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발행 2020. 7. 10
제2판발행 2026. 7. 10
머리말
수사면담의 현장은 내적 긴장과 불확실성에 지배된다. 조사관은 사 건에 대한 진실 발견이라는 목적 속에서, 자신이 마주하고 있는 대상 자의 진술에 대한 진실성 여부를 끊임없이 판단해야 한다. 피해자나 용의자, 목격자 등 사건 관련 인적자원이 누구이든 개인적인 목적으 로 스스로가 경험한 내용의 전체성 또는 완전성을 훼손하고 중요한 이 야기를 조작하거나 일부를 생략 또는 덧붙이는 방법으로 왜곡시킬 가 능성은 언제든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기억이라는 인간적 한계 역시 비의도적인 진술 오염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대상자(피면담 자)는 처벌에 대한 두려움과 자신의 말 한마디와 행동 모두가 조사관에 의해 비교, 검토, 분석된다는 사실을 의식하면서 심한 내면의 갈등을 겪는다. 이처럼 수사면담의 현장에는 일반적인 대화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독특한 심리적 역동(力動)이 살아 숨쉰다.
수사면담은 외견상으로는 단순히 질문과 답변의 반복처럼 보이지 만, 그 이면에서는 진실을 밝히려는 자와 그것을 숨기려 하는 자 사이 의 치열한 심리적 줄다리기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보이지 않는 대결에서 조사관이 길을 잃지 않고 진실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개별적 경험이나 직관만으로는 부족하다. 체계적인 이론과 현장에서 검증된 기법, 그리고 이를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는 훈련된 역량이 함께 갖 추어져야 한다. 이 책은 바로 그러한 역량을 키우기 위한 실천적 지침 서로서 집필되었다.
수사 과정에서 물적 증거가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음은 모 두가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영수증이나 계약서, CCTV에 포착된 영 상, 계좌 거래내역, 디지털 기기에 저장된 데이터 등 물적 증거는 수사 의 방향을 제시하고 형사사법절차에서도 유죄를 입증하는 강력한 수 단으로 활용된다. 그러나 현장에서 매번 마주하게 되는 한 가지 중요 한 교훈은 물적 증거만으로는 사건을 완벽하게 재구성하는 것이 불가 능하다는 것이다. 아무리 방대한 물적 증거가 확보되었다 하더라도(대 부분 제한된 소수의 자료들뿐이거나, 물적증거 자체가 부존재하는 내적 동기에
의한 행위도 상당하지만), 그것은 사건의 개략적인 윤곽과 추론만을 제공 할 뿐이다. 범행에 이르게 된 심리적 동기, 구체적인 범행 경위, 공범 의 역할 분담, 은닉된 증거의 위치, 그리고 논리적으로는 설명되지 않 는 상황적 조건들까지 사건의 살과 피를 채우는 정보는 오직 대상자의 주관적인 경험 세계, 즉 언어적 진술로부터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은 물적 증거가 확보된 경우에도, 또는 그렇지 않은 경우에 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정황 증거만이 존재하는 사건 상황의 경우에는 진술 증거 확보의 중요성이 더 강조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결국 어 떤 종류의 사건이든, 수사의 마지막 퍼즐 한 조각은 물적 증거가 아니 라 대상자로부터 확보한 진술 증거로부터 나온다. 자백과 진술은 단순 히 사건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범죄 행위의 저 변에 내포된 심리적 · 행동적 이유, 범행 도구의 활용 방식, 범행 직전과 직후의 상황적 맥락 등 물적 증거로는 결코 채울 수 없는 정보의 공백 을 메워주는 것이 바로 진술 증거인 것이다.
그렇다면 ‘대상자로부터 이러한 진술 증거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확 보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바로 이 책이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조 사관이 면담에서 대상자를 어떻게 대하고, 어떤 방식으로 질문하며, 어떤 순서와 전략으로 접근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극적으로 달라진다. 준비 없이 직관에만 의존하는 면담은 중요한 정보를 놓치거나 대상자 에게 경계심만 불러일으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반면 체계적이고 구조 화된 기법을 바탕으로 진행되는 면담은, 대상자의 거짓말을 식별가능 하도록 하고 또 스스로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게 만들면서 거짓을 유지 하는 것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하여 자백하도록 인 도한다. 이것이 이 책이 강조하는 ‘수사면담의 기술’이다.
필자가 이 책을 집필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국내 수사 실무 현장 에서 마주한 ?렷한 공백에 있다. 경찰과 같은 법집행기관 수사관뿐 만 아니라, 공공기관 및 기업 내부 감사팀, 보험범죄 조사팀, 민간조사 업(탐정), 특별사법경찰관리, 군 수사팀, 인권 또는 권리 침해 조사기관 등 우리 사회의 다양한 영역에서 수많은 조사 실무자들이 매일 수사면 담 영역의 현장에서 대상자들과 마주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체계적 으로 기법을 학습하고 숙련도를 높일 수 있는 국내 교재는 사실상 전 무하다. 일부 해외의 선진기법을 기반으로 한 이론적 기법서들이 단순 소개되고 있고 심지어 활용 불가능 혹은 효과성에 대해 지속적인 문 제가 제기되고 있는 도구들을 소개하는 책도 시판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현장 활용성이 의심스럽거나 서구권 문화와 제도를 배경으로 개발된 것들로서 국내 수사 현장에 대한 진지한 고민없이 그 대로 활용되기에는 인권침해적 요소나 심리적 저항감을 불러일으키고 더욱이 우리의 실무환경과 괴리되는 등 현실적인 간극과 부작용이 너 무 커 적용하기에도 어려움이 크다.
또한 많은 수사 실무자들이 공식적인 교육보다는 선배로부터의 전 수, 개인적인 시행착오, 또는 단편적인 연수 프로그램에 의존해 면담 을 습득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방식이 현장 경험에서 비롯된 교훈을 전달한다는 측면에서 장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검 증되지 않은 방법이나 잘못된 관행이 대물림되는 경로가 되기도 한다. 충분한 증거 없이 용의자를 몰아붙이는 섣부른 추궁, 대상자의 진술을 충분히 들으려 하지 않는 성급한 결론, 심리적 압박을 통해 자백을 받 아내려는 강압적 관행 등은 수사의 실패를 초래할 뿐만 아니라, 허위 자백을 강요해 무고한 사람에게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주는 심각한 결과로도 이어질 수 있다.
이 책은 이러한 현실적 공백을 메우기 위해 기획되었다. 특히, 현 장에서 즉시 적용 가능하도록 개발된 증거기반 수사면담 모델인 ‘계단 모델(Stairway Model)’을 이 책의 중심에 놓았다. 계단 모델은 해외의 다양한 수사면담 이론과 기법들을 저자의 27년간의 국내 범죄수사 현 장 경험과 해외 연수에서의 훈련과정을 바탕으로 우리가 처한 상황에 서의 활용성을 높이고 사회문화적 · 제도적 맥락에 맞게 재구성한 구조 화된 접근법이다. 특히 지난 10여년간 수사관, 공공기관 및 민간기업 감사관들을 대상으로 수사면담을 강연해오면서 질의응답, 토론을 통 해 강조되어야 할 기법과 필요한 지식들이 무엇인지를 재정립할 수 있 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현재의 모습을 갖춘 이 모델은 수사면담의 전 과정을 명확하게 단계별로 구분하고, 각 단계에서 조사관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떤 기법을 활용해야 하는지를 체계적으로 제시한다. 계단의 각 디딤돌은 독립적인 기술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것들이 유 기적으로 연결될 때 비로소 전체적인 힘을 발휘하는 통합적 과정이기 도 하다.
이 책이 특별히 강조하는 것은 라포(Rapport) 형성의 중요성이다. 많은 조사관들이 라포 형성을 단순한 인사치레나 시간 낭비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큰 오해이다. 면담 초반에 대상자와 형성 하는 신뢰와 공감의 연결은 면담 전체의 질을 결정한다. 대상자가 면 담자를 적대적인 관계로 설정하지 않도록 비도전적이고 비자극적인 방식으로 다가설때, 그의 입에서 나오는 진술의 깊이와 양은 현저히 달라진다. 라포가 형성된 면담 환경에서 조사관은 대상자의 자발적 진 술을 최대한 이끌어낼 수 있고, 진술 속에 숨겨진 모순과 거짓의 단서 를 더 선명하게 포착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이 책은 증거의 통제된 제시 기법과 함께 병행해서 적용되어 야 하는 언어적 대안의 소진 기법을 중요하게 다룬다. 조사관이 확보 한 증거를 언제, 어떤 방식으로 대상자에게 제시하느냐는 면담의 성패 를 가르는 핵심 변수이다. 그러므로 모든 증거를 한꺼번에 쏟아내 제 시하고 압박하는 것은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을 강조한다. 대상자의 진 술에서 모순이 충분히 누적된 시점에 도달한 이후 최종적으로 증거를 개방하고 그 과정에서는 모순을 누적시키는 ‘전략적 증거의 활용’을 통 해 그 증거는 강력한 자백의 설득 도구가 된다. 이와 함께, 대상자가 더 이상 언어적으로 회피할 수 없는 지점, 즉 언어적 대안이 소진되는 순간을 만들어내는 기법도 상세히 설명하였다.
거짓 탐지에 관해서는 이 책에서 특별히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 음을 밝혀 둔다. 면담과 신문 과정에서 대상자가 보여주는 언어적 · 비 언어적 · 준언어적 신호들을 ‘거짓말의 증거’로 단정지어 해석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는 것이다. 단일한 ‘특정 행동이나 발화 패턴이 거짓의 절대적 지표가 된다’는 것은 과학적으로도 지지되지 않을 뿐더러 관련 도구들에 대해 진행된 메타연구들에 의해서도 부정된다. 이 책에서는 ‘피노키오의 코’와 같은 거짓의 ⑨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함께 그러한 신호들이 거짓이 아니라 ‘거짓의 가능성’으로 해석되어야 하고, 그 가능성은 추가적인 수사 활동과 증거 수집을 통해 검증해야 할 공백으로 다루는 접근법을 강조한다. 이것이 조사관이 선입견과 확증 편 향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객관적인 수사를 유지하는 방법이다.
이 책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제1장에서는 수사 목적 달성을 위한 면담기법을 학습하고 숙련하 는 것의 필요성을 다룬다. 실체적 진실 발견을 위한 퍼즐의 마지막 한 조각은 물적 증거가 아닌 진술 증거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구체적으 로 논증한다.
제2장에서는 이 책의 핵심인 증거기반 수사면담 모델인 ‘계단 모델 (Stairway Model)’을 제시한다. 구조화된 단계별 구성 요소와 적용 기 법, 그리고 증거기반 면담의 중요성을 집중적으로 설명한다.
제3장에서는 수사면담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서 질문의 기술, 능동적 경청의 방법, 그리고 라포 형성을 촉진하기 위 한 구체적 기법을 소개한다.
제4장에서는 거짓 탐지의 원리와 한계, 그리고 피해자 · 목격자의 기억 인출을 극대화하는 인지면담(Cognitive Interview) 기법을 다룬다. 제5장에서는 앞서 다룬 모든 내용을 실제 사례에 통합적으로 적용 하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현장 조사관들이 이론과 실무의 연결을 체
험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 책이 도달하고자 하는 독자층은 다양하다. 공공기관 및 민간기 업 감사팀, 민간조사업(탐정), 인권 또는 권리침해 조사관, 특별사법경 찰관리, 보험범죄 수사팀, 군 수사팀, 경찰 수사관 등 수사 실무에 종 사하는 모든 분이 이 책의 일차적인 독자이다. 그러나 수사면담의 원 리는 단순히 범죄 수사의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모든 조사의 현장, 더 나아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신뢰를 바탕 으로 진실을 이끌어내야 하는 다양한 상황에서 이 책의 내용은 폭넓게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이 완성된 정답이 아니라, 함께 배우고 성장해 나가는 과정에 서의 하나의 디딤돌 역할을 하길 기대한다. 수사면담의 기술은 책을 읽는 것만으로 숙련되기 어렵고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그러나 이론을 이해하고, 현장에서 적용하며, 결과를 되돌아보고, 다시 개선 해 나가는 반복적인 훈련의 과정을 통해서 단기간에 숙련된 역량을 내 면화할 수 있다. 이 책이 그 훈련의 충실한 동반자가 될 수 있기를 바 란다.
마지막으로, 이 책이 단순히 수사의 효율성을 높이는 도구로만 쓰 이지 않기를 바란다. 수사면담의 궁극적인 목적은 실체적 진실을 발견 하는 것이고 그 진실의 발견은 무고한 사람을 범인으로 만들지 않는 것, 피해자가 정당한 보호와 회복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리고 범죄로부터 사회를 지키는 것과 직결된다. 이 책을 통해 익힌 기법과 원칙들이 그러한 정의로운 목적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활용되기를 진 심으로 바란다. 수사면담의 현장에서 진실을 향해 걸어가는 모든 분에 게 깊은 감사와 응원의 마음을 보낸다.
저자 박재일
지은이 약력
박재일 - 수사아카데미 대표
저자는 27년간 경찰 수사 현장에서 살인, 강도, 인질 사건 등 강력범죄를 비롯 해 뇌물수수, 사기, 횡령, 배임 등 지능 · 경제범죄 수사를 수행해 온 현장 수사 전 문가이다.
이러한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경찰 교육기관에서 수사면담 전문가 양성과정 을 담당하면서 관련 훈련 프로그램을 개발 · 보급해 왔다.
특히 국내 수사면담 기법이 현장경험이 부족한 일부 이론가들에 의해 단편적 이고 파편적으로 도입 · 운용되어 온 한계를 비판적으로 인식하고, 대학원 연구와 해외 연수를 통해 현장경험에 이론적 기반을 접목하여 독자적인 체계를 확립하 였다. 그 결과, 한국형 증거기반 수사면담 모델인 ‘계단모델’을 개발하고 이를 실 무에 적용 · 확산시켜 왔다.
현재는 공공기관 및 주요 민간기업 감사 · 조사 담당자를 대상으로 강연과 교육 을 진행하며, 법집행 분야 및 민간 기업 내부감사 분야에서 수사면담 기법의 실 효성을 높이기 위한 체계화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문의: root4588@gmail.com
제 1 장: 수사면담의 개관
1. 수사면담기법의 필요성 22
(1) 조사관의 핵심 역량 25
(2) 자백의 설득과 진술 확보 29
(3) 거짓 진술 탐지 32
2. 증거기반 수사면담 모델(계단 모델: Stairway Model)의 의미 35
(1) 국내외 수사면담 모델의 현황과 한계 38
(2) HIG의 ‘고가치 수용자 신문 모델’ 40
제2장: 증거기반 수사면담 전략: 계단 모델(Stairway Model)
1. 증거기반 수사면담과 계단 모델의 의미 46
2. 계단 모델의 4단계 구조 48
(1) 1단계: 사실의 조사(Investigation Stage) 50
(2) 2단계: 면담의 실행(Interview Stage) 59
(3) 3단계: 자백의 설득(Persuasion Stage) 80
(4) 4단계: 검증의 실행(Verification Stage) 87
3. 요약: 계단 모델의 전체 흐름 89
제3장: 효과적인 수사면담을 위한 도구들
1. 질문의 기술 94
(1) 도입질문 96
(2) 탐색질문 99
(3) 전략질문 104
2. 듣기의 기술 110
(1) 좋은 듣기는 목적이 있는 행위이다 111
(2) 좋은 듣기의 세부 기술 112
(3) 라포 형성의 촉진 기술 120
3. 수사면담 과정에서의 두 가지 공통적 오류 127
(1) 터널 비전(Tunnel Vision):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오류 127
(2)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 이미 믿는 것만 받아들이는 오류 129
(3) 두 오류가 수사면담에 미치는 영향 130
(4) 두 오류를 방지하기 위한 조사관의 자세 131
제4장: 거짓 탐지기법과 인지면담
1. 거짓 탐지기법 134
(1) 행동분석 136
(2) 진술분석 142
2. 인지면담 148
(1) 인지면담의 이론적 기반: 기억의 구조와 인출의 원리 149
(2) 인지면담의 구조: 맥락의 회복과 기억의 복구 150
(3) 인지면담 활용 시 유의사항 152
제5장: 수사면담의 실제: 계단 모델(Stairway Model)의 통합적 활용
1. 사례 검토 및 준비 156
2. 수사면담의 실행 예시 160
(1) Case 1(공사자재 횡령 사건) 160
(2) Case 2(법인카드 사적 사용 사건) 169
(3) Case 3(가수금 사적 사용 사건) 1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