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발행 2025.09.03
서문
박물관 · 미술관과 관련된 즐거운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론 뮤익Ron Mueck’ 전시가 누적 관람객 53만3000여 명을 돌파하였다. 하루 평균 5,500명 이상의 관람객이 전시장을 방문하고 있다. 이는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역사상 최다기록이다. 무엇이 관람객을 움직였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된다. 론 뮤익 전시는 평범한 인물을 다양한 규모로 전시하여 낯선 경험을 제공하기도 하고 누군가의 눈동자에 빠져들게도 한다. 인간 내면에 있는 연약함, 불안 등에 대한 극사실주의적 표현이 현대미술을 공감하게 하는 새로운 경험을 제공한다. 작품에 대한 간결한 설명을 비롯해 오롯이 전시와 마주하게 하는 설치 방법이 관람객의 몰입과 집중을 가져오기도 하였다. 전시 마지막의 영상은 관람의 새로운 경향을 보여주었다.
울산시 울주군 반구대 암각화가 유네스코에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제47차 세계유산위원회는 반구천의 암각화를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반구천 암각화는 국보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와 ‘울주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를 포함하는 단일 유산이다. 2006년 울산에 문화예술 교육강의를 가던 길, 그간 말과 글로만 보고 듣던 암각화를 실제로 보았다. 대나무 숲길을 따라 들어가면 펼쳐지는 광경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강 건너 절벽에 새겨진, 오목 볼록하게 입체적 질감이 느껴지는 아주 오래된 이야기를 마주했다. 이전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도 보았고 자료집과 책으로도 많이 접했기에 실제로 봐도 감흥이 덜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아주 오래전 이곳에 머물던 이들이 남긴 흔적이 눈앞에 있다는 사실은 상상 이상으로 감동적이었다. 이후 기회가 되면 울산에 갈 때마다 방문하는 곳이 되었다. 바람소리를 들으며 걷는 대나무 길과 그 길에서 이어지는 광경은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 오래전 사람들의 기록을 눈으로 직접 본다는 것은 말로 표현하기 쉽지 않은 경험이다. 나에게 감동을 선사했던 그 한반도 선사시대의 모습이 인류 문화유산으로 제정된 것은 가슴 뿌듯한 일이다.
2024년 9월 간송미술관이 새로이 대구에 자리를 잡고 개관하였다. 간송미술문화재단이 지난 50여 년 동안 연구해 온 다양한 주제와 콘텐츠를 보여 줄 것으로 기대되었다. 개관 특별전으로 「훈민정음 해례본」, 신윤복의 「미인도」와 「월하정인」, 청자 상감운학문 매병 등을 포함해 국보와 보물급 문화유산이 전시되었다. 2025년 7월 첫 번째 기획전인 ‘화조미감’이 성황리에 진행 중이다. 전시실과 미술관 전체의 미학적 구조와 구성은 물론 전시실과 미술관 곳곳에 설치된 조형물과 쉬운 글쓰기의 도록은 관람의 경험을 풍요롭게 한다.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은 강원도 오대산 월정사 경내에 2023년 11월 일부 시설이 개관을 한 후 2025년 4월 전면 개관하였다. 기존 성보박물관 외부에 별도 신축된 형태로, 오대산 자락 월정사 경내에 위치한다. 조선왕조실록과 국왕 의궤 자료들을 체계적으로 보존 · 전시하여, 역사적 기록의 보전 · 연구 및 대중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설립되었다. 왕조실록 및 의궤 전시를 비롯해 조선 왕조 실록 등 주요 기록물 원본 및 복제 자료를 전시한다. 이 박물관은 조선왕실 행사(의궤)의 모습을 통해 시대상 및 의례 문화를 심층적으로 재현하고 있다. 월정사가 위치한 평창 지역의 역사 · 문화적 의미와 연결하여 기록물을 현장성과 맥락 안에서 재해석하며 성보박물관과 연계하여 불교문화유산과 왕실 기록 유산을 함께 체험할 수 있는 통합 문화 플랫폼을 조성하였다. 중요 문화재의 보존 및 학술적 활용을 목표로, 지역 중심의 문화 투어와 연구 거점으로 기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박물관의 대표 유물인 조선왕조실록과 의궤는 일제강점기에 불법 반출된 후 110년 만에 오대산으로 돌아오게 되었다.1 전시를 통해 오대산사고2 본 실록과 의궤의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국내에서는 문민정부의 ‘박물관 1,000개 시대’ 선언을 시작으로 박물관 · 미술관의 진흥 및 활성화를 위한 법과 제도가 마련되었고 박물관의 위상과 사회적 역할도 눈에 띄게 변화해 왔다. 빠르게 변모하는 사회와 문화 속에서 박물관의 역할이 점점 확대되면서 주요 콘텐츠인 소장, 전시, 교육의 가치에 대해서도 새로운 접근이 모색되었다. 이후 2000년대에 들어 박물관 · 미술관의 양적 팽창 및 기능 확산과 맞물려 박물관의 정의, 미션, 운영 방향 등을 둘러싼 다양한 담론이 새롭게 구성되며 공유되고 있다. 새로운 담론의 확산은 박물관 · 미술관의 전시와 교육에 대한 사회적 기대와 인식을 확대시켰다. 특히 주 5일제 근무, 디지털 혁신, COVID-19 등을 거치며 박물관 · 미술관의 모습은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2022년 발표된 국제박물관협의회 ICOM(International Council of Museums 이하 ICOM)의 ‘박물관 정의’와 국내 관련 문화정책의 변화를 바탕으로 박물관 · 미술관은 미래를 향한 다음 단계의 탐구와 실천을 모색하고 있다. 이 책은 이런 시점에서 박물관 · 미술관의 새로운 발전과 도약의 가능성을 제도적, 정책적, 이론적으로 논의하는 물꼬를 열고 이를 체계적으로 구성하는 공론의 장으로서 조그만 역할이나마 담당하고자 한다.
오랜 역사 속에서 인류와 함께한 박물관 · 미술관은 근대에 와서 적극적으로 대중과 만나게 되었고 사회와 문화의 변화와 함께 문화예술의 시대 속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활동하고 있다. 박물관 · 미술관은 법률에서 언급하고 있는 ‘시설’의 차원을 넘어 전문가들의 ‘조직’이고 연구와 전시, 교육의 ‘기관’이다. 법률적 시설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담론을 생산하고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로까지 불리는 박물관 · 미술관의 역할에서 ‘교육’의 개념과 활동은 점점 확대되고 있다. 문화예술의 시대, 인문의 사회, 디지털 기반의 문화 속에서 지속 가능한 박물관 · 미술관과 교육의 모습을 상상하고자 한다.
박물관 · 미술관은 소장품과 전시를 기반으로 다양한 관람객을 만나고 있다. 서구 박물관 · 미술관에서는 1990년대에 접근성과 수월성 기반의 프로그램을 운영했다면 2000년대 이후부터는 문화 다양성과 포용성을 지향하는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쉬운 글쓰기를 기반으로 한 점자와 수어 서비스, 작품에 대한 음성 및 화면 해설을 비롯해 촉각 전시, 대화를 촉진하는 도슨트 등의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또한 치매와 같은 경도인지장애인과 발달장애인을 위한 치유적 성격을 가진 프로그램 등이 기획, 제공하고 있다. 특히 느린 학습자를 주 참여자로 하는 프로그램도 제공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COVID-19 이후 고독, 외로움 속에서 고통 받고 있는 이들을 위한 활동도 진행되고 있다. 모든 경우와 상황은 다르지만 자신의 감각과 경험을 바탕으로 한 통합적 활동의 현장이다. 프로그램 기획과 운영 인력의 규모도 커졌고 경력과 전문성이 검증되었을 뿐 아니라 프로그램의 자문을 하는 외부 전문가 참여도 증가하였다. 관련 서적과 번역본의 지속적인 출판도 활발하여 현장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사회의 변화에 따라 박물관 · 미술관이 현장에서 대응해야 하는 쟁점과 현안은 산적되고 있을 것이다. 국립기관과 공립 · 사립 기관 간의 예산과 조직의 차이도 있을 뿐 아니라 박물관 · 미술관의 양적 급증에 따른 질의 담보와 인력의 지속성이 보장되지 않아 기관의 정체성을 기반으로 한 고유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이 쉽지 않다. 효과와 효율의 선택뿐 아니라 성과를 정량적으로 산출하는 지원사업 성과 역시 기관이 당면한 어려움에 추가되고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표준화된 운영 매뉴얼도 제작해 보았으나 운영 매뉴얼의 배포보다는 지속적인 역량 강화 기회 제공이 가장 좋은 대안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박물관 · 미술관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 전문인력으로 공부하고 현장에 배치된다면 학습을 기반으로 한 우수 프로그램이 운영될 수 있다. 그런 프로그램들이 좋은 사례로 연구되어 동료들에게 공유되고 이후 다른 프로그램 기획의 기반이 되는 것이 이상적인 상황일 것이다. 이를 위해 지난 10여 년간의 변화 속에서 주제와 이슈가 되었던 것을 중심으로 책을 만들기로 하였다.
이 책은 총 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박물관 · 미술관을 ‘근대의 산물’이자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로 바라보고 그 역할을 정의하고 1980년대 이후 변화를 논의하였다. 특히 신박물관학 등장 이후 박물관 · 미술관이 환경과 역할 변화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제기된 전문성과 접근성 관련 이론을 소개, 설명하였다. 인간 중심의 기관으로 전환하는 박물관 · 미술관 교육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2장은 20세기 중반 이후 교육 일반과 박물관 · 미술관 교육의 이론, 특히 참여와 박물관 경험에 대해 정리하며 역사적 접근, 과학적 접근, 미학적 접근 등 1980년대 이후 논의된 오브제의 해석과 경험을 제공하는 방향과 접근을 소개하였다. 박물관 · 미술관 교육 현장에서 중요하게 언급되고 있는 오브제 기반의 참여 박물관의 개념을 검토해 보았다.
3장은 박물관 · 미술관의 컬렉션collection을 중요하게 인식하는 차원에서 수집에 대해 이야기하며, 박물관 · 미술관이 전하는 메시지message이자 매체medium로 보는 관점에서 오브제와 문화유산의 의미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또한 전시가 시간과 공간을 매개로 한 소통의 매체라는 측면에서 오브제의 해석 방법과 서사적 구성을 논의하였다. 아울러 현장 교육과 매체를 결합하여 인터넷을 기반으로 활동 근거를 마련하는 등 박물관 · 미술관 교육의 새로운 방향 다섯 가지를 제안하였다.
4장은 경험과 참여자 중심, 놀이와 더불어 감각, 참여, 질문하는 박물관 · 미술관과 치유 등 박물관 · 미술관 교육 핵심어의 개념과 활용 방안을 논의하였다. 오브제와 전시의 해석 및 이해 방법을 정리하기도 하였다. 해석, 경험, 관람과 사고의 변화, 새로운 가치의 공유 · 수용 · 참여, 새로운 지식 공동체 개발 등을 박물관 · 미술관 교육의 주요 구성요소로 살펴보면서 지속 가능한 박물관 · 미술관 교육의 위상과 역할을 논의한다.
5장은 지난 20년간 발표된 박물관 · 미술관 교육 관련 연구 · 학위 논문들을 검토하고 주제, 연구방법 등의 시간별 변화 추세를 도출하였다. 기관의 정체성을 반영한 교육 방향과 전략을 설계하고 전문성 있는 연구와 발전 방향을 제안하였다. 박물관 · 미술관 교육의 발전 근거로서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연구의 활성화에 대한 기대를 담아 장을 마무리하였다.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2001년 가을 학기부터 박물관 · 미술관 교육을 강의하면서 정리한 내용들을 토대로 2005년 『문화 예술경영 이론과 실제』 출간에 참여하였고 이어 2006년 『멀티미디어 시대의 박물관 교육』을 출간했다. 이후 국내 제도와 환경의 변화를 거치며 다음 책을
발간하려 했으나 정리한 자료와 내용을 강의 혹은 발표 자료로 활용하는 데 그치는 아쉬움이 있었다. 이제 더 늦어지면 안 될 것 같은 위기감을 느끼며, 집필을 시작했다. 이 책이 그간의 복잡하고 다양한 생각들을 정리해 같은 분야의 동료들과 나누고, 더 발전하는 박물관 · 미술관 교육의 작은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그동안 박물관 · 미술관 현장과 강의에서 만난 모든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그분들 덕분에 나의 활동과 생각, 특히 책 작업이 가능하였다. 글을 모아 정리하고 책으로 만드는 작업은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어서 가능했다. 특히 김도경(이하 존칭 생략. 제주문화재단), 김수민(산청박물관), 변정숙(국립민속박물관), 배진희(국립경주박물관), 이관호(한국박물관교육학회 회장), 이영신(국립중앙박물관 어린이박물관),이진형(국립항공박물관), 이하영, 장예지(학교 연구소), 조장은(국립현대미술관), 천윤희(독립기획연구자), 황지영(국립현대미술관)의 도움이 있어 가능했다.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이들과 더불어 첫 만남부터 무한한 응원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동료 故원금옥(국립중앙박물관) 선생님을 기억하고자 한다. 글을 하나
의 책으로 완성하도록 끝까지 도와준 출판사 박영사의 많은 분들에게 감사하다.
2001년부터 박물관 · 미술관 강의를 많이 했으나 그 시작은 경희대 경영대학원이었다. 지난 25년 내내 강의와 연구의 기회를 주고 모든 면에서 이끌어 주신 박신의 교수님(경희대 경영대 고황명예교수)께 마음속 깊은 감사와 존경을 표한다. 함께 진행한 많은 연구물을 통해 박물관 · 미술관의 담론과 선진 사례, 현장의 적용안을 생각하고 공부하는 시간은 너무나 소중하였다. 경희대 문화예술경영연구소에서 함께 활동한 모든 분들에게도 감사를 전한다.
저자소개
백령
뉴욕 파슨스 스쿨 오브 디자인을 졸업하고 뉴욕대학교 (NYU) 교육대학원에서 교육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난 25년간 경희대를 비롯해 한양대, 이화여대 등에서 박물관·미술관 교육과 예술교육을 강의해 오고 있다. 경희대 문화예술경영연구소 연구위원으로 박물관 정책, 전문인력, 건립 및 운영방안, 교육프로그램 개발 등에 관한 연구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현재 한국박물관교육학회 출판 이사로 활동 중이다. 서울시 문화도시 문화정책위원, 충남도립미 술관 건립운영위원, 국립현대미술관 및 경기도미술관 운영 위원 등을 역임했다. ‘길 위의 인문학’ 등 박물관·미술관 지원사업 관련 평가 및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문화예술경영 이론과 실제』(공저, 2005), 『멀티미디어시대의 박물관 교육』(2006), 『예술이 교육에 미치는 놀라운 효과』(번역, 2007), 『한국박물관교육학』(공저, 2010), 『문화예술교육의 도약을 위한 평가: 쟁점과 원리』(공역, 2012), 『통합예술교육이란 무엇인가?』(2015), 『New Museum Practice in Asia』(공저, 2018), 『큐레이팅을 말하다』(공저, 2018), 『문화예술교육 현장과 정책』(공저, 2019) 등이 있다.
차 례
01 근대에서 지속가능성까지
1 확장을 향한 질주 11
2 문화예술의 시대 14
3 인문의 시대 25
4 디지털 네트워크 시대 38
5 회복과 환경위기 44
02 알고 이해하고 생각하기
1 박물관 · 미술관 교육의 이론적 접근 58
2 오브제 해석하기 70
03 경험과 참여의 새로운 방향
1 시공간의 새로운 이해 123
2 박물관 · 미술관 교육의 새로운 방향 166
04 AI 시대의 전인적 성장
1 자기주도적 인간 199
2 창조적 인간 215
3 공감적 인간 225
05 새로운 기대
1 지난 50년의 변화 245
2 현장과 이론의 변화를 위한 제언 249
3 현장과 이론의 발전을 위한 제언 256
참고문헌 2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