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발행 2025.07.15
<서문>
이 책은 정치경제학을 어떻게 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추어 집필하였다. 정치와 경제의 상호작용에 초점을 맞춰 주요 학자들의 쟁점과 흐름을 역사적으로 고찰하였다.
‘정치경제학’이라는 용어는 언제부터 사용되었을까? 1760년대 리카도(Ricardo) 등으로 상징되는 영국 고전학파가 가장 먼저 사용한 학문 분과의 명칭이다. 후에 아담 스미스(Smith)의 『국부론(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에서 정치경제학을 구체적으로 다룬다. 정치경제학은 본래 자본주의 경제 발전을 위한 국가 개입 또는 자본주의 발전이 요구하는 국가의 역할을 다룬 학문으로 ‘경제학’의 모태라고 볼 수 있다. 정치가 제도와 권력의 작동 양식으로 경제학의 화려한 수식모형으로 풀지 못하는 경제적인 문제들의 원인을 찾아 합의점을 찾아 나가기 때문이다. 비록 마르크스(Marx)는 ??정치경제학 비판(A Contribution to the Critique of Political Economy)??을 통해 자본주의 지배계급과 질서 유지에 기여하는 국가를 상정하면서 정치경제학을 비판했지만, 정치경제학의 근본 취지는 경제와 정치의 밀접한 관계에 주목하여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상호보완적 발전을 모색하는 것이다. 더불어 정치경제학의 역사는 보다 살기 좋고 질서 잡힌 상생의 공동체를 향한 학문적 노력이었다는 점도 분명하다.
역사적 흐름 속에서 학자에 따른 서로 다른 관점을 확인할 수 있다. 정치에 대한 정의와 역할이 상이하였고, 민주주의를 바라보는 시각도 서로 다르고 대립적이었으며, 때로는 양립 불가능한 측면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해 온 것이 정치경제학의 흐름이다. 고전적으로 정치에 대한 개념은 현실적으로 아주 제한된 사회적 가치들?부, 지위, 명예, 기회 등?에 대한 경쟁과 권위적인 배분으로 정의되었다. 정치는 희소한 자원을 둘러싼 ‘게임의 규칙(the rules of the game)’을 결정하고 관리하는 것이며 개인과 집단들 사이의 갈등을 조정하고 통합하는 기술로서 규정된다. 그러나 정치에 대한 이와 같은 정의에는 현실적인 설명력은 있으나 정치를 지나치게 협소하게 규정한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예컨대,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중요한 흐름 중 하나는 정치가 단순히 개인의 부, 명예, 이익 등의 가치를 추구하는 수단으로써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다양한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자신의 도덕과 인간성, 자유와 능력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함양할 수 있는 근본적인 가치 또한 갖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정치는 수단으로써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도 가치를 갖는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가 정치경제학뿐만 아니라 정치 발전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된다.
플라톤(Plato),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의 고전에서 시작하여, 사회계약론자이자 근대적 자유주의자들인 홉스(Hobbes), 로크(Locke), 루소(Rousseau) 그리고 벤담(Bentham)과 밀(Mill) 등의 공리주의자,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인 해밀턴(Hamilton), 제퍼슨(Jefferson) 등을 거쳐 현대 정치경제학에서 자유시장을 우선시하는 하이예크(Hayek), 프리드먼(Friedman), 노직(Nozik)을 통과하여 국가 개입을 통한 시장과 민주주의의 균형점을 주장하는 마셜(Marshall), 케인스(Keynes), 롤스(Rawls) 등, 그리고 시장에서 파생되는 불평등으로 고통받는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주의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고수하는 누스바움(Nusbaum), 샌델(Sandel) 등의 주장들이 존재한다.
이들 모두에게 정치의 중요한 구성 요소로서 국가의 역할 또한 대단히 논쟁적인 주제이다. 국가는 정치 행위의 독립변수이자 종속변수의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이 주제는 정치철학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주요시하는 우파 자유주의와 공공선을 중요시하는 좌파 자유주의 혹은 절대적 가치를 주요시하는 급진적인 정치경제학의 논쟁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우파 자유주의는 사회계약설에 기반하여 ‘국가의 능력을 제한하여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고 그들의 권리가 침해받지 않게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에 비해 좌파 자유주의는 다수의 권리, 즉 ‘평등이나 유대감, 혹은 공공선과 같은 특정한 가치를 함양하는 국가의 모습’을 지향한다. 우파 자유주의가 시장자본주의와 개인의 능력, 경쟁 등을 배타적으로 강조하고 있다면 좌파 자유주의는 공공선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때문에 개개인의 덕성 함양과 복지 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국가의 존재 목적과도 깊이 연관된다. 어떻게 정의로운 공동체를 구성하고 유지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냐의 문제가 바로 국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기 때문이다. 이는 민주주의를 절차의 문제로 보느냐, 실질적인 참여의 평등으로 보느냐, 결과의 평등으로 보느냐의 문제와도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과거부터 정치경제학의 일관된 흐름을 살펴보면 결국 ‘경제성장 및 부의 분배와 정치권력의 균형과 조화를 어떤 수준에서 어떻게 달성하는가가 오랜 과제였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즉, ‘지금 여기’의 문제는 이미 기원전 플라톤부터 고민하고 해결하려고 했던 인류의 공통된 과제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경제적 부의 문제는 정치적 독립성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기 때문에 시민적 덕성은 단지 정치적 제도나 교육만이 아니라 경제적 조건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고 강조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경제적 불평등의 조건은 제한되어야 하고 광범위한 중산층이 중요한 정치적 공동체의 중추가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를 위해 토지 소유에서 일정한 한도의 제한을 부여하고 가난한 이들의 독립을 보장할 수 있도록 고용을 활성화하고 토지를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은 재산 역시 사적 소유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의 선에서는 공공선의 관점에서 다스려져야 함을 의미한다. 이 원칙은 공화주의, 사회주의 및 현대의 민주주의자들에게 근본적이고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부의 불평등을 당연한 것으로 간주했던 고전적 자유주의자들 역시 부의 격차가 국가의 치명적인 위험이 된다는 경고를 이해하고 대응하면서 시장과 정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관계에 대한 다양한 입장들이 발전해 온 것이다.
미국 건국에 영향을 미친 해링턴(Harrington) 역시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받아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은 자유로운 공화국에 암적인 요소임을 강조하면서 적절한 규모의 소유를 통해 독립성을 구가할 수 있는 중산층 계급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해링턴은 역작 ??오세아나 공화국(The Commonwealth of Oceana)??에서 다수 국민이 공평한 토지 소유로 인해 진정한 주권자가 되는 공화국은 재산의 균형 위에 수립됨으로써 안전하고 완전한 공화국이 될 것이며 이와 함께 직접민주적인 아이디어, 즉 공직의 순환적 교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17세기 초의 이러한 고민과 이상적인 원리들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도 여전히 빛을 발하는 고전적인 혜안이 될 수 있다. 이런 고전의 힘을 재해석하고 현대화시켜 현대 정치경제학의 발전뿐만 아니라 이 시대의 과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까 하는 작은 소망으로 이 책을 집필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라는 고전 사상가에서 논의를 출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대 다수의 국가는 민주주의를 정치체제로 자본주의를 경제제도로 채택한다. 그 이유는 역사적으로 증명된 조합이며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최선의 조합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증명된 조합에 긴장이 존재한다면 조합의 방식에 문제가 존재하기 때문인 것 아닐까? 시장중심 자본주의의 강화에 따른 불평등 속에서 발생하는 자유와 권리 간의 부조화인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긴장’이다. 우리는 긴장 속에서 최선의 선택을 찾아 나가고 있지만 간과하는 점이 있다. 바로 자유주의를 가치 중립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유주의는 봉건제를 능력 기반의 소유권을 보장하는 자본주의와 권력을 국민의 손으로 돌려주는 민주주의의 등장에 기반이 되었다. 하지만 현재 우리 사회는 자유주의를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각각의 필요에 따라 해석하고 적용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만을 강조하고 민주주의는 다수의 권리(평등의 원리)만을 강조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우리는 두 체제가 자유주의에 기반하여 자유로운 경제활동과 사유재산 그리고 정치참여를 강조하면서, 법의 지배(rule of law)를 존중하기 때문에 자본주의 시장의 예측가능성과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의 공정성을 담보한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주의 가치에 기반이 되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 그리고 절차적으로 인정되는 다수의 권리를 통해 자본주의는 자원의 효율적 배분 방식을 만들어 내며, 민주주의는 사회적 결정의 방식을 제시하는 조화를 찾아야 한다.
이 책은 기존에 출간했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상생의 정치경제학을 위하여??의 학자들의 주장과 골격을 유지하면서 분석수준을 달리하여 전반적으로 수정하였다. 책을 쓰는 것을 작은 조각들을 모으는 과정과 같다. 에티오피아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단 한 조각의 나무는 연기만 낼 뿐 불을 낼 수는 없다.”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정치와 경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관계를 중심으로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쟁점과 흐름들을 하나하나 정리하고 비판적으로 재구성한 책으로서, 사회적 논쟁의 거센 바람 속에서도 중용의 가치를 찾아가는 꺼지지 않은 불씨를 틔울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물론 이 책이 모든 사상가와 쟁점을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병행 발전을 고민하는 모든 분들께 유용한 나침판이 될 것으로 믿는다. 개인적으로는 우리 사회의 정치적 집단주의와 양극화의 심화로 고통받는 공동체의 발전에 이론적인 도움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현실적인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책이 나오기까지 많은 분들의 관심과 도움이 있었다. 특별히, 경제학 전문지식을 전달해 준 서울 시립대 송헌재 교수, 인문학적 소양을 담아 준 한양대학교 미래문화융합연구센터의 임지훈 교수와 정보영 교수에게 감사함을 표하며 잊지 않을 것을 약속한다. 그리고 쉽지 않은 상황에서 출판을 추진해 준 안종만 회장님, 임재무 전무님과 최동인 대리님 그리고 예쁘게 편집을 해 주신 이수연 대리님께 감사드린다.
항상 글을 마무리할 때 생각나는 우리 아내와 아들 용권 그리고 두 분의 아버지가 계시다. 두 분을 보낸 지도 여러 해가 지났지만 생전의 모습과 말씀은 시간의 흐름 속에도 강하게 찾아온다. 조금 더 함께하는 시간이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너무나도 많이 남는다. 책 서두에 두 분 아버지에 대한 이름이라도 올리는 것이 자식 된 뒤늦은 도리인가 싶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보고 싶습니다.
2025년 7월
김성수
한양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입학한 후 American University로 편입하여 정치학학사, Marymount University에서 인문학석사 그리고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USC)에서 정치학석사와 비교정치와 정치경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한양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와 유럽—아프리카 연구소 소장과 미래문화융합연구센터 센터장 그리고 『글로벌 거버넌스와 문화』 편집장으로 활동 중이다. 해외연구로 탄자니아 다르에 살렘 대학교 한국학 연구센터(KSC—USDM) 책임 코디네이터와 남아공 스테렌보쉬 대학과 함께 아프리카 스타트업 아카데미 강좌를 국내 최초로 한양대학교 정규과정으로 운영하고 있다. 현재 다양한 학회 임원 및 외교부․법무부․한-아프리카재단․재외동포청․민주평통 등 공공기관 정책 자문위원 및 한—아프리카 경제협력위원회 한국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위기의 국가』, 『새로운 패러다임의 비교정치』, 『한국정치의 이해』,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세계 속의 아프리카』, 『현대아프리카의 이해』, 『The Role of the Middle Class in Korea Democratization』 외 12권의 저서를 집필하였으며 비교정치와 정치경제 그리고 아프리카지역 관련 상당수의 논문을 KCI와 SSCI에 게재하고 있다. 여러 언론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으며 연합뉴스와 내일신문에는 아프리카 관련 주제로 연재 중이다.
Ⅰ. 정치경제학의 탄생과 사유의 기원 1
1. 고전적 인간관: 플라톤(Plato)과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2
2. 플라톤(Plato)의 정치경제학: 노동분업과 계급론 7
⯈플라톤 Plato (BC 427~BC 347)__8
3.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의 정치경제학: 고상한 정치와 저열한 경제 13
⯈아리스토텔레스 Aristotle (BC 384~BC 322)__14
Ⅱ. 자유주의 그리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탄생과 발전 23
1. 자유와 평등은 공존할 수 있을까: 홉스(Hobbes), 로크(Locke), 루소(Rousseau) 24
⯈존 로크 John Locke (1632~1704)__40
⯈장 자크 루소 Jean Jacques Rousseau (1712~1778)__63
2. 고전적 정치경제학과 시장경제(Free-Market Capitalism) 70
3. 자유주의적 자본주의(Liberal Capitalism)와 아담 스미스(Adam Smith) 79
⯈아담 스미스 Adam Smith (1723~1790)__87
4. 칼 마르크스(Karl Marx)의 정치경제학 비판 97
⯈칼 마르크스 Karl Marx (1818~1883)__100
Ⅲ. 개혁의 정치경제학: 급진주의와 보수주의 109
1. 근대 초기의 급진적 사상가들 110
⯈제임스 해링턴 James Harrington (1611~1677)__113
2. 보수주의와 계몽군주론 118
⯈드니 디드로 Denis Diderot (1713~1784)__119
⯈에드먼드 버크 Edmund Burke (1729~1797)__125
3. 공리주의자들의 개혁적 정치경제사상 134
⯈제레미 벤담 Jeremy Bentham (1748~1832)__146
⯈존 스튜어트 밀 John Stuart Mill (1806~1873)__162
Ⅳ.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과 그들의 생각 179
1. 시대적 특성과 신대륙의 정치경제적 상황 180
2. 제퍼슨(Jefferson): 평등주의와 반(反)연방주의 185
⯈토마스 제퍼슨 Thomas Jefferson (1743~1826)__187
3. 해밀턴(Hamilton): 연방주의와 산업자본주의 199
⯈알렉산더 해밀턴 Alexander Hamilton (1755~1804)__200
4. 칼훈(John Caldwell Calhoun): 자본주의의 역설 210
⯈칼훈 John Caldwell Calhoun (1782~1850)__211
Ⅴ. 현대 정치경제학의 세 가지 흐름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균형과 공존 221
1. 시장 중심을 주장하다 222
⯈프리드리히 하이예크 Friedrich August von Hayek (1899~1992)__225
2. 균형 중심을 주장하다 234
⯈알프레드 마셜 Alfred Marshall (1842~1924)__239
⯈존 롤스 John Rawls (1921~2002)__244
3. 국가 중심을 주장하다 249
⯈마사 누스바움 Martha C. Nussbaum (1947~ )__251
Ⅵ. 상생을 위한 균형의 이론: 정치경제학의 시대적 사명 261
참고문헌 298
색인 2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