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발행 2025.01.07
<머리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필자가 수석전문위원으로 재직하던 2020년, 제21대국회가 개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안이라는 낯선 법안이 법사위로 회부되었다. 환경노동위원회가 아닌 법사위로 회부된 건 처벌법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이 제정안은 이듬해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되어 많은 기업인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으로 다가섰다. 2022년 5월 필자는 입법차장으로서 임재금 당시 국회법제실 경제법제심의관과 함께한 미국 출장길에 산업안전보건청(OSHA)과 미팅을 통해 유해위험요인(hazard) 제거에 주안점을 둔 미국의 산업안전감독체계를 보면서 처벌 위주의 독특한 우리의 중대재해처벌법이 지닌 장단점을 살펴보고 싶었다. 즉, 중대재해처벌법의 입법과정을 되짚어보면서 그 입법취지와 국내외 입법례 및 입법론적 대안 등을 살펴보고 이를 기록으로 남겨두고자 집필을 시작하게 되었다. 네 명의 공저자가 집필을 시작한 지 2년 반 만에 부족하나마 이 책을 출간하기에 이르렀다.
주지하다시피, 중대재해처벌법은 중대재해를 예방하고 시민과 종사자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함을 목적으로 2021년 1월 제정된 법으로서, 산업안전 패러다임의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기념비적 입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제실, 입법조사처 등에 근무했던 저자들이 제정법 각 조문의 입법경과와 취지를 분석한 입법론적 시각을 독자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저술한 것으로, 책 제목 또한 “중대재해처벌법: 해석과 입법론”으로 하였다. 네 명의 저자가 총론과 각론 각 파트별로 역할을 분담 · 작성한 이 책은 다음 사항에 주안점을 두었다. 첫째, 무엇보다 중립적이고 균형된 입법정책적 시각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을 서술하고자 노력하였다. 상세한 제정경과를 담은 국회 회의록의 관련 부분을 소개함과 아울러 미국 의회조사국(CRS) 보고서 및 국회 전문위원의 검토보고 등을 참고하여 입법론적 시각을 살펴보았다. 둘째, 총론을 통해 중대재해처벌법의 기본틀을 정립하고 자 노력하였다. 법 제정의 헌법적 · 국제법적 의의 등 제정 의의와 제정경과를 살펴보고, 제정법의 법적 지위와 특성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또한 주요국의 입법동향과 입법례를 소개하고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을 약술해 보았다. 셋째, 각론에서는 개별조문의 입법취지 및 입법경과를 소개하고, 유사 입법례 및 관련 판례를 조문별로 제시하였다. 특히, 제정법이 제21대국회에서 다수 법률안들을 통합 · 조정하여 마련된 만큼 각 조문이 어떠한 입법과정을 거쳐 마련되었는지 서술하고, 관련법규와 판례 분석을 통해 입법론적 시사점을 얻고자 하였다.
그런데, 주한유럽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중대재해처벌법의 처벌규정들이 국제적 수준에 맞게 개선되어야 기업들이 과도한 처벌로 위축되지 않고 투자에 적극 나설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제정법의 처벌규정에 대해서는 일찍이 몽테스키외가 「법의 정신」에서 설파한 “죄와 형벌의 올바른 균형”과 “중용(中庸)의 정신”으로 입법된 것인지 회의적인 시각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제정법이 근로자의 안전과 인권보호를 강화함으로써 오늘날 ESG경영이라는 시대 흐름과 생명 ? 신체의 안전권이라는 헌법정신에 부합하는 적절한 입법이라는 반론도 강하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은 사회적 주장이나 요구가 입법에 반영되어 법이 새로운 발전의 단계에 들어간다는 미국의 법철학자 로스코 파운드의 이른바 “법의 사회화”(socialization of law)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제정안을 심사한 법사위 법안심사소위원회(소위원장 백혜련의원)에 따르면, 하나의 안건을 두고 온종일 심사에 임했던 소위원회를 7차례나 개최할 정도로 여야간 진지한 토론을 거친 입법이라고 한다. 이러한 입법적 노력들과 다양한 시각들을 이 책이 충분하게 담아냈는지 회의가 없지 않으나, 부족한 부분은 추후 보완할 것을 약속해 본다.
현업에 쫓긴 저자들이 이 책을 이 정도로 출간하기에는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다. 우선, 박병석 전 국회의장님을 비롯한 국회가족 여러분의 성원에 감사드리며, 이 책의 집필에 있어서 학문적 자극과 고견을 주신 양창수 전 대법관님과 국제조정센터 박노형 이사장님, 한국행정법학회 김용섭 회장님께 감사드린다. 또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고용노동부를 맡아 노동법을 담당했던 임재금 전문위원에게 실무집행상 검토의견을 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전상헌 이사님께 감사드리며, 한국기술교육대 산업안전정책과정 여러분(고광훈 주임교수 및 최영호 · 유현성 · 박선영 대표 등)의 실무의견에도 감사드린다. 초고를 꼼꼼히 검토해준 국회 의정연수원 허병조 교수(중대재해처벌법 제정 당시 법사위 전문위원)와 국회입법조사처 황성필 서기관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끝으로, 이 책의 편집 · 출간과정에서 각종 자료들을 노동법학자 시각에서 훌륭히 취합 · 정리해준 류호연 서기관과 호흡을 맞춘 박영사 관계자에게도 감사드린다.
아무쪼록 중대재해처벌법이 근로자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함으로써 안전한 근로환경 구축에 이바지하는 데 이 책이 일조하길 바라는 소망과 함께 선진적인 기업경영에 관한 입법적 개선노력도 이어지길 희망하면서, 이 책의 내용은 저자들이 몸담고 있는 기관의 공식적 입장이 아닌 개인적 견해임을 밝혀둔다.
2024년 12월
공저자(전상수 · 임재금 · 백상준 · 류호연)를 대표하여
전 상 수
<공저자 약력>
전 상 수 (田尙洙)
강릉고등학교 졸업
한국외국어대학교 졸업(행정학사, 법학석사)
미국 Duke University 로스쿨 졸업(법학박사/ JD)
제11회 입법고시/ 미국변호사
국회 입법조사관(재경위 · 법사위 · 행안위)
국회법제실 경제법제심의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문위원
국회사무처 의사국장 · 기획조정실장
국회 정무위원회 수석전문위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수석전문위원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수석전문위원
국회 입법차장(차관급)
현, 한국행정법학회 부회장/ 삼성화재 고문
[저 서]
금융소비자보호법: 해석과 입법론(공저, 홍문사 2022)
법제실무(집필단장, 국회법제실 2011)
자산유동화 이론과 실제(공역, 매경출판사 2003)
임 재 금 (林在錦)
광주진흥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KDI 국제정책대학원 졸업(정책학 석사)
미국 Texas A&M University 경제학 박사(Ph.D.)
제18회 입법고시 합격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입법조사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입법조사관
국회예산정책처 추계세제총괄과장
국회법제실 경제법제심의관
한국국방연구원 파견국장(국회사무처 이사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문위원(노동법 총괄)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전문위원
현,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전문위원
[저 서]
행정입법 분석: 조세분야(검토총괄, 국회법제실 2022)
북한 인프라 개발의 경제적 효과
(공저, 국회예산정책처 2019)
백 상 준 (白尙埈)
고려대학교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 졸업
연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제29회 입법고시 합격
국회사무처 기획조정실 행정법무담당관실 사무관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입법조사관
국회입법조사처 법제사법팀 입법조사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입법조사관
(중대재해처벌법 담당)
현, 국회법제실 법제연구과 법제관(서기관)
[저 서]
법제기준과 실제(공저, 국회법제실 2024)
류 호 연 (柳浩然)
경기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졸업
서울대학교 법학박사(노동법전공)
공익법무관/ 제1회 변호사시험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입법조사관
국회법제실 사법법제과 법제관
현, 국회입법조사처 법제사법팀 입법조사관(서기관)
[저 서]
사회보장입법사연구Ⅰ(부분집필, 법문사 2022)
법제이론과 실제(공저, 국회법제실 2019)
추천사
영국에서 법인과실치사법이 제정되고 국제노동기구(ILO)의 100주년 선언에서 ‘안전하고 건강한 근로조건’이 ‘양질의 일자리’의 기본요소로 인정되는 등 국제적 흐름에 부응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한편, 우리나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자의 솜방망이 처벌에 대한 비판 등이 고조됨에 따라 여야간 치열한 협상 끝에 국회 주도로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된 바 있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책임자 등이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하여 중대재해를 유발한 경우 무겁게 처벌하는 내용으로, 우리 사회의 광범위한 영역을 규율하고 있습니다. 2024년 1월부터는 50인 미만 사업장에까지 확대 적용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중대재해처벌법이 전면 시행됨에 따라 안전보건에 대한 사회적 요구와 기업의 책임이 한층 강화되었으며, “안전”은 이제 단순한 규제를 넘어 지속적인 기업의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핵심 경영요소로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저는 2021년 1월 중대재해처벌법이 공포된 후 얼마 지나지 않은 2021년 5월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취임하였습니다. 재임 당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정 과정에서 노사 의견과 우려를 수용 가능한 범위에서 최대한 반영하였고, 기업들의 문의가 많은 사항을 중심으로 법령 해설서도 배포하는 등 현실여건에 맞는 법집행이 이루어지도록 노력하였습니다. 특히, 산업안전은 특정 기업이나 부서만의 책임이 아닌 우리사회 전체가 함께 책임져야 할 공동의 과제인 만큼 처벌이 아니라 예방에 중점을 둔 안전보건 관리체계를 구축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중대재해처벌법의 의무규정이 모호하고 처벌이 과하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안전보건 의무를 강화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의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규정의 불명확성을 해소하고 처벌 규정을 완화하는 보완 입법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위헌소송도 제기된 바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회 법사위, 환노위, 법제실 등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을 직간접적으로 접한 전현직 국회공무원들이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의 의의와 개별 조문의 의미를 입법부 시각에서 저술한 책이 출간된 것은 뜻깊고 반가운 일입니다. 특히 중대재해처벌법은 전체 조문이 16개로 간단해 보이지만, 사회 전반에 적용되는 특별형법으로서 조문의 단어마다 명확한 해석이 필요하고 그 해석이 분분할 수 있어 무엇보다도 입법취지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법률 제정 당시의 취지나 법문언의 논리적 해석과 주요 쟁점사항에 대한 이 책의 검토내용은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기업 및 기관의 경영책임자들에게도 매우 유용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 책은 시중의 중대재해처벌법 해설서에서 찾아보기 힘든, 입법과정에서 나타난 중대재해처벌법의 의의, 제정배경, 비교법적 특성을 비롯하여 중대시민재해에 대한 심도 있는 해설을 담고 있어 산업안전정책 분야의 법률을 공부하는 학생들과 공공기관의 종사자들에게도 적극 추천하는 바입니다.
이 책이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고, 경영인들의 안전보건에 대한 관심을 제고하여 안전 투자를 확대하는 유인이 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중대재해 예방에 기여하기를 기대합니다.
2024년 12월
前 고용노동부 장관
現 산업안전상생재단 이사장
안 경 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