 지난 30년 가까이 다양한 국가와 기업 현장에서 만난 교육생들은 모두 서로 다른 사람들이었다. 개인이 서로 다르듯 기업 역시 각기 다르다. 같은 부모 아래에서 태어난 형제도 서로 다르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 속에서도 관통하는 보편성은 분명 존재한다. 나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독자가 내 책을 읽거나 강연을 듣고 깊은 공감과 위로를 경험했다고 말하는 순간들을 목격해 왔다. 비록 이 책이 유럽과 미대륙의 사례를 중심으로 하고 있지만, 그 안에 담긴 가족의 이야기는 국경을 초월해 보편적인 울림을 지닌다.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어려움이 결코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에서 위안을 얻고, 다양한 가족기업 사례를 통해 통찰을 확장하며 스스로의 해답을 찾아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저작권이 출판사에서 저자들에게 이전된 상태에서 이 책의 판권을 확보하는 과정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 과정에 적극적으로 협조해 준 나의 오랜 스승이자 친구인 세 분의 저자와 박영사 관계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
2026년 6월
역자 김현정
맨프레드 F. R. 케츠 드 브리스
Manfred F. R. Kets de Vries
인시아드(INSEAD)에서 리더십 개발 및 조직 변화 분야의 임상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며, 인시아드 글로벌 리더십 센터를 설립한 인물이다. 그는 경제학 (암스테르담 대학), 경영학(MBA 및 DBA, 하버드 경영대학원), 정신분석학에 이르는 학제 간 배경을 바탕으로 경영학과 인간 심리를 통합하는 독창적 연구를 수행해 왔다.
그는 《파이낸셜 타임스(Financial Times)》, 독일 경제 전문지 《비어트샤프스 보케(WirtschaftsWoche)》, 프랑스 비즈니스 잡지 《르 캐피탈(Le Capital)》, 스페인 일간지 《엘 파이스(El País)》, 영국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 등 주요 국제 매체로부터 세계 최고의 경영 사상가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으며, 리더십과 조직 변화 분야에서 인간의 무의식과 정서 역동을 조직 연구에 도입한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또한 70권이 넘는 저서를 집필하고 400편 이상의 논문과 연구를 발표했으며, 그의 연구는 리더십 개발, 기업 변혁, 가족기업과 승계, 경영자 스트레스, 조직 심리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다.
그는 국제리더십학회(ILA) 평생공로상, 미국심리학회(APA) 레빈슨 상 등 다 수의 권위 있는 상을 수상했으며, 경영학과 정신분석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임상적 경영 연구’의 창시자로서 현대 리더십 연구의 지평을 확장한 인물로 평가된다. 국내에 번역·소개된 주요 저서로는 『리더는 어떻게 성장하는가』, 『리더십 롤러코스터』, 『삶의 진정성』,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기를』, 『나르시시스트 리더를 만났다면』(김현정 공번역) 등이 있다.
랜델 S. 칼록
Randel S. Carlock
랜델 S. 칼록 교수는 가족기업 리더십, 지배구조, 그리고 조직 심리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는 연구자이자 교육자, 컨설턴트이다. 그는 자신이 설립한 나스닥 상장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및 회장을 역임했으며, 인시아드(INSEAD) 경영대학원의 초대 베르흐만스 로이스트(Berghmans Lhoist) 기업가 리더십 석좌교수를 지냈다. 또한 다수의 저서와 학술 논문, 사례 연구를 집필한 바 있다.
그는 세계 각국의 가족기업에 자문을 제공하고 있으며, 최첨단 연구와 최고경영자 경험을 결합해 가족과 기업이 병행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실질적이고 혁신적인 해법을 제시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가족치료에 대한 전문 훈련과 MBA 교육 경험을 바탕으로, 세대 간에 발생하는 정서적 복잡성과 갈등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있으며, 이러한 요인들이 기업 내 커리어와 가족 간 조화를 위협하는 문제로 이어질 수 있음을 통찰력 있게 설명한다.
엘리자베스 플로랑-트레이시
Elizabeth Florent-Treacy
엘리자베스 플로랑-트레이시 박사는 인시아드(INSEAD)에서 15년간 시니어 강의교수이자 논문 지도 교수로 재직하며 경영자 교육 프로그램을 이끌어 왔다. 또한 리더십, 지배구조, 다양성 분야의 연구 펠로를 지냈으며, 현재 Kets de Vries Institute의 시니어 교수진으로 활동하고 있다.
조직 개발과 임상 조직 심리학을 기반으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시스템 정신역동 관점을 통해 조직 내 인간 행동과 갈등을 연구해 왔다. 다수의 저서와 사례 연구, 학술 논문을 집필했으며, 주요 학술지와 학회에서 연구를 발표하였다.
그녀는 수백 편의 석사 논문을 지도하며 학문과 현장을 연결하는 교육에 주력해 왔으며, 조직 컨설턴트로서 아시아와 중동 등 다양한 지역의 경영진과 협업해 왔다. 또한 영국 타비스톡 인간관계연구소 인증 코치 및 컨설턴트 슈퍼바이저이다.
역자 김현정
김현정 박사는 리더십 개발과 상담 심리 분야에서 연구와 실무를 아우르는 전문가로, 가족과 조직의 역동을 기반으로 한 리더십 개발과 조직 변화에 주력해 왔다.
기업교육 전문 브랜드 ‘Executive Coach Society’와 전문가 양성 기관 ‘김현정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으며, 공익법인 ‘중소벤처기업 코칭컨설팅협회’ 부회장으로서 다수의 기업을 대상으로 리더십 코칭과 컨설팅,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삼성전자 리더십 개발센터, 숭실대학교 경영학부 조교수, 숭실대학교 중소기업대학원 혁신컨설팅학과 주임교수를 역임하였다. 미네소타 대학교에서 상담심리학 석사 학위를,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조직과 리더십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인시아드(INSEAD) 글로벌 리더십 센터 연구원을 지냈으며, Kets de Vries Institute 글로벌 얼라이언스로서 본서 저자들과 공동 연구와 교육을 이어 오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최고의 팀을 만드는 심리적 안전감』, 『이그제큐티브 코칭의 이론과 실제』, 주요 역서로는 『블루오션 전략 확장판』,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기를』, 『나르시시스트 리더를 만났다면』 등이 있다.
차례
역자 서문 • i
저자 서문 • xiii
감사의 말 • xxviii
제1부 질문과 관찰 • 1
서론 3
제1장 기업 가족에 대한 심리적 관점 9
정신역동적 관점과 가족 시스템 관점 11
정신역동적 접근법의 핵심 개념들 12
전이와 역전이의 역할 13
가족 시스템 관점 19
치료적 동맹 22
정리 23
미주 25
제2장 사랑과 일의 갈등 29
가족기업에서 충돌하는 목표들 30
3써클 모델 33
갈등이 어떻게 발전하는가 37
미주 44
제3장 가족기업의 실행: 장점과 단점 평가하기 45
가족 운영과 사업 운영의 인터페이스 49
가족기업의 건강성 평가 69
미주 71
제2부 성찰과 학습 • 73
제4장 생애주기를 조직화 구조로 활용하기 75
가족기업의 다중 생애주기 76
인간 심리 발달의 핵심 모델 79
가족 생애주기 87
카터 & 맥골드릭의 가족 기반 생활 주기 모델 89
가족기업에서 생애 주기 모델 적용 92
미주 96
제5장 가족기업의 나르시시즘, 질투, 그리고 신화 99
성격 유형 99
역기능 나르시시즘의 경영에서의 의미 107
개별화의 중요성 108
과도기적 대상으로서의 가족기업 110
시기의 힘 113
가족이 벌이는 게임들: 가족 신화의 역할 121
가족기업에 미치는 가족 신화의 영향 123
요약 127
미주 129
제6장 창업가: 정상에서 홀로 133
창업가의 공통적 성격 특성 133
래리 엘리슨과 오라클 135
창업가의 내면 극장 해독하기 141
창업가의 공통적 방어 구조 156
균형 유지하기 157
미주 159
제7장 리더십 전환: CEO로서 부모를 대체하다 161
승계 문제 해결 방안 162
상속 163
신임 리더에게 가해지는 심리적 압박 165
방향성 유지하기 175
미주 178
제8장 비즈니스 가족에 대한 시스템 관점 179
양방향 관계 179
시스템 이론의 진화 181
가족 시스템 이론의 발전 182
가족 시스템 명제 188
가족 스크립트와 규칙 190
가족기업에서의 가족 스크립트 192
가족 시스템 사고의 실제 예시 199
미주 201
제9장 가족 얽힘 진단하기 203
가족 제노그램 204
결혼과 가족 시스템에 대한 서컴플렉스 모델 211
원가족으로부터의 자기 분화 216
두 가족 이야기 218
미주 227
제3부 통합과 실행 • 229
제10장 전환과 변화에 대응하기 231
변화에 관한 레빈의 관점 232
개인 변화 모델 234
개인의 변화 여정에서 나타나는 주요 주제 241
조직 내 변화의 과정 245
가족 내 변화 과정 252
가족 중심인가, 조직 중심인가? 261
미주 263
제11장 가족기업의 부침과 파란 267
스타인버그 가족: 자기파괴의 사례 연구 267
이민자의 꿈 269
그 어머니의 아들 271
기업가의 비전 273
가족기업 리더로서의 샘 274
기업가의 딜레마: 바통을 넘기다 277
다음 세대 278
어빙 러드머: 다시 한번, 샘 279
가족 시스템 관점에서 본 스타인버그 가문 283
샘 스타인버그의 내면 세계가 가족기업에 미친 영향 290
샘의 딸들의 내면 극장 293
만약에 297
미주 299
제12장 가족기업 개입의 실제 적용 301
가족 행동 연구 과정 302
승계의 난제 303
외부 자문가의 역할 334
도움을 구하는 가족을 위한 조언 335
정신역동적 체계 관점의 이점 337
맺음말 339
미주 341
부록 1 • 343
부록 2 • 3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