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발행 2026. 5. 29
발간에 부쳐
이 책은 故 이서항 전 외교안보연구원(현 국립외교원) 교수님의 유고“회의외교의 이해: 국제회의 회의 참가 이론과 실제”를 정리하여 사후 출간한 것이다.
이 교수님은 외교안보연구원 재임 시 국제안보, 군비축소 및 해양법 분야의 국제 학술회의에 참가하여 한국을 대표하는 전문가로서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특히 필자는 상기 관련 분야의 유엔 전문가 회의에 정부대표로 오랫동안 참가하여 우리 국익증진에 기여하였다.
필자는 이 책에서 이러한 풍부한 국제회의 참가 경험을 바탕으로 국제회의의 진행 절차와 의사결정 및 협상 방식 등에 대한 체계적인 설명을 제시하고 있다. 필자가 본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국익을 높이기 위해서는 유엔 등에서 진행되고 있는 ‘회의외교’에 효과적으로 참여하기 위한 역량이 필수적이다.
이 책은 국제사회에서 회의외교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고 진행되는지를 다양한 사례와 체계적인 설명을 통해서 제시하는 국내 최초의 국제회의 실무 안내서라 할 수 있다.
이 책이 이 교수님의 바람대로 일선 외교관은 물론 국제기구 진출에 관심 있는 우리 젊은이들이 효율적인 국제회의 참가 능력을 배양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함께 원고의 교정과 편집에 수고를 아끼지 않은 박영사 나세현 선생과 편집팀의 노고에 감사를 드린다.
최원기
국립외교원 교수
추천사
오늘날 국제사회는 전례 없는 속도로 복잡해지고 있다. 기후변화, 핵비확산, 글로벌 공중보건, 사이버 안보, 해양질서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의 국가가 단독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국제의제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다자외교의 현장, 곧 국제회의의 무대는 국가이익을 관철하고 국제규범을 형성하는 가장 직접적인 공간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의외교의 실제 운영 원리를 체계적으로 다룬 한국어 문헌은 놀랍도록 부족하였다. 이 책 『회의외교의 이해』는 바로 그 공백을 메우는 역작이다.
이 책은 故 이서항 교수님의 유작이다. 저자는 수십 년에 걸친 다자외교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국제회의의 이론과 실무를 유기적으로 통합한 길라잡이를 독자 앞에 내놓았다. 남극해양생물보존위원회(CCAMLR) 총회의장, 아세안 지역안보포럼(ARF) 해양안보 회기간회의의 공동의장 등 실제 의장석에서 쌓은 경험이 책 전반에 생동감 있게 녹아 있다. 이는 단순히 외국 문헌을 번역하거나 추상적 원칙을 나열한 교과서가 아니라, 저자 자신이 생전에 직접 체득한 현장의 지혜를 후학에게 전수하는 귀중한 기록이다.
이 책은 국제회의의 정의와 종류에서 시작하여, 의사진행 규칙, 발언권 신청에서 투표 결과 발표에 이르는 의사결정 8단계, 제안의 종류와 우선순위, 투표의 원칙과 방법, 결의문을 비롯한 회의문서 작성에 이르기까지 국제회의의 전 과정을 논리적 순서에 따라 일관되게 서술한다. 그 구성의 탁월함은 무엇보다 실용성에 있다. 로버트의 의사진행 규칙(Robert’s Rules of Order)이라는 보편적 기준틀을 기반으로 삼으면서도, 유엔 총회와 안전보장이사회, NPT 검토회의, ARF 등 실제 국제기구의 사례를 풍부하게 활용하여 추상적 원리를 구체적 현실로 연결한다.
특히 제안의 우선순위(제안의 사다리)에 관한 설명은 이 분야 한국어 문헌 가운데 가장 체계적인 서술이라 할 만하다. 보충 제안, 우선 제안, 부수 제안 사이의 위계를 명확히 정리하고, 이를 협상 전략으로 활용하는 방법까지 제시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회의 진행의 논리 구조를 내면화하도록 돕는다. 상대방의 낮은 순위 제안을 높은 순위 제안으로 사전에 봉쇄하는 전술적 응용까지 설명한 대목은, 단순한 규칙의 소개를 넘어 회의외교를 전략적 게임으로 이해하게 하는 탁월한 통찰이다.
투표 방법의 서술 역시 마찬가지다. 음성투표, 거수투표, 기립투표, 호명투표, 비밀투표, 일반합의투표의 여섯 가지를 비교 정리하면서 각 방법의 적용 맥락과 표준 발언 문구를 함께 제시한다. 실무자가 현장에서 즉각 참조할 수 있는 구체성이 이 책의 가장 큰 미덕 중 하나이다. 마찬가지로 결의문 작성 부분에서는 서문(preamble)과 주문(operative clauses)의 기능적 차이, 이탤릭 강조 관행, 서문 도입 어구(Recognizing, Recalling, Reaffirming 등)와 주문 동사(decides, calls upon, demands 등)의 선택 기준을 세심하게 설명한다. 이는 외교문서 작성의 관행을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 특히 유용한 지침이 될 것이다.
냉전 종식 이후 한국은 국력의 괄목할 성장을 바탕으로 국제사회에서의 발언권을 꾸준히 높여왔다. 유엔 사무총장 배출, 유엔 안보리 비상임이사국 수임, G20 정상회의 개최, 주요 국제기구 수장 진출 등이 그 징표이다. 그러나 외교력의 진정한 척도는 국제무대에서의 의전적 존재감이 아니라, 국제회의의 복잡한 절차 속에서 국가이익을 현명하게 관철하는 협상 역량이다. 이 책은 바로 그 역량을 배양하기 위한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본질적인 토대를 제공한다.
이 책은 또한 세계화 및 국제화의 맥락에서 회의외교의 부상을 설득력 있게 분석한다. 저자는 양자외교에서 다자외교로의 전환이라는 구조적 변화를 정확히 짚으면서, 그 현장인 국제회의가 단순한 정보교환의 장을 넘어 국제규범과 레짐(regime)을 형성하는 입법회의로 기능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이러한 거시적 시각과 의사봉을 몇 번 두드려야 하는가라는 미시적 실무 지식을 하나의 체계 안에서 통합적으로 제시하는 것은 이 책만이 가진 독보적인 장점이다.
한 가지 더 주목할 점은 이 책이 기술하는 회의외교 역량이 전통적인 정부 간 회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늘날 다자회의의 공간은 NGO, 국제기구 직원, 학계, 민간 전문가 집단으로까지 확장되어 있다. Track I 정부 간 회의에서 Track II 민간 회의, 나아가 Track 1.5 반관반민 회의에 이르는 다양한 형태를 이 책이 분류하고 설명하는 방식은, 국제회의 참여자의 스펙트럼이 얼마나 넓어졌는지를 보여준다. 국제기구 진출을 준비하는 젊은 세대, 다자협상에 처음 참여하는 실무 외교관, 그리고 국제규범 형성 과정을 연구하는 학자 모두에게 이 책이 유용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 책의 맺음말에서 저자는 회의외교 분야의 선구자 Johan Kaufmann 교수가 제시한 회의 참가자의 덕목 열 가지를 소개한다. 진실성과 정직, 정확성, 침착함, 참을성과 겸손, 상황 적응성, 충성심, 정신적 · 육체적 인내심, 순발력, 언어 표현력, 용기가 그것이다. 흥미롭게도 이 덕목들은 국제회의 절차에 대한 기술적 지식보다 더 근본적인 것을 요구한다. 그것은 협상가로서의 인격과 태도이다. 저자가 이 책의 마지막을 규칙과 절차의 서술이 아니라 이러한 덕목의 권고로 마무리한 것은, 회의외교의 진정한 역량이 기술적 숙련과 인격적 성숙의 결합에 있음을 일깨우는 메시지로 읽힌다.
Kaufmann은 국제사회에서 국제기구의 놀라운 수적 증가로 국제회의가 거의 매일 세계 어딘가에서 열리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지금, 그 밀도는 더욱 높아졌다. 기후변화에 관한 당사국총회(COP), 핵비확산조약 검토회의, 유엔 해양법 관련 협상, 세계무역기구 각료회의, 그리고 수많은 지역기구의 회의들이 쉼 없이 이어지는 시대에, 한국의 외교 역량은 이 모든 무대에서 시험받고 있다. 그 시험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가장 믿음직한 안내자가 될 것이다.
이 책이 일선 외교관들의 협상 가방 속에, 국제기구 진출을 꿈꾸는 젊은이들의 책상 위에, 그리고 다자주의의 미래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서가에 자리를 잡기를 바란다. 그 중요성에 비해 소홀히 다루어졌던 회의외교의 모든 면을 체계적으로 정리해낸 故 이서항 교수님의 헌신적인 노력에 깊은 경의를 표하며, 이 책의 독자들이 국제회의라는 무대에서 더욱 당당하고 효과적인 목소리를 내는 데 이 책이 기여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2026년 4월
백진현
전 국제해양법재판소 소장
저자 약력
이서항(李瑞恒) 교수 (1951-2023)
• 학력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학과 졸업(우등 졸업)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학과 졸업(정치학 석사)
미국 켄트(Kent) 주립대학교 대학원 졸업(정치학 박사)
캐나다 달하우지(Dalhousie) 법과대학 박사후 과정(Post-Doc)
• 주요경력
한국과학기술원 해양연구원 선임연구원
외교통상부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안보통일연구부장, 연구실장
주 뭄바이 대한민국 총영사
단국대학교 초빙교수/우석한국영토연구소장
한국해양전략연구소장
한국외교협회 부회장
•대외/학회 활동
한국해로연구회 운영위원, 집행위원장, 회장
아·태안보협력이사회(CSCAP) 한국위원회 공동위원장
한국국제정치학회 및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한국 유엔체제학회(KACUNS) 회장
유엔 아·태지역 군축회의 한국 정부대표
핵확산금지조약(NPT) 한국 정부대표
제24차 남극해양생물보존협약(CCAMLR) 한국 정부대표 및 총회 의장
• 주요 저서
외교안보연구원 「주요국제문제분석」 60여 편 (1989–010)
“Third World Approach to Antarctica,” in Third World Affairs (1988)
『Conflict and Order at Sea』 (공편, 1998)
“Maritime Strategy of the Republic of Korea,” in Maritime Strategies in Asia (2002)
“유엔의 군축활동: 조직과 주요성과,” 박수길 편 『21세기 유엔과 한국』 (2002)
“동아시아 다자간 안보협력체: 실태분석과 평가,” 『동아시아 안보공동체』 (2005)
『북극의 도전과 한국의 대응』 (편저, 2010)
“The Republic of Korea and Maritime Capacity,” in Maritime Capacity Building in the Asia-Pacific Region (2010)
『동아시아 해양분쟁과 중국의 회색지대 전략』 (공저, 2020)
『주요 국제문제와 한국 외교전략』 (2022)
“Global Ocean Politics” (1989)
“남북한 군비통제방안 비교”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 등 국제안보 및 해양문제 관련 논문 다수
차례
Ⅰ. 서론: 세계화와 ‘회의외교’의 부상 08
Ⅱ. 국제회의의 정의와 종류 15
1. 국제회의 정의(定義) 15
2. 국제회의 종류 17
Ⅲ. 국제회의 기본 용어와 의사진행 규칙 25
1. 회의 기본 용어 25
2. 의사진행 규칙 29
Ⅳ. 회의 의사결정의 기본 절차: 발언권 신청에서 투표 결과발표까지 35
Ⅴ. 제안의 종류와 우선순위 45
1. 제안의 종류 46
2. 제안의 우선순위 56
3. 제안의 수정 62
Ⅵ. 투표의 원칙과 방법 70
1. 투표의 원칙 70
2. 투표의 방법 73
Ⅶ. 국제회의 문서작성 81
1. 국제회의 문서의 종류와 체계 82
2. 국제회의 문서작성의 원칙 90
3. 국제회의 문서작성의 실제 94
Ⅷ. 맺음말 100
참고문헌 102
색인 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