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3쇄발행 2024.01.31
초판2쇄발행 2022.10.20
초판발행 2022.02.20
근대 민주주의를 만든 것은 정당이고 정당을 제외하고는 민주주의를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 서구에서 정당을 바라보는 관점이지만, 우리나라에서 정당은 오랫동안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근대 민주주의의 산물인 정당을 조선 시대의 붕당(朋黨)이나 사색당파(四色黨派)와 동일시하거나, 국가적 ‘총화(總和)’를 해치는 분열적 도당(徒黨)으로 비판받았다. 현실 정치에서 나타나는 정당 정치의 모습도 긍정적이지 않았다. 권위주의 시대에는 권력자가 통치 도구로 정당을 만들어냈고, 민주화 이후에는 김영삼, 김대중 같은 정치리더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한 선거 머신으로 정당이 활용되었다. 시민사회와 국가를 이어주는 연계 고리의 역할을 하는 것이 정당이지만,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바라보는 정당의 위치는 언제나 국가 쪽으로 편향되어 있었다. 이런 왜곡된 인식은 1962년 제정된 정당법으로부터도 영향을 받았다. 정당은 시민들이 자율적으로 결성할 수 있는 정치 결사체라기보다 국가 영역의 한 기구이거나 법적 규제 대상이라는 시각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해방과 함께 본격적인 정당 정치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우리 정치에서 정당의 역사는 결코 짧다고 할 수 없다. 더욱이 정당을 바라보는 부정적 인식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치사에서 정당은 나름대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 왔다. 예를 들면, 민주화 과정에서 ‘대통령 직선제’ 어젠더를 설정하고 이에 대한 정치적 협약을 이끌어 낸 것도, 또 뒤이은 개헌 과정을 통해 오늘날의 정치 질서를 만들어 낸 것도 당시의 여야 정당이었다.
최근 정치학계에서 정치과정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진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것은 한국 민주주의의 진전과 함께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당 정치 그 자체를 대상으로 삼는 연구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새로운 정당의 출현이나 정당 조직에 대한 다양한 시도를 어렵게 하는 법적, 제도적 규제가 학문적 흥미를 이끌어 낼 만한 정당 정치의 역동성과 다양성을 제약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근본적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주기적으로 계량적 데이터가 만들어지는 선거 연구에 비해 본질적으로 폐쇄적이고 유동적인 정당 정치에 대한 자료 접근이 쉽지 않다는 점도 정당 연구를 어렵게 한 또 다른 이유이다. 여기에 더해 우리 정치학계에 미치는 미국의 영향도 한몫을 했다. 미국에서는 민주당, 공화당이라는 두 정당이 ‘제도적 상수’로 존재하기 때문에 새로운 정당의 출현이나 그로 인한 정당 체계의 변화와 같은 역동성을 찾기 어렵다. 연방제로 인해 분권화된 정당 구조를 가지며 유럽과 달리 사회주의 정당이 등장하지 않았다는 점도 미국 정치학에서 정당과 관련된 비교정치학적 연구가 상대적으로 덜 활발했던 이유일 것이다. 그 대신 고정된 두 정당 사이에서 변화하는 유권자의 선택과 관련된 미시적 연구와 방법론이 미국에서 발전되어 왔다. 이러한 미국 정치학의 연구 경향이 우리 학계에도 영향을 미쳐왔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이 책에서는 정당 정치가 갖는 다양한 속성과 역동성을 소개하고자 했다. 정당의 기원, 정당 계보에 대한 논의부터, 파벌, 야당, 정당의 미래 등 그동안 상대적으로 많은 논의가 이뤄지지 못했던 여러 주제를 이 책에서 다뤘다. 그러나 이 책에서의 관심은 결국 한국의 정당 정치이기 때문에 각 주제에 대한 서구에서의 경험과 논의와 연관하여 한국의 사례를 설명해 보고자 했다. 한국 정치에 대한 올바른 분석을 위해서는 비교정치학적 관점에서 우리의 경험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 나의 오래된 학문적 입장이다. 이 책은 여러 해 동안 학부의 정당론 수업, 그리고 대학원에서의 비교정당론 세미나에서의 논의에 기초해 있다. 신선하고 창의적인 질문과 토론으로 좋은 자극을 준 학생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정당론을 강의할 때 도움이 되는 걸 염두에 두고 쓰기는 했지만, 사실 이 책은 정당 정치의 각 주제에 대한 일종의 연구 노트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정당 정치에 관심이 있는 일반 독자들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도록 써 보려고 노력했다. 정당의 역할에 대한 시민의 올바른 인식이 한국 민주주의의 진전에 매우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책을 쓰면서 대학 시절 정당론 수업을 들었을 때의 기억이 났다. 당시 사르토리(Sartori 1976)의 그 유명한 책이 교재였는데, 어려운 영어에 쩔쩔매면서도 정당이 그토록 정치(精緻)한 학문적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데 깊은 인상을 받았다. 당시 한국은 전두환 정권이 ‘제조(製造)한’ 하나의 여당과 두 개의 야당이 존재하던 시절이었다. 많은 일깨움을 주신 이정복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또한 내가 연구자로 첫발을 뗄 때부터 정당 연구자로서 모범을 보여주시고 많은 가르침을 주신 심지연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정당 연구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제시하고 또 빼어난 학문적 성취로 지적 자극을 주신 김용호, 김수진, 마인섭, 정진민 교수님께도 감사드린다. 정당연구회 시절부터 정당 연구에 애정을 갖고 활발한 연구 활동을 하면서 귀중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장훈, 이현출, 곽진영 교수께도 이 기회를 빌려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겸양의 표현이 아니라, 이 책을 쓰면서 정말로 나의 부족함을 절감했다. 특히 최근 서구 민주주의에서 나타나는 극우 정당, 포퓰리즘 정당의 부상, 신생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당 정치의 변화,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는 민주주의 위기 조짐 등 새로운 현상의 원인을 분석하고 그 원인을 규명하려는 수많은 연구가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오지만 그 연구 성과를 충분히 이 책 속에 반영하기 어려웠다. 또한 노력은 했지만 우리 정당 정치를 비교정치학의 틀 속에서 설명해 내는 일도 만족스럽지 못했다. 부족함을 알지만 일단 한걸음 발을 떼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되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이대로 책을 내기로 했다. 향후 부족한 점은 보완해 나가도록 하겠다.
이번에도 박영사의 신세를 지게 됐다. 원래 약속했던 때보다 원고의 마무리가 많이 늦어졌다. 오랫동안 기다리게 해서 미안했고, 묵묵히 기다려 준 데에 대해 고맙게 생각한다. 항상 밝은 모습으로 격려해 주는 이영조 팀장과 깔끔하게 책을 만들어 준 양수정 님께 감사드린다.
평소에 정치적 불신을 일으키는 한국 정치의 문제점이 대부분 정당 정치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해 왔다. 실제로 최근 우리가 겪고 있는 정파적 양극화나 극단적 대립의 정치 역시 폐쇄적인 양당제적 구도와 무관하지 않으며, 그만큼 보다 개방적이고 경쟁적 정당 정치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일깨워 주고 있다. 보다 나은 한국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 정치과정에서 차지하는 정당의 중요성을 깨닫고 정당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애정과 관심을 갖는 일이 필요하다. 이 책이 그러한 인식 변화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2022. 2.
학송재(壑松齋)에서 강원택
강원택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서울대 지리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후, 영국 런던정경대학(LSE)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에서 정당, 한국정치, 선거를 연구하고 가르치고 있으며, 한국정치학회장(2016)과 한국정당학회장(2010)을 역임했다. 지은 책으로는 한국정치론(박영사 2018), 한국정치의 결정적 순간들(21세기북스 2019), 한국의 선거 정치 2010–2020: 천안함 사건에서 코로나 사태까지(푸른길 2020), 보수는 어떻게 살아남았나: 영국 보수당 300년, 몰락과 재기의 역사(21세기북스 2020) 등 다수가 있다.
제1장 정당의 기능 3
1. 정당이란 무엇인가 3
2. 정당의 기능 6
3. 한국에서 정당의 기능 22
제2장 정당의 기원 29
1. 제도적 관점 30
2. 역사적-상황적 관점에서 정당의 기원 40
3. 한국 정당의 기원 42
제3장 균열과 정당 51
1. 립셋과 록칸 51
2. 한국 정치에 대한 립셋-록칸 이론의 적용 55
3. 균열 이론에 대한 비판 65
제4장 이념과 정당 73
1. 폰 바이메의 정당 계보(familes spirituelles) 74
2. 이념의 공간 모델 88
3. 한국에서의 정당 이념 91
제5장 정당체계 97
1. 정당체계의 구분 98
2. 한국의 정당체계 110
제6장 정당의 조직 121
1. 뒤베르제 121
2. 포괄정당 126
3. 우파로부터의 전염 128
4. 선거-전문가 정당 129
5. 카르텔 정당 132
6. 현대적 명사정당 134
7. 기업형 정당 138
8. 득표 추구 정당, 정책 추구 정당, 공직 추구 정당 141
9. 한국에서의 정당 조직 144
제7장 정당의 공직 후보 선출 155
1. 공직 후보 선출 방식 157
2. 공직 후보의 자격 167
3. 공직 후보 선출의 분권화 168
4. 공천의 개방화, 분권화의 이유 170
5. 한국 정당의 공직 후보 선출 172
제8장 여당 179
1. 의회제 국가와 정당 정부 180
2. 대통령제 184
3. 이원정부제 190
4. 한국의 여당 192
제9장 야당 203
1. 정치적 반대와 다원주의 204
2. 야당과 정치체계 207
3. 한국의 야당 211
제10장 정당과 파벌 227
1. 파벌의 구분 230
2. 파벌 발생의 원인 237
3. 파벌의 기능 239
4. 한국 정당에서의 파벌 242
제11장 정당 정치의 변화와 새로운 정당 249
1. 조용한 혁명(silent revolution) 252
2. 조용한 반혁명 253
3. 좌파-자유지상주의 대 우파-권위주의 255
4. 포퓰리즘 258
5. 극우정당/포퓰리즘 정당 부상의 원인 261
6. 한국의 경우 266
제12장 정당의 미래 271
1. 정당의 위기 272
2. 정당 위기의 의미 278
3. 정당은 정말 위기일까? 281
4. 한국의 경우 2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