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판 2009. 3. 10.
초판 2005. 3. 10.
꼭 30년 만에 빚을 갚는다. 1975년 여름 박영사의 기획과장이던 李明載 선생이 나를 찾아와 국제정치학 개론서가 마땅한 것이 없으니 하나 써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고 권했다. 나는 30년쯤 가르쳐 본 후라야 개론서를 쓸 수 있다고 답했다. 이명재 과장은 고집을 꺾지 않고 기한을 정하지 않은 계약서를 들고 와서 서명을 ‘강요’하고 착수금으로 당시 나의 부교수 봉급의 반쯤 되는 거금 5만원을 주고 갔다. 이제 그 계약대로 30년만에 약속한 교과서를 낸다. 감회가 깊다.
국제정치학은 그 역사가 짧다. 국제문제는 있어도 국제정치는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교과서는 국제문제와 관련된 주장, 사건, 문제들을 체계 없이 다루어 온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표준적 교과서도 없고 책마다 다루는 내용과 시각이 달랐다. 대학 학부생들이 이런 교과서를 접하다 보면 국제정치를 하나의 독립된 학문체계라 생각하지 않게 된다.
정치란 사회질서를 창출, 유지, 관리, 개선해 나가는 인간행위를 말한다. 국제정치는 국제사회의 질서에 관한 정치이다. 따라서 ‘질서’에 초점을 두고 정리하면 훌륭한 독립된 학문체계가 된다. 이 교과서는 국제사회의 질서관리학이 국제정치학이라는 전제로 체계적으로 꾸며 본 개론서이다. 그래서 책제목을 "국제정치질서학개론"이라 붙이려했으나 전문서적처럼 오해할까봐 그냥 "국제정치학개론"이라 붙였다. 이 틀을 이해하고 국제문제들을 접하게 되면 국제정치의 전체적 맥락 속에서 다룰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 시도해 본 것이다.
이 교과서는 한 학기 3학점 과정을 상정하고 쓴 책이다. 그래서 장도 14개로 맞추었다. 줄거리를 이해하는데 역점을 두고 쓴 책으로 되도록 각주를 줄였고 대신 보조 참고자료를 곳곳에 삽입하여 이해에 도움을 주기로 했다. 어려운 이론들은 되도록 피했다. 국제관계이론은 별도의 교과서("국제관계이론" 3정판, 서울: 박영사, 1999)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참고문헌도 장마다 최소한의 책을 골라 간단히 해설을 붙여 책 뒤에 실었다.
이 교과서는 그동안 서강대학교에서 강의할 때 썼던 강의록을 바탕으로 2003년 8월 서강대학교에서 정년퇴임할 때를 맞추어 쓰기 시작했었는데 사정이 생겨서 한 학기 일찍 퇴임하고 2003년 2월부터 한림대학교 총장직을 맡게됨에 따라 작업이 중단되어 1년 반이 밀렸다. 총장직이 격무여서 주말마다 작업을 계속하느라고 내용이 잘 다듬어지지 못했고 자료수집도 불충분해졌다. 그래도 박영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출판을 결심했다. 틈이 날 때 보완하여 개정판을 쓰기로 마음속에 다짐하면서 부끄러운 대로 책을 낸다.
교과서를 쓸 때는 그 내용을 강의하면서 학생들과 주고받는 이야기 속에서 생각이 다듬어질 때 교과서다운 책이 된다. 서강대에서 조기 은퇴하는 바람에 초고를 강의를 거쳐 보완할 기회를 놓쳐 이번에도 다른 책을 쓸 때처럼 집사람을 ‘강의 듣는 학생’으로 활용했다. 집사람을 시도 때도 없이 내가 어떤 주제를 꺼내 놓고 ‘강의’하면 질문도 해주고 부족한 설명을 보완하도록 이것저것 주문도 해주었다. 그리고 게을러지는 나를 독려하여 작업을 서둘러 마치게 해주었다. 玉이의 도움이 컸음을 밝힌다.
이 책을 쓰는데 큰 도움을 준 李章旭 석사와 柳哉衣 석사에게도 이 자리를 빌어 심심한 감사의 뜻을 전한다. 李章旭 군은 박사과정을 마무리 하느라고 정신없이 바쁘게 살면서도 군사안보 관련 자료 수집에 헌신해 주었으며, 柳哉衣는 한림대 대외협력처 직원으로 일하면서 주말을 이용해 원고 정리를 해주었다. 언젠가 신세 갚을 날이 오기를 바란다.
30년이면 강산이 세 번 바뀌는 긴 세월이다. 그동안 박영사는 국제정치학 관련 교과서를 여러 권 출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75년의 약속을 지켜 이 책을 출판해 주기로한 박영사에 대하여 존경의 뜻을 표하고 싶다. 특히 복잡한 원고를 매끈하게 다듬어 모양을 갖춘 책으로 만들어 주신 기획부의 趙成晧 차장과 편집부 등 여러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30년 묵은 약속을 지켜 마음의 빚을 덜었다는 생각에 정신적 해방감을 느낀다. 조용히 다음에 써야할 책, "국제평화질서"를 구상하고 있다.
2005년 2월 1일
춘천 한림대 총장 공관에서
저자 이 상 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