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발행 2010. 02.10
제16판발행 2026. 02. 10
제16판 서문(2026년)
국제질서가 요동치고 있다. 국제법이 효용과 가치 면에서 위기를 맞고 있다는 소리가 도처에서 들려온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국제사회가 새로운 무질서의 시대로 들어가는 기폭제 아니냐는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애당초 아무 명분 없이 시작된 이 전쟁은 만 4년을 계속하며 살육을 이어가고 있다. 전후 국제질서 중심축의 하나인 UN은 탄생 80돌 넘은 이 시점에 전례 없는 도전과 곤경에 직면해 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국가간 이익이 충돌하면 국가의 힘만이 결정요인이 되어야 하며, 자신의 도덕성만이 미국 군사력 사용을 통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자신은 “국제법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I don’t need international law.)”고 일갈했다. 이는 제2차 대전 후 세계 어느 나라 지도자도 감히 내뱉지 못한 적나라한 표현이다.
인류는 여러 차례 참혹한 전쟁을 거치며 공존의 질서를 배워왔다. 비록 미흡할지라도 국제법 규칙에는 인류의 경험과 희망이 녹아 있다. 작금의 사태는 제국주의 시대와 같은 힘의 현실 정치가 국제사회의 새 질서로 자리 잡으려는 전초전인가?
병렬적 주권국가 체제 속에서 국제법의 위기는 어쩌면 숙명과 같은 현상이다. 그런 와중에도 국제법은 지난 수세기 동안 규칙 기반의 국제질서를 구축해 더 나은 인류 미래 건설을 목표로 전진해 왔다. 위기가 수시로 닥쳤어도 하나의 위기를 넘길 때마다 국제법의 기반은 점점 더 단단해졌다. 일시적인 부침은 있겠지만 국제법이 제시하는 정신은 앞으로도 인류 문명이 보다 평화롭고 안전하게 발전하는데 기여하리라 믿는다. 국제법에 대한 무시와 경멸이 인류의 양심에 반하는 야만적 결과를 가져오지나 않을까 두렵다. 국제 평화와 안보 그리고 인류 공영을 위해 “우리는 국제법을 필요로 한다(We need international law.).”
국제법 내용이 하루아침에 급변하지는 않으나, 움직이는 세계 속에서 늘 새로운 사항을 보충하고 보완할 필요가 끊이질 않는다. 매번 하는 말이지만 연례적 개정은 필자로서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금년 개정에는 약 45쪽 정도 분량이 추가되었고, 30쪽 정도의 내용이 삭제되었다. 불가피하게 15쪽가량 증면되었다. 특정 부분에 보완이 집중되었다기보다 책 내용 전반에 걸쳐 보충과 삭제가 진행되었다. 내용 수정 못지않게 더 읽기 편한 문장 표현을 만드는 작업 역시 필자가 늘상 신경 쓰는 일이다. 그래도 원고를 넘기고 돌아서면 고치고 싶은 부분이 바로 눈에 뜨인다. 필자에게 일필휘지(一筆揮之) 능력이 없음이 한탄스럽다.
이 책을 처음 접하는 분은 내용 공부에 들어가기 전 함께 첨부된 초판 및 제15판 서문을 먼저 읽기 권장한다. 이 책자의 내용 구성과 공부 방법, 필자의 집필 의도 등에 관한 소개가 있다.
국제법과 관련해 전하고 싶은 소식이 있다. 필자의 K-Mooc 강의 『국제법 길라잡이』 과목이 http://www.kmooc.kr을 통해 2025년부터 공개되고 있다. 70분 내외의 강의 15회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간단한 회원 가입 절차를 마치면 누구나 무료로 시청할 수 있으니 대학에서 국제법을 정규 강의로 듣기 어려운 분은 참고하기 바란다. 그리고 일반인도 국제법을 좀 더 친근하게 접하기 위한 프로젝트로 필자는 2026년 연초 『국제법을 통한 세상 읽기』(일조각)라는 책자를 발간했다. 이 책에서 필자는 우리가 얼마나 국제법의 폭넓은 영향 아래 생활하고 있고, 우리 사회가 왜 국제법을 필요로 하는지를 말하고자 했다. 이를 어려운 이론을 내세우기보다 주변에서 벌어진 사례나 다들 잘 알고 있는 우리 근현대 역사를 통해 국제법의 역할과 필요성을 설명하려 했다. 체계적인 국제법 공부보다 다양한 주변 이야기를 통해 국제법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고, 국제법의 역할을 알려 주기 위한 목적에서 만든 책자이다. 역시 참고 바란다.
매년 연말연시 박영사는 바쁘다. 새 학기 교재 제작이 집중되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도 꼼꼼한 편집 작업을 통해 훌륭한 외관의 책을 만들어 주신 김선민 이사에게 감사드린다. 언제나 필자에게 여러 도움을 주는 조성호 기획이사 외 여러 직원 여러분들 지원이 어우러져 출간이 적기에 이루어졌다. 지면을 통해 관계자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 이 책으로 국제법을 공부하는 독자에게 2026년은 행운의 해가 되기 기대한다.
2026년 1월
정인섭
제15판 서문(2025년)
매년 가을이 지날 무렵 필자의 가장 큰 고민은 다음 해에도 ?신국제법강의? 개정판을 발간할지 여부이다. 개정판을 준비하는 일은 필자로서도 고된 작업이다. 특히 상대적으로 바쁜 연말연시 몇 달을 개정판 원고 정리와 교정에 매달려야 되기 때문에 늘 시간 부족에 시달렸다. 필자는 정년을 이미 했지만 2024년 역시 분주하게 보냈다. 상반기에는 오랫동안 준비해 오던 ?대한민국 수립과 국제법?을 박영사 간행으로 출간했다. 여름부터 연말까지는 K-Mooc의 일환으로 “국제법 길라잡이” 영상강의를 제작하는데 많은 시간을 투여했다. 이 강의는 일반인도 알기 쉽게 국제법의 기본을 소개하는 작업으로 http://www.kmooc.kr을 통해 누구나 무료로 시청할 수 있다. 15주차 강의로 진행되며, 2025년 초반 공개가 예정되어 있다.
개인 사정이 그러다 보니 개정판 작업을 위한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지난 연초부터 틈틈이 준비한 개정 원고를 모으니까 사실 이번에는 개정 수요가 다른 해보다 적은 편이었다. 그러나 2025년 초 개정판을 내야만 하는 특별한 사정이 발생했다. 외교부가 지난 여름 ?UN 헌장?과 ?ICJ 규정? 번역을 새로 고쳐 관보 고시를 했기 때문이다. 원 조약 내용의 변경은 없었으나, 어색하거나 애매했던 기존 번역본 상 문구가 상당 부분 수정되었다. 거의 전 조문의 표현이 조금씩이라도 바뀌었다. 국제법 연구와 학습에 가장 기본인 조약의 번역이 변경되었으니, ?신국제법강의?에도 이를 반영하지 않을 수 없었다. ?UN 헌장?과 ?ICJ 규정?은 국제기구나 분쟁의 사법적 해결 항목뿐 아니라, 이 책 거의 전체에서 활용되고 있기 때문에 관련 표현을 전반적으로 찾아 수정해야 했다. 불가피한 개정 필요가 있는 만큼 더불어 몇몇 최신 국내외 판례도 반영하고, 내용도 여러 부분 손보았다. 다행히 전체 면수를 늘리지 않는 범위에서 개정판을 만들 수 있었다.
이번 개정으로 ?신국제법강의?가 제15판을 맞게 되었다. 초판 발간 이래 지난 15년간 이 책으로 강의를 하면서 필자가 학생들로부터 가장 자주 받은 요구는 다음 두 가지였다.
첫째, “검토”라는 항목에 질문만 있는 경우 정답을 잘 모르겠으니 답도 함께 설명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둘째, 수록된 영어 판결문을 다 읽기 부담스러우니 그중 중요한 부분에 밑줄을 쳐달라는 요청이었다.
사실 검토 항목 중에는 법 자체가 불분명해 국제법 전문가도 쉽게 답하기 어려운 문제제기가 종종 있다. 질문은 던졌지만 필자조차 답을 잘 모르는 경우도 있다. 이런 문제를 제시한 이유는 학생들이 항상 남이 준 정답만 외우지 말고 스스로 생각을 해 보기를 권하기 위해서다. 외국으로 유학간 한국 학생들은 교수가 제시한 설명을 잘 외우기는 하지만,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이나 창의력이 떨어지며 변형된 상황에 대한 지적 적응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는다는 보도를 종종 접했으리라 생각한다. 필자 역시 그런 지적에 공감한 경우가 한두번이 아니다. 이는 한국 교육이 초중등 교육과정에서부터 정답을 암기하는 데 치중하고, 평가도 객관식 위주로 진행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사실 검토에서 어려운 질문은 개론 수준의 국제법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는 답을 몰라도 상관없는 내용이 적지 않다. 당장은 무시하고 지나쳐도 지장이 없다. 다만 국제법에 좀 더 관심이 있는 학생들은 스스로 생각해 보고, 동료들과 토론하고, 관련 전문서적을 찾아보며 자신의 답을 추구해 보기 바란다. 외국의 정평있는 국제법 교과서를 보면 국제법 학자들 역시 쉽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이 수북이 제시되어 있다.
이 책에 부담스럽지만 영어 판결문을 수록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국제법의 많은 원칙과 내용은 기왕의 판례에서 기원했거나 판례와의 관련 속에서 발전된 결과물이다. 판례는 교과서 내용 상당 부분의 원천을 이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제법의 원리?원칙이 현실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구현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판례연구를 통한 학습이 효과적이다. 법원칙이 실제 현실에서 적용된 모습을 직접 보면 그 내용에 대한 이해를 한층 높일 수 있고, 미래의 유사 사건에 대한 대응능력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능력은 판례 요지 습득만으로 얻어지지 않는다. 판례 원문 읽기가 중요한 이유이다. 부담스럽더라도 피할 수 없는 작업이다.
사실 영어 판결문은 원어민 역시 독해가 쉽지 않다. 한국 학생들이 읽기 힘드니 밑줄 쳐달라는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러나 장편 명작소설의 중요한 부분만 발췌·요약된 다이제스트판을 보고는 원작의 감동과 느낌을 얻을 수 없듯이 판결문 역시 몇 줄의 요지만으로 그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 밑줄 친 몇 줄만 읽을 요량이면 앞의 우리 말 소개문 읽기와 별 차이가 없을 듯하다. 남이 해준 몇 줄의 요지만으로는 잘해야 객관식 문제를 해결할 잡지식 정도나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법리의 기초를 튼튼히 하려면 항상 원전을 보며 그 논리 전개와 표현을 직접 경험해야 한다. 그 방법이 당장은 어렵고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장기적으로 실력향상의 정도요 지름길이다. 이런 훈련이 두뇌의 기초체력을 기르는 수단이다. 이 책에 수록된 영어 판결문은 외국의 정평있는 교과서와 비교하면 몇 분의 일 수준으로 짧게 발췌된 분량에 불과하다. 그런 정평있는 교과서와 비교하면 이 책의 수록 내용은 밑줄 친 핵심부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제무대에서 미래의 외국 경쟁상대들은 이 정도 이상을 학습하고 나온다. 더구나 그들 상당수는 영어 원어민이다. 당장은 힘들어도 우리 또한 좀 더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필자가 이 책을 내면서 항상 마음에 두고 있는 사항 중 하나는 한국 실행에 대한 소개였다. 초판 서문에도 언급한 바 있지만 국제적으로 정평있는 외국 개론서나 이미 국내에서 발간된 여러 교과서 외에 이 책이 별도로 존재할 의의가 어디에 있느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대답 중 하나는 필자 나름 한국의 사례와 경험을 담으려 노력했다는 점을 내세우고 싶다. 대한민국 현대사 속에서 우리가 경험한 국제법 실행은 한국인 스스로가 아니면 누구도 정리할 수 없다. 필자는 교수 초년 시절부터 국제법 관련 국내판결이나 외국에서 대한민국이 당사자가 되었던 판결, 한국이 경험한 국제법 관련 사건들을 수집해 왔다. 이에 국제적으로 유명한 판결이나 사건보다 학술적 논점으로서의 가치는 다소 떨어지더라도 가급적 한국 사례를 이 책에 수록해 소개도 하고 기록으로 남기려고 했다. 언젠가는 한국의 국제법 실행을 종합 정리한 저술을 만드는 일은 필자의 여전한 꿈이다.
필자가 이 책을 집필하면서 내심 목표로 했던 점 또 하나는 읽기 편한 좋은 문장의 교과서 집필이었다. 사실 대부분의 법학 책은 초심자에게 매우 어렵다. 필자 역시 50년 전 법학공부 초년 시절 교과서들이 너무나 어려웠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법학 책은 좀 읽기 편하게 만들 수 없는가? 좀 명쾌하게 내용 전달이 잘 되는 표현을 사용할 수 없는가? 왜 법학 책에는 지루한 만연체 문장만 가득할까?
법학은 기본적으로 외래 개념에 입각해 있고, 국제법은 특히 외국어 판결문과 조약문의 활용이 많아 신문 잡지 기사처럼 술술 읽히는 설명은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그래도 필자로서는 간결하고 쉬운 표현의 사용에 유의하며 이 책을 집필하려고 노력해 왔다. 전문용어가 아닌 한 생경한 한자어는 가급적 사용을 회피하고, 한 문장의 길이는 최대 3줄을 넘기지 않으려 했다. 한 단어, 한 글자라도 덜 사용하고 같은 내용을 전달할 수 있는 경제적 문장 작성에 신경을 쓰고 있다. 사실 필자의 희망 사항 중 하나는 적은 분량 속에도 풍부한 내용이 담겨 있는 외국의 정평 있는 서적과 같은 교과서를 만드는 일이다. 문고판과 같은 작은 책에도 엄청난 내용이 촘촘히 들어 있는 책을 읽을 때마다 내용을 취사·응축시키는 저자의 능력에 감탄했었다. 수식어 사용을 최대한 절제하면서도 매번 독자를 사로잡는 소설을 써내는 국내 유명 소설가의 문장력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러나 필자의 능력 부족으로 이 책에서는 아직 의도한 만큼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개정판을 만들자마자 매번 마음에 들지 않는 표현이 바로 눈에 뜨이고, 인쇄 중인 개정판이 미처 출시되기도 전부터 다시 새 개정판 준비를 시작해 왔다.
한편 독자 중에는 ?신국제법강의?와 필자의 또 다른 책 ?신국제법입문?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망설이는 경우가 있으리라 생각된다. 전체적 골격에서는 양자가 유사하나 ?신국제법입문?은 분량이 이 책의 1/3 남짓이므로 아무래도 간추린 내용이다. 학부든 대학원 과정이든 현재 법학을 전공하며 국제법을 시험 대비용으로 학습하거나 국제법 공부에 개인적 관심이 큰 독자라면 영어 판결문이 다소 부담스러울지라도 처음부터 ?신국제법강의?를 갖고 공부하기를 권한다. 이로 인해 읽는 속도가 너무 늦어지고 지루하면 일단 처음에는 긴 영어 판결문은 건너뛰며 읽어 각자의 머릿속에 전반적인 내용 골격을 형성한 다음 판결문을 찬찬히 함께 읽어도 무방하다. 반면 대학 교양 수준 정도로 국제법을 알고 싶은 독자는 다소 적은 분량의 ?신국제법입문?으로 공부해도 충분하리라 생각된다.
이번 개정판 준비에도 박영사 여러분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출판사 업무가 가장 바쁜 연말연시에 한두희 과장은 성실한 작업으로 이 책이 제때 출간되도록 헌신했다. 조성호 기획이사는 늘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해주고 있다. 안종만 회장 등 일일이 거명하지 않은 박영사 임직원 여러분의 노력에도 감사한다. 이 책으로 공부하는 모든 독자에게 2025년은 행운과 성취가 많기 바란다.
2024년 12월
정인섭
초판 서문
필자는 국제법 강의용 교과서를 집필할지 여부에 대하여 오랫동안 망설였다. 우선 은사가 학계에 활동하시는 동안에는 제자가 교과서를 출간한다는 일이 결례라고 생각하여 교수가 된 이후에도 상당한 기간 동안 교과서 집필은 필자의 머릿속 작업 목록에 담겨 있지 않았었다. 2007년으로 서울대학교에서 필자가 국제법을 배운 기당 이한기, 석암 배재식 그리고 송현 백충현 선생까지 모두 돌아가시게 되자 무언중 심적 압박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이미 국내외적으로 정평 있는 국제법 교과서가 적지 않은데, 필자의 작업이 그저 그런 범작 하나를 추가하는 헛수고에 지나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하였다.
교과서는 좀 묘한 성격의 책이다. 훌륭한 교과서를 만드는 일은 매우 어렵고 한없는 노력을 필요로 한다. 아무리 대가의 책이라 하여도 허점이 없기는 어렵다. 반면 과감히 달려들면 매우 쓰기 쉬운 책이 교과서라고도 한다. 새로운 학문분야에 관하여 최초의 교과서를 작성하는 일이 아니라면, 이미 국내외적으로 정평 있는 교과서들이 여러 종 발간되어 있을테므로 그런 책들을 적당히 참고하여 작성하면 생각보다 적은 노력만으로도 얼추 외관을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교과서류의 서적은 가장 빈번히 발간되기도 하나, 가장 손쉽게 잊혀지는 책이기도 하다. 명저 반열에 오른 교과서는 학계에서 오랫동안 기억되고 인용된다. 그것이 학계의 일반 동향을 표시하는 기준점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과서는 학술적 업적으로 인정받지도 못하고 독자의 매서운 눈총만 받는다. 그러다 보니 교과서 집필은 일견 쉬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수년 전부터 국제법 강의용 교과서를 집필하겠다고 생각하고 자료를 모으기 시작하였다. 그 이유는 아무리 국제적으로 정평 있는 교과서라도 외국서적은 우리 대학의 기본 교재로 채택하기에는 적절치 않다. 우선 학생들의 영어 능력도 문제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 한국의 사례나 시각이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국제법은 국제적으로 공통인 내용을 담고 있으므로 외국의 저명한 책을 교과서로 사용하여도 무방하고, 영어 강의도 손쉬우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영어 교과서를 사용하여 영어로 강의하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이러한 지적은 법학의 다른 전공과 비교하면 부분적인 타당성이 없지도 않으나, 반드시 옳은 지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국제법 강의라 하여 만국 공통의 내용만을 다루지는 않는다. 미국의 국제법 교과서를 보면 그 내용 상당 부분에는 미국의 경험과 시각이 반영되어 있다. 영국에서 발간된 국제법 교과서를 보면 역시 그 내용 상당 부분에는 영국의 경험과 시각이 반영되어 있다. 프랑스의 교과서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런 의미에서 국제법 강의에 있어서도 “국적”은 무시될 수 없다.
한편 국내에서 발간된 기존 국제법 교과서를 보면 훌륭한 저작도 여럿 있으나, 개론서로 사용하기에는 내용이나 분량, 형식 등에 있어서 필자 나름의 불만이 없지 않았다. 근래 법학 전분야에서 교과서 분량이 매우 늘어나고 있고, 국제법 역시 예외가 아니다.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법률관계 직업으로 진출하는 사람들 거의 대부분이 실무적으로 국제법 사건에 직접 부딪치는 경우는 평생 몇 차례 없을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학생들을 상대로 지나치게 세세한 내용의 이론강의를 하는 것이 과연 어떤 의의가 있는가 하는 의문을 갖고 있었다. 오히려 우리의 현실 속에서 왜 국제법적 지식이 필요한가에 대한 동기유발을 자극하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다수의 기존 교과서들은 한국에서 발간된 교과서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국제법적 경험이 충분히 반영되어 있지 못하다고 생각되었다. 국제법 개설서가 외국 사례만을 중심으로 내용을 설명하게 되면 학생들은 자칫 국제법이란 우리와는 상관없는 뜬구름 같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교과서 집필을 구상하면서 우선 어떠한 형식을 취할지를 고민하였다. 미국식 Cases & Materials 형식의 교과서는 사실 공부하는 학생들 입장에서는 결코 친절한 책이 아니다. 그래서 미국의 법과대학생들 역시 이론을 간이하게 정리한 형태의 책들을 별도로 사는 경우가 많다. 미국에는 영어로 된 각종 저작물, 판례, 자료 등이 워낙 풍부하여 이를 중심으로 미국식 교과서를 훌륭하게 꾸밀 수 있지만, 우리는 형편이 전혀 다르다. 반면 이론 설명 위주인 전통적 형식의 영국이나 일본의 교과서 형태를 따르면 필자의 작업 역시 기존 국내 교과서와 별다른 차별성이 있을까 우려도 되었다. 그런 교과서를 강의실에서 사용하려면 강의자가 항상 별도로 수업자료를 준비하여야 한다.
이에 필자는 양자의 절충형 교과서를 만들어 보기로 하였다. 즉 이론 설명에 있어서는 기존 국내 교과서보다 분량을 대폭 줄이는 대신, 그러한 이론이 구현되고 있는 판례나 법령과 같은 각종 자료를 같이 수록하기로 하였다. 다만 미국식 Cases & Materials 형식의 교과서에는 논문의 발췌가 상당한 내용을 차지하나, 국내 학계의 실정상 논문이나 단행본의 내용은 포함시키지 않았다. 미국식 교과서보다는 사례 반영이 적고 이론 설명이 많으나, 영국식 이론서보다는 이론 설명의 비중이 적고 사례의 반영이 많은 형식이다. 필자는 이러한 형식의 교과서를 국내외적으로 접하여 보지 못하였으며, 그야말로 필자의 독창적 구상의 산물이다. 그러면서도 사례에 있어서는 한국의 판례, 법령, 외교적 경험을 최대한 반영하려고 노력하였다. 남들이 이 책의 특징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필자로서는 국내 다른 어떤 국제법서보다 한국의 경험과 시각이 많이 반영된 점이라고 답할 것이다.
약 3년 전부터 필자는 외부로는 내색도 않고 이 책 집필에 필요한 국내외 자료를 모으기 시작하였다. 다른 급한 일들을 하면서 작업을 하다 보니, 이 책은 필자 작업의 우선순위에서는 종종 뒤로 밀리게 되었다. 그러다가 2007년 여름 미국식 법학전문대학원 도입이라는 국내 법학교육의 일대 변화가 발표되었다. 2009년부터 첫 입학생을 받았고, 2010년부터는 필자도 법학전문대학원에서 국제법 강의를 하여야 한다. 이에 늦어도 2010년 벽두까지는 강의용 국제법 교과서 간행을 마무리할 필요성이 커졌다. 이번에 급히 마무리하게는 되었지만 국제법 전반의 개설서로는 일부 내용이 추가되어야 함을 알고 있다. 미비한 항목들은 앞으로의 개정을 통하여 보완할 예정이다.
이 책은 제목에서 표방하는 바와 같이 국제법 전반에 관한 강의용 교재로 만들어졌다. 필자가 이 책을 집필하면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원칙을 적용하였다. 즉 조약문 인용에 있어서는 한국이 당사국으로 공식 번역본이 있는 조약은 한글 번역본을 사용하고, 한국이 당사국이 아닌 조약은 영문을 사용하였다. 다만 특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조항은 공식 번역본이 있는 경우에도 영문을 사용한 경우가 있다. 국제판례는 영어 원문을 그대로 발췌하여 사용하였다. 국제판례는 그 결론요지만 간단히 공부하여서는 취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없다. 원전을 직접 읽어야만 필요한 지식 습득이 가능하다. 사실 외국 교과서에서는 국제법적으로 중요한 판례라면 10-20쪽까지 수록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한국 실정을 감안하여 영어 원문이 최대 2쪽 분량은 넘기지 않으려고 노력하였으며, 다만 불가피하게 이 기준을 넘긴 판례가 몇 건 있다. 판례의 일부 발췌만으로는 독자가 전체 내용을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매 판례의 앞 부분에는 전체 사안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을 붙여 놓았다. 판례 선정에 있어서도 한국이 관련된 판례가 있는 경우 가급적 이를 수록하였다. 이론 설명에 있어서는 세부적인 내용에 관한 서술은 과감히 생략하는 대신, 제도의 배경과 의의에 대한 설명은 상대적으로 자세히 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리고 항목별 설명의 뒷 부분에는 “검토”라는 표제하에 본문 내용과 관련되어 제기되는 법적 쟁점이나 독자들이 공부하는 과정에서 생각해 보았으면 하는 문제점들을 제시하였다. 비교적 간단한 연습문제 같은 질문도 있고, 학계에서도 논란이 많아 뚜렷한 정답을 찾기 어려운 질문도 있다. 또한 추가적 설명에 해당하는 내용도 있다. 반드시 정답이 무엇인가를 찾으려 하지 말고, 주변 동료와 토론 주제로 활용하기 바란다.
전체적으로 영어 지문이 상당한 분량을 차지하여 독자 입장에서는 언뜻 책을 집기에 부담감을 가질지 모르겠다. 따라서 영어에 자신이 없고 비교적 간이한 수준의 국제법 지식만이 필요한 독자라면 이 책의 국문 내용만 읽어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그런 경우 600쪽 남짓의 국제법 교과서를 읽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나 법학전문대학원생 내지 본격적인 국제법 공부를 원하는 독자들은 전체를 모두 세세히 보기 바란다. 처음 읽을 때는 국문으로 된 부분만 일별하고, 나중에 영문자료까지 함께 독파함도 한 가지 방법이 될 것이다.
새로운 형식의 교과서를 발간하면서 국제법을 같이 공부하는 동학들과 독자들이 어떻게 반응을 할까 걱정과 기대가 앞선다. 앞으로의 개선을 위한 많은 질정을 바란다. 끝으로 이 책 발간을 위하여 세세한 노력을 하여 주신 박영사 관계자 여러 분들께 감사드린다.
2010년 신년 벽두
정 인 섭
저자약력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및 동 대학원 졸업(법학박사)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원) 교수(1995-2020)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원(2004-2007)
대한국제법학회 회장(2009)
인권법학회 회장(2015.3-2017.3)
현: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저서 및 편서]
재일교포의 법적지위(서울대학교출판부, 1996)
국제법의 이해(홍문사, 1996)
한국판례국제법(홍문사, 1998 및 2005 개정판)
국제인권규약과 개인통보제도(사람생각, 2000)
재외동포법(사람생각, 2002)
고교평준화(사람생각, 2002)(공편저)
집회 및 시위의 자유(사람생각, 2003)(공편저)
이중국적(사람생각, 2004)
사회적 차별과 법의 지배(박영사, 2004)
국가인권위원회법 해설집(국가인권위원회, 2005)(공저)
재일변호사 김경득 추모집―작은 거인에 대한 추억(경인문화사, 2007)
국제법 판례 100선(박영사, 2008 및 2016 개정4판)(공저)
증보 국제인권조약집(경인문화사, 2008)
에센스 국제조약집(박영사, 2010 및 2023 개정5판)
난민의 개념과 인정절차(경인문화사, 2011)(공편)
생활 속의 국제법 읽기(일조각, 2012)
김복진: 기억의 복각(경인문화사, 2014 및 2020 증보판)
신국제법입문(박영사, 2014 및 2025 제6판)
한국법원에서의 국제법판례(박영사, 2018)
국제법 시험 25년(박영사, 2020 및 2022 증보판)
국제법 학업 이력서(박영사, 2020)
신국제법판례 120선(박영사, 2020)(공저)
조약법: 이론과 실행(박영사, 2023)
국제인권규약 주해: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박영사, 2024)(공편저)
대한민국 수립과 국제법(박영사, 2024)
Korean Questions in the United Nations(Seoul National University Press, 2002) 외
[역서]
이승만, 미국의 영향을 받은 중립(연세대학교 대학출판문화원, 2020)
차례 개요
제1장 국제법의 의의와 역사 1
제2장 국제법의 법원 35
제3장 국제법과 국내법의 관계 89
제4장 국가의 종류와 권리의무 143
제5장 승인제도 177
제6장 국가의 관할권 행사 207
제7장 주권면제 239
제8장 조 약 법 281
제9장 국가책임 413
제10장 국가의 대외기관 491
제11장 국가 영역 551
제12장 국가승계 619
제13장 해 양 법 659
제14장 국제환경법 793
제15장 국제기구와 UN 839
제16장 개인과 외국인 899
제17장 국제인권법 939
제18장 범죄인인도 제도 1007
제19장 국제형사법 1037
제20장 국제분쟁의 평화적 해결 1079
제21장 국제경제법과 WTO 1131
제22장 국제사회에서의 무력사용 1177
제23장 국제인도법 12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