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발행 2026. 9. 30
작년 2월, 나는 23년간의 검사 생활을 마무리하고 명예퇴직하였다.
그리고 곧바로 3월부터 로스쿨에서 형사법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그동안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형사법을 다시 공부하였다. 그러나 공부를 거듭할수록 오히려 부족함만 더 크게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여름방학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과연 지난 23년 동안 검사로서 무엇을 배웠을까.’
법률지식은 책을 통해 다시 공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검사가 되어 처음 검사실 문을 열었을 때 가장 알고 싶었던 것은 법률이 아니었다.
‘어떻게 조사해야 잘한 조사인가.’
그러나 그 질문에 답해 주는 책은 찾기 어려웠다. 선배 검사들에게도 물어보았다. 조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떤 질문부터 해야 하는지, 언제 증거를 제시해야 하는지 물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대부분 경험을 통해 익히라는 것이었다.
결국 나 역시 몸으로 배울 수밖에 없었다. 나는 누구보다 많이 조사하려고 했다. 오전에는 사기사건 피의자를 조사하고, 오후에도 또 다른 사기사건 피의자를 조사하였다. 조사에 실패하기도 했고, 예상하지 못한 답변 앞에서 당황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루하루 조사를 반복하면서 조금씩 나만의 조사 방법을 만들어 갔다.
그 과정에서 나는 끊임없이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왜 사람은 거짓말을 하는가. 어떻게 해야 진실한 답변을 이끌어 낼 수 있는가. 확보한 증거는 언제 제시해야 하는가. 질문의 순서는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과연 잘한 조사란 무엇인가.
검찰을 떠난 지 1년이 조금 넘은 지금, 나는 비로소 그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을 정리해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내가 처리했던 수많은 사건 가운데 특히 나의 조사방법을 변화시킨 아홉 개의 사건을 다시 꺼내 보았다.
여기에 소개하는 사건들은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받았던 사건들이 아니다. 특수사건도 있고, 강력사건도 있으며, 마약사건도 있고, 선거사건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건의 종류일 뿐이다. 나에게는 모두 같은 의미를 가진다. 그 사건들은 내가 어떻게 판단했고, 왜 그렇게 행동했으며, 그 과정에서 무엇을 배우게 되었는지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 준 사건들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내가 재현하고 싶은 것은 사건 자체가 아니다.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순서로 생각했고, 어떤 선택지 앞에서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포기했는지, 그리고 왜 그런 판단을 하게 되었는지를 가능한 한 그대로 복기하고 싶었다. 그래서 당시의 사건 관련 자료를 확인하거나 기억을 하나씩 되짚으며 사건을 다시 구성하였다. 그것은 과거를 미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시의 나 자신을 다시 검증하기 위한 과정이었다.
이 책에는 정답이 없다. 각 사건마다 먼저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고, 가능한 선택지를 제시한 뒤, 내가 왜 그런 판단을 하였는지를 설명하였다. 그 이유는 수사에는 언제나 하나 이상의 선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나는 독자들이 나와 같은 결론에 이르기를 바라지 않는다. 다만 내가 어떤 과정을 거쳐 그 결론에 도달했는지를 함께 따라가 보았으면 한다. 사건은 모두 다르지만, 좋은 판단이 만들어지는 조사과정에는 공통된 구조가 있다고 나는 믿는다. 이 책은 좋은 질문과 좋은 판단을 통해 진실에 이르는 구조를 함께 찾아가는 기록이다.
2026. 8. 연구실에서 저자
저자 약력
이성일
◈ 학력
1995. 연세대학교 법학과 졸업
2015. 서울시립대학교 세무전문대학원 세무학 석사
2021.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형사법 박사
◈ 경력
1999. 제41회 사법시험 합격
2002. 사법연수원 수료(제31기)
2002. 2.~2025. 2. 포항지청 형사1부장, 순천지청 형사1부장, 서울남부지검 부장검사, 의정부지검 부장검사
2025. 3.~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형사법 교수
2025.~ 관세청 미래성장혁신 위원회 위원 수사발전 자문위원회 위원, 해양경찰청 자체규제심사위원
2026.~ 법무부 인권강사, 강원경찰청 수사심의위원회 위원, 법조윤리협의회 자문위원
◈ 수상
2008. 모범검사(대검찰청)
2020. 우수형사부장(대검찰청)
2024. 조세 공인전문검사 인증(대검찰청)
차례
프롤로그
첫 번째 사건 증거는 피의자 조사를 통해 완성된다
두 번째 사건 좋은 조사는 순서가 만든다
세 번째 사건 증거는 생활 속에서 발견된다
네 번째 사건 복잡한 사건은 구조가 해결한다
다섯 번째 사건 좋은 조사는 진술을 대신 정리하지 않는다
여섯 번째 사건 위화감은 다시 확인하라는 신호다
일곱 번째 사건 좋은 조사는 진술을 증거로 바꾼다
여덟 번째 사건 할 수 있다고 다 정당한 것은 아니다
아홉 번째 사건 최종 처분은 들인 노력에 따르지 않는다
9개 사건을 관통하는 생각
에필로그 진실을 발견하는 것만으로 충분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