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발행 2025.05.20
머리말
현재 한국의 민주적 거버넌스는 정치의 양극화로 위기에 직면해있다. 거대 야당의 입법 독주와 탄핵권 남용, 그에 대응한 정부의 거부권 행사와 비상계엄 선포 그리고 국회의 대통령 탄핵 소추는 당파성에 기반한 정치적 양극화의 극단을 보여 준다. 이러한 민주적 거버넌스의 위기에 대한 제도적 처방으로 종종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 · 축소하는 권력 구조의 개편이 제시되나 이는 대의 기구에 대한 만성적인 낮은 신뢰와 집행부 중심의 거버넌스 구조화 경향을 간과한다고 할 수 있다.
본서에서는 그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정치적 양극화의 중심에 있는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집행부)에서전문성(professionalism)에 바탕을 둔 비다수주의 기관(non-majoritarianinstitutions)을 분리해 이들에게 독립성을 보장하고 그에 따른 문책성(accountability)을 강화하는 방안을 다룬다. 집행적 권력의 새로운 분립을 통해 독립성을 확보한 비다수주의 기관이 전문적(professional)이고 불편부당(impartial)하게 기능을 수행하도록 집행부 구조를 재설계하자는 것이다. 본서는 민주적 거버넌스의 주요 수단으로서 비다수주의 기관에 주목한다. 비다수주의 기관은 국민에 의해 직접 선출되지도 않고 선출된 공무원에 의해 직접 관리되지도 않는 특별한 공적 권한을 부여받은 정부 기관이다. 이들 비선출 기관에 독립성을 부여하는 것은 전통적인 삼권 분립의 민주적 원리와 모순된다고 할 수 있다. 우리 헌법도 국가 권력 구조를 전통적인 삼권 분립의 틀에 따라 설계되었다. 입법권은 국회에, 사법권은 법원에, 집행권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에 각각 속하도록 하였다. 이들 삼부와 헌법재판소는 상호 견제와 균형을 통해 다수의 횡포를 막고 소수의 권리를 보호하는 통치 제도를 구성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외견상의 제도적 장치에도 불구하고 실제 견제와 균형의 민주적 원리는 정치 상황에 따라 제한되었다. 여대야소 상황에서는 집권 여당을 고리로 정부와 국회는 물론 법원까지 통제할 수 있었던 대통령에 의해 문책성의 제도가 훼손되고 위임민주주의의 징후가 나타났다. 여소야대의 상황에서는 국회를 장악한 야당과 정부의 대립과 정쟁으로 타협을 통한 입법이 실종되고 국정이 표류하면서 대의 기구에 대한 불신이 깊어졌다. 정치의 양극화는삼권 분립과 견제 · 균형에 토대를 둔 민주적 거버넌스의 기능 부전을 가져왔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서는 다수제 민주주의의 한계에 주목하고 전문성에 기반한 비다수주의 기관을 민주적 거버넌스의 도구로 설계하는 것을 제안하는 것이다.
전문적 독립성을 가진 비다수주의 기관은 규제 중심의 행정 국가에서 발견된다. 행정 국가의 특징은 입법부가 규칙 제정의 권한을 행정 기관에 위임해 법의 효력을 갖는 규칙을 공포할 수 있도록 하고, 사법부가 다르게 해석할 수 있더라도 행정 기관이 공포한 법령 또는 규정에 대한 기관의 해석을 지지하고, 행정 기관이 규칙을 공포하고 규정 준수를 강제하며 분쟁을 판결할 수 있는 권한을 행사한다. 즉, 준입법적 및 준사법적 권한을 위임받은 집행적 독립 기관은 행정 국가의 주요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규제 중심의 행정 국가의 원조는 미국으로 정당과 법원 중심의 거버넌스가 일반 행정 기관과 독립 기관 중심의 거버넌스로 대체되면서 점차 행정 국가 혹은 관료 국가로 진화했다고 할 수 있다.
지난 20세기 후반부터 미국을 모델로 유럽의 복지 국가에서도 규제 · 감독 기능을 가진 규제 중심의 독립 기관이 증가해 왔다. 독립 기관의 역사가 가장 긴 미국의 경험은 독립 기관 설치의 논거를 보여 준다. 공무원 제도를 엽관제로부터 실적제로 전환한 것은 부패한 정치로부터 분리된 중립적이고 유능한 행정을 보장하려는 시도였는데, 이와 마찬가지로 독립 기관의 도입도 부패한 정치로부터 분리되어 일반이익에 복무하는 전문적이고 불편부당한 행정을 담보하려는 것이었다. 일반 관료제와 구분되는 독립 기관을 설치하는 이유로 첫째, 정부가 다루어야 하는 문제가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는데 일반 관료제는 이것이 부족하고, 둘째, 규칙 기반 일반 관료제는 유연성이 부족해 기술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며, 셋째, 분쟁 해결을 위한 준사법적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당사자들의 이익을 교량하고 사회적 이익의 다양성을 고려할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하다는 것이 지적된다. 정치적 영향에 취약한 일반 행정 기관이 준입법적 및 준사법적 기능을 전문적이고 불편부당하게 수행하는 데 적합하지 않다는 점에서 독립 기관의 도입이 정당화되었다. 규제 중심의 행정 국가에서 전문성에 바탕을 둔 비다수주의 기관은 거버넌스의 주요한 도구로 도입되고 있다.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라는 시각에서 보면 독립 기관에 입법권과 사법권을 위임하는 것은 헌법적 변칙이며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위협일 수 있다. 일반적으로 비다수주의 기관에 대해 제기되는 비판은 민주적 문책성과 정당성의 한계이다. 이러한 점에서 독립성과 문책성의 조화는 비다수주의 기관을 설계하는 데 주요한 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본서에서는 독립성과 문책성이 서로 대립하는 가치가 아니라 상호 보충적인 가치임을 강조한다.
다수제 민주주의 모형에 따르면 민주적 정당성은 유권자들 혹은 그들의 대표자들에 대한 문책성을 강조한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독립기관은 문책성이 취약해 민주주의의 적자를 증가시킬 수 있다. 반면, 비다수제 민주주의 모형은 전문적 행정 기관에 대한 정치적 통제의 강화만이 민주적 정당성을 담보한다는 주장을 거부한다. 비다수제 모형에 따르면 일시적 다수의 전횡으로부터 소수를 보호하기 위해 불안정한 여론과 대의 기관으로부터 국가의 사법 및 행정 기능을 보호하는 것도 필요하다. 따라서 통치 권력의 집중보다 분산을 강조하는데, 정책결정 책임을 독립 기관에 위임하는 것도 그런 수단의 하나라고 본다. 집행 권력의 분산은 선거를 통해 유권자가 직접 정부를 문책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수평적 견제 장치일 수 있다. 본서는 매디슨 민주주의의 관점에 따라 견제와 균형의 제도로서 비다수주의 기관의 가치에 주목한다. 독립 기관이 국민의 목소리를 전문가의 목소리로 대체한다는 비판과 독립 기관이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거나 규제 대상에 포획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지만 비다수주의 기관이 전문성에 근거해 일반 이익을 대변하고 관리하는 거버넌스의 도구로 작동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비다수주의 기관을 설계하는 데 있어 제기되는 주요 쟁점은 기관에 대한 문책성을 담보하는 것이다. 본서는 선행 연구들이 언급한 공적 문책성을 위한 다중적 통제 장치에 주목하고 사례 연구에서 이를 확인한다. 문책성이 작동하려면 첫째, 기관의 목적이 구체적으로 규정되어야 한다. 이는 기관 성과를 평가하는 분명한 잣대를 준다. 목적이 모호하고 다중적이면 기관 성과에 대해 책임을 묻기 어렵다. 둘째, 기관의 의사결정 절차가 투명하고 관련 당사자에게 알려져야 한다. 이는 기관 결정의 절차적 합리성을 담보한다. 셋째, 전문성이 기관 독립성의 본질적 토대이어야 한다. 이는 기관 결정의 실질적 합리성을 담보하고 기관 재량의 자의적 사용의 위험을 축소한다. 결정 권한이 없으면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점에서 독립성과 문책성이 균형을 이루는 기관 설계가 필요하다.
정당성을 투입, 과정, 산출 차원에서 구분해 보면 비다수주의 기관은 인적 구성을 통해 대표성을 강화할 수 있다지만, 투입 차원의 정당성이 가장 취약하다고 할 수 있다. 과정 차원의 정당성은 결정 과정의 투명성과 절차적 합리성을 담보해 강화할 수 있다. 산출 차원의 정당성은 결정의 실질적 합리성과 효과성을 담보해 개선할 수 있다. 이러한 유형의 정당성은 선거적 정당성 혹은 선출 기관을 통한 파생적 정당성과 다르다. 사법부처럼 비다수주의 기관의 정당성은 궁극적으로 기관의 행태와 성과에 대한 여론의 평판에 달려 있다. 비다수주의 기관은 특히 정치의 양극화 상황에서 독립적 지위가 위태로울 수 있기에 전문적이고 불편부당하게 일반 이익에 복무한다는 평판을 지속적으로 쌓아 대중의 지지를 확보해 놓아야 한다.
본서의 연구 대상인 비다수주의 기관은 그 기능이 다양하다. 선행연구에 따르면 미국의 연방준비제도, 항공우주국, 영국의 잉글랜드은행, 통계청 등은 서비스 제공 기관으로 분류된다. 미국의 질병통제예방센터, 소비자제품안전위원회, 환경보호청, 식품의약국 등은 위험평가 · 관리 기관으로 분류된다. 미국의 상품거래위원회, 연방통신위원회, 연방거래위원회, 증권거래위원회 등은 공익 보호를 위한 경계감시 기관으로 분류된다. 미국의 회계감사원, 법무성 사법연구소, 영국의 감사위원회, 재판소 평의회, 보건위원회, 프랑스의 회계법원, 독일의 연방감사원 등은 감사 · 감찰 기관으로 분류된다. 미국의 연방선거관리위원회, 특별검사실, 민권위원회, 영국의 연금 옴부즈만, 스웨덴의 아동 옴부즈만 등은 심판 · 탄원 기관으로 분류된다.
비다수주의 기관의 일반적 정의를 수용하면 우리의 경우 중앙 행정 기관 가운데서 장이 국무위원이 아닌 기관은 비다수주의 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 기관을 위의 방식에 따라 분류하면 통계청, 우주항공청은 서비스 제공 기관으로, 질병관리청, 식품의약품안전처,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위험 평가 · 관리 기관으로, 방송통신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금융위원회,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공익 보호를 위한 경계 감시 기관으로, 감사원은 감사 · 감찰 기관으로, 국민권익위원회는 심판 · 탄원 기관으로 분류될 수 있다. 합의제 형태든 독임제 형태든 장이 국무위원이 아닌 중앙 행정 기관이 본서의 연구 대상인 비다수주의 기관이며 이들은 국무위원이 장인 일반 행정 부처와 구분된다. 이러한 배경에서 본서는 사례 연구로 국민권익위원회(4장), 방송통신위원회(5장), 통계청(6장)을 포함하였다.
본서는 3개 편, 8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3개 장으로 구성된 제1편은 민주적 거버넌스의 도구로서 비다수주의 기관에 주목하면서 민주주의와 입헌주의 시각에서 이들 기관의 한계와 조건을 다룬다. 4개 장으로 구성된 제2편은 사례 연구를 통해 정당성, 문책성, 독립성, 전문성의 시각에서 우리나라 비다수주의 기관의 한계와 과제를 다룬다. 2개 장으로 구성된 제3편은 과학기술 거버넌스와 시민 참여 거버넌스에서 비다수주의 기관의 한계와 역할을 다룬다.
제1장 “정치의 양극화, 민주적 거버넌스 및 비다수주의 기관”에서 박종민은 현재 한국의 민주적 거버넌스가 정치적 양극화의 극단적 결과로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다양한 종단적 조사 데이터를 통해 국회와 정당 등 대의 기구에 대한 낮은 신뢰 그리고 정부 신뢰의 당파적 양극화가 견고해짐을 보여 준다. 이러한 민주적 거버넌스의 위기에 대한 제도적 처방으로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 · 축소하는 권력 구조의 ‘민주화’가 제시되나 이는 다수제 민주주의의 한계 및 대통령 중심의 거버넌스 구조화의 경향을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그 대안으로 정치적 양극화의 중심에 있는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의 중앙 행정 기관에서 비다수주의 기관을 분리해 이들에게 독립적 지위와 운영적 자율성을 부여하는 집행적 권력의 분립을 제안한다. 그는 이것이 정부의 효과성과 공평성을 높이고 시민참여의 질을 개선해 민주적 거버넌스의 정당성을 강화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제2장 “전문성, 민주주의 그리고 자율성”에서 강명훈은 비다수주의 기관을 둘러싼 전문성과 민주성 간의 긴장과 균형을 다룬다. 그는“관료제의 정치화”는 관료제에 대한 정치적 통제를 확대해 민주적 정당성을 강화할 수 있지만 전문성과 중립성을 훼손할 수 있고, “정치의 관료제화”는 전문성이 정치 영역으로 확장되면서 민주적 문책성이 약화될 수 있다고 하였다. 특히 정보 비대칭성으로 인해 관료가 공익을 명분으로 사익을 추구하는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수 있고, 이는 관료제에 대한 신뢰를 낮추어 전문적이고 중립적인 정책 수립과 집행이라는 관료제의 본래 기능을 저해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딜레마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그는 “평판에 기반한 자율성”, 즉 관료들이 자신들의 전문성을 입증하고 사회적 신뢰를 쌓는 과정을 통해 형성되는 관료적 자율성에 주목한다. 그러나 이러한 자율성도 과도한 권력 집중과 책임성 약화의 위험을 동반한다고 지적하며 새로운 모델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제3장 “독립행정위원회의 설치 · 운영 입법에 대한 헌법학적 검토”에서 윤성현은 헌법학적 시각에서 합의제 독립 기관의 제도화 문제를 다룬다. 오늘날 국가 행정에서 전형적인 부처 조직에서 탈피해 독립성과 전문성이 강조되는 민관 거버넌스 형식의 독립행정위원회가 증가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그는 이러한 독립 기관의 필요성과 정당성에 대한 헌법학적 검토를 시도한다. 그는 중앙 행정 기관의 설치 근거를 가지면서 기왕의 행정 부처의 계서제와는 독립하여 해당 소관 사무의 전부를 합의제 혹은 위원회 형식으로 수행하는 행정 기관을 ‘독립행정위원회’로 규정한다. 그리고 합의제 독립 기관의 조건으로 독립성, 전문성, 신규성 혹은 비전형성, 다수 전문가의 합의(행정적 숙의), 정치적 중립성을 제시하고 이를 적용해 ‘독립행정위원회’의 설치 · 운영 입법 시 고려해야 할 헌법적 기준과 한계를 고찰하고 이들 위원회가 독립 행정의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한다.
제4장 “비다수주의 기관의 정당성과 독립성: 국민권익위원회 사례”에서 박정구 · 강민성은 심판 · 탄원 기관으로 분류될 수 있는 국민권익위원회 사례를 통해 정치적 독립성과 민주적 문책성 간의 균형이 어떻게 제도적으로 조정될 수 있는지를 탐색한다. 그들은 국민권익위원회가 외견상 법적 독립성을 보장받고 있으나 실질적 독립성의 확보에는 한계가 있으며, 조직 구성과 임명에서 정치적 개입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하였다. 그들은 국민권익위원회의 조직 평판이 정치적 자율성을 확보하는 핵심 자원임을 확인하며, 이를 활용한 전략적 평판 관리가 필요함을 주장한다. 그들은 사례 분석을 통해 비다수주의 기관이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제도적 보장뿐만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얻고 국제적 정당성을 구축하려는 자체 노력이 필수적임을 지적하면서 효과적인 반부패 거버넌스의 도구로 작동할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한다.
제5장 “규제기관의 제도적 특성과 문책성의 한계: 방송통신위원회 사례”에서 김다은은 문책성 개념에 초점을 두고 공익 보호를 위한경계 감시 기관으로 분류될 수 있는 방송통신위원회를 사례로 다룬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외견상의 중립성에도 불구하고 기관 결정과 위원 임명을 둘러싸고 종종 편파성 논란에 휩싸였다. 저자는 규제 기관에 관한 선행 연구 및 규제 기관의 원조 격인 미국의 사례와 비교하면서 방송통신위원회는 미국의 독립규제위원회와 달리 산업 진흥과 업무 효율성에 중점을 두고 대통령 직속 합의제 중앙 행정 기관으로 설계되었음을 지적하였다. 따라서 행정부의 통제와 감독이 가능한 제도적 특성으로 인해 문책성의 확보는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상향적 문책성과 하향적 문책성을 구분하면서 방송통신위원회의 상향적 문책성 기제가 오히려 대통령과 국회가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수단으로 전용되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고 지적한다.
제6장 “비다수주의 기관의 전문성과 독립성: 통계청 사례”에서 조인영은 반부패 기관이나 규제 기관이 아닌 서비스 제공 기관을 선택하였다. 여기서 저자는 공공재인 국가 통계를 생산하는 비다수주의 기관으로서 통계청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분석하고 그 한계를 기술한다. 이를 위해 기관 내부의 전문 인력 규모 및 입직 제도, 기관장의 전문성, 통계 작성 과정에서의 과학적 방법론 적용 등 전문성 평가 지표와 기관의 법적 지위, 임용 · 해임 규정, 예산 및 재정 자율성, 외부견제 메커니즘 등 독립성 평가 지표를 각각 사용하였다. 분석에 따르면 청장의 잦은 교체와 비전문적 청장 인사, 예산과 인력의 제약, 순환 근무 등으로 장기적인 전문성 축적에 한계를 보였고, 법적 독립성과 재정 자율성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아 통계 작성 과정에서 정치적 간섭에 노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저자는 이러한 통계청의 전문성과 독립성의 한계가 사실과 증거 기반 정책 결정에 심각한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제7장 “과학기술 거버넌스에서 비다수주의 기관과 경계 조직”에서 김영재는 전문성에 기반한 과학기술 거버넌스와 민주주의의 관계에 초점을 두고 비다수주의 기관의 한계와 이를 보완할 수 있는 경계 조직의 유용성을 다룬다. 현대 사회에서 과학기술의 중요성이 증대됨에 따라, 과학기술 정책 결정에서 민주적 정당성과 문책성의 확보가 중요한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과학기술 거버넌스와 민주주의 간의 상호 작용을 검토하고 과학기술 거버넌스의 도구인 비다수주의 기관의 한계를 지적한다. 이어서 그는 비다수주의 기관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경계 조직의 개념을 소개하고 그 유용성을 검토한다. 그는 효과성만이 아니라 정당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과학기술 거버넌스에서 민주적 결손을 해결하고 과학기술과 민주주의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방안을 모색한다.
제8장 “시민 참여와 비다수주의 기관의 역할”에서 강상원은 시민참여를 위한 비다수주의 기관의 잠재적 역할에 주목한다. 그는 비다수주의 기관이 정책 결정의 전문성과 합리성을 제고하는 데 도움을 주지만, 동시에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라는 점에서 민주적 결손과 문책성 약화라는 위험도 수반할 수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는 선행이론과 연구를 통해 전문가의 역할이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지식의 번역, 공동 생산, 조력, 숙의 촉진 등 다면적으로 기능할 수 있음을 지적한다. 또한 공론 조사의 실증 사례를 통해 전문가의 역할이 숙의 결과에 주요한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이를 통해 그는 전문적 비다수주의 기관이 시민들에게 정보와 지식을 제공해 정보에 밝은 시민을 육성할 수 있음을 강조하면서 비다수주의 기관이 시민의 목소리를 전문가의 목소리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숙의 과정에서 시민 참여의 질을 제고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다수의 지배를 민주주의와 동일시하는 시각은 민주적 거버넌스의 도구로서 비다수주의 기관에 대해 비판적이다. 그러나 다수제 민주주의가 굿 거버넌스를 보장한다는 기대는 신화일 수 있다. 오히려 전문적 독립성에 기반한 비다수주의 기관은 민주적 거버넌스의 질을 높일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본서는 집행적 권력의 재분립을 통해 규제 · 감독 기능을 수행하는 비다수주의 기관을 분리하고 이들 기관이 전문적 독립성과 민주적 문책성에서 균형을 이루도록 설계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이러한 배경과 논거에서 본서의 출간이 한국 행정학계에서 비다수주의 기관에 대한 담론을 본격화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각 장(제1장 제외)은 2024년 11월 8일 고려대학교 비교거버넌스연구소 주최 “민주적 거버넌스와 비다수주의 기관: 쟁점과 과제” 학술회의에서 발표된 논문의 수정본이다. 본서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학술회의에서 발표해 주신 우미형(충남대), 윤혜선(한양대), 황광선(가천대) 교수, 김대우(고려대) 연구교수께 감사한다. 학술회의에서 사회자와 토론자로 참여해 주신 김태호(헌법재판소), 이상덕(인천지방법원) 박사, 김정인(수원대), 이동성(성균관대), 이병량(경기대), 이응균(고려대), 이재훈(한국외국어대), 이종성(숭실대), 이혁우(배재대), 이혜영(광운대), 한승주(명지대), 한유성(연세대) 교수께 감사한다. 끝으로 학술회의와 본서 출간 작업을 도와준 고려대학교 대학원의 김소라, 백은지, 상민정, 진민아, 장미정 연구 조교에게 감사한다.
박종민 · 윤견수
집필진 약력
강명훈
Washington University in St. Louis 정치학 박사
포스텍 인문사회과학부 부교수
강민성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at Albany 행정학 박사
경희대학교 행정학과 조교수
강상원
University of Bristol 정책학 박사
고려대학교 비교거버넌스연구소 연구교수
김다은
고려대학교 행정학 박사
동아대학교 석당인재학부 조교수
김영재
Arizona State University 행정 및 정책학 박사
명지대학교 행정학과 부교수
박정구
KDI 국제정책대학원 박사과정
국민권익위원회 혁신행정데이터담당관
박종민
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정치학 박사
고려대학교 행정학과 명예교수
윤견수
고려대학교 행정학 박사
고려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비교거버넌스연구소 소장
윤성현
서울대학교 법학 박사
한양대학교 정책학과 교수
조인영
University of Oxford 정치학 박사
연세대학교 글로벌행정학과 부교수
제1편 민주적 거버넌스의 도구로서 비다수주의 기관
제1장 정치의 양극화, 민주적 거버넌스 및 비다수주의 기관
Ⅰ 머리말 3
Ⅱ 선거민주주의의 한계 4
Ⅲ 차별화된 기관 신뢰 7
Ⅳ 기관 신뢰의 당파적 차이 13
Ⅴ 당파적 양극화와 공론의 분열 18
Ⅵ 민주적 거버넌스: 기관 균형 21
Ⅶ 집행적 권력의 분립과 비다수주의 기관 25
Ⅷ 시민 참여와 비다수주의 기관 28
Ⅸ 민주적 거버넌스의 정당성: 투입, 과정 및 산출 31
Ⅹ 맺음말 33
제2장
전문성, 민주주의 그리고 자율성
Ⅰ 들어가며 37
Ⅱ 주인-대리인 관계에서의 비대칭 정보 문제 해결 43
1. 동맹원칙 44
2. 재량권 제한 48
3. 신뢰할 수 없는 약속 이행의 문제 51
Ⅲ 관료의 자율성 53
1. 거래적 권위와 인가된 수용 53
2. 평판에 기반한 관료의 자율성 55
Ⅳ 결론 59
제3장
독립행정위원회의 설치 · 운영 입법에 대한 헌법학적 검토
Ⅰ 서론 63
Ⅱ 독립행정위원회의 범위와 설치 요건 65
1. 현행법상 독립행정위원회의 범주 65
2. 독립행정위원회의 근거와 설치 기준 71
Ⅲ 독립행정위원회의 요건: 기준별 75
1. 독립성 75
2. 전문성 79
3. 신규성 혹은 비전형성 86
4. 다수 전문가의 합의(행정적 숙의) 87
5. 정치적 중립성 92
Ⅳ 결론 95
제2편 비다수주의 기관 사례 연구
제4장
비다수주의 기관의 정당성과 독립성: 국민권익위원회 사례
Ⅰ 서론 101
Ⅱ 이론적 논의 103
1. 비다수주의 기관 103
2. 반부패 기관 107
Ⅲ 국민권익위원회의 정당성과 독립성에 관한 논쟁 111
1. 구성과 기능 111
2. 조직 구조와 독립성에 관한 논쟁 113
3. 조직 기능과 전문성에 관한 논쟁 119
Ⅳ 국민권익위원회의 과제: 평판 기반 자율성 125
Ⅴ 결론 및 제언 131
제5장
규제 기관의 제도적 특성과 문책성의 한계: 방송통신위원회 사례
Ⅰ 들어가는 글 135
Ⅱ 이론적 배경 138
1. 규제 기관의 제도적 설계 138
2. 규제 기관의 제도적 특성 141
3. 규제 기관의 문책성 146
Ⅲ 사례 분석 150
1. 제도적 설계 150
2. 제도적 특성 155
3. 문책성 기제 158
Ⅳ 정리하는 글 165
제6장
비다수주의 기관의 전문성과 독립성: 통계청 사례
Ⅰ 서론 169
Ⅱ 선행 연구 173
1. 비다수주의 기관으로서의 통계 기관 173
2. 독립행정기관의 전문성과 독립성 174
3. 통계 기관의 전문성과 독립성 비교 176
Ⅲ 분석틀 및 지표 178
Ⅳ 통계청의 전문성과 독립성 180
1. 전문성 분석 180
2. 독립성 분석 189
Ⅴ 결론 및 제언 203
제3편 비다수주의 기관의 한계와 역할
제7장
과학기술 거버넌스에서 비다수주의 기관과 경계 조직
Ⅰ 서론 207
Ⅱ 과학기술 거버넌스와 민주적 정당성 210
1. 과학기술과 사회 210
2. 과학기술 거버넌스와 민주주의 212
Ⅲ 비다수주의 기관: 한계와 과제 216
1. 비다수주의 기관: 기능의 다양성 216
2. 비다수주의 기관의 한계 217
3. 비다수주의 기관의 과제 220
4. 비다수주의 기관과 시민 참여 222
Ⅳ 경계 조직의 역할 224
1. 경계 조직과 경계 작업 224
2. 경계 조직과 비다수주의 기관 227
Ⅴ 논의 및 결론 232
제8장
시민 참여와 비다수주의 기관의 역할
Ⅰ 서론 237
Ⅱ 숙의 과정에서 전문가의 역할 241
1. 전문성과 민주성 241
2. 숙의 과정에서 전문가의 다면적 역할 244
Ⅲ 숙의 과정에서 비다수주의 기관의 역할 250
1. 정보에 밝은 시민과 비다수주의 기관 250
2. 시민 참여: 공론 조사와 시민배심원제도 254
3. 숙의의 촉진자로서 비다수주의 기관 259
Ⅳ 맺음말 264
참고문헌 .................................................................................. 270
찾아보기 .................................................................................. 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