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발행 2026. 8. 10
한국 독자를 위한 서문
이 책 <Someone Has to Fail>의 번역을 통해 한국 독자 여러분을 만날 수 있게 되어 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이 서문의 기회를 빌려, 미국 교육 시스템의 독특한 성격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을 위해 미국 교육체계의 구조를 간략히 개관하고자 합니다.
미국의 학교교육 시스템의 핵심은 학습 그 자체보다는 사회적 지위의 획득을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이 제도의 추진력은 교육 소비자들이 학교교육을 사회적 접근성을 얻거나 기존의 사회적 우위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노력에서 나옵니다. 학교 시스템은 이러한 두 가지 소비자 압력에 모두 적응해 왔으며, 상충되는 목표들을 복잡하면서도 관대한 구조 안에 흡수해 왔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학교교육 시스템은 하층 계급 가정들이 자녀의 계층 이동을 촉진하기 위하여 상급 학교에 진학하고자 하는 정치적 요구에 대응해 왔습니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교육 접근의 확대를 요구하는 다수 유권자의 요구를 제도가 거부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동시에 교육제도는 상층 계급 가정들이 부모 세대가 누려온 사회적 우위를 자녀들이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는 형태의 교육을 제공해 달라는 요구에도 부응해 왔습니다.
이 과정은 다음과 같이 작동합니다. 한 집단의 학생들은 다른 집단에게 사회적 우위를 제공하는 교육 단계에 접근하고자 합니다. 시스템이 마침내 이러한 접근을 허용하면, 다른 집단은 이미 그 단계에 자리 잡은 학생들의 우위를 보존해 달라고 요구합니다. 교육 시스템은 교육 단계를 위계화하고 그 위계의 상위 트랙을 보호합니다. 한편 특권을 가진 가정들은 자녀들을 제도 내의 다음 상위 단계로 보내기 시작하는데, 그 단계가 새로운 ‘우위의 영역’이 됩니다.
이 과정은 미국 교육의 역사에서 세 차례에 걸쳐 반복되었습니다. 19세기 중반, 커먼스쿨(common school) 운동과 함께 보편적 공교육이 시작되었을 때, 학생들은 전국의 초등학교로 몰려들었고 초등교육은 갑자기 제도의 포괄적 영역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중산층과 상류층 가정의 자녀를 사립학교에서 빼내어 공립학교에 등록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개혁가들은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이전까지 공교육은 스스로 교육을 제공할 여력이 없는 빈곤층을 위해 마련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개혁가들은 노동계층을 위한 초등교육을 공적 재원으로 제공하는 동시에, 이미 사비로 자녀 교육을 해 오던 가정들을 위해 공적 재원으로 고등학교 교육을 제공했습니다. 다수를 위한 보통학교는 소수를 위한 비범한 학교와 짝을 이룰 때에만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19세기 말에 이르러 초등교육은 8학년까지 사실상 보편화되었습니다. 이 시점에서 교육적 우위의 영역이었던 고등학교에 대한 광범위한 접근을 허용하려는 정치적 압력이 커졌습니다. 시스템은 이에 부응하여 고등학교 진학을 급속히 확대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위계화하여, 새로 유입된 학생들은 하위 트랙에, 중산층 학생들은 상위 트랙에 남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이 상위 계층 가정들은 자녀들을 대거 대학으로 보내기 시작했는데, 대학이 새로운 우위의 영역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1950년대에 이르러 고등학교는 포화 상태가 되었고, 이 수준의 교육이 보편화되자 가장 좋은 일자리로 진입할 수 있는 단계인 대학에 대한 접근 요구가 증가했습니다. 시스템은 또다시 이를 수용했습니다. 신규 진입자들은 지역 주립대학, 시내 대학, 커뮤니티 칼리지와 같은 새로운 하위 트랙 고등교육기관으로 흡수되었고, 기존의 주립 명문대학과 사립대학은 중상류층을 위해 보존되었습니다. 한편 상위 계층 가정은 자녀들을 대학원으로 보내기 시작했고, 대학원 교육이 새로운 교육적 우위의 영역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미국 교육시스템의 핵심 동학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작동하고 있습니다. 시스템은 같은 구조 안에서 어떤 이들에게는 ‘접근’을, 다른 이들에게는 ‘우위’를 제공하며, 바닥을 올릴 때마다 천장을 함께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이 균형을 유지합니다. 전체 인구의 교육 수준은 계속 상승하지만, 사회 계층 간 교육 격차는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이는 교육적 이동성은 제공하지만 사회적 이동성은 제공하지 않는 ‘엘리베이터 효과’입니다. (이 엘리베이터 효과에 대한 보다 완성된 논의를 보고 싶은 분들은 제 블로그 davidlabaree.com에 있는 <Balancing Access and Advantage>라는 논문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질문을 던지고자 합니다. 저의 이러한 분석은 한국의 사회 및 교육제도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요? 이 문제에 대해서는 무지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가 충분히 알지 못하는 비교에 대해 추측을 늘어놓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제 주장이 타당한지 여부를 제가 말하는 대신, 한국 독자 여러분께 묻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국의 상황은 어떤 점에서 미국과 유사하며, 어떤 점에서 다릅니까? 이에 대해 의견이 있으시다면 꼭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dlabaree@stanford.edu로 이메일을 보내주세요.
2025년 12월
캘리포니아주 팔로알토
David Labaree
추천사
이 책은 교육을 둘러싼 공적 가치와 사적 욕망의 첨예한 충돌과 복합적 긴장을 예리하게 해부한 역작이다. 역자들은 원저의 미묘한 뉘앙스까지도 생생히 살려냈고, 덕분에 우리는 이 탁월한 저작을 유려한 우리말로 온전히 접할 수 있게 되었다. 학교개혁과 교육정책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은 결코 놓쳐서는 안 될 핵심 저서이다.
함승환 한양대학교 사범대학 교육학과 교수
이 책은 교육을 공화국의 시민적 덕성을 함양하는 공화주의적 공공재로 보는 관점에서 인적자본의 형성과 개인의 계층 상승 기회 창출을 중시하는 시장주의적 관점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심도 있게 분석한다. 또한 19세기 커먼스쿨 운동, 20세기 초반 진보주의 교육운동, 1980년대 학교 표준화 운동, 1990년 학교 선택 운동에서 강조하던 교육개혁의 방향과 목표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은 한국에서 교육개혁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도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이현 교육비평 발행인, 국가교육위원회 위원
인공지능 등장으로 촉발된 사회의 대전환, 민주주의 위기와 지역 인구 위기, 기후 생태 위기 등 복합위기 상황에서 교육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비등하는 한편, 수축사회에 진입한 상황에서 교육 경쟁이 격화하는 어려움에 처해 있는 한국 사회와 교육, 과거 미국의 교육 역사를 타산지석으로 삼을 수 있도록 하는 책이다.
김용 한국교원대학교 교수, 국가교육위원회 위원
David F. Labaree
스탠포드대학교 명예교수
National Academy of Education 회원
역사사회학자
제도주의적 시각으로 교육과 사회의 관계를 만드는 과정과 패턴을 연구하였다.
박대권
Columbia University Ph.D (교육정치)
한국학중앙연구원 사회과학부 교육학 교수 (현)
명지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청소년지도학과 교수 (전)
김우영
Arizona State University Ph.D (교육사)
한국학중앙연구원 사회과학부 교육학 교수 (현)
상명대학교 사범대학 교육학과 교수 (전)
정솔비
Johns Hopkins University Ph.D (교육정책)
Senior Director of R&D, Dubu Inc. (현)
P ostdoctoral Fellow, The Johns Hopkins Center for Social Organization of Schools (CSOS) (전)
김희진
University of Cambridge Ph.D (교육경제)
경희대학교 국제대학원 국제개발협력학과 교수 (현)
영국 글래스고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수 (전)
이지윤
Columbia University Ph.D (교육경제)
학교법인 대원학원 이사장 (현)
성균관대학교 겸임교수 (현)
목차
서론 ∙ 9
Chapter 1 시민에서 소비자로 20
Chapter 2 미국식 학교 시스템 만들기 60
Chapter 3 교육제도 재편을 위한 진보주의 운동 106
Chapter 4 개혁에 대한 학교의 저항 137
Chapter 5 교육개혁에 대한 교실의 저항 171
Chapter 6 실패한 사회 문제 해결 207
Chapter 7 학교에서 배운다는 것의 한계 246
Chapter 8 학교 증후군과 함께 살기 2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