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발행 2026. 9. 04
어느 날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다
토요일 오후였다. 중학교 3학년 아들을 둔 어머니에게 경찰서에서 갑작스레 전화가 온 것이다.
"안녕하세요 서초경찰서 여성청소년계 ○○○ 경위입니다. 아드님 사건 때문에 연락드렸습니다. ○○이 어머니 되십니까?"
갑작스러운 경찰서 전화에 손이 떨렸다.
'왜 우리 아들이, 무슨 잘못을 했길래?'
몇 초의 정적이 흘렀고, 나는 최대한 정신을 바짝 차리려고 노력했다. 순간 스치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 학교에서 아들이 친구를 때린 사건으로 잘하면 학교폭력 절차가 진행될 수도 있다고 하셨는데, 아마 그 일로 전화를 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상대측에서 학교에 학교폭력 신고를 준비한다고 했는데 왜 경찰서에서 연락이 오지?'
"아 네 안녕하세요. ○○이 엄마 맞는데요,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나요?"
나는 최대한 침착하게 답변했다. 내가 잘못 이야기를 하면 무언가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갈까 봐 긴장한 티를 내지 않으려 했다.
"네 별건 아니고, 상해 건으로 고소가 들어왔어요. 아드님이 누구를 좀 때려서 다치게 한 것 같은데... 한번 나와서 조사를 좀 받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네 학교에서 친구랑 싸웠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는데, 경찰서에서 연락이 오니 조금 놀라서요, 혹시 학폭 신고를 하면 경찰에서 연락을 주시는 건가요?"
"아니요, 학폭 절차와 저희는 무관하고요, 피해자 측에서 저번 주 경찰서에 정식으로 형사고소장을 내셨습니다."
"그건 학폭 신고와 다른 건가요?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건가요?"
"네 뭐 형사절차가 진행되는 거지요, 잘못이 인정되면 법원에 가서 재판을 받게 될 수도 있고요. 뭐 재판까지는 제 소관이 아니라... 아무튼 한번 나오셔야 합니다. 다음 주 화요일 5시까지 아드님 데리고 서초경찰서 여성청소년계로 오시기 바랍니다. 오실 때 신분증 챙겨 오시고요."
"네 일단 알겠습니다. 아이랑 이야기를 해볼게요."
"네 안 되시면 근시일 내로 다른 날을 또 잡아야 하니 바로 이 번호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끊겠습니다."
등에 땀이 흘렀다.
상대측에서 학폭 신고를 한다더니 형사고소를 했나 보다. 아니 학교폭력 신고도 이미 접수했는지 모르겠다.
얼마 전 아이에게 들은 이야기는, 최근 성적 관련해서 매일 아들을 놀리는 애가 있었고, 너무 자존심을 상하게 하기에 말다툼을 하다가 순간 홧김에 상대 아이의 얼굴을 때렸다고 했다. 볼 쪽으로 주먹을 휘둘렀는데 운이 안 좋았는지 피해학생이 뒤로 물러서다 코 부분에 주먹을 스치듯 맞았고, 상대 아이의 코뼈에 금이 갔다고 했다. 선생님 말씀으로는 전치 4주 진단이 나왔다고 하셨다.
상황이 어찌되었든 아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엄히 혼을 냈다. 아이도 많이 반성한다고 했다. 치료비도 물어줄 생각이고 찾아가 무릎이라도 꿇고 사과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연락을 해보니 상대측에서 요구하는 금액은 상식 이상의 금액이었다. 코를 다쳤으니 미용적인 수술도 여러 번 해야 하고 나중에 후유증이 생길 수도 있으니 미래에 발생할 치료비에 위자료까지 합의금으로 많은 돈을 요구했다. 이를 무조건 수용해야 할지 난감했다. 이런저런 고민 끝에 전문가와 상담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변호사 사무실 예약을 해둔 상황이었는데 갑자기 경찰에서 전화가 온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지? 그냥 무리한 금액이라도 돈을 주고 끝낼까? 아이가 잘못한 것은 맞지만, 선행되었던 놀림에 대해서는 아무 평가를 받을 수는 없는 걸까? 경찰서에는 아이랑 단둘이 가도 되는 걸까?' 여러 생각이 들었다.
변호사와 일단 바로 상담을 해보았다. 우리 아들이 저지른 행동은 법적으로는 상해라고 했다. 폭행보다 더 크게 사람을 다치게 하면 상해에 해당한다고 했고 피해학생이 병원치료를 4주 동안 받아야 하니 그래도 꽤 크게 다친 것이라 했다. 원하시면 경찰조사 때부터 따라가서 변호해 준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왠지 잘못을 했는데 변호사를 선임하면 피해자 측을 더 자극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재판 단계에서부터 변호사를 선임하고 일단 경찰조사는 혼자 가기로 마음먹었다.
화요일이 되어 아들과 함께 경찰서로 갔다. 5시인데도 경찰서에는 주차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차가 많았다. 가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는데 차를 댈 곳도 없어서 더 마음이 힘들었다. 겨우 차를 대고 경찰서로 들어가는데 어찌하여 이런 곳에 아들을 데리고 와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억장이 무너지고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 같았다. 엄마로서 긴장하고 있는 아들에게 의연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혼자 되뇌었다.
1층 안내데스크에 여성청소년계 ○○○ 경위님을 만나러 왔다고 했다. 그랬더니 잠시 기다리라고 했고, 10분 정도 기다리니 수사관이라는 사람이 나와서 우리를 여성청소년계 부서로 데리고 갔다. 그 안에는 일반 사무실과 같은 책상이 여러 개 있었고 구석에 매우 좁은 공간인 '조사실'이 있었다. 컴퓨터 한 대와 그 앞에 의자 2~3개 정도 들어가는 1.5평 남짓한 방이었다. 거기 앉아서 잠시 대기하라고 했다. 신분증을 달라 하여 주었더니 복사를 하고 다시 가져다주었다.
수사관님은 앉아서 컴퓨터를 켜고, 고소장이라고 적힌 서류첩을 열었다. 나에게는 '신뢰관계인(부모)'으로 참석한 것이니 발언을 자제하고, 주로 아들에게만 질문을 하겠다고 했다. 부드럽게 말하는 듯 했지만 나는 위압감을 느꼈고 이미 아들을 가해자로 염두하고 대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사관님이 먼저 아들에게 인적사항을 물었다. 이름, 학교명과 반, 가출한 적이 있는지, 경찰서에 전에 온 적이 있는지, 아버지 어머니의 성함 및 직업을 물었다. 그리고는 피해자와 처음 어떻게 만났으며 왜 싸우게 되었는지를 물었다. 질문의 방식은 평이하다가도 상당히 고압적으로 묻기도 했다. 유도신문처럼 보이는 질문도 있었다. 당시의 상황에 대해 상당히 세세하게 물어보았다.
그러나 나와 아들은 코뼈를 부러뜨린 상해 사건에 대해서만 고소가 되었는 줄 알았는데, 그 전에 아들이 피해학생에게 욕을 한 적이 있는지, 돈을 빌리고 갚지 않은 일이 있는지 다른 사건에 대해서도 물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피해자 측은 상해 사건으로만 아들을 신고한 것이 아니라 모욕과 갈취로도 고소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고소장이라는 것을 사전에 열람할 수 있고, 조사 전에 그 내용을 확인하고 그에 대해 대비하고 와야 한다는 사실도 몰랐다. 우리는 그냥 상해로만 신고가 된 줄 알고 순진하게 경찰서로 온 것이었다. 그렇게 2시간 남짓 조사를 받았다. 마지막에 그동안의 문답을 담은 '피의자 신문조서'를 출력해주었고 본인이 말한 대로 조서에 적혀있는지를 확인하라고 했다. 말로만 듣던 피의자 신문조서라는 것을 경찰서에 와서 처음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 아들이 지장을 수십 차례 찍었다. 매 페이지마다 지장을 찍어야 했다. 그리고 전자지문등록이라는 것도 했다. 나중에 만약에 범죄를 저지르면 바로 수배를 돌리기 위함이라고 했다. 엄마로서 아들의 이런 모습을 보는 것이 속상했다.
수사관은 조사를 마치며, 피해자 측과 합의할 생각이 있냐고 물었다. 나는 합의할 생각이 있고, 그래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나 상대측에서 너무 많은 합의금을 요구하고 있다고 사실대로 이야기하였다. 수사관은 수사에 참고하겠다고만 했다. 그리고 더 수사를 해봐야겠지만 아들의 상해 혐의가 워낙 확실해서 아마 검찰을 거쳐 소년재판을 받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아이는 재판을 받으면 어떤 처분을 받게 되는 거냐고 수사관에게 물었고, 집에 오면서 계속 떨었다.
위 사례는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남학생들끼리의 폭행 내지는 상해 사건이 형사절차로 진행되는 전형적 사례이다. 학교폭력 신고는 행정절차에 해당하며(학교폭력위원회를 열어 징계를 내리고 이를 생활기록부에 적어 진학상의 불이익을 주는 절차), 위와 같은 형사고소 절차와는 전혀 다른 별개의 독립된 절차이다.
최근에는 학교폭력 신고와 더불어 형사고소 또한 진행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형사절차는 국가의 사법권을 동원해서 범법행위를 한 가해자에게 형사제재를 하는 것이다. 많은 경우 미성년자가 죄를 범하면(정확하게는 형법, 형사특별법에 저촉되는 행위를 하면) 경찰조사 검찰조사를 받고 소년재판부에 회부된다. 즉, 경찰 조사 때부터 소년재판 사건이 시작된다고 보면 된다.
위 사례에서 부모의 대응 중 잘한 것과 못한 것을 평가하면 다음과 같다.
잘한 것
- 수사관 전화에 비교적 침착하게 대처한 점
- 정해진 시간에 아들과 경찰서에 동행한 점
- 조사 시 신뢰관계인으로 동석하여 아들에게 정서적 안정감을 준 것
- 현 합의 상황에 대해 수사관에게 알린 것
잘못한 것
- 조사 전에 고소장을 열람해보지 않은 것(가장 큰 잘못)
- 현재 합의가 잘 안되고 있으니, 수사관을 통해 합의 중재해달라 부탁하지 않은 점
- 피해자 자극을 걱정하여 조사 단계에서 변호사 동행을 하지 않은 점
이 책은 10년 이상 청소년 형사사건을 전문으로 하는 변호사의 입장에서 소년재판의 무엇인지, 어떻게 절차가 진행되는지, 빈번한 사례 등 그 현실을 보여주고 더불어 각 절차에서 학생과 부모님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알려주고자 하는 실무서이다.
이제 몇 가지 사례를 상술하고, 소년재판에 대한 소개와 절차의 흐름, 그리고 각 절차에서의 대응 매뉴얼, 주의할 점 등을 소개해드리고자 한다.
준비가 되셨다면 함께 시작해보자.
이호진
뚜렷한 꿈이 없던 학창시절, 고등학교에 올라와 공부에 재미를 붙였다. 앉아있는 것에 자신이 있었고, 으레 문과에서 공부를 잘하면 법대를 가야 한다는 부모님과 주변인들의 압박에 법대에 진학하였다. 그러나 대학에 입학하여 이 길이 내 길인가 싶은 의구심이 계속 들었고 정답을 찾지 못한 채 갑작스레 금융공기업에 취업하여 직장 생활도 하였다. 그러나 배운 것이 도둑질이라고 결국 본업으로 복귀했다.
2015년부터 변호사 활동을 시작하여, 이혼 · 형사 사건 전문 펌에 소속되어 수습변호사 생활을 했다. 본인이 결혼도 하기 전에 전국 가정법원들을 다니며 문제 있는 부부들의 새 출발을 도와주었고, 지방의 강력 형사사건도 마다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변호사로서의 경험치는 쌓였고, 일도 점점 익숙해져 갔으나 웬일인지 정신은 피폐해져 갔다.
그러나 우연히 로펌에서 배당된 청소년 사건(학교폭력, 소년재판)을 마주하고, 예전 교회 주일학교에서 10년간 중고등학교 학생들을 가르쳤던 교사로서의 활동이 생각났다. 학생과 학부모를 마주하는 것이 좋았고 학교나 교육청을 다니는 것이 신이 났다. 더불어 내가 학생들의 삶에 조금이나마 영향을 줄 수 있는, 그들을 도와줄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보람으로 다가왔다.
2017년 말 개업을 결심하고 나왔을 때 학생들을 위한 변호사로 살기를 다짐했다. 그때부터 약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 학교폭력이나 소년형사사건(소년재판), 아동학대 등을 전문분야로 다루며 서초동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향후에는 이혼 상속 등 청소년 분야뿐만 아니라 가정 내 법률문제를 모두 다루는 변호사로서의 성장을 기약하고 있다.
서울지방변호사회 청소년관리법 변호사, 대한변호사협회가 인증한 '학교폭력 전문변호사'(2019. 12.), 대한변호사협회가 선정한 10인의 '우수변호사'(2018. 6.), 대한변호사협회 · 대한변리사협회 변호사 · 변리사, 서울시 공익변호사, 서울 강서 · 마포 · 영등포 · 일산 동부/서부 · 파주경찰서(총 6곳) 법률자문변호사, 서울 목동 양정중고등학교(모교) 학교폭력 전담기구 위원 등의 활발한 활동을 하며 지금도 학교폭력 및 소년보호사건, 청소년 법률문제에 대해 열정을 가지고 임하고 있다.
저자는 학교폭력, 소년사건, 형사사건을 전문으로 수행하고 있는 변호사로, 2017년경부터 다수의 소년재판 및 학교폭력 사건을 담당해 왔다. 현재 법률사무소 유일 대표변호사로 활동 중이며, 청소년 사건 관련 강의 및 상담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또한 유튜브 채널 「로호진」을 운영하며 학교폭력 및 소년재판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프롤로그 어느 날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다 / 1
1장 소년사건 사례
1 인터넷 성범죄 사건 / 14
2 집단 폭행 사건 / 26
3 뒷담화 사건 / 37
4 성관계 사건 / 44
5 쌍방 폭행 주장 사건 / 52
6 자전거, 오토바이 절도 사건 / 62
7 단톡방 조리돌림 사건 / 69
8 강요 사건 / 75
9 공갈 사건 / 81
2장 소년재판이 무엇인가요
1 소년재판이란 / 92
2 소년법과 소년재판의 필요성 / 93
3 보호대상 소년 / 95
4 소년재판 절차의 특수성(일반 형사사건과의 비교) / 102
5 학교폭력 사건과의 관계 / 103
6 보호처분과 '전과'의 관계 / 110
3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청소년 범죄 유형
1 폭력 / 116
2 절도 / 121
3 사기 / 125
4 교통 관련 / 128
5 성관련 / 130
6 명예훼손, 모욕 / 141
4장 청소년 범죄 사건의 절차 흐름
1 고소 및 고발, 수사기관의 인지 / 147
2 경찰 조사 / 148
3 검찰 송치 혹은 소년재판부 송치 / 149
4 소년재판부의 배당 및 그 이후의 절차진행 / 151
5 심리의 개시 / 156
6 보호처분의 선고 / 158
7 불복방법 / 168
8 소년분류심사원이란 / 170
5장 학부모가 반드시 알아야 할 대응 매뉴얼
1 수사 단계 / 176
2 재판 단계 / 183
에필로그 소년에 대한 따뜻한 시선 / 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