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발행 2026. 6. 30
신용준(지은이)의 말
여는 글
드디어 책을 씁니다. 사실 책을 쓰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알면 알수록 세상의 이치를 제대로 이해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동양]고전을 읽겠다는 것은 태산준령 앞에 호미 한 자루로 마주 서는 격”이라는 신영복 선생님의 말씀도 떠올랐습니다. 사회과학 또한 태산준령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큰 태산준령에서 호미 한 자루로 제가 일군 작은 텃밭 하나를 이제 세상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겸손한 자세로 용기를 내어 지금까지 제 나름대로 축적한 지식을 엮어 ‘내가 누구인지’를 탐구해 세상과 소통해보고자 합니다.
제 텃밭이 독자분들께 유용하게 쓰이길 바랄 뿐입니다. 특히 이 책이 청소년들에게는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관계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일반인들에게는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관점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소망해봅니다. 이런 이유로 이 책에는 너무 전문적이고 깊이 있는 내용보다는 대중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을 담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책의 많은 내용은 주류 사회과학의 입장이 아님을 밝혀 두고 싶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사회과학도로서 사람과 사회를 공부하고 연구해왔지만, 하면 할수록 미궁으로 빠지는 것 같았습니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더 근본적인 답을 찾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제가 재직 중인 대학의 신경과학 교수와 인종 편견에 대한 공동 워크샵을 준비하면서 신경과학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갖고 공부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신영복 선생님의 책 『강의: 나의 동양고전 독법』을 읽던 중 순자 편에서 짧게 언급하신 ‘사회생물학(sociobiology)’이라는 분야에 매료돼 수년간 그 분야를 공부했습니다. 사회생물학은 진화론과 생물학의 관점에서 인간의 사회적 행동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이 공부를 통해 그동안 이해하지 못했던 인간과 사회 현상들을 좀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많은 사회과학자들은 생물학과의 연계를 꺼려왔습니다. 사회학이라는 분야를 공식적인 학문의 영역으로 만든 에밀 뒤르켐(Emile Durkheim)이라는 학자가 사회학과 생물학의 단절을 주장한 이후,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회과학자들이 생물학적 사회과학에 반감을 갖고 있습니다. 심리학이나 인류학은 예외입니다. 심리학은 신경과학이나 진화생물학과 많은 연계를 하고 있고, 진화 인류학은 인류학의 주요 분야 중 하나입니다. 미국에서도 소수의 사회과학자들만이 이 분야를 연구하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회생물학의 창시자인 하버드 대학교 생물학과의 에드워드 윌슨(Edward O. Wilson) 교수님도(이화여대 최재천 석좌 교수님의 지도 교수님이셨습니다.) 처음엔 학생들과 동료 교수들 그리고 학계에서도 엄청난 저항을 받으셨다고 합니다. 감히 만물의 영장인 인간을 동물처럼 연구한다는 것에 대한 반감이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진화학자가, 뇌과학자가, 물리학자가 과학적인 증거들을 가지고 인간과 사회에 대한 지식과 통찰을 전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제 사회과학이 앞으로 나아갈 길을 생물학이나 신경과학 같은 자연과학과의 연대를 통해 찾아 진정한 ‘인간과학’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해 주류 사회과학과는 다른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지점에서는 기존 사회과학 분야의 입장을 비판하게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류든 비주류든, 사회과학의 필요성을 제가 존경하는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라는 사회학자의 비유에서 찾고 싶습니다. 그는 사회학을 “호신술”에 비유했습니다. 사회과학의 지식이 세상의 많은 굴레들로부터 우리 자신을 지키게 도와주는 정신적 호신술처럼 쓰여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갖고 있는 많은 괴로움과 문제들은 사회가 만들어 놓은 조건들 때문에 만들어집니다. 사회체제, 제도, 법, 규범, 관습, 사회적 통념, 종교적 믿음, 개인적 신념, 편견 같은 것들 말입니다. 그래서 사회과학 공부를 통해 “사회학적 상상력(Sociological Imagination)”이라는 통찰력을 갖게 된다면(이 개념은 C. Wright Mills라는 사회학자가 제시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해방시킬 수도 있습니다. 사회학적 상상력이란 개인의 경험들을 사회 조건들과 연결해 성찰하는 능력입니다. 이 책이 독자분들의 사회과학적 통찰력을 키워줄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의 내용은 과학적 사실들에 토대하고 있지만, 그 지식들을 저 나름대로의 해석으로 엮어서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다분히 인문학적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독자분들의 비판적 독서가 필요합니다. 세상의 모든 지식이 그러하듯이 제 지식 또한 불완전합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새로운 과학적 발견과 지식과 정보들이 세상에 쏟아지고 있습니다. 제가 책에 정리한 지식들 또한 시간이 지나면 새로운 지식과 정보들로 업데이트가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믿습니다. 독자분들이 이 책을 통해 얻게 될 새로운 관점은 단편적인 지식의 업데이트를 넘어설 것입니다. 진정 ‘통섭’적인 시각으로 자신을 이해하고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통찰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것이 제가 이 책을 쓰는 가장 중요한 목적입니다.
이 책의 많은 내용들은 과학적 연구 결과에 토대를 두고 있기에, 우리는 먼저 과학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것입니다. 그 다음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볼 것이며, 진화, 뇌과학, 환경, 정치, 종교, 도덕과 아름다움, 타인, 그리고 기술발전과 같은 우리 삶의 중요한 여러 단면들이 우리 자신과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고민해볼 것입니다. 참고로 이 책의 각 장들은 유기적으로 서로 연결돼 있지만, 각기 고유한 주제를 다루기에 취향에 따라서 흥미가 가는 장들을 먼저 읽으셔도 됩니다. 이 책이 세상 사람들을 위한 ‘선물’이라는 자세로, 온 마음을 모아 집필을 시작합니다.
어느 아름다운 봄날 보스턴에서
저자 신용준
지은이 신용준
저자 신용준은 전북 군산에서 태어났고,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미시간 주립대에서 커뮤니케이션과 도시학으로 석사 학위를, 위스콘신대-매디슨에서 언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매사추세츠주 브리지워터 주립대에서 교수로 재직중이다. 커뮤니케이션, 도시, 건축, 환경, 지속가능개발 등에 관련된 다수의 논문들을 해외 저명 학술지들에 게재했고, 국제커뮤니케이션 학회 제임스 케리 도시커뮤니케이션상과 최우수 논문상, 미국 동부커뮤니케이션 학회 도시커뮤니케이션상을 수상했으며, 풀브라이트 스페셜리스트에 선정되었다.
차례
1장 과학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삶이란? 1
2장 나는 누구일까? 25
3장 유전과 환경: 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55
4장 물리적 환경과 나 89
5장 사회 · 문화적 환경과 나 123
6장 뇌와 나: 나는 세상을 어떻게 보고 경험하는 걸까? 155
7장 자유의지: 나는 정말로 스스로 선택하는 걸까? 229
8장 진화의 관점에서 보는 선(善)과 미(美) 257
9장 정치와 나: 진화, 정치, 나, 그리고 우리 295
10장 종교와 나: 진화, 종교적 정체성 329
11장 타인과 나: 부족 본능, 관계론, 사회적 건강 365
12장 미래와 나: 미래는 예측이 아니라 설계하고 실현해가는 것 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