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발행 2025.06.30
들어가며
지난 몇 년간 필자는 마치 운명이라도 되는 것처럼 자동차 급발진 문제에 매진해 오면서 경영대학 교수가 왜 급발진 문제를 파고드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즉답을 피하며 말을 아껴왔다. 그리고 급발진 관련 국회 정책세미나의 발제 및 토론, 방송출연, 신문 인터뷰 및 기고 등의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연구논문, 조사자료, 전문가 증언 등 최대한 객관적인 정보만을 전달하려고 노력하였다.
개인적인 동기를 밝히지 않았던 이유는 2020년 가을 급발진 의심사고를 당하신 부모님을 대신하여 자동차 제조사와 3년에 걸친 민사소송을 벌이고 있었기에 자칫 감정적인 화풀이나 소송을 위한 여론몰이 등으로 비칠까 염려되었기 때문이다.
사고로 인한 치명상으로 노동능력을 100% 상실한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셨다. 병원에서 기관절개와 산소공급줄, 위루관, 혈관카테터, 소변줄, 기저귀, 바이탈 센서 등 온갖 것들을 몸에 치렁치렁 부착하신 채 24시간 간병을 받으며 고통을 감내하셔야만 했다. 주변 사람들 모두가 말렸지만 자식된 도리로서 소송을 하지 않을 수 없었고, 지난한 소송에서 제조사의 논리를 제대로 반박하기 위해 스스로 공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연구실에서 수많은 밤을 지새며 급발진 이슈를 조사하고 추적해 왔다. 정보가 충분하지 않거나, 혼자 힘으로 이해할 수 없을 때에는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았다. 차량용 반도체를 개발하는 연구원, 자동차 ECU 개발 경력이 있는 엔지니어, 베테랑 프로그래머, 항공기 사고분석 전문가, 전기 · 전자제어 전공 교수, 자동차 전자제어 전공 교수, 보건통계학 전공 교수, 교통사고 분석 전문가, 자동차 명장, 제조물책임법 전문 변호사,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등 내가 접촉가능한 전문가란 전문가는 다 찾아다닌 것 같다. 직접 만나기도 하고, 전화 인터뷰, 서면질의 등을 통해 자동차 급발진 문제와 관련된 유용한 정보와 지식, 식견을 얻을 수 있었다.
2024년 초, 3년 동안 진행된 소송에서 패소하였다. 급발진에 대한 직접증명은 불가능하므로 차량을 정상적으로 사용하였다는 간접사실 등을 통해 입증책임의 전환을 노려보는 것이 재판 전략이었으나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제조사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필자가 수집하여 호증으로 제출한 수많은 자료들, 여러 전문가 의견서들이 판결문에서 거의 언급조차 되어 있지 않았다. “원고들의 주장은 더 나아가 살펴볼 필요 없이 이유 없다”는 표현을 보는 순간 입증할 수 있는 증거가 없으면 덤비지 말라는 표현으로 들렸다. 현재 우리나라 사법제도하에서는 더 이상 소송을 진행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느껴졌다.
필자가 회복 가망이 없는 아버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은 소송을 더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급발진 문제를 세상에 널리 알리고, 억울한 피해자들이 더 이상 생기지 않도록 법과 제도를 개선하고, 제조사들의 책임 있는 자세와 필요한 기술적인 조치들을 유도하는 데 일조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인들도 그동안 수집한 자료, 알게 된 지식이 결코 적지 않을 터이니 이것들을 연구논문이나 책을 통해 우리 사회에 공유하는 작업을 해볼 것을 권했다.
아무래도 연구논문은 독자층이 매우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책을 집필하여 다양한 독자들과 급발진 문제의 주요 쟁점 및 소비자 보호를 위한 개선 방안을 공유하는 것이 더 의미가 있다는 판단하에 책 집필을 선택하였다. 필자가 아는한 급발진 문제만을 중점으로 다루는 책은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시도이다.
우리 속담에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이 있다. 비록 사고 당사자 가족으로서의 아픔이 발단이 되었고 자동차 분야 전공자는 아니지만, 대학교수로서 역량을 총동원하여 오랜 시간을 급발진 문제에 쏟아부으면서 누구보다도 이 문제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심각성을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급발진 의심사고를 당하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조사는 운전자의 페달착오라고 몰아가며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이지 않는다. 1차적으로 교통사고를 조사하는 경찰은 기술적인 문제는 잘 모르니 국과수 조사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국과수는 급발진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자동차의 두뇌, ECU의 반도체 및 소프트웨어에서 발생하는 전자적인 결함에 대한 조사 없이 눈에 보이는 기계적인 결함 및 사고기록장치(EDR) 위주의 조사를 통해 급발진의 증거를 찾지 못했다는 결론을 내어놓는다. 피해자가 마지막으로 소송을 통해 억울함을 호소해 보아도 급발진을 입증할 증거 부족으로 거의 대부분 패소하고 있다. 첨단 기술의 시대에 사람들이 치명상을 입거나 죽어 나가는 안타까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음에도 급발진 문제는 명백한 원인규명과 뾰족한 해결책 없이 답보하고 있다.
많은 국민들이 제조사, 국과수 조사, EDR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 오죽하면 자동차학과 교수가 자기차에 페달 블랙박스를 설치했다고 하고, 국토부 장관도 페달 블랙박스를 설치할 예정이라는 말이 나오겠는가. 비유컨대 지진이나 화산폭발 직전처럼 자동차 급발진 문제는 임계점에 도달해 있다. 지금이 바로 더 늦기 전에 제대로 된 해결 방안을 도출해야 할 타이밍이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필자는 다방면에서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다. 특별히 재판 과정에서 본인들의 일인 것처럼 공감하며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입해 장문의 전문가 의견을 제공하여 도움을 주신 분들이 있다. 연구실적뿐 아니라 산업체 및 연구소 실무경험까지 겸비한 전기 · 전자제어 전공 J 교수님, 반도체 업계에서 잔뼈가 굵고 자동차용 반도체를 포함하여 다양한 반도체 칩의 설계 책임자 경력을 가진 L 박사님, 자동차 ECU에서 주로 사용하는 C언어에 최상급의 코딩능력을 가진 베테랑 프로그래머 S 이사님, 자동차 전자제어장치와 EDR의 한계점을 항공기와 비교해 준 항공기 운항 및 사고분석 전문가 K 기장님께 지면을 빌려 심심한 감사를 전한다. 또한 J 교수님, L 박사님, S 이사님, K 기장님이 재판과정에서 제공해 주신 전문가 의견을 필자가 이 책에 직 · 간접적으로 활용하고 싶다는 요청을 드렸고 네 분 모두 흔쾌히 허락해 주셨음을 밝힌다. 모두 현업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신 분들인 관계로 급발진이라는 민감한 사안에 실명이 노출되는 경우 비방 및 불이익 등이 우려되어 부득이 이니셜로 언급하게 되었다.
이 외에도 감사를 전해야 할 대상이 많다. 장시간의 전화 인터뷰에 응해주신 전직 ECU 소프트웨어 개발 엔지니어, 통계적 관점에서 장시간 페달착오 가능성이 희박함을 설명해 준 보건 · 의료 데이터 전문가, 운전을 하신 어머니의 인지능력 검사점수가 보통의 젊은 사람보다 높다는 설명과 근거자료를 제공해 주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DR의 신뢰성에 대한 질의에 서면으로 응답해 준 국내 유명 대학 자동차 전자제어 연구실 등 도움을 주신 분들을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이다. 또한 책 집필에 전념할 수 있도록 기가 막힌 타이밍에 연구년을 허가해 주고 연구비를 지원해 준 상명대학교에 감사한다. 어려운 소송을 맡아 3년 동안 많은 수고를 해주신 이인걸 변호사님, 강치훈 변호사님께도 감사를 전한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항상 위로와 응원을 보내주어 고마운 마음과 바쁘다는 이유로 가정에서 부재중 아빠인 날이 많았음에 미안한 마음을 함께 전하고 싶다.
급발진 의심사고 후에 병상에 꼼짝없이 누워 4년 동안 신음하시던 아버지는 2024년 가을 소천하셨다. 부지런히 집필해서 아버지 생전에 책을 보여드리는 것이 목표였는데 아쉽게도 아버지의 시간은 필자를 기다려 주지 않았다. 아무쪼록 이 책이 더 이상 자동차 급발진 의심사고로 죽거나 다치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앞당기는 데 마중물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이 책을 아버지 영전에 바친다.
2025년 6월 북한산 기슭 연구실에서
저자 반주일
반주일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지구환경시스템공학부를 우등 졸업하고 동 대학 경영학과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한국수출입은행과 우리자산운용에서 실무경험을 쌓았으며, 2013년부터 상명대학교 글로 벌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020년에 부모님이 당하신 급발진 의심사고로 인해 자동차 제조사와 3년에 걸친 법정 공방을 벌였다.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학자로서의 역량을 총동원하여 공학, 경영, 법률, 소비자보호 등 융복합적인 접근으로 급발진 이슈를 조사 · 추적하는 일에 매진해 왔다.
KBS, YTN, MBC, 세계일보 등 다수의 언론매체를 통해 EDR의 신뢰성 문제, 전자장치 결함 가능성 및 다중화의 중요성 등을 전파하였다. 제조물책임법 관련 국회 정책세미나의 발제자 및 토론자로 활동하였고 급발진 문제와 관련하여 소비자의 권익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사단법인 ‘소비자와함께’로부터 소비자권익증진상(2024)을 수상하였다
들어가며······················································XX
Chapter 1. 급발진은 있다? 없다?
Chapter 2. 급발진 관련 우리나라 판례
Chapter 3. Bookout 소송 파헤치기
Chapter 4. ISO 26262
Chapter 5. ECU 오작동 가능성
Chapter 6. 반도체 이슈
Chapter 7. 소프트웨어 이슈
Chapter 8. EDR의 신뢰성 논쟁
Chapter 9. 브레이크 이슈
Chapter 10. 제조물 책임법 개정 논의
Chapter 11. 페달착오 및 페달블랙박스 이슈
Chapter 12. 다중화(redundancy)
Chapter 13. 민사소송 체험기
Chapter 14. 못다한 이야기
Chapter 15. 소비자 보호 방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