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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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북방정책
신간
대한민국의 북방정책
저자
김학준
역자
-
분야
정치/외교학
출판사
박영사
발행일
2024.10.25
개정 출간예정일
페이지
552P
판형
신A5판
ISBN
979-11-303-2063-2
부가기호
93340
강의자료다운
-
색도
2도
정가
38,000원

초판발행 2024.10.25


머리말


Ⅰ. 노태우盧泰愚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이 추진한 북방정책은 당시 공산권의 양대 지도국인 소련 및 중국 그리고 동유럽 공산국가들과는 물론이고 아?중동阿中東의 이라크와 알제리에서 아시아의 몽골과 베트남에 이르기까지 수교를 성사시켰고 세계정치의 중심무대인 유엔에의 가입을 실현시킴으로써 대한민국의 ‘외교영토’와 ‘경제영토’를 엄청나게 확장했을 뿐만 아니라 북한과의 관계를 크게 개선해 ?남북[북남]기본합의서?와 ?한[조선]반도비핵화공동선언?을 성사시켜 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 실적이 그러했기에, 노 대통령의 북방정책을 김성철金聖哲 박사는 “한국의 외교사에 있어서 하나의 분수령을 이룬 것”으로 평가했고, 이근李根 교수는 “대한민국 외교사에서 그 유례를 찾기 힘든 매우 야심적이고 체계적이며, 자주적이며, 개혁적인 대전략(grand strategy)이다.”라고 논평했다.  김성철(金聖哲), ?외교정책의 환경?제도?효과의 역동성: 북방정책 사례 분석?, ??국제정치논총?? 제40집 제3호(2000년 11월), 81쪽; 이근(李根), ?5. 노태우정부의 북방외교: 엘리트 민족주의에 기반한 대전략?, 강원택(康元澤) 편, ??노태우 시대의 재인식; 전환기의 한국사회??(경기도 파주시: 나남, 2012), 178쪽.

  

돌이켜보면, 노태우 대통령이 대통령후보로 북방정책의 방향을 제시하면서 추진을 처음 공약했던 1987년 9월 19일로부터 어언 37년이 지났다.  노태우 대통령후보는 1987년 9월에 들어와 민정당 당직자들과의 회의에서나 기자들과의 간담에서 간간이 북방정책 구상을 말하곤 했다. 언론매체에 처음 보도된 것은 9월 19일 도쿄에서 열린 일본기자클럽 오찬연설이었다. 하루 전인 9월 18일에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根康弘) 일본 총리와의 회담에서도 자신의 북방정책 구상에 대해 발언하며 일본정부의 협력을 요청했다. 최맹호(崔孟浩) 특파원, ?올림픽 후 대북관계 전환 : 한?중관계개선 일본에 협력요청?, ??동아일보??(1987년 9월 19일).

 한 세대가 넘는 이 시기에, 우선 국내적으로 그가 1988년 2월 25일에 취임과 동시에 시작한 권위주의체제의 민주주의체제로의 전환은 2010년대 말까지는 무난하게 진전되어 여당으로부터 야당으로의 정권교체가 세 차례나 실현된 선례도 남겼다. 국제적으로 소련과 소련권의 해체에 상징되었듯 공산주의체제는 붕괴되었고, 중국의 경우가 보여주듯 자본주의 요소를 도입한 공산주의체제의 부분적 수정이 나타났다. 대조적으로, 북한은 1인 독재체제를 아들에 이어 손자로까지 지속시키면서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을 파기하고 핵무기 개발을 진전시켜 사실상 핵무기 보유국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제 대한민국을 향해 온갖 모욕적 언사로써 조롱할 뿐 아니라 공공연하게 핵무기로 공격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오는 8월 15일에 우리는 ‘대한민국 희수喜壽’를 맞이한다. 한때 미국과 더불어 세계 양대 초핵강대국의 지위를 과시하던 소련이 창건 74년 만에 무너졌음을 상기할 때, 국내외적으로 매우 어려운 여건 속에서 기적처럼 탄생한 대한민국이 우리의 전통적 셈법으로 77세를 넘긴다는 사실은 고무적이다. 그렇지만, 대한민국이 북한의 핵위협뿐만 아니라 열강의 전쟁으로 말미암아 거기에 끌려들어가는 위험에서 벗어나 평화를 유지하며 그 터전 위에서 현재 ‘후퇴론’과 ‘위기론’에 빠져있는 민주화를 새롭게 진전시키는 가운데, 한민족의 평화와 통일 그리고 번영을 위해서는 물론이고 세계화시대에 한민족이 국제평화와 문화교류에서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국가적 과제로 새로운 북방정책을 마련해야 할 필요성이 절실히 요청되고 있다. 


Ⅱ. 마침 2024년은 노태우 대통령이 북방정책의 추진을 공식적으로 밝힌 대통령 취임사를 발표하고, 동시에 북방정책의 실천적 지침을 담은 7?7선언을 발표한 36주년의 해이다. 이 선언은 발표 직후인 1988년 9월 17일부터 10월 2일까지 서울에서 열린 제24회 하계 올림픽을 동서 양대진영이 모두 참가해 완벽한 올림픽으로 승화시키는 촉매제가 되었으며, 그 성공을 계기로 북방정책은 탄력을 받아 헝가리와의 수교 → 동유럽 공산국가들과의 수교 → 소련과의 수교 → 남북한 총리회담의 개막과 진전 → 남북한 유엔동시가입 → 중국과의 수교 → ?남북기본합의서? 및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 채택 → 베트남과의 수교 등으로 이어졌다. 

구체적으로 임기 5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무려 45개국과 수교를 이루었는데, 이 나라들의 면적을 다 합치면 제1공화국으로부터 제5공화국까지 수교한 국가들의 총합보다도 더 넓다. 그들의 인구가 모두 약 17억임을 생각할 때, 우리나라의 새 친구가 얼마나 많이 늘었는지 새삼 놀라게 된다. 오늘날 194개 회원국을 지닌 유엔에의 가입을 이루어 이미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던 한국인의 국제기구에서의 활동 영역을 넓혀주면서 동시에 민족적 자존심을 크게 높였다. 이로써 북방정책은 대한민국의 외교영토와 경제영토를 파천황破天荒의 경지로 넓혔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을 크게 올렸다. 이러한 실적은 이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그리고 문재인文在寅 대통령 때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는 징검다리가 되었다.

그렇지만 노태우 대통령 이후 역대 정부의 북방정책은 다른 한편으로는 정체停滯에 직면하면서 북한의 핵 개발과 그 진전을 막지 못했고, 특히 일부 좌파적 정부들의 편향된 친북정책, 심지어 종북정책은 결과적으로 북한 핵개발의 진전을 뒷받침했다는 의혹을 낳았다. 수교가 성사된 당시 우호적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던 한?러관계와 한?중관계는 오늘날 정반대의 분위기로 기울어져 있다. 상황이 그렇게 바뀐 원인들 가운데 하나는 미?중 대결과 미?러 대결로 요약되는 ‘신新 냉전’이다. 그 점을 인정한다고 해도, 남북관계를 포함한 오늘날의 한반도 대외상황은 노태우 대통령 5년의 그것과 너무 대조된다.

이 36주년의 해에, 노태우 대통령의 정책조사보좌관으로, 이어 공보수석비서관 겸 대변인으로 북방정책의 입안 및 집행과 관련해 제한적인 범위 안에서 관찰했거나 발언했으며, 이후 이 주제에 관해 여러 저술을 국내외에서 출판했던 저자는 1차적으로 노 대통령이 집행한 북방정책을 그 기원으로부터 시작해 전개과정 전체를 살피면서 성공요인과 한계를 분석하고 그 유산을 다시 음미하고자 한다. 이어 ?제8장 맺음말?에서 노 대통령 이후 역대 대통령이 추진한 북방정책의 내용과 결과를 살피고, 국제정치에서 중견국으로 성장한 우리나라가 펼쳐야 할 ‘중견국 외교’의 방향과 미래를 향한 교훈이 무엇인지 고민해보고자 한다. 


Ⅲ. 노태우 대통령의 북방정책은 이미 국내외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으며, 그 결과 여러 저술이 박사학위논문 또는 일반 학술논문이나 단행본 또는 회상록의 형태로 출판되었다. 그 저술들은 이 책 말미의 ?참고문헌?에서 자세히 소개하기로 하겠다. 여기에서는 우선 북방정책의 입안과 추진에 직접 참여했던 이들이 남긴 중요한 몇몇 1차 자료에 한정해 미리 소개하기로 하겠다. 

첫째, 회고록이다. 노태우 대통령은 우선 언론인 조갑제趙甲濟와의 면담을 통해 ??노태우 육성회고록: 전환기의 대전략??(조갑제닷컴, 2007)을 남겼다. 노 대통령은 이어 전2권의 회고록(조선뉴스프레스, 2011)을 출판했는데, 상권 ??노태우 회고록: 국가민주화 나의 운명??이 북방정책의 바탕인 민주화에 대한 신념과 과정을 다루었으며, 하권 ??노태우 회고록: 전환기의 대전략??이 북방정책에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제23장 민주화와 자율화의 전면적 확산?으로부터 시작해 ?제50장 따뜻한 눈으로 역사를 보자?로 끝나는 이 책은 ?제33장 통일을 위한 원교근공遠交近攻?에서 ?제46장 북방외교의 철학?까지 열네 개의 장章이 헝가리와의 수교로부터 소련 및 중국과의 수교를 거쳐 베트남과의 수교로 이어진, 그리고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된 이후 처음으로 성사된 남북총리회담 그리고 여덟 차례의 남북총리회담을 바탕으로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의 채택을 낳았으며 유엔이 창설된 이후 46년 만에 대한민국이 북한을 끌고 유엔에 함께 가입하기에 이른 대북?통일정책을 매우 상세히 회고했다. 많은 비화를 담았을 뿐 아니라 민족문제를 대하는 노 대통령의 철학을 이해하게 만드는 이 회고록은 북방정책의 분석을 위한 기본적인 자료로, 훨씬 더 꼼꼼하게 읽혀야 한다. 

둘째, 북방정책의 입안과 추진에서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활동했던 박철언朴哲彦 국회의원 겸 정책보좌관의 회고록이다. ??바른 역사를 위한 증언: 5공, 6공, 3김시대의 정치 비사??(랜덤하우스중앙, 2005) 전2권의 여러 장章은 전두환全斗煥 대통령 당시에 남북정상회담의 성사를 위해 북한을 상대로 추진된 비공개 및 공개 접촉 그리고 노태우 대통령 당시에 성사된 헝가리를 비롯한 동유럽 공산국가들과의 수교로부터 시작해 소련과의 수교 및 중국과의 수교에 이르기까지에 관한 여러 비사를 담았다. 이 책은 북방정책 정책결정과정에서 부서들 사이에, 그리고 특히 박 보좌관과 김영삼金泳三 민주자유당(약칭 민자당) 대표최고위원 사이에 벌어졌던 갈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거기에 더해, 이 책은 북한의 김일성金日成 주석을 직접 만났던 저자의 김일성에 대한 관찰 그리고 김일성의 생각 등을 전하고 있어 김일성 말기의 북한 국내외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셋째, 노태우 대통령 때 외무장관이던 이상옥李相玉은 ??전환기의 한국외교: 이상옥 전 외무장관 외교회고록??(삶과꿈, 2002)이라는 회고록을 남겼다. 방대한 양의 이 책은 노 대통령의 북방정책 전반에 관해, 그리고 소련과의 수교로부터 시작해 남북한 유엔동시가입?북핵 문제?남북고위급회담?중국과의 수교?베트남과의 수교 등에 관해 많은 정보를 담았다. 

한?중수교협상에서 이상옥 외무장관의 상대역이었던 중화인민공화국 외교부장 첸지천錢其琛의 회고록 ??외교십기外交十記??(홍콩: 삼련서점유한공사 2003, 베이징: 세계지식출판사, 2003; 유상철劉尙哲 옮김), ??열 가지 외교 이야기: 중국 외교의 대부 첸지천의 국제정치 비망록??(랜덤하우스중앙, 2004)은 제5장에서 한국과의 수교를 중국정부의 입장에서 회고했다. 한국의 전문가들은 첸 부장이 중국의 체면에 손상되는 부분은 전혀 말하지 않고 썼다고 보면서, 연구자들은 그 사실을 숙지하며 읽어야 한다고 권한다.  김장환(金長煥) 총영사 구술,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외교사연구센터 편, ??남북한 UN동시가입??(선인, 2021), 289쪽.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나라 한국분들이 첸지천의 ??외교십기??를 많이 얘기합니다. 그걸 무슨 바이블처럼 여기는데, 그것은 중국의 입장에서 본 겁니다. 중국에서는 자기들에 불리한 내용이나 한국과의 관계에서 체면이 손상되는 일은 일절 안 씁니다. 그러니까 그런 내용들은 다 뺏어요. 그런 점을 참고하고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중 수교로 중화인민공화국의 초대 대한민국대사로 부임한 장팅옌張庭延 부부는 옌징延靜?장팅옌, ??출사한국出使韓國??(지난[濟南]: 산둥대학출판사, 2004)과 ??영원한 기억??(지난[濟南]: 산둥대학출판사, 2007)을 남겼다.

한?중 수교 때 중화민국 외교부장으로 대한민국에 의한 단교斷交를 겪어야 했던 첸푸錢復는 ??회억록?? 전3권(타이베이: 천하문화[天下文化], 2001)을 출판했는데, 제3권이 이때의 상황을 회고했다. 중화인민공화국과의 수교 및 중화민국과의 단교에 관한 대한민국 외무부의 일선 외교관으로서의 회고록 겸 연구서로는 조희용曺喜庸의 ??중화민국 리포트 1990~1993: 대만단교 회고??(선인, 2022)가 대표적이다. 훗날 스웨덴대사(라트비아대사 겸임)와 캐나다대사로 봉직한 전형적 직업외교관인 저자의 이 책은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 쌍방의 자료를 모두 균형 있게 다뤘다.

한국과 중국은 수교에 앞서 상주무역대표부를 각각 베이징과 서울에 개설했다. 베이징주재 무역대표부에서의 근무를 시작으로 수교 직후 중화인민공화국주재 대한민국대사관 공사로 봉직하다가 훗날 대사에 이어 통일부 장관으로 활동한 김하중金夏中은 ??한국 외교와 외교관: 한?중 수교와 청와대 시기??(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외교사연구센터, 2018)에서 수교과정과 이후를 상세히 회고했다.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외교사연구센터 편, ??한중수교??(선인, 2020)는 이 주제에 관련된 윤해중尹海重 대사와 신정승辛正承 대사 및 정상기丁相基 대사 등 외교관들의 회상을 담았는데, 윤해중 대사는 이 책과 별도로 ??한중수교 밑뿌리 이야기: 윤해중의 30년 중국외교 발자취??(이지출판, 2012)를 남겼다. 

넷째, 당시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으로 소련과의 수교와 중국과의 수교 모두에 참여한 김종인金鍾仁의 회고록이다. ??영원한 권력은 없다: 대통령들의 지략가 김종인 회고록??(시공사, 2020) 제2부의 15장과 16장이 각각 소련과의 수교 그리고 중국과의 수교를 회상했다. 당시 대통령 외교안보보좌관에 이어 외교안보수석비서관으로 북방정책 수행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김종휘金宗輝는 회고록을 출판하지 않은 대신에 몇몇 매체 및 학자들과 회견을 통해 부분적이지만 중요한 회고를 남겼다. 김종인 수석의 회고와 김종휘 수석의 회고는 박철언 보좌관의 증언과 여러 곳에서 어긋나는 부분을 포함하고 있어서, 교차검증을 요구한다. 

다섯째, 1971년에 시작된 남북대화 때부터 남측 대변인으로 참여해 국토통일원 남북대화사무국 국장을 맡았었고 이후 여러 형태의 남북대화에, 특히 남북고위급회담에, 남측 대표단 일원으로 참가했던 이동복李東馥 전 국회의원의 회고록이다. 그는 ??이동복의 미로찾기: 통일의 숲길을 열어가며??(삶과꿈, 1999)와 ??이동복의 현대사경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다??(경덕출판사, 2007) 그리고 ?대북회담 전문가 이동복의 비록 1: 남북대화의 전부를 말한다?, ??월간조선??(2000년 9월), ?대북회담 전문가 이동복의 비록 2: 남북대화의 전부를 말한다?, ??월간조선??(2000년 10월), ?대북회담 전문가 이동복의 비록 3: 남북대화의 전부를 말한다?(2000년 11월), ?대북회담 전문가 이동복의 비록 4: 남북대화의 전부를 말한다?, ??월간조선?? (2001년 1월) 등은 노태우 대통령이 추진한 북방정책은 물론이고 그 틀 안에서의 남북고위급회담의 내용과 본질에 대한 이해理解를 높여준다.

노태우 대통령 때 외무부 외교안보연구원 원장으로, 이어 통일원 차관으로, 남북고위급회담에 처음부터 끝까지 참가했던 임동원林東源의 ??피스메이커: 임동원 회고록??(중앙books, 2008) 가운데 제2부는 각각 북방정책의 중요한 부분인 남북관계에 대한, 특히 자신이 참가했던 남북고위급회담에 대한 여러 정보를 담았다. 임 원장은 훗날 김대중 대통령 때 통일부 장관으로, 또는 국가정보원 원장으로, 또는 대통령 외교안보수석비서관으로, 또는 대통령 외교안보통일특별보좌역으로, 또는 대통령 대북특사 등으로 김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추진했기에, 이 책은 노 대통령의 북방정책과 김 대통령의 햇볕정책의 연속성 또는 차이를 분석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여섯째, 노태우 대통령의 청와대와 내각 그리고 여당 또는 야당에서 일했거나 그를 상대했던 인사들이 쓴 글을 노재봉盧在鳳 대통령 비서실장이 노 대통령의 퇴임으로부터 18년이 지난 시점에 모은 ??노태우 대통령을 말한다: 국내외 인사 175인의 기록??(동화출판사, 2011)이다. 이 책에 수록된 여러 인사의 회고는 앞에서 소개한 자료들을 보완해준다. 노재봉 비서실장을 이은 정해창丁海昌 비서실장이 노 대통령의 퇴임으로부터 30년이 지난 시점에 출판한 ??대통령비서실장 791일: 정해창의 청와대 일지??(경기도 파주시: 나남, 2023)는 국내정치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북방정책 전반 그리고 남북총리회담과 소련 및 중국과의 수교 등에 관해 많은 정보를 담았다. 

일곱째,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외교사연구센터가 2014년 이후 꾸준히 발행한 오럴히스토리 총서이다. 우선 ??한국 외교와 외교관: 한국 최초의 여성대사 이인호 전 주러대사??(2017)는 하버드대학교 대학원 사학과에서 러시아사를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러시아어에 능통해, 러시아에 인접한 국가인 핀란드주재 대사(에스토니아 겸임대사)로 출발해 러시아대사(벨라루스?조지아?우크라이나?투르크메니스탄?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겸임대사)를 역임하며, 북방정책의 전개과정과 성과를 현장에서 폭넓게 확인한 이인호李仁浩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의 회고를 담았다. ??한국 외교와 외교관: 이집트 수교와 대러외교??(2018)에 수록된 정태익鄭泰翼 전 러시아 대사의 회고 그리고 ??한국 외교와 외교관: 대일외교?북방정책?북핵협상??(2019)에 수록된 공로명孔魯明 전 소련대사 및 외무장관의 회고 역시 중요하다.  공로명 장관은 다음과 같은 회고록을 출판했다. 공로명(孔魯明), ??나의 외교 노트: 안에서 듣고 보고 겪은 한국외교 50년??(기파랑, 2014). 이 책은 대한민국정부수립 때부터 박정희정부 마지막 시기까지를 다뤘으며, 그 이후에 일어난 소련과의 수교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이어 역시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외교사연구센터의 오럴히스토리인 ??북방정책과 7?7선언??(2020), ??2021년 외교사 구술회의 자료집: 남북한 UN동시가입 관련공개 외교문서(1990년)??(2021), ??남북한 UN 동시가입??(2021), ??한국 외교와 외교관: 한일관계?한중수교?한베수교??(2022) 등이 중요하게 검토되어야 할 자료를 담고 있다. 마지막 책의 경우, 외무부 아주국장으로 중국과의 수교에 이어 베트남과의 수교에 참여했던 김석우金錫友 전 통일원 차관의 회고가 중요한데, 그의 회고록 ??남북이 만난다 세계가 만난다: 해방둥이의 통일외교??(고려원, 1995)가 역시 같은 내용을 담았다. 

이 총서와는 별개로 북방정책에 직접 참여했던 몇몇 외교관 역시 회고록을 남겼다. 그것들 가운데, 노태우 대통령 때 의전수석비서관과 유엔대사 및 외무차관으로 봉직한 노창희盧昌熹 전 영국대사의 ??어느 외교관의 이야기: 노창희 회고록??(기파랑, 2007)은 소련 및 중국과의 수교와 남북한의 유엔동시가입에 관한 자세한 정보를 담았다. 한탁채韓鐸埰 초대 헝가리대사의 ??다뉴브 강의 푸른 물결??(삶과꿈, 1997)은 북방정책의 첫 열매인 헝가리와의 수교 과정은 물론이고 당시 격변하던 소련권의 상황을 폭넓게 이해하게 만들어준다. 최호중崔浩中 당시 외무장관의 ?한소수교의 막후 비화?(??월간조선??1992년 9월)와  최호중 장관은 외교관으로서의 일생을 다음으로 출판했다. 최호중(崔浩中), ??둔마(鈍馬)가 산정(山頂)에 오르기까지: 최호중 회고록??(태일출판사, 1997). 그러나 소련과의 수교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그는 ??빛바랜 영광 속에 후회는 없다:최호중 회고록??(삼화출판사, 1999)에서는 ?3. 한소수교 삼장?을 통해 소련과의 수교에 관해 자세히 말했다.

 위성락魏聖洛 전 러시아대사의 ?한·소 수교과정의 회고?(??외교?? 2021년 1월)는 소련과의 수교과정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북방정책 전반에 대해 중요한 정보를 담았다. 

노태우 대통령 재임기의 대부분 시기(1989년 9월~1993년 2월)에 미국의 주한대사로 봉직한 도널드 그레그Donald P. Gregg의 ??역사의 파편들: 도널드 그레그 회고록??(Pot Shards: Fragments of a Life Lived in CIA, the White House, and Two Koreas, Washington, D.C.: New Academic Publishing, 2014; 차미례[車美禮] 번역, 경기도 파주시: 창비, 2015)은 노 대통령의 북방정책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담았다. 이 책은 당시 미국 대통령이던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George H. W. Bush가 노 대통령의 북방정책을 적극 지원했음을 보여주었다. 유신시대에 미국 중앙정보국CIA 한국지부장이었기에 김대중총재납치사건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의 핵개발사업을 인지認知할 수 있었고, 제5공화국 시대에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 중앙정보국담당관에 이어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 부통령의 안보보좌관으로, 전두환정권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은 김대중 총재의 구명운동에 동참했던 저자의 회고록은 한국 현대사에서의 한?미관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자료집에 관해서는, 우선 노중선盧重善 엮음, ??연표: 남북한 통일정책과 통일운동 50년??(사계절, 1996)을 지적하기로 한다. 이 자료집은 1948년 8월 15일부터 1995년 12월 26일까지 남과 북 그리고 해외에서 제기된 통일방안을 연대기적으로 정리했다. 이어 한정숙韓貞淑?홍현익洪鉉翼?강윤희姜倫希?최우익崔宇翼 등이 편집한 ??한?러관계사자료집 1990~2003??(서울대학교 출판부, 2005)을 지적하기로 한다. 방대한 양의 이 사료집은 소련과의 수교 이후 2003년까지 소련과 그 후계국인 러시아연방이 남북한과 각각 맺은 갖가지 조약과 협정을 한국어[조선어]?영어?러시아어로 수록했다. 

이어 중요한 몇 가지 단행본만 출판년도의 순서대로 소개하기로 한다. 하용출河龍出 교수가 편집한 ??북방정책: 기원?전개?영향??(서울대학교 출판부, 2003), 강원택康元澤 교수가 편집한 ??노태우 시대의 재인식: 전환기의 한국사회??(경기도 파주시: 나남, 2012), 김용호金容浩 교수의 ??외교영토 넓히기: 대한민국의 수교역사??(대한민국역사박물관, 2016)와 장덕준張悳俊 교수의 ??북방정책의 이상과 현실: 아관파천俄館播遷에서 신북방정책까지??(역사공간, 2021) 등이 북방정책 전반에 관한 연구라면,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외교사연구센터가 출판한 김지영金志寧 교수의 ??한국?헝가리 수교협상?? (2023) 및 엄구호嚴久鎬 교수의 ??한국?러시아 수교협상??(2023)은 북방정책의 사례연구이다.

??워싱턴포스트??의 외교전문기자 도널드 오버도퍼Don Oberdorfer와 국무부의 정보?연구국 동북아과장 로버트 칼린Robert Carlin이 함께 쓴 ??두 개의 한국: 전직 워싱턴포스트 기자가 바라본 한국현대사 비록??(The Two Koreas: A Contemporary History, rev. and updated, 3rd. ed., New York: Basic Books, 2014;이종길?양은미 옮김, 경기도 고양시: 길산, 2014)를 지적하기로 한다. 관련국들의 외교문서 그리고 남한, 북한, 미국, 소련/러시아, 중국의 정책입안자들과의 회견에 바탕을 둔 이 책은 북방정책 전반에 대해서는 물론 개별적 사안에 대한 많은 정보를 담았다. 

각개의 저술들 사이 북방정책에 대한 평가에서 편차가 있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단순화시켜 말한다면, 그것들은 북방정책의 한계와 문제점을 공평하게 지적하면서도 북방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그것이 한국인의 활동무대를 얼마나 크게 넓혔으며 또 새로운 활동무대에서의 외교?경제?문화 활동을 통해 한국의 평화와 안보 및 번영은 물론 국위상승에도 얼마나 크게 이바지했는가를 실증적으로 설명했다. 

이제 종합적으로 말하건대, 그 사이 북방정책에 관한 저술은 충분하다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많이 출판되었으며 이 주제에 관한 우리의 이해理解를 높였다. 그렇지만 노태우 대통령의 북방정책에 관해 여러 논문을 모았거나 어떤 큰 주제를 다루는 가운데 부분적으로 다룬 책은 출판되었으나, 그의 북방정책 그 자체 하나만을 주제로 삼아 처음부터 끝까지 서술한 책은, 더구나 우리가 제1장에서 살필 21개 쟁점에서의 접근과 해답을 종합적으로 시도한 단독 저자의 단행본은 아직 출판되지 않았다.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해, 저자는 저자의 기존 저술들 그리고 학계 동료 연구자들의 저술들과 어느 정도 겹칠 수 있음을 알면서도 집필을 결심했다. 


Ⅳ. 마지막으로 자료수집과 집필을 도와준 몇몇 분에게 감사의 뜻을 나타내고자 한다.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원장을 역임한 국립외교원 원장 박철희朴喆熙 박사는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외교사연구센터가 발행한 ?한국외교협상사례 총서? 전23권(비매품) 한 질帙을 보내주었다. 이 책들은 저자의 한국외교에 대한 안목을 넓혀주었고, 동시에 새로운 안목에서 북방정책을 재조명하게 해줌으로써 이 책의 집필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늘 그러했듯, 단국대학교 죽전캠퍼스의 퇴계기념중앙도서관과 천안캠퍼스의 율곡기념도서관은 이인숙李仁淑 사서와 임예지林叡智 사서의 친절한 배려 아래 저자를 적극 도왔다. 저자의 단국대학교 연구실에서 때때로 조교로 봉직했던 김예지金藝智 조교, 김윤건金潤建 조교, 김주연金奏延 조교, 배종훈 조교, 진하영陳荷永 조교 [가나다 순서] 등은 인터넷검색과 타자를 맡아주었다.

국립대학법인 인천대학교의 학산중앙도서관 역시 법인지원팀의 최형우崔亨宇 전(前) 팀장, 홍현숙洪炫淑 행정관, 신화철申花澈 전(前) 행정관, 김현귀金玹貴 팀장, 김관우金官佑 행정관, 그리고 전재현全宰賢 변호사 등과 연대해 저자를 적극 도왔다.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의 명노승明魯昇 회장,이성섭李聖燮 상임이사, 민병덕閔丙德 사무국장, 이양수李良秀 총무부장, 김영복金英福 총무차장, 정선예鄭善禮 총무담당, 곽민주郭玟周 학예사, 임미선任美善 학예사, 정혜은鄭慧恩 학예사, 고수현高秀賢 대리, 박원익朴願益 연구사, 그리고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의 김진형金鎭亨 부관장의 도움 역시 컸다. 


Ⅴ. 정확하면서도 객관적으로 쓰려고 최선을 다했다. 심지어 북방정책이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지 못하고 오히려 남북관계를 경색시켰다고 비판하면서 실패로 단정한 저술도 분석의 대상에 포함시켰다. 노 대통령과 그의 시대에 관한 야당 인사들의 논평 역시 빠뜨리지 않았다. 

이 책의 내용에 대한 모든 책임은 저자 한 사람에게 있다. 부족한 점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사계의 전문가들과 독자들께서 너그럽게 대하며 가르쳐주시기를 바란다. 


2024년 2월 25일


노태우 대통령이 취임사를 통해 

북방정책의 추진을 공식 선언한 36주년의 날에 

불초 저자 삼가 씀

김 학 준

전 인천대학교 총장, 동아일보사 회장, 한국과학기술원(KAIST) 김보정석좌교수

현 단국대학교 석좌교수

차  례


머리말 2

표기(表記)에 관한 범례 15


제1장 

북방정책의 쟁점들:  

국내외에서 제기된 상반되는 21개 시각



제2장

북방정책의 씨앗들: 

박정희 대통령의 평화공존제의(1970),  7 ․ 4남북공동성명(1972), 6 ‧ 23

선언(1973),  그리고 전두환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 추진(1981~1985) 등


제1절 한반도 분단현실을 인정하기 이전의 남북관계 65

제1항 남과 북에 각각 개별적 국가가 수립되는 과정 65

제2항 두 개의 개별적 국가가 세워지고 전쟁을 거쳐 휴전이  성립된 

시점까지의 시기 68

정전협정의 체결과 제네바회담/70

제3항 남한에서의 평화통일론 등장과 북한에서의 ‘남북련방제’제의 71

제4항 ‘반공’을 ‘국시(國是)’로 내세운 박정희정부의 통일논의 금압과 

김일성의 과격한 군사모험주의 74

김일성의 대응: 남한에서의 지하당 조직과 게릴라 남파/78

주변 강대국의 남북한 군사충돌 억제/79


제2절 두 개의 코리아를 인정하는 방향으로의 미국의 정책전환과 

남북의 대응 80

제1항 박정희 대통령의 남북평화공존 제의와 김대중 후보의  3단계 

평화통일론 제의 81

‘북방정책’이라는 용어의 등장/82

제2항 「7․4남북공동성명」으로 가는 길 84

남북적십자회담의 진행/84

닉슨․저우 공동성명의 발표/87

남북공동성명의 채택/88

제3항 남북공동성명 직후의 남과 북 89

제4항 남의 6․23선언 대(對) 북의 고려련방제 91

김대중총재납치사건의 발생과 남북대화의 전면 중단/94

제5항 언커크 해체 이후 남과 북의 새로운 입장 97

제6항 국제사회의 다자회담안 및 교차승인안 제기 98

베트남의 공산화통일과 김일성의 무력통일론 재등장/98

3자~4자회담안 및 남북교차승인론 재대두와 판문점에서의 

군사적 위기 조성/99

다시 활발해진 3자회담 제의/101

소련, 한국에 대한 우호적 자세 보이다/102


제3절 제5공화국의 남북정상회담 개최 시도 103

제1항 제5공화국 출범 배경과 과정 104

제2항 전두환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 개최 제의 106

북의 「고려민주련방공화국」 대(對) 남의 「남북연합」/106

제3항 ‘화랑계획’의 진행과 좌절 108

노태우 정무장관, 북방정책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다/110

북방정책의 필요성을 자극한 1983년의 사건들/111

북한의 대응/113

제4항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남북밀사들의 활동 114

덩샤오핑, 한국과의 수교 지침 제시/115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비밀협상/117

유엔의 남북한 대표 초청/121

제5항 노태우 후보, 6․29선언 발표와 북방정책 선언 122

5․3인천사태에서 평화의 댐까지/122

한국군 지도자들과 미국정부의 견제/124

민주화선언 발표/125

대통령선거 유세 때 제기된 통일방안들/127

노태우 후보의 당선과 민주화 추진약속/129

「민주화합추진위원회」 구성: ‘광주폭동’을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재평가/131



제3장  

북방정책 추진의 밑거름:  

민주화 진전, 7․7선언, 서울올림픽 성공


제1절 민주화 추진과 ‘보통사람들의 시대’ 개막 135

제1항 민주화의 추진: 권위주의체제의 민주주의체제로의 전환 135

‘성숙한 민주주의의 시대’를 약속/136

권위주의 청산과 ‘보통사람들의 시대’ 구현을 위한 노력/138

인간존엄성 존중 및 기본인권 신장/140

자유언론의 창달과 언론자유화의 진전/141

문학예술작품의 해금(解禁)/142

방송에 대한 규제 대폭 완화/144

언론자유에 대한 기자들의 회상/145

시민사회의 자율성 회복/146

민변과 전노협의 출범/146

지방자치제와 교육지방자치제의 실시/147

자유로운 정당활동의 보장/148

입법부에 대한 존중/149

‘동반협력의 정치’ 제의/151

선거의 공명성 유지를 위한 노력 /153

사정기관의 개혁, 군 정치개입의 억제, 5공청산의 주도/155

사법부의 독립/156

경제에서의 민주화 /158

5개 신도시 272만호 건설과 중산층 형성/159

신국제공항 건설과 경부고속전철 건설 등/159

노사분규 등 사회적 분규에 공권력 투입자제와 「국민경제사회협의회」 

발족/160

제2항 민주화를 추진한 유연하나 과단성 있는 리더십:  ‘참․용․기’와 

‘물태우’론 163

“노 대통령은 장면 씨 이후 처음 보는 민주주의자”/167

한 중견언론인의 평가: “민주화의 디딤돌” 놓은 노 대통령/169

노 대통령이 보여준 “정치는 다수(多數)를 만드는 예술”/170


제2절 민주화 바탕 위에서의 북방정책 추진 172

제1항 북방정책 전담 보좌관실의 신설 172

「북방정책연구소」의 활동/173

제2항 대북․통일정책에서의 새로운 시도: 자료의 개방 174

제3항 북방정책의 이념적 기초인 민족자존에 입각한 몇 가지  조치들 175

용산 미군기지의 평택 이전/176

평시작전통제권 환수 및 군사정전위원회 수석대표의 한국장성으로의 

교체/180

전쟁기념사업회의 출범과 전쟁기념관 개관/181

옛 조선총독관저 부수고 청와대 신축/181

설날의 회복/183


제3절 7․7선언: 대북․통일정책의 대전환 184

제1항 7․7선언의 발표 184

서울올림픽 개최에 대한 북한과 재야운동권의 도전/184

제2항 7․7선언의 내용 187

미국을 통해 소련과 중국에 전달하다/188

제3항 7․7선언의 역사적 의미, 그리고 국내외와 북한의 반응 189

7․7선언 후속으로서의 노태우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 개최 제의와 

김일성 주석의 호응/192

제4절 서울올림픽의 성공 193

제1항 동서 양대진영이 모두 참가한 서울올림픽 193

제2항 “민주화가 서울올림픽의 성공을 가져왔다” 195

제3항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한국 인식을 새롭게 한 소련 196


제5절 유엔총회에서의 ‘한반도평화체제’ 제의 198



제4장  

북방정책의 첫 결실:  

헝가리를 필두로 동유럽 공산국가들 및 몽골 그리고 이라크와의 수교


제1절 헝가리와의 수교 203

제1항 북방정책의 첫 대상으로 헝가리를 선택한 배경 203

역사에서 한국과 비슷했던 헝가리/203

왜 헝가리를 첫 번째 나라로 선정했나?/205

제2항 수교협상 208

북한의 반발/210

제3항 수교 이후 한국과 헝가리의 관계 발전 211


제2절 폴란드 및 유고슬라비아 등 동유럽국가들과의 수교 그리고 몽골 및 

이라크와의 수교 213

제1항 동유럽국가들과의 수교 213

제2항 몽골과의 수교 214

제3항 이라크와의 수교 215





제5장 

북방정책 성공의 상징:  

소련과의 수교, 그리고 소련의 후계국가 러시아연방과의 관계 발전


제1절 고르바초프의 ‘신사고(新思考)’:  개혁과 개방의 시각에 비친 

한반도 219

제1항 소련과의 수교를 중국과의 수교보다 앞세운 배경 219

북한을 대함에 있어 중국보다 부담이 덜 했던 소련/219

제2항 고르바초프의 권력장악이 갖는 의미 222

‘노인정치’ 로부터의 탈피/224

제3항 고르바초프의 ‘신(新)사고’ 225

‘브레즈네프 독트린’의 폐기/227

동아시아에 대한 접근: 크라스노야르스크 연설 등/229


제2절 노태우정부의 초기 대응 232

제1항 모스크바와 서울을 오간 밀사들 232

노 대통령의 친서와 고르바초프의 메시지 교환/232

제2항 공식 통로의 개설 235

제3항 몰타회담에 대비한 부시 대통령과의 협의 237

제4항 고위 당정대표단의 소련방문 239

제5항 미․소 외무장관 회담과 한반도 241


제3절 노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대통령 사이의 샌프란시스코 정상회담 242

제1항 샌프란시스코 정상회담이 열리기까지 242

슐츠 전 미국무장관의 중개/242

도브리닌의 등장과 노 대통령의 도브리닌 접견/244

회담 장소를 둘러싼 협상/248

제2항 한․소수교의 대문을 연 노․고르바초프 정상회담 250

샌프란시스코 도착 첫날/250

긴장된 기다림/251

은유적 화법이 교환된 정상회담/252

사진촬영이 있기까지/255

대조가 된 북한과 중국의 반응/257

제3항 ‘실패론’과 반론 257


제4절 수교, 그리고 노 대통령의 모스크바 방문과 고르바초프의 제주도 

답방 259

제1항 수교를 위한 두 나라 사이의 협상 259

한․소 정부대표자들의 모스크바 회담/259

박철언 장관의 막후교섭/261

제2항 셰바르드나제의 평양방문과 김영남과의 회담 262

북방정책 또는 소련과의 수교가 결과적으로 북한의 핵개발을 촉발

시켰다는 주장/264

앞의 주장에 대한 반론/266

김일성 주석의 대응/268

제3항 유엔에서의 수교합의 270

제4항 노 대통령의 모스크바 방문 272

모스크바 방문을 늦췄어야 했다는 주장과 반론/276

두 나라 사이의 경협회담/277

제5항 고르바초프의 제주도 답방 279

정상회담과 남북한 유엔가입 논의/280


제5절 소련의 붕괴와 러시아연방의 소련승계 그리고 옐친 대통령의 방한 282

제1항 ‘3일천하’로 끝난 소련의 반(反)고르바초프 쿠데타 282

제2항 소련의 해체와 러시아연방의 승계 284

제3항 옐친 대통령의 방한 286

옐친의 정치적 성장과정/286

노 대통령과의 회담: 연해주 개발을 둘러싼 토론/288

옐친의 대한민국 국회에서의 연설/291


제6장  

북방정책의 궁극적 목표인 한반도 평화통일을 향한  큰 걸음: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 발표, 남북고위급회담 진전, 남북한유엔동시가입 실현, 「남북기본합의서」 및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 채택 등


제1절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의 공식화 296

제1항 노 대통령, 통일원에 새로운 대북정책 수립 지시 296

노 대통령의 대북․통일정책에 관한 기본 입장/297

노 대통령과 호흡을 맞춘 이 통일원 장관의 구상/298

제2항 북한의 통일공세와 남한 일각의 호응 300

제3항 노태우정부, ‘체제연합’ 안을 제시하면서 재야운동가들의 

밀입북을 비판하다 303

이홍구 장관과 김대중 총재 사이의 토론/303

‘통일운동가’들의 밀입북/304

임수경 양의 평양축전 참석/305

제4항 보수․우익 일부로부터의 도전 307

제5항 노 대통령,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 발표 308

여야의 협의를 끌어낸 과정: 인내와 포용에 바탕을 둔 노 대통령의 

리더십을 중심으로/309


제2절 남북고위급회담의 시작: 제1차 ~ 제3차 회담 312

제1항 남북고위급회담 개최의 국내외 환경 312

제2항 예비회담의 진행 313

제3항 남북고위급회담의 시작과 진행 315

강영훈 수석대표 대(對) 연형묵 수석대표/316

제1차 회담/317

제2차 회담/320

활발해진 문화․체육 교류/322

제3차 회담/323


제3절 남북의 유엔 동시가입 325

북측 제의의 문제점: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은 한반도 분단 고정화”라는 

허구/325

유엔 회원국들의 동향과 중국의 암시/327

1991년의 상황과 노 대통령의 확고한 의지/329

리펑 중국 총리의 방북과 북한 설득/330

북한의 유엔동시가입 수용 발표/332

남북한의 유엔동시가입 실현/334

노태우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336

한국인의 활발해진 유엔진출/337

유엔 평화유지군에서의 활동/340


제4절 한반도 핵무기 문제와 남북고위급회담의 합의 도달: 제4차 ~ 제8차 

회담 341

제1항 한반도의 핵무기 및 비핵화 문제 341

박정희 대통령의 핵무기 개발 시도와 좌절/342

남한의 핵무기에 대한 북한과 남한 내부에서의 경고/345

제2항 북한의 핵 연구와 개발의 역사 348

조․소과학기술협력협정의 의미/349

두브나연구소 창립 참여와 전문가 파견/350

소련의 북한 핵 과학자 육성 지원/351

남한에서의 반북적 군사정권의 출범과 북한의 대응/353

소련의 대북 원자로 지원/354

1970년대 후반의 국제정치 상황과 북한의 핵무기 개발 착수/355

미국과 프랑스에 의해 포착된 북한 핵개발/356

제3항 남북고위급회담 재개 직전의 동아시아 국제관계: 특히 미국과 

한국의 비핵화 조치 선언 그리고 중국과 북한의 새로운 관계 

정립 357

북한 핵개발에 대한 의혹의 표면화/357

미국에서의 남한 핵무기 철수론 등장/358

국제원자력기구의 개입/360

노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의 한반도비핵화 합의/361

중국의 북한 핵개발 반대와 김일성의 방중/363

제4항 제4차 남북고위급회담 365

제5항 제5차 남북고위급회담: 「남북기본합의서」채택 367

「한[조선]반도비핵화공동선언」 가서명/370

제6항 제6차 남북고위급회담: 「한[조선]반도비핵화공동선언」 발효 373

제7항 제7차 남북고위급회담 374

제8항 제8차 남북고위급회담 378

「남북고위급회담」총결산/382



제7장  

북방정책의 대단원: 

중국과의 수교 그리고 베트남과의 수교


제1절 중화인민공화국과의 수교 이전의 남북한과 중국 387

제1항 중국에게 한반도가 갖는 의미 387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 순망치한(脣亡齒寒)의 시각/387

조선=한국인의 독립운동에 대한 중국국민당 및 중국공산당의 지원/388

조선=한국의 독립을 뒷받침한 중화민국/389

제2항 일제패망 이후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직전까지의 남북한 그리고 

중국국민당 및 중국공산당 390

대한민국의 중화민국과의 관계 /393

제3항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 이후 395

북한․중공 외교관계 수립/395

중공의 대륙장악과 한국정부의 대응/396

6․25전쟁과 중공/397

제4항 휴전 이후 대한민국의 중화인민공화국과의 수교 이전 남북한의 

중국과의 관계 399

덩샤오핑의 집권 이전 (1): 미․중공 상하이공동성명 이전/399

덩샤오핑의 집권 이전 (2): 닉슨 방중과 남북한의 대중관계/402

덩샤오핑의 집권 이후 /403


제2절 중화인민공화국과의 수교 404

제1항 수교를 향한 교섭창구의 정비 404

중화민국의 대응: ‘이중승인’과 ‘무실외교’/405

한․중외무장관, 수교를 거론/406

제2항 무역대표부의 상호 개설 407

중화민국의 관심표명/410

제3항 한․중 사이의 공식회담 진행 410

제4항 노태우 대통령의 첸지천 외교부장 접견 412

중국 외교부장의 최초 방한/412

노 대통령의 실리론 및 의리론 전개/413

제5항 제2차 한․중 외무장관회담 및 미․중 외무장관회담 415

중국측의 호의적 변화/417

첸지천 외교부장, 한․중수교 논의 시사/419

제6항 중화인민공화국과의 수교협상 420

첸지천 외교부장, 이상옥 장관에게 수교협상 제의/420

예비회담 준비/422

중화민국정부의 거듭된 문의/423

제7항 한․중 예비회담에서의 합의 424

첸지천 부장의 방북과 김일성 주석 설득/425

두 나라 외무장관, 수교합의문 서명과 발표/426

총영사관의 개설/429

한중수교의 의미/429

한․중수교와 한․소수교 비교/430

제8항 노태우 대통령의 중화인민공화국 국빈방문 431

노 대통령의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 방문/432

제9항 중화민국과의 단교에 대한 진사사절단의 파견 그리고 대표부의 

교환개설 433


제3절 베트남과의 수교 이전의 베트남과 남북한 435

제1항 「베트남민주공화국」성립 전후 시기의 베트남과 호찌민 435

베트남의 지리와 자원/435

신라 때부터 대한제국 때까지 베트남과의 관계/436

호찌민의 「베트남독립동맹」 결성과 「베트남민주공화국」 건국/437

제2항 제1차 인도차이나전쟁 승전과 제네바협정 439

제3항 제네바협정 이후 남북베트남 441

「베트남공화국」의 출범과 응오딘지엠정권의 통치/441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 결성/443

미국이 지원한 쿠데타에 의한 지엠정권의 붕괴/443

제4항 제2차 인도차이나전쟁과 한국의 참전 444


제4절 베트남과의 수교 448

제1항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의 수립과 남북한 448

베트남과 남북한/449

제2항 한국과 베트남 수교의 배경 450

대한민국 외교관 3인의 억류 그리고 석방을 둘러싼 협상/450

베트남 내부에서의 변화: 개혁개방정책의 추구와 한국에의 협력요청/453

제3항 베트남이 먼저 제의한 수교 456

제4항 한국정부의 「베트남정세조사단」 파견 458

제5항 통상대표부 개설을 거쳐 국교 수립으로 462



제8장  

맺음말: 

노태우정부 이후의 북방정책 및 남북한관계 재조명과 교훈


제1절 노태우정부 5년과 이후 일곱 정부 31년의 비교 467

평화의 노태우 5년/467

김영삼정부 출범 직후 시작된 ‘북핵 위기’와 전쟁론 /470

결국 문서의 합의로만 끝난 김영삼정부 이후의 여러 합의/473

제2절 북한정권의 본질: 국가폭력과 거짓 그리고 극단의 불평등 477

독일사회민주당의 반성이 주는 울림/477

‘전체주의적 독재체제’론에 적합한 북한/478

북한정권의 본질에 관한 평양주재영국대사관 외교관 부인의 증언/481

북한정권의 본질에 대한 인식을 오도한 서방세계의 대표적 저술들/483


제3절 한국 역대정부의 대북정책 출발점 재검토 484

단일민족론: ‘우리 민족끼리’ 및 ‘민족공조’/485

수렴론 대 이산론/489

‘희망적 사고(思考)’로 귀결된 우리의 기대/492


제4절 ‘민족’과 ‘통일’을 부인하며 본심을 드러낸 김정은 493

남한과 북한은 같은 민족이 아니라는 김정은의 공식 발언/493

정권붕괴를 두려워하는 김정은의 속셈/495

‘실패한 국가’ 북한과 ‘성공한 국가’ 남한/497


제5절 대한민국의 대응: 대내외정책에 대한 사색 503

제1항 국내정치의 성찰: 민주주의의 진전을 위한 고뇌 503

국내정치의 현황에 대해 제기된 문제들/503

민주주의 진전 위에서의 현능(賢能)한 국가경영/508

민주주의의 진전을 위한 자기반성/508

자성 또는 고백 1: 서방권의 경우/510

자성 또는 고백 2: 한국의 경우/514

계층 사이의 위화감을 줄이는 정치/516

제2항 ‘전쟁의 시대’ 또는 ‘위험한 세계’ 속에서의 외교의 부활 517

제3항 북핵에 대한 대응을 둘러싼 논의 519

제4항 남북한 통일은 언제 올 것인가?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여전히 유효하다 522

제5항 러시아 학자의 ‘한․러 공생국가’ 구상 그리고 한국을 닮아가는 

몽골 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