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발행 2026. 8. 10
이 책을 번역하게 된 출발점은 하나의 질문이었다.
“우리는 상실 이후에 남겨진 고통을 충분히 돌보고 있는가?”
오랜 시간 함께해 온 초등학교 동창이자 임상전문가인 고선규 박사(한국심리학회 자살예방위원회위원장)와 한국심리학회 자살예방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우리는 반복해서 이 질문과 마주하였다. 고 박사는 자살 심리부검과 자살 사별자 지원 현장에서 오랜 임상 경험을 쌓아 온 전문가로서, 상실 이후 남겨진 고통이 얼마나 복합적이며 장기적으로 지속되는지를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마주해 왔다. 나는 마음챙김-자기연민(Mindful Self-Compassion, MSC) 수행과 지도자로 활동하며, 고통을 제거의 대상으로 삼기보다 고통과 함께 머무는 태도가 개인과 공동체에 가져오는 변화를 탐구해 왔다. 서로 다른 실천의 자리에서 출발했지만, 우리의 문제의식은 하나로 수렴되었다. 애도는 왜 여전히 고립된 경험으로 남아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 곁에 어떤 방식으로 설 수 있는가.
동시에 우리는 교육대학원에서 학교 교사와 학교 현장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들을 교육하며, 학교 공동체가 경험하는 다양한 상실과 위기를 직접 듣고 마주해 왔다. 그 과정에서 우리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교사 집단에 집중되었다. 교사는 학생의 죽음, 자살 시도, 사고와 질병 등 반복되는 상실을 경험하면서도 동시에 ‘돌보는 자’의 역할을 지속해야 하는 위치에 놓인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충격과 슬픔을 충분히 애도할 시간과 공간, 그리고 이를 표현할 언어를 확보하지 못한 채 다시 일상적 책무로 복귀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애도의 필요는 절실하지만 이를 제도적으로 보장받기 어려운 자리이기도 하다. 교사를 위한 애도 프로그램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애도와 연민을 이론적·임상적 차원에서 다시 성찰하고 재구성할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그 과정에서 만난 책이 『Compassion-Based Approaches in Loss and Grief』이다. 이 책은 애도를 병리화하거나 조속히 해결해야 할 문제로 보지 않는다. 대신 상실을 관계적 · 사회적 맥락 속에서 이해하며, 연민을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배우고 길러갈 수 있는 임상적 태도로 이야기한다. 여기서 애도는 죽음에만 한정되는 경험이 아니다. 관계의 단절, 역할의 상실, 건강의 악화, 정체성의 변화와 같은 삶의 다양한 상실 또한 애도의 영역에 포함된다. 슬픔은 제거의 대상이 아니라 존중받아야 할 인간 경험이며, 연민은 그러한 경험과 함께 머물 수 있도록 하는 태도이자 실천이라는 점을 이론적 논의와 임상적 적용을 통해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이 책을 통해 분명해진 것은 두 가지이다. 첫째, 연민은 개념적 선언이 아니라 체화되어야 할 태도라는 점이다. 둘째, 애도는 개인의 적응 문제로만 볼 수 없는, 관계 속에서 함께 감당해야 할 과제라는 점이다. 이는 자살, 사고, 질병, 재난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면서도 집단적 애도를 충분히 수행하지 못하는 오늘의 한국 사회에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고통을 신속히 해소해야 할 과제로만 보지 않고, 이를 개인의 회복력 부족 문제로 축소하지 않을 때, 우리는 고통과 함께 존재하는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한 가능성은 개인의 치유를 넘어 공동체의 회복과도 연결된다.
이 책이 독자 여러분에게 새로운 시선으로 생각해 볼 작은 전환의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누군가의 슬픔 앞에서 어떻게 응답해야 할지 고민하는 이들에게, 자신의 상실을 오래 홀로 감당해 온 이들에게, 돌봄의 자리에서 소진을 경험하는 이들에게 이 책이 하나의 이론적 틀과 실천적 언어를 제공하기를 기대한다. 연민 기반 애도가 우리 사회 안에서 보다 성숙하게 자리 잡는 데 이 책이 작은 기여가 되기를 바란다.
끝으로, 이 번역 작업은 연민과 애도를 함께 공부하던 스터디 모임에서 시작되었다. 이 책을 읽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이 논의가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해질 필요가 있다는 데 뜻을 모았고, 그 연장선에서 번역을 결심하게 되었다. 번역에 함께해 준 강보영, 김소연, 권유진 선생님께 깊이 감사드린다. 빠듯한 일정 속에서도 서로의 관점을 나누고 문장을 함께 다듬어 가며 6개월이라는 시간 안에 이 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의 성실한 협력 덕분이었다. 또한 스터디 과정에 함께하며 사유의 폭을 넓혀 준 백혜영 선생님께도 고마움을 전한다. 직접 번역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함께 나눈 대화와 질문들이 이 작업의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스터디의 자리에서 시작된 논의가 한 권의 책으로 이어진 과정은 우리 모두에게 뜻깊은 경험이었다.
이러한 과정 자체가 우리에게 하나의 중요한 배움이었다. 이 책이 말하듯, 고통을 함께 견디는 일은 언제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이번 번역 또한 그러한 협력의 결실이다. 그 모든 인연과 수고에 깊이 감사드린다.
2026년 8월
대표 역자 신효정
역자 소개
신효정
아주대학교 교육학과(교육상담 및 심리) · 교육대학원(심리치료교육) 교수로 재직 중이며, 청소년 및 부모상담, 학업 및 교사 소진, 마음챙김-자기연민을 중심으로 연구와 교육을 이어가고 있다. 상담심리사 1급(한국상담심리학회)과 청소년상담사 1급(여성가족부) 자격을 보유하고 있으며, 국제공인 MSC(Mindful Self-Compassion) Trained Teacher(CMSC)로도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교사의 상실 경험과 회복, 연민 기반 상담에 관심을 기울이며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고선규
임상심리학 박사이며, 상실과 애도, 특히 자살을 비롯한 외상적 사별을 경험한 사람들의 애도 여정에 함께하고 있다. 상담실과 강의실, 그리고 심리학과 문화예술의 협업을 통해 우리 사회의 애도 문해력을 높이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제51~52대 한국심리학회 자살예방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우리는 모두 자살 사별자입니다』, 『여섯 밤의 애도』, 『슬픔이 서툰 사람들』 등이 있다.
목차
역자 서문 i
추천사 iv
상실과 애도를 위한 연민 기반 접근 viii
죽음과 임종 그리고 사별에 관한 총서 x
감사의 글 xii
집필진 소개 xiv
총서 서문 xxxi
서론 xxxiv
제1부 기본 원리
제1장 연민으로 이르는 길 3
Mary L. S. Vachon
제2장 갈망과 애도에 대한 진화론적・연민 기반 접근 23
Paul Gilbert
제3장 애도의 기초적 측면 45
Darcy L. Harris
제4장 연민, 상실 및 애도에 관한 최신 연구 검토와 종합 63
Oindrila Dutta, Paul Victor Patinadan, and Andy H. Y. Ho
제5장 사회학적 렌즈를 통해 바라본 연민 91
Neil Thompson and Gerry R. Cox
제6장 연민 어린 참여와 반응의 영역 103
Darcy L. Harris
제2부 연민의 구성 요소 훈련
제7장 연민 훈련이란 무엇인가? 119
Andy H. Y. Ho and Darcy L. Harris
제8장 마음챙김적 알아차림: 임상가와 실무자를 위한 수행과 성장의 길 135
Adrian Wan, Eric Leung, and Paul Victor Patinadan
제9장 애도 및 상실과 함께하기: 치료적 현존의 기초적 역할 151
Shari Geller and Claudia Dias Martins
제10장 보편적 인간경험: 의료 전문가와 환자 간 상호연결성에 대한 인식 167
Venus Wong, Ronald Epstein, and Michael Krasner
제11장 임상가를 위한 자기연민 183
Philip Larkin
제3부 임상적 적용
제12장 연민 중심 애도 치료 201
Darcy L. Harris
제13장 연민 어린 반응의 GRACE 모델 217
Darcy L. Harris
제14장 상실과 애도에서의 연민 어린 자기 돌봄: 마음챙김-연민 예술 중심 치료 233
Geraldine Tan-Ho and Andy H. Y. Ho
제15장 생애 말기 돌봄에서의 존엄과 연민 247
Andy H. Y. Ho
제16장 애도 과정에서 나타나는 수치심 261
Marcela Matos and Stan Steindl
제17장 애도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저장 행동 이해와 치유 277
Chia-Yïng Chou
제18장 계속되는 상실과 만성적 슬픔의 상황에서의 연민 291
Darcy L. Harris
제19장 마음챙김과 자기연민에 기반한 체화적 애도 실천 307
Brad Hunter
제20장 현장 이야기: 애도를 지원하는 자원으로서의 자기연민 317
Jo Storozinski and Cesar Gonzales
제21장 연민 중심 심상 및 체화 실습 333
Stan Steindl and Marcela Matos
제22장 애도를 위한 연민 중심 의자 작업 349
Tobyn Bell and Matthew Pugh
제4부 조직적・구조적 접근
제23장 보건의료에서 연민이 직면하는 도전: 시스템적 접근 367
Alina Pavlova and Nathan S. Consedine
제24장 조직과 정치적 구조에서의 연민 379
June Allan
제25장 생애 말기 돌봄을 위한 연민 어린 도시 393
Allan Kellehear
맺음말 연민과 애도, 함께하는 동반자 409
Darcy L. Harris and Andy H. Y. Ho
참고문헌 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