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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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의 묘미
신간
심리학의 묘미
저자
고영건
역자
-
분야
학술 단행본
출판사
박영스토리
발행일
2026.01.15
장정
무선
페이지
392P
판형
신A5판
ISBN
979-11-7279-207-7
부가기호
03180
강의자료다운
-
색도
4도
정가
23,000원

초판발행 2026. 12. 15

들어가는 글: 미로 같은 삶에서 지혜로운 길 찾기   


때때로 세상살이는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의 소설을 떠올리게 한다. ??두 도시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최고의 시간이면서 최악의 시간이었다. 지혜의 시대였지만 어리석음의 시대이기도 했다. 믿음의 신기원이 도래함과 동시에 불신의 신기원이 열렸다. 빛의 계절이면서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었지만 절망의 겨울이기도 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다 가진 것 같다가도 모든 것을 다 잃은 것 같았다. 다 함께 천국으로 향하다가도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찰스 디킨스 (2020). 두 도시 이야기(김소영 역). 허밍버드. p. 13.

 


이따금씩 삶이 복잡한 미로에 빠진 것 같을 때가 있다. 미로maze와 미궁labyrinth은 다르다. Kern, H. (2000). Through the labyrinth: Designs and meanings over 5,000 years. Prestel Publishing.

 미로는 복잡한 여러 갈림길로 구성되어 있으나 출구가 존재하기 때문에 올바른 경로를 찾아 벗어나는 것이 가능하다. 반면에 미궁은 시작점에서 끝점까지 오직 한 방향으로만 진행되어 갈림길이 없으며 사실상 출구가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의 미로에서 지혜로운 길을 찾기 위해서는 특별한 준비가 필요하다.  

세상을 바라보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여기서 눈은 ‘육안肉眼’을, 그리고 마음의 눈은 ‘심안心眼’을 뜻한다. 기본적으로 이 둘은 세상을 다르게 본다. 

우리에게 심안을 일깨워줄 수 있는 수많은 길들이 존재한다. ‘심리학’도 그중 하나다. 심리학은 ‘마음心’의 문제를 다루는 대표적인 학문이기 때문이다. 

심리학은 ‘심학心學’과는 다르다. ‘유학’에서 심학은 마음의 본질에 기초해 인성을 수양하는 법을 다루는 것을 뜻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3957

 대조적으로, 심리학은 객관적으로 관찰 가능한 자료에 기초해 인간의 마음과 행동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심리학의 관점에서 본다면, 심안은 바로 ‘심리학적인 안목’을 의미한다. 

학문의 측면에서 심리학은 매우 독특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바로 자연과학, 사회과학, 인문학적인 접근 간 ‘통섭通攝’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심안, 혹은 심리학적인 안목은 그 세 가지 접근 모두를 필요로 한다. 무릇 온전한 것이 올 때 비로소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사라지는 법이기 때문이다. 고린도전서 13장

  

시카고 대학의 사회과학 빌딩 외벽에는 과학적 방법론의 전통과 관련된 유명한 금언이 새겨져 있다. Merton, R. K.,  Sills, D. A., & Stigler, S. M. (1984). The Kelvin dictum and social science: An excursion into the history of an idea. Journal of the History of the Behavioral Sciences, 31, 319-331. 

 “측정할 수 없는 지식은 빈약하고 불충분하다.” Merton, R. K.,  Sills, D. A., & Stigler, S. M. (1984). p. 329.

 이 문구는 영국의 물리학자 켈빈 경Lord Kelvin이 과학적인 방법론을 강조하면서 했던 말을 차용한 것이다. 

이 말에 대해 시카고학파의 초기 멤버 중 하나인 경제학자 제이콥 바이너Jacob Viner는 이렇게 덧붙였다. “숫자로 측정하고 나타낼 수 있을 때조차도, 여전히 당신의 지식은 빈약하고 불충분하다.” Merton, R. K.,  Sills, D. A., & Stigler, S. M. (1984). p. 330.

 왜냐하면, 인간의 삶과 세상을 움직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들 중에는 과학적으로 측정할 수 없는 것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모건 하우절 (2024). 불변의 법칙(이수경 역). 서울: 서삼독. pp. 141-159.

 

인간의 삶과 관련된 수많은 난제들을 이해하고 해결하는 데는 과학적인 방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기본적으로 인간의 마음과 행동 문제를 다루는 경우에는 과학적인 방법과 인문학적인 지혜를 통합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삶은 과학의 대상이 되기에는 너무나 인간적인 것” Vaillant, G. E. (1995). Adaptation to Life.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p. 11.

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과학과 지혜 중 굳이 어느 하나만을 선택할 이유는 없다! 그리고 심리학은 과학과 지혜 그 둘 모두를 지향하는 대표적인 학문이다.

1. 인생이라는 학교에서 배워야 하는 삶의 지혜, 전망

우리에게는 왜 심리학적인 안목이 꼭 필요한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우리가 자신과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육안으로는 보지 못하는 세계를 심안을 통해 온전하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도와 나침반을 가지고 여행을 떠난다고 가정해 보자. 우리에게 아무리 정교한 지도와 훌륭한 나침반이 있다고 해도 우리가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아무리 정교한 지도와 나침반을 가지고 있어도 자신이 지도상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면, 그것들은 무용지물일 뿐이기 때문이다. 보통 우리는 이러한 문제와 관련된 지혜를 ‘인생이라는 학교’에서 배운다. 아마도 다음의 ‘사고실험’은 현재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어느 날 저녁에 당신이 혼자 집 근처를 산책하고 있었다. 하필이면 그때 어느 정신과 폐쇄병동에서 ‘조현병’ 환자가 치료진 몰래 빠져나왔다. 그래서 병원에서는 환자를 찾기 위해 의료진을 내보냈다. 

문제는 정말 우연히도 그 환자가 당신과 쌍둥이처럼 닮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의료진은 당신을 보자마자 자신들이 찾던 조현병 환자로 오인했다. 의료진이 다짜고짜 당신을 앰뷸런스에 태우려 할 때 당신은 강력하게 항의했다. 하지만, 의료진은 당신이 폐쇄병동으로 되돌아가기 싫어서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다. 공교롭게도 당신은 지갑과 휴대폰을 모두 집에 두고 나왔기 때문에 신분을 증명할 길이 없었다. 결국 당신은 정신과 폐쇄병동에 입원하게 되었다.  

만약 이처럼 당신이 실수로 정신과 폐쇄병동에 입원하게 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흔히 사람들은 이 질문을 받으면, 치료진의 오해를 풀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대답한다. 예를 들면, 가족과의 통화를 요청하거나 병원의 진료 기록과 자신의 상태를 비교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신과 폐쇄병동은 매우 특수한 곳이다. 정신과 폐쇄병동에 입원한 환자들 중에는 망상 속에서 자신은 특별한 사람이며 자신의 신분을 알고 있는 외부인에게 연락해달라고 요청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이유로 치료진은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는 외부인과 연락을 취해 달라는 요청을 받는 것에 익숙하다. 특히 문제는 당신이 폐쇄병동을 탈출했던 환자와 똑같이 생겼다는 점이다. 그래서 치료진 중 그 누구도 당신이 폐쇄병동을 탈출한 환자와는 다른 사람이라는 점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또 치료진의 입장에서 볼 때, 이미 한 번 탈출한 적이 있는 당신의 말을 믿기는 더더욱 어려울 것이다. 

만약 이러한 상황이라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단, 이 질문에 답할 때는 다음의 순서를 따라가 보기 바란다. 먼저, 이러한 문제 상황에서 ‘퇴원 시기를 앞당길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한다고 믿는가?’라는 물음에 답한다. 다음으로, 만약 그러한 방법이 존재한다고 믿는다면, 그 구체적인 방법이 무엇인지 답하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그러한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답하는 것이다.    

가수 심수봉이 한 TV 토크쇼에서 직접 들려준 이야기는 이 문제와 관련해서 좋은 시사점을 준다. KBS2(2012년 2월 14일). 김승우의 승승장구. 102회.  

 심수봉은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의 현장에 있었던 것이 계기가 되어 그 후로 정부 보안부서의 요주의 인물 중 하나가 되었다. 당시에 심수봉의 남편이 정부에 비판적이었는데 이 일 때문에 두 사람 모두 ‘서빙고 대공분실’로 끌려간 적이 있었다. 그때 심수봉은 남편이 고초를 겪는 고문실 옆방에서 그 소리를 고통스럽게 듣고 있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심수봉은 심리적으로 상당한 충격을 받았고 그 후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정신병원으로 강제 입원되었다. 이송된 병원에서 심수봉은 치료진에게 퇴원하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약 한 달이 지나서야 비로소 퇴원할 수 있었다. 

심수봉의 일화는 일단 정신과 폐쇄병동에 입원을 하게 되면, 당사자가 퇴원을 요청하더라도 실제로 퇴원을 할 때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정신과 폐쇄병동에서는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는 것이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1973년 저명 학술지 ‘사이언스’에 놀라운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Rosenhan, D. L. (1973). On being sane in insane places. Science, 179(4070), 250-258.   

 심리학자 데이비드 로젠한David Rosenhan이 정신과 의사가 치료를 필요로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얼마나 정확하게 구분해내는지 테스트한 결과를 발표한 것이다. 

그는 8명의 일반 성인을 12개 병원의 정신과로 보냈다. 이들은 정해진 각본대로 정신과 의사에게 이따금씩 불분명한 형태의 환청을 경험한다고 말하면서 내적인 공허감 등을 호소하였다. 그 결과, 8명 모두 정신병적인 증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진단되었고 그중 7명은 조현병 진단을 받았다. 결국 이들은 7일에서 52일, 평균 약 19일 동안 정신과 폐쇄병동에 입원조치되었다. 실험참여자들은 폐쇄병동에서 처방된 항정신병 약물을 삼키지 않고 입 안에 잠시 숨겼다가 몰래 버렸다. Cahalan, S. (2019). The great pretender: The undercover mission that changed our understanding of madness. New York: Grand Central Publishing. chapter 4.

 

중요한 점은 일단 폐쇄병동에 입원한 다음부터는 8명 모두 일반 사람들처럼 행동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폐쇄병동에서 퇴원하기까지는 평균 약 19일이 걸렸다. 특히 입원 시 조현병 진단을 받았던 7명은 퇴원할 때도 진단명이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로젠한의 연구에는 심각한 결함이 있었다. Cahalan, S. (2019). chapter 19.

 그 대표적인 예로 로젠한은 논문에서 밝히지 않았지만 본인이 직접 가짜 환자 중 하나로 참여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자신이 가짜 환자로 병원을 방문했을 때, 논문에 보고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정신병적인 증상들을 보고했다는 점이다.

로젠한의 연구와 관련된 가장 흥미로운 결과는 그가 논문을 출판한 다음에 정신과 의사들이 그에게 격렬하게 항의하면서 드러나게 되었다. 한 정신과 의사는 로젠한이 환자 역할을 맡은 실험참여자들을 진료체계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병원으로 보낸 것이 분명하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만약 앞으로 석 달 동안 그가 자신의 병원으로 실험참여자들을 보낼 경우 가짜 환자들을 모두 찾아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Slater, L. (2004). Opening Skinner's box: Great psychological experiments of the twentieth century. New York: W. W. Norton & Company. p. 77.

 그러자 로젠한도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로젠한은 직접 병원 회의에 참석해 치료진에게 앞으로 석 달 이내에 적어도 한 명 이상의 가짜 환자가 병원을 방문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향후 석 달 간 정신과를 방문하는 모든 환자들에 대해 진짜 환자인지, 가짜 환자인지를 평가해 달라고 요청했다.  

석 달 후 그 병원의 정신과 의사들은 테스트 기간 동안 정신과에서 진료를 받은 193명의 환자들 중에서 로젠한이 보낸 가짜 환자들을 무려 23명이나 찾아냈다고 주장하였다. Cahalan, S. (2019). chapter 11.

 그 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와 사회복지사들의 평가에서는 가짜 환자의 숫자가 41명이나 되었다.

그러자 로젠한은 테스트 기간 동안 자신은 가짜 환자를 한 명도 보낸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이로써 정신과의사들과 로젠한의 대결은 로젠한의 승리로 일단락되었다. 

다만, 현대적인 기준을 적용하는 경우, 약 12~21% 수준의 진단 오류는 바람직한 것은 아닐지라도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놀랄 만한 수준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직업적 자존심을 내걸고서 로젠한에게 대결을 신청했던 정신과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들은 자신의 진단 실력을 과신했다. 그들은 자신이 가짜 환자에게 속아 넘어가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설사 일어난다 하더라도 금방 바로잡을 수 있다” Cahalan, S. (2019). p. 120. 

고 호언장담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들의 생각과는 분명하게 달랐다.

로젠한의 실험 이후, 정신의학의 진단체계는 혁명적으로 변했다. 정신과 의사 앨런 프랜시스Allen Frances에 따르면, “그러한 변화는 로젠한의 프로젝트가 촉발한 것이었다.” Cahalan, S. (2019). p. 197.

   

로젠한의 주장처럼, 정신과 폐쇄병동에서는 치료가 필요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는 것이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어렵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2. 1급수 물고기와 3급수 물고기

저자는 지난 2000년부터 이러한 문제를 효과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1급수 물고기와 3급수 물고기 이야기’를 창안해서 활용해 왔다. 때로는 비유적인 표현이 논리적인 설명보다 문제의 핵심을 더 잘 짚어내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1급수 물고기’와 ‘3급수 물고기’가 있다. 3급수에는 3급수 물고기가 산다. 그리고 1급수에는 1급수 물고기와 3급수 물고기가 산다. 따라서 어떤 물고기가 1급수에서 사는 경우에는 그것이 1급수 물고기인지 아니면 3급수 물고기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반면에 어떤 물고기가 3급수에서 사는 경우에는 그것이 3급수 물고기라는 것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1급수 물고기는 3급 수질을 견뎌낼 수 없기 때문이다.

자 그렇다면, 비유적으로 표현할 경우 정신과 폐쇄병동은 1급수의 환경에 해당될까 아니면 3급수의 환경에 해당될까? 물론, 1급수 환경이다. 그렇다면, 1급수 환경에서 1급수 물고기와 3급수 물고기를 구분할 수 있을까? 아마도 어려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정신과 폐쇄병동에서는 치료가 필요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다!

세상에는 1급수 물고기에 해당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3급수에서는 건강하게 생활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3급수에서 생활하다가 문제가 생기면 1급수 환경에 해당되는 정신과 폐쇄병동 혹은 그와 유사한 곳으로 가서 치료를 받는다. 반면에 3급수 물고기에 해당되는 사람들은 3급수 환경에서도 잘 적응한다. 

1급수 물고기가 3급수 환경에서 생활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 1급수 물고기를 탓하는 것은 그다지 지혜롭지 못한 태도다. 정작 문제인 것은 1급수 물고기가 아니라 3급수 환경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1급수 물고기를 3급수 물고기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3급 수질을 1급 수질로 바꾸는 것이다. 

이러한 점은 인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누군가 3급수 환경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3급수 환경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강력한 신호라고 할 수 있다. 3급수 물고기에 해당되는 사람들이 3급수 환경에서 잘 적응할 수 있다고 해도, 그들 역시 3급수보다는 1급수에서 생활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로젠한의 논문은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시작된다. “만약 ‘온전한 정신’과 ‘정신이상’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그것들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Rosenhan, D. L. (1973). p. 250.

 로젠한이 제기했던 이러한 문제의식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2008년 영국의 BBC 방송국은 로젠한의 질문과 관련된 흥미로운 리얼리티쇼를 방영했다. BBC (Nov, 11 & 18, 2008). How mad are you? 

 “당신은 어느 정도로 이상합니까?”라는 프로그램이다. 그 방송에서는 런던 교외의 한 저택에서 10명의 지원자가 모여 일주일간 함께 생활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10명의 지원자 중 5명은 심각한 정신장애를 앓은 적이 있었고 나머지 5명은 일반 성인이었다. 

이 프로그램의 제작의도는 저명한 정신과 의사, 임상심리학자, 정신건강 간호사로 구성된 전문가 패널이 과연 이 두 집단을 성공적으로 구분해낼 수 있는지를 테스트하는 것이었다. 패널은 정신건강 분야의 저명한 전문가들로 구성되었다. 예를 들면, 패널 중 하나인 정신과 의사 마이클 퍼스트Michael First는 미국의 컬럼비아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로서 대표적인 정신과 진단체계인 ‘DSM-5’의 개정판 작업에서 에디터를 맡기도 했다. https://www.cugmhp.org/faculty/michael-first-md/

  

정신건강 전문가들이 지원자들의 잠재적인 취약성을 평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지원자들에게는 도전 과제로 외양간 청소,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 심리검사 등이 주어졌다. 그리고 정신건강 전문가들이 감별해내야 하는 정신장애는 조현병, 우울증, 양극성장애, 사회불안장애, 강박장애, 섭식장애였다. 

테스트 결과, 정신건강 전문가들은 정신장애의 병력을 갖고 있는 지원자 5명 중 2명만 정확하게 감별해냈다. Progler, Y. (2009). Mental illness and social stigma: notes on “How Mad Are You?”, Journal of Research in Medical Sciences, 14(5): 331-334.

 나머지 세 명의 경우, 한 명에 대해서는 실제 병력과는 다른 진단을 내렸고 나머지 두 명에 대해서는 그들에게 정신장애의 병력이 있다는 점을 눈치 채지 못했다. 또 지원자 중 건강한 성인 2명에 대해서는 그들에게 정신장애가 있다고 오진했다. 특히, 정신건강 전문가들은 실제로는 조현병 병력이 없었던 지원자가 그러한 병력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평가하는 동시에, 실제로 조현병 병력이 있는 지원자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BBC의 리얼리티쇼는 로젠한이 남긴 메시지가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정신건강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들조차도 정신장애를 정확하게 판별해내기는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스스로 자문해보기를 바란다. “나는 1급수 물고기인가, 아니면 3급수 물고기인가?” 누구에게나 힐링은 필요하다. 만약 당신이 3급수 물고기라면, 많이. 만약 당신이 1급수 물고기라면, 아주 많이. 

만약 2급수 물고기라면? 2급수 물고기 역시 1급수 물고기와 마찬가지로 3급수에서 온전하게 살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점은 안타깝게도 우리 모두가 3급수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1급수 물고기와 3급수 물고기 이야기의 시사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3급 수질의 세상 속에서 1급수 물고기들이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는다면, 그들을 탓하는 것은 결코 지혜로운 관점이 아니라는 것이다. 둘째, 이 세상의 3급 수질을 1급 수질로 바꾸기 위해서는 1급수 물고기와 3급수 물고기가 서로 힘을 합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진정한 치유를 위해서는 세상을 지금보다 조금 더 살 만한 곳으로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3급수 물고기가 3급 수질에 적응하거나 1급수 물고기가 3급 수질에 적응하게 되는 것은 진정한 치유가 될 수 없다. 진정한 치유는 이 세상의 3급 수질을 1급 수질로 바꾸는 것이어야 한다!

3. 심리학적인 전망이 필요한 이유

기본적으로 이 책에서는 심리학적인 ‘전망prospection’을 통해 개인의 삶의 문제에서 한국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슈들을 조망해보고자 한다. 전망은 미래에 대한 일종의 정신적 표상으로서, 삶을 적응적인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보이지 않지만 심안으로 바라봐야 하는 대표적인 세계 중 하나는 바로 ‘리스크risk’ 영역이다. 리스크와 관련해서 널리 알려진 정의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당신이 예상 시나리오를 남김없이 고려했다고 생각한 후에 남는 것이 리스크다.” 모건 하우절 (2024). p. 49. 

 이처럼 우리들에게 리스크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역사는 리스크가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에 대한 대비가 소홀했던 사람들에게 가장 심각한 비극이 발생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해서는 잘 생각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셜록 홈스Sherlock Holmes의 ‘실버 브레이즈Silver Blaze’ Doyle, A. C. (1997). The Project Gutenberg eBook of The Memoirs of Sherlock Holmes. https://www.gutenberg.org/files/834/834-h/834-h.htm#chap01

 이야기는 우리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는 주의를 잘 기울이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살인 사건을 수사 중인 경감이 셜록 홈스에게 물었다. “혹시 제가 주목하기를 바라는 것이 있습니까?” 셜록 홈즈는 이렇게 말했다. “그날 밤, ‘개에게 일어난 흥미로운 사건’이요.” 그러자 경감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그 개는 그날 밤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셜록 홈즈는 이렇게 지적했다. “그것이 바로 이상한 사건이었죠.” 나중에 셜록 홈즈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분명히 한밤중에 찾아온 방문자는 그 개가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점은 심리학 실험을 통해서도 분명하게 입증된다. 한 실험에서 참여자들에게 BFK처럼 세 개의 알파벳 문자로 구성된 무의미 철자세트를 한 번에 두 개씩 제시해 나가면서, 둘 중 하나만이 특별한 철자세트라고 알려주었다. Newman, J. P., Wolff, W. T., & Hearst, E. (1980). The feature-positive effect in adult human subjects. Journal of Experimental Psychology: Human Learning and Memory, 6(5): 630?650. 

 참여자가 수행해야 하는 과제는 60번의 시행 이내에 그 특별한 철자세트를 구성하는 규칙이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것이었다. 이 실험에서는 동시에 제시되는 두 개의 철자세트 중 ‘특별한 철자세트에는 T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는 것이 참여자가 알아내야 하는 규칙이었다. 이러한 과제에서는 참여자들이 그 규칙을 알아내는 데 평균적으로 약 35번의 시행이 필요했다.

그런데 특별한 철자세트를 구성하는 규칙을 바꿔서, ‘특별한 철자세트에는 T가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을 규칙으로 설정하고서 참여자들에게 과제를 수행하도록 하면, 참여자들은 정해진 60번의 시행을 마칠 때까지 아무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이처럼, 사람들은 자신의 ‘눈에 보이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에 비해 자신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을 훨씬 더 힘들어 한다. 하지만 때때로 삶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중요할 수 있으며 이러한 문제 상황에서는 심리학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인간의 마음은 보이지 않는 세계다. 심리학적인 전망은 우리가 이처럼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이는 세계’를 통해 바라볼 수 있도록 해주고 그러한 세계와 관련된 의사결정을 보다 더 지혜롭게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사실,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대상이라고 해서 사람들이 그러한 대상을 제대로 보는 것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세계조차 놓칠 때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러한 영역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상식적인 방법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기가 어렵기에 심리학적인 접근이 더욱더 중요해진다.

오토바이 사고의 절반 이상은 자동차와의 충돌로 일어난다. 크리스토퍼 차브리스, 대니얼 사이먼스 (2011). 보이지 않는 고릴라(김명철 역). 파주: 김영사. pp. 32-39.  

 특히 이러한 사고의 65%는 자동차 운전자가 좌회전을 하면서 앞에 있는 오토바이를 보지 못한 채 주행을 하다가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부주의 맹시inattentional blindness’ Schacter, D. L., Gilbert, D. T., Nock, M. K., & Wegner, D. M. (2022). 심리학입문(민윤기 등 공역). 서울: 시그마프레스. p. 118.  

와 관계가 있다. 이것은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대상은 눈앞에 있어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현상을 말한다. 

자동차 운전자들은 자신이 주행 중인 도로 위에는 주로 자동차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에, 그러한 기대에서 벗어나 있는 오토바이가 실제로 눈앞에 나타날 가능성을 잘 떠올리지 못한다. 이는 우리가 때때로 ‘눈에 보이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예상 가능한 것’을 보는 경향이 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부주의 맹시 문제 역시 우리의 생각이 보이지 않는 세계까지는 잘 미치지 못하는 것과 관계가 있다. 눈에 잘 띄지 않는 것(도로 위의 오토바이)은 생각으로 잘 떠올리지 못하기 때문에 자연히 그에 대한 대비도 소홀하게 되는 것이다.  

아마도 상식적으로는 이러한 도로 위 오토바이 사고 문제를 예방해 줄 것으로 기대되는 문제해결 방법은 오토바이가 시각적으로 자동차 운전자의 눈에 잘 띄도록 만드는 것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식적인 방법은 실제로는 기대만큼 효과적이지는 않다. 시각적으로 오토바이가 눈에 띄도록 만들더라도, 어차피 운전자가 도로에서 오토바이를 발견하는 것을 충분히 예상 가능한 것으로 떠올리지 못하면 그러한 시각적 효과는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크리스토퍼 차브리스, 대니얼 사이먼스 (2011). p. 37.

 이런 이유로 도로 위를 주행하는 오토바이가 적은 지역보다 많은 지역에서 오히려 자동차와 오토바이 간 접촉 사고는 훨씬 적게 일어나게 된다.   

4. 이 시대의 선남선녀善男善女들을 위한 전망의 지혜  

 영국의 철학자 아이리스 머독Iris Murdoch은 행복에 관해 다음과 같은 명문을 남겼다. 


“우리는 단순히 자유로워진다고 해서, 혹은 교육을 받았다고 해서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다. 교육은 만약 우리가 행복하다면, 바로 그때 우리가 행복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수단이 될 수 있다. 교육은 우리의 눈을 뜨게 하고, 귀를 열어주며 우리의 삶에서 기쁨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 알려준다. 그와 더불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유일한 자유는 정신적 자유라는 점을 확신시켜준다. 이를 통해 교육은 우리에게 마음, 즉 교육받은 마음이 제시하는 길을 자신감 있게 걸어갈 수 있는 확신을 심어준다.” Iris Murdoch, 영화 ??아이리스(Iris)??



삶에서 전망의 지혜를 배우는 것도 마찬가지다. 전망의 지혜를 터득한다고 해서 행복한 삶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전망의 지혜는 우리의 삶이 행복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아니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스스로 모니터링해 볼 수 있는 중요한 기준을 제시해 준다. 이를 통해 만약 우리의 삶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 전망의 지혜를 갖추지 못한 사람에 비해 신속하게 자신의 삶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인생에서 가장 슬픈 일 중 하나는 죽는 순간까지도 자신의 삶이 어떠한 것이었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전망의 지혜를 갖추지 못하는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사람은 죽을 때까지 자신의 삶에 대해 한 치의 후회조차 안 할 것이다. 하지만 삶에서 때로는 후회를 안 하는 것이 후회를 하는 것만 못할 수 있다. 그러한 일은 주로 전망의 지혜를 갖추지 못한 채 삶을 마칠 때 일어난다! 그러한 삶에서는 의미를 찾기도 어렵고 삶 자체가 인간적으로 풍요롭지도 않을 것이며 진정한 의미에서의 행복감도 주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오직 한 번뿐인 인생을 그렇게 살 이유가 없다! 아니, 오직 한 번뿐인 인생이 그렇게 흘러가는 것을 그냥 내버려둬서는 안 될 것이다! 

2024년 12월, 한국의 민주주의는 새로운 시험대에 올랐다. 버락 오바마Barack H. Obama 전前 미국 대통령은 한 포럼에서 민주주의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사례로 ‘한국’을 언급하기도 했다. President Obama’s remarks from the 2024 Democracy Forum.

https://www.obama.org/democracy-forum-2024/president-obama-remarks/

 현재 한국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혼란이 마치 새롭게 대두된 위기처럼 보일지라도 실상은 ‘오래 묵힌 숙제’에 해당된다. 즉, ‘미해결된 과제의 귀환’인 것이다.

시절이 하 수상할수록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바로 인생의 묘미 중 하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에 있다는 점이다. 중국의 시인 꾸청?城은 이러한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짧은 시를 남겼다. “어둔 밤은 내게 검은 눈동자를 주었지만, 나는 그것으로 세상의 빛을 좇는다.” Schwarcz, V. (1997). The pane of sorrow: Public uses of personal grief in modern china. Social suffering (Arthur Kleinman, Veena Das, & Margaret Lock, Eds.)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사회에서 민주주의의 핵심 원칙들은 끊임없이 공격받고 있다. 그리고 이 틈을 타 비관주의와 냉소주의가 곳곳에서 자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지금이 우리가 민주주의에 대해 숙고하고 민주주의의 금자탑을 다시 세우기 위한 어려운 도전에 나서야 할 적기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민주주의의 심장’은 바로 지금과 같은 사회적 긴장과 갈등을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에너지로 전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 테리 윌리엄스Terry T. Williams에 따르면, 민주주의의 ‘첫 번째 보금자리the first home’는 바로 인간의 마음이다. Terry Tempest Williams (January 1, 1970). Engagement: The conclusion of the author’s triptych on the open space of democracy. https://orionmagazine.org/article/engagement/

 이런 맥락에서 작가 파커 파머Parker J. Palmer는 우리가 민주주의 핵심 인프라 중 하나인 ‘마음의 보이지 않는 역동’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파커 J. 파머 (2012).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김찬호 역). 파주: 글항아리. pp. 124-125.  

 

흔히 사람들은 ‘긴장과 갈등’이 위험한 것이어서 가능하면 없애야 한다고 믿지, 우리 모두가 마음속에 품어야 할 심리적인 에너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긴장과 갈등은 삶에서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하지만 우리는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디스트레스distress’와 긍정적이고 성장에 기여하는 ‘유스트레스eustress’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Pluut, H., Cur?eu, P. L,, & Fodor, O. C. (2022). Development and validation of a short measure of emotional, physical, and behavioral markers of eustress and distress (MEDS). Healthcare 10(2): 339.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 중 하나는 바로 사회적 디스트레스를 심리적으로 성숙하게 유스트레스로 전환하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민주주의에서는 긴장과 갈등을 사회의 발전을 위한 원동력으로 삼는다. 이런 점에서 사회 속 긴장과 갈등을 다양성에 대한 존중과 관용의 정신을 바탕으로 성숙하게 풀어내려 하지 않고, 상대를 ‘억압’하거나 ‘악마화’하려는 모든 시도는 반민주적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사회에서나 긴장과 갈등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사회적 긴장과 갈등 ‘때문에’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식의 미성숙한 주장은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다. 민주주의에서는 그러한 긴장과 갈등에도 ‘불구하고’ 어떤 선택의 지혜를 발휘하는가가 중요하다. 

사회에서 민주적 가치가 올바르게 자리 잡기 위해서는 시민이 ‘인생이라는 학교’에서 ‘공감’과 ‘연민’을 배워야 한다. 공감에 대한 사회학습 과정에서의 핵심은 다른 사람의 생각과 감정이 ‘나와 다름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내가 상대방의 생각과 감정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상대방을 포용하고 존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우리가 공감을 제대로 배우기 위해서는 누군가로부터 적어도 한 번은 연민을 선물 받은 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연민은 상대방이 경험하는 고통이나 혼란을 제거해 줌으로써 그 사람의 삶이 더 나아질 수 있도록 돕고자 하는 것이다. 연민은 동정과 다르다. 동정은 우리에게 불편감을 심어주는 부정 감정인 반면, 연민은 우리가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삶을 살도록 해주는 긍정 감정이다. 이런 점에서 연민은 공감의 뿌리라고도 할 수 있다. 

공감과 연민은 베푸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에게 유익함을 선사해 준다는 점에서 사랑만큼이나 좋은 것이다. 하지만 삶에서 공감과 연민의 가치를 배우는 것은 비싼 대가를 요구하기도 한다. 누구나 자신의 삶에서 중요한 사람(예컨대, 부모)에게 미운털이 박히는 값비싼 수업료를 치르고서야 실감나게 깨우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하기 어려운 행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로부터 연민을 선물 받는 경험을 할 때, 비로소 우리는 공감과 연민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게 된다. 바로 이것이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사회 경험인 것이다. 

민주주의에 걸맞는 성품은 결코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인생이라는 학교에서 공감과 연민의 가치를 성숙하게 체화해낸 사람들만이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이 될 수 있다. 민주주의의 묘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에 있다. 

존 어빙John Irving의 소설, ‘사이더 하우스The Cider House Rules’에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억압적 규율들이 야기하는 사회적 모순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관한 고민이 담겨 있다. 존 어빙은 자신의 소설을 동명의 영화 시나리오로 직접 각색해 제7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색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라세 할스트롬(2000). 사이더 하우스. 미라맥스. 

 작품 속에서 사이더 하우스 규칙들은 사이더 하우스 인부들의 숙소 벽에 붙어 있는 규정들로서, 현실과 동떨어진 억압적인 규율들을 상징한다. 

어느 사회에서나 억압적인 성격의 사이더 하우스 규칙들은 존재한다. 이러한 사이더 하우스 규칙들의 문제에 대처하는 한 가지 방법은 ‘악법도 법이다’는 식의 믿음을 갖는 것이다. 오랫동안 ‘악법도 법’이라는 말은 소크라테스Socrates가 했던 말로 와전되어 왔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 권창은 외 (2005).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서울: 고려대학교출판부.

 이런 이유로 헌법재판소는 교육부에 초중고교 사회 교과서의 소크라테스 일화 부분을 수정해달라고 공식적으로 요청하기도 했다. 연합뉴스(2005년 12월 2일).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라 말하지 않았다.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라고 말하면서 독배를 마셨다는 일화를 준법정신 강조를 위한 사례로 사용하는 것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 일화에 관한 오해와는 별도로, 사이더 하우스 규칙들과 관련해서 준법정신을 강조하는 관점은 여전히 유효할 수 있다. 다만, 그러한 시각만이 유일하게 가치 있는 관점이라고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사이더 하우스 규칙들에 대해 준법정신을 강조하는 것이 완벽한 답안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사이더 하우스 규칙들과 관련해서 준법정신을 강조하는 식의 대처가 완전한 것이 아니라면, 대안을 적극적으로 탐색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사이더 하우스 규칙들의 문제에 대처하는 또 다른 방법으로는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서 모순적인 성격의 규칙을 깨트리는 것이다. 이것이 대안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바로 사회가 선량한 시민의 존재 가치를 인정해 주는 것이다. 비록 사이더 하우스 규칙에는 저촉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선행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만약 누군가의 선한 행동에 대해 과반수 이상의 사람들이 공감할 수만 있다면, 이러한 특수한 조건하에서는 사회도 선량한 시민이 사이더 하우스 규칙에 저촉되는 행동을 한 것에 대해 관용을 베푸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물론, 세상 사람들 중 사이더 하우스 규칙에 저촉되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날 경우 그 사회는 엄청난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사이더 하우스 규칙들이 명백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모든 사람들이 그러한 규칙들에 그저 눈을 감은 채 살아가게 된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무기력감 속에서 희생양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애초에 인간이 만든 규칙이 완벽할 수 없는 것이라면, 어느 사회에서든지 사이더 하우스 규칙과 더불어 그러한 규칙에 저촉되는 행동을 보이는 사람은 나타나기 마련이다. 

단, 어느 사회에서든지 사이더 하우스 규칙들에 대항해 마치 ‘신과도 같은 역할playing god’을 맡는 사람들은 반드시 선량한 사람, 즉 심리적으로 성숙한 사람이어야 한다. 특히, 그러한 사람은 ‘연민’에 기초한 공감적 태도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세븐Seven’이라는 영화에는 연쇄살인을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성서에 등장하는 7대 죄악, 즉 식탐, 탐욕, 태만, 욕정, 교만, 시기, 분노에 대한 설교를 남기고자 하는 과대망상 환자가 등장한다. 그는 자신이 신의 대리인으로서 옳은 일은 한다고 믿었지만, 정작 그 자신은 신의 대리인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 중 하나를 갖추지 못했다. 바로 연민에 기초한 공감적 태도가 없었던 것이다.   

시인 윌리엄 예이츠William B. Yeats는 1차 세계대전의 참상과 현대문명의 위기를 목격한 후 이런 명문을 남겼다. “최선의 인간은 신념을 잃고 최악의 인간은 열정을 얻는다.” Yeats, W. B. (1919). The second coming,

 


최악의 인간이 열정적으로 됨으로써 심각한 혼란을 초래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건강한 사회라면 선한 사람들이 신념을 지키려 애쓰는 것을 존중해 주거나 최소한 방해라도 하지 않아야 한다. 

존 어빙은 이렇게 말했다. “모름지기 선남선녀라면, 마치 신과도 같은 역할을 맡을 수 있는 순간들을 잘 포착해야 하는 법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 책에서는 세상의 선남선녀들이 자신과 세상을 지혜롭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해주는 ‘심리학적인 전망’에 관해 소개하고자 한다. 부디, 이 책이 개인의 삶과 사회를 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나가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고영건

고려대학교 심리학과에서 임상심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삼성서울병원 정신과에서 임상심리레지던트로서 수련을 받았다. 세계 최초로 ‘감성지능(EQ)’의 개념을 이론화한 예일 대학교 심리학과의 피터 샐로베이 교수의 지도하에 박사 후 연구원으로 정서지능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였다. 고려대학교 심리학과(현재 심리학부) 교수로 부임한 후 고려대학교 학생상담센터장,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멘토링상담센터장, 보건복지부 정신건강복지기본계획 수립 추진단 위원, 한국임상심리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고려대학교의 대표적인 강의상 3가지(고려대학교 학부 석탑강의상, 교육대학원 명강의상, 그리고 평생교육원 우수강의상)를 모두 수상한 바 있으며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지방자치인재개발원, 서울특별시 교육연수원 그리고 주요 대기업의 다양한 심리학 교육 프로그램에서 강사로 활약 중이다. 삼성그룹 CEO들이 2011년부터 6년간 수요사장단회의를 통해 들었던 247번의 특강 중에서 조선일보 기자들이 삼성언론재단의 지원을 통해 삼성그룹 CEO들의 추천을 받아 최고의 명강의 30편을 선정해 수록한 󰡔삼성의 CEO들은 무엇을 공부하는가󰡕 책자에 강연 내용이 소개되었다.

한국의 대표적인 경영전문지인 ‘동아 비즈니스 리뷰(DBR)’와 지식경제 신문인 ‘매일경제’에 CEO를 위한 심리학 칼럼을 연재한 바 있고 현재 동아일보에 ‘고영건의 행복견문록’이라는 심리학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사람의 향기: 좋은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행복의 품격(공저)󰡕, 󰡔이만하면 괜찮은 부모: 세상의 나쁜 것을 이기는 부모의 좋은 힘(공저)󰡕, 󰡔삶에 단비가 필요하다면: 인디언기우제 이야기󰡕, 󰡔플로리시: 삶을 밝히는 마음의 빛󰡕, 󰡔심리학적인 연금술(공저)󰡕, 󰡔멘탈휘트니스 긍정심리 프로그램(공저)󰡕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내 마음속 천국: 영성이 이끄는 삶(공역)󰡕과 󰡔행복의 지도: 하버드 성인발달 연구가 주는 선물(공역)󰡕이 있다.


들어가는 글: 미로 같은 삶에서 지혜로운 길 찾기_6

1. 인생이라는 학교에서 배워야 하는 삶의 지혜, 전망 8

2. 1급수 물고기와 3급수 물고기 13

3. 심리학적인 전망이 필요한 이유 16

4. 이 시대의 선남선녀善男善女들을 위한 전망의 지혜 20


I. 유년기 우리 마음의 초상화 _28

1. 세 가지 심리성적 발달 유형 30

2. 프레드 터너Fred Turner의 구순기적 성격과 심리적 성숙 40

3. 존 록펠러John D. Rockefeller의 항문기적 성격과 심리적 성숙 46

4. 앤드류 카네기Andrew Carnegie의 남근기적 성격과 심리적 성숙 53

5. 심리-성적 발달에서의 성숙의 중요성 58


II. 우리들 마음속 그림자 _64

1. 분석심리학: 원형과 그림자 66

2. 폴 게티의 ‘절약가’ 원형 그리고 ‘사치’의 그림자 72

3. 잭 웰치의 ‘수호자’ 원형 그리고 ‘우유부단’의 그림자 77

4. 스티브 잡스의 ‘창조자’ 원형 그리고 ‘몰개성’의 그림자 81

5. 하워드 휴즈의 ‘낭만가’ 원형 그리고 ‘성적 무능’의 그림자 86

6. 헨리 포드의 ‘분석가’ 원형 그리고 ‘자의성’의 그림자 92

7. 토마스 왓슨의 ‘영웅’ 원형 그리고 ‘열등감’의 그림자 96


III. 콤플렉스의 힘 _102

1. 내 삶의 나침반을 찾아서 104

2. 초기 아동기 경험이 삶의 목적에 미치는 영향 107

3. 개인심리학에서의 꿈분석과 출생 순위 효과 110

4. 아들러의 라이프 스타일 114

5. 리더들의 라이프스타일 비교 118

6. 삶의 원동력으로서의 콤플렉스 125

7. 위대한 터닝 포인트를 위하여 131


IV.우주산업 시대를 연 실리콘밸리 거장들의 힘, 전망의 기술 _134

1. 미래를 위한 도전이 어려운 이유 136

2. 사람들은 미래를 다르게 전망한다! 140

3. 이중특수성 143

4. 실리콘밸리의 너드nerd, 제프 베조스 146

5. 일론 머스크의 불안정한 애착 149

6. 리처드 브랜슨의 난독증 152

7. 이중특수성과 우주산업 155

8. 이중특수성과 전망의 기술 158

9. 미래에 대해 생각하는 모든 것이 다 전망은 아니다! 161

10. 이중특수성 집단을 위한 문화 164


V. 인생의 보이지 않는 리스크 _168

1. 불로장생을 꿈꾸는 사나이 170

2. 진짜 우리를 죽음에 이르도록 하는 것 175

3. 스트레스 그 자체보다 더 해로울 수 있는 것 182

4. 명품 시계보다 마음의 시계 188

5. 시소 위의 코끼리: 알로스타시스의 지혜가 필요하다! 193

6. 사회적 알로스타시스 문제 197


VI. 한국의 초저출생 및 초고령화 문제에 대한 심리진단 _204

1. 한국 초저출생 문제의 특징과 정부 대응정책의 변화 206

2.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이 안고 있는 ‘구성의 오류’ 문제 213

3. 심리학적인 안목으로 초저출생 문제 조망하기 222

4. 한국의 초고령화에서 가장 걱정되는 것 231


VII. 전쟁 같은 삶을 견딜 만한 것으로 바꾸는 비결 _242

1. 한국 사회의 알로스타시스 과부하: 전쟁 같은 삶 244

2. 인류가 ‘전쟁 같은 삶’에 대처해 온 특별한 방법 250

3. 행복 게이미피케이션의 치유의 힘: 최상위 긍정감정 257

4. 행복 게이미피케이션으로 전쟁 같은 삶을 바꾸다! 266

5. 우리가 행복 게이미피케이션으로 할 수 있는 일들 280




VIII. 21세기에 대한 심리학적 전망 _290

1. 20세기를 되돌아봄으로써 21세기를 전망하다! 292

2. 1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의 집단 히스테리 296

3. 전후 신인류의 등장: 집단히스테리의 개인적 전환 304

4. 전후 히스테리적 소비 사회의 탄생 312

5. 전후의 정신적 황폐화와 집단 히스테리 그리고 경제 대공황 324

6. 20세기 초반의 미국이 21세기 초반의 한국에 주는 시사점 329


맺음말: AI시대의 핵심역량, 미래 리터러시 _336

1. 1차 세계대전과 전망의 오류 339

2.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역사의 운율 346

3. 전망의 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한 심리학적 노하우 348

4. 미래 리터러시Futures Literacy 352

5. 지금 한국에 가장 필요한 심리학 356


미주 _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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