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발행 2025.09.15
책머리에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는 지구의
자전을 말하는 대신에
‘해가 뜨고 진다’고 이야기해 왔다.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돈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분명히
입증되었음에도,
우리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우리의 생각은 여전히 천동설에 머물고 있다. 한번 익숙해진 사고방식은 어떤 증거에도 좀처럼 흔들리지 않으며,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에 의문을
던지는 일은 언제나
쉽지 않다.
그러던 어느 날,
우주선이 보내온 몇 장의 사진이 우리의
사고를 뒤흔들었다. 달의 표면 위로 서서히
떠오르는 지구의 모습은
마치 우리가 익숙하게 보던 달의 모습과 흡사했다. 푸른 바다와 흰 구름으로 뒤덮인 이지러진 지구가 그곳에
있었다.
태양을 도는 행성들과 셀 수 없이 많은 행성 속에서,
지구는 누군가가 특별히
표시해 주지 않는다면 그 존재조차 무색할 만큼 작은 한 점에 불과했다.
우주가 우리를
중심으로 돌지 않는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그럼에도 우리의 언어와
사유 속에는 여전히
태양이 지구를 돈다. 이는 우리의 인식 변화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익숙한 관점에서 벗어나
우주적 시각을 받아들이기가 얼마나 지난한지를 일깨워준다.
물론 해와 달,
지구를 바라보는 익숙한
사고방식은 일상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자연스러운’ 이분법적 사고가 문명을 바라보는 관점에 적용될
때는 상황이 달라진다. 가령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라는 표현에서 동서 어느 한쪽을 우월하게 여겨 떠오름을 번영과 융성으로 보고, 지는 것을 쇠퇴와 몰락으로 여길 경우는
문제가 된다. 문명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로 그렇다.
‘진보’와 ‘발전’이라는 이름 아래, 어떤 지역은 문명의 중
심이자 우월한
곳으로 간주되는 반면, 다른 지역은 뒤처지고 열등한 것으로
여겨진다.
21세기에 이르러
사람들은 끊임없이 이동하고 다양한 문명과
문화가 뒤섞이면서, 문명의 공존과 문화적 다양성이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다. 그럼에도 문명은 여전히 서구와
비서구 문명, 앞선 문명과 뒤처진 문명으로 나뉘며, 그 지역 사람들 또한 보이지 않는 문명의
위계질서 안에 있게 된다.
이러한 질서에 따라 사람들은 평가를 받고, 각 문명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결코 균등하지 않다. 문명은 지역과 인종에
따라 구분되고, 그 위에는 우열을 가르는
이분법적 시각이 자리 잡고 있다.
인류 사회는
공간적으로 다양함에도, 진정한 의미에서 공간적 차이는
없어지고 시간적 진보의
차이만이 강조된다. 문명은 경제와 기술의 발전, 제도의 근대성, 정신적·문화적
성숙도와 같은 요소를
기반으로 하며, 이러한 기준 아래 각 문명과 그 안에 속한 이들은 어김없이 등급과 위계의
틀 안에 놓이게
된다.
어떤 지역은 애초에
야만 상태에 머물러
있다고 여겨지며, 또 다른 지역은 야만을
벗어나 문명의 경지로
진입했다고 평가된다. 나아가, 일부 지역은 더 높은 문명단계로 사회를 발전시켰다고 여겨진다.
오랫동안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던 이 기울어진 문명관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 나는 2000년부터 소위 비문명의 땅을 여행하며, 달에서 지구를 보듯 비문명권에서 문명 세계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여러 문명을 여행하며 나는 문명이 서로 만나는
방식이 강과 지류가
만나서 어우러지며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침략과 정복, 식민화 그리고 약탈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떤 문명은 승자가
되어 그 역사를
기록하고,
기록은 교과서가 되어 상식이자 당연한 것으로
자리를 잡았다. 패자가 된 문명은 기록을
상실하고 그들이 지녔던
문명의 아름다움과 섬세함, 과학적 위대함마저 상실했다.
그들은 열등하거나 미개하지 않았고
진보와 발전에서 뒤처진
문명도 아니었다. 그들이 남긴 유적과 유물은
‘우월한 문명’에 의해 파괴되고 훼손되었으며, 약탈당했다.
수많은 유물과 유적은
그것을 창조한 이들의
손을 떠나 오늘날
서구 박물관에서 아무런
맥락도 없이 낯선 이들을 마주하고 있다. 그리고 그 문명에는 중심이 아니라
주변부라는 인식이 자리를
잡았다.
이것이 과거의
일에 그치는 것이 아님은 오늘날 사람들의 빈번한 이동 속에서도 문명에 대한 위계적 사고가 사라지기는커녕 오히려 사람들의 내면 깊숙이
공고하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한 문명이 존중받지 못할 때, 그 구성원들의 존엄성과 자존감
또한 위협받는다.
오늘날 미디어에서 비서구 문명은
어떻게 묘사되는가? 문명의 이분법은 여전히 여러 문명을 억누르고 있으며, 세계화의 흐름도 문명 간의 교류보다는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그 결과 열등한 위치에
놓인 문명들은 스스로
‘낙후됨’을 확인하게 된다.
우리는 ‘열등한
문명’으로 불려 온 문명들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을까? 진정한 공존이란 무엇인가? 문명 간의 균형을 맞추는
일이 가능하다면, 그 방법은 무엇일까? 각 문명의 위대함과 그 힘을 드러내고 이를 인정할 수 있다면, 기울어진 문명의 저울을
수평으로 맞출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해서 나의 여정은 중국 둔황에서 시작하여 캄보디아의 앙코르 문명, 이집트 문명, 짐바브웨와 남아프리카의 소나족, 산족, 줄루족이 창조한 문명을
지나갔다.
또한 남아메리카의 나스카
문명과 잉카 문명, 라파누이 문명, 중동 요르단 페트라의 나바테아 문명, 시리아의 팔미라 문명을 거쳤다. 스페인과 튀르키예에서는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문명이
맞닿은 흔적을 마주했다.
흔히 ‘비서구’로 불리는 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의 다양한 문명을
두루 다니면서 본 것은 오랜 세월 고립된 채 존재해
온 듯 보였던
문명들도 결국 여러 경로를 통해 서로 만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실크로드의 교역로인 요르단의 페트라와 시리아의 팔미라는 서로 다른 문명이 교차하는 공간이었다. 이곳에서는 공동의 교역체계를 통해 다양한
문명권의 사람들이 오갔고, 여러 문명은 정복과
침략이 아닌 교류와
융합으로 함께 어우러졌다. 길을 따라 만난 여러 문명들은 어느 한 문명의 배타적
우월성이 아니라 공존을
이루고 있었다.
관찰이란 단순히
대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사고하고 개입하는 과정이다. 올바르게 관찰하기 위해서는 먼저 나 자신의 ‘맹점’을 알아야 했다. 나는 한때 서구를 부러워했다. 문화가 있고, 세계를 만든 사람들이 있으며, 모든 곳에 긴 역사와 전통이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내가 바라본
세계는 사실이 아니라, 서구가 바라본 문명과
사고방식,
그리고 서구가 정의한
세계와 문화였다. 그 정의는 지나치게 협소하고 인위적인 것이었으며, 이를 깨닫는 것이 중요했다.
서구 문명의
시선 아래 존재했던 아시아와 아프리카 그리고 남아메리카의 문명을 더 가까이에서 바라보고 싶었던
이유는 내가 살아가는 공간 속에 함께 있는 이주자들에게 시선을 돌리기
위해서였다.
우리 사회는 이주자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서구인,
백인,
부유한 국가 출신의
사람과 비서구인, 유색인, 저개발
국가 출신의 사람으로 나누며, 그에 따라 이주자들을 보는 시선도 다르다. 전자는 동경의 대상이 되지만
후자는 만만히 여기며
낮춰 대한다. 이러한 시선 또한 학교에서 배운 상식, 미디어를 통한 단편적인 정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형성된
이미지에서 비롯되었을지도 모른다.
과거를 다시 보면 현재가 새롭게
다가온다.
그래서 나는 과거를
찾아 나섰다. 다양한 문명이 남긴 위대한
과학과 아름다움을 보고 싶었다.
뛰어난 능력으로 우주를
읽고,
수학과 천문학, 공학과 건축을 발전시켰으며 풍요로운 예술과 문화를
창조한 그들의 빛나는
순간들을 남겨진 유적 속에서 발견하고 이를 알리고자 했다. 서구 문명과 비서구 문명이
우열로 나뉘고 그것이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는 현실에서, 천동설만큼이나 깊이 뿌리내린 이러한 사고에
의문을 던지고 싶었다.
문명에 관한 나의 생각과 관찰이
이미 여러 책과 매체에서 부분적으로 다뤄진
주제일 수도 있지만, 이를 새롭게 엮어 누군가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문명에 대한 기존의 통념을 조금이나마 바꿀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2024년 2월 말,
나는 정년을 맞이했다. 지난 35년간 나를 강단에 서게 한 사회학을 통해 인류가
만들어온 모든 것이 존재하는 지구가 단순히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 새롭게 해석되고 재구성될 수 있는 시공간임을 알게 되었다. 과거 문명을 바라보는 지금 우리의
새로운 시각은 곧 앞으로 펼쳐질 문명에
대한 전망으로 이어질
것이다.
문명의 흔적을
본다는 것은 단순한
과거 회상을 넘어 지구 곳곳의 무수한
공간에서 펼쳐진 다채로운 삶의 모습을
발견하는 여정이다. 이 여정에서 나는 서로 다른 문명과 삶의 형태를 우열이나 위계로
구분하지 않고, 서로 다른 존재로 인정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낯선 것을 익숙하게 보며 균형과
공존이라는 렌즈로 문명을
바라볼 수 있게 될 때, 내가 마주했던 문명들이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떠오른다면, 그것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좋겠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큰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하고 싶다. 방대한 양의 초고를 읽어준
제자 신아름누리, 관련 지역 자료를 번역하고 원고를 읽어준
오경희 교수, 책의 기획단계부터 전문가로서 조언과
자료를 제공해 준 문지영 교수의 도움은
큰 힘이 되었다. 또한 이 책의 구성과 내용을 살피며
도서관을 오가고, 마치 자신의 책처럼 아낌없이 힘을 보태준
후배 김정겸에게 마음속
깊이 감사를 전한다. 마지막까지 원고 및 사진 작업을 함께하며 세심하게 검토해
준 김보미 박사의
노고에 깊은 고마운
마음을 표한다.
적합한 사진을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던 중 소장한 사진을 기꺼이
제공해 주시거나 직접 현지에서 촬영한 사진을
보내주신 정병삼, 문명대, 박아림, 이현규,
최지연 교수님, 부성자 선생님,
동국대학교 전자불전문화콘텐츠연구소, 그리고 Roger
Atwood와 Werner Remero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또한 중요한 자료를 찾아주고 구해주신 숙명여자대학교 도서관 학술정보운영팀 선생님들께 깊은 감사를 전한다. 이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 책의 출간은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아울러 책의 완성을 위해 노력을
기울여 주신 담당 편집자 김다혜 님, 그리고
디자인팀 권아린 님께 고마움을 전하며, 이 책의 출판을 결정해
주신 ㈜피와이메이트 노현 대표님께 감사드린다.
끝으로 이 책이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 동안 지지와
격려를 보내준 가족들에게 진심 어린 고마움을 전한다.
2025년 8월
김영란
지은이 김영란
숙명여자대학교를 졸업한 뒤 고려대학교 대학원 사회학과에서 「한국인의 복지태도에 관한 경험적 연구: 계급 및 이데올로기와의 관계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사회심리학과 명예교수로 있다.
그동안 빈곤, 젠더, 위험사회, 다문화사회, 소수자 등 한국의 다양한 사회문제를 중심으로 연구해 왔으며, 특히 ‘여성의 빈곤화’에 대한 연구를 시작으로, 빈곤, 노동시장, 가족, 환경 등 사회적 위험을 통합적으로 조망하는 ‘위험사회’ 연구로 영역을 확장했다. 뉴욕 콜롬비아 대학교 사회학과 부설 ‘부와 불평등 연구소’에서 방문교수로 재직하며 사회적 위험에 대한 국가 간 비교 연구를 수행하였고, 한국 다문 화학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최근에는 주변화된 소수자의 삶과 인권, 다인종·다문화 사회에서의 공존과 다양성의 문제를 성찰하며 대안을 모색하는 데 힘쓰고 있다.
저서 및 역서는 『위험 사회학』(저서, 2019년 대한민국 학술원 우수학술 도서 선정), 『일곱 가지 여성 콤플렉스』, 『일곱 가지 남성 콤플렉스』, 『제3의 성: 중년여성 바로보기』, 『한국 사회와 섹슈얼리티』, 『내 안의 여성 콤플렉스 7』, 『다문화사회 한국의 사회통합』, 『한국의 사회복지』, 『21세기 사회복지정책』(이상 공저), 『토크빌의 빈곤에 대하여』(공역), 『비교문화심리학』(공역, 2018년 대한민국 학술원 우수학술도서 선정) 등이 있다.
차례
책머리에 … iii
들어가며 • 2
제1부
문명 다시 보기, 이기적 문명을 마주하다 · 14
이기적 문명의 일곱 가지 행위 15
1장 중국 둔황 36
1. 중국 석굴답사 기행에서 둔황을 만나다 37
2. 이기적 문명의 현장 42
•유물 훼손과 훔쳐 가기•유물 약탈
3. 둔황, 인류 문명의 보고 56
4. 둔황에서 시작된 이기적 문명 관찰기 60
2장 캄보디아 62
1. 앙코르 문명을 찾아가다 63
2. 이기적 문명의 현장 65
•유적 파괴와 유물 훔쳐 가기•문명 폄하•‘발견자’ 만들기
3. 남겨진 유적에서 본 것 82
•건축술
3장 이집트 98
1. 오래된 미래, 이집트를 가다 99
2. 이기적 문명의 현장 103
•유적 파괴와 훼손•도난당한 유물
3. 남겨진 유적에서 본 것 115
•피라미드와 신전에서 본 건축술•미완성 오벨리스크에서 본 건축술•엘레판티네 섬에서 본 측량 기술•수학과 기하학
4장 짐바브웨 130
1. 아프리카 짐바브웨에 가다 131
2. 이기적 문명의 현장 133
•이름 바꾸기•국명 바꾸기•‘그레이트 짐바브웨’ 폄하
3. 남겨진 유적에서 본 것 142
•소나족의 건축술
5장 남아프리카공화국 146
1. 남아프리카공화국에 가다 147
2. 이기적 문명의 현장 151
•이름 바꾸기•역사 다시 쓰기
3. 남겨진 유적에서 본 것 157
•산족의 바위그림
4. 이기적 문명이 만든 아프리카 지도 159
6장 페루 168
1. 남아메리카 페루에 가다 169
2. 이기적 문명의 현장 175
•이름 바꾸기•유적 파괴와 훼손•신화 도용•야만인 만들기•종교 이식
3. 남겨진 유적에서 본 것 191
•나스카 문명의 지상화, 습관적 사고를 묻다•보는 대상을 바꾸는 지상화•건축술
7장 이스터 섬 218
1. 거대한 석상 모아이가 있는 이스터 섬에 가다 219
2. 이기적 문명의 현장 224
•이름 바꾸기•유물 훼손과 약탈•종교 이식과 유물 태우기•종족 말살
3. 남겨진 유적에서 본 것 230
•건축술•암벽 예술•문자
8장 스페인과 튀르키예 248
스페인: 코르도바와 그라나다
1.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문명의 각축장, 스페인에 가다 249
2. 이기적 문명의 현장 251
•코르도바에서 본 이기적 문명•그라나다 알함브라 궁전의 훼손
튀르키예: 이스탄불
1. 이스탄불에 가다 260
2. 이기적 문명의 현장 261
•유적 훼손
스페인과 튀르키예에서 본 문명 공존의 아이러니
1. 문명 공존의 두 얼굴 266
2. 이슬람에서의 관용 267
3. 기독교와 이슬람: 혼자 이루어진 문명은 없다 269
제2부
문명의 공존, 요르단과 시리아 · 272
1장 요르단 274
1. 붉은 도시 페트라에 가다 275
2. 문명 교류와 공존의 현장 279
•유적이 보여주는 문명의 공존
3. 남겨진 유적에서 본 것 296
•나바테아 건축에서 본 문명의 공존•수로에서 본 과학기술•문자
2장 시리아 304
1. 사막의 고대 도시, 팔미라에 가다 305
2. 문명 교류와 공존의 현장 307
•유적이 보여주는 문명의 공존
3. 남겨진 유적에서 본 것 327
•실크로드 연장의 준거점이 된 팔미라•건축술•팔미라 제국과 여왕 제노비아
3장 페트라와 팔미라에서 실크로드를 다시 보다 334
제3부
이기적 문명, 역사와 전통 만들기 · 338
1장 북마케도니아와 19세기 만들어진 전통 340
1. 북마케도니아 스코페에서 본 역사 만들기의 현장 341
2. 알렉산더를 둘러싼 분쟁: 마케도니아와 그리스 346
3. 끝나지 않은 분쟁 357
4. 19세기 전통 만들기 358
2장 박물관에서 본 이기적 문명 368
1. 불편한 박물관 369
•만들어진 박물관•과시하는 박물관
2. 박물관에서 본 이기적 문명 385
3. ‘유물, 제자리로 돌아가기’인가, ‘인류 보편적 박물관’인가? 389
제4부
한국 사회, 문명의 균형과 공존·400
1장 이기적 문명, 당신이 처음은 아니다 402
1. 이곳은 어디일까? 404
2. 이기적 문명의 위계적 이분법 408
2장 다인종•다문화사회, 한국에서 보이는 이기적 문명 410
1. 이주자에 대한 ‘위계적 사다리’ 만들기 411
2. 위계적 문명의 시작점 416
3장 문명 공존의 가능성 420
1.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기 421
2. 문명의 균형 맞추기 423
나가며 • 426
주 … 432
참고문헌 … 440
사진 및 그림 출처 … 4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