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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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 게임이론
신간
와일드 게임이론
저자
이양승
역자
-
분야
경제학 ▷ 경제학일반
출판사
박영사
발행일
2021.08.30
개정 출간예정일
페이지
408P
판형
신A5판
ISBN
979-11-303-1352-8
부가기호
93320
강의자료다운
-
정가
24,000원

초판발행 2021.08.30


이 책의 제목은 ‘와일드 게임이론’이다. 먼저 와일드(wild)한 게임들을 강조한다. 와일드한 게임들을 분석해서 그런지 몰라도 이 책도 자연스레 와일드해지고 말았다. 반성이지만 책을 내기 위한 준비기간이 너무 짧았다. 많은 것들이 부족하고 그래서 와일드하단 말이 더 잘 어울릴 수 있다. 이론서로 여기기엔 말 그대로 이 책은 너무 와일드하다. 비전문가들을 위해 게임이론에 대한 교양을 제공하려는 목적이 있는데 일단 재미가 좀 있었으면 좋겠다. 잠깐 야구 얘기를 해볼까 한다. 야구에서 폭투를 ‘와일드 피치(wild pitch)’라고 한다. 말 그대로 투구가 와일드하다는 뜻이다. ‘투수가 일부러 그렇게 던지진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실은 일부러 그렇게 던지기도 한다. 전략이다. 그럼 타자도 와일드해진다. 그리고 결국은 경기 자체가 와일드해진다. 선수들 간에 주먹다짐이 일어나기도 한다. 투수에게 타자에게 도덕성을 요구해봐야 아무 소용없다. 와일드한 플레이가 최선이 전략이기 때문에 그렇다. 와일드카드(wild card) 경기에선 선수들이 더 와일드해진다. 때로는 월드시리즈보다 와일드카드 경기가 더 재밌을 때가 있다. 월드시리즈는 말 그대로 7전4선승제 시리즈이지만 와일드카드 결정전은 단판승부이다. 일회적이다. ‘원샷’게임이다. 일회적 게임은 경기자들을 와일드 하게 만든다. 말 그대로 단판승부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다음 게임이 없기 때문이다. 자세한 이유는 본문에서 배울 것이다. 미국 메이저리그에 30개의 야구 팀들이 있다. 아메리칸 리그 15개 팀 그리고 내셔널 리그 15개 팀이다. 각 리그는 다시 5개 팀들을 묶어 동부, 중부, 서부 세 개 지구로 나눈다. 류현진 선수가 소속된 토론토 블루제이스는 아메리칸 리그 동부 지구에 속한다. 그 지구에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가 같이 들어가 있다. 뉴욕과 보스턴 두 팀은 사이가 별로 안 좋다. ‘밤비노의 저주’란 말이 있다. 1920년 1월 보스턴은 간판선수 ‘베이비 루스’가 늙어간다고 생각하자 뉴욕으로 팔아버렸다. 지난 5년간 보스턴이 세 번이나 월드챔피언이 되도록 열심히 뛰었는데 보스턴은 그에게 너무 야속했다. 공교롭게도 보스턴은 그 이후부터 뭔가가 꼬이기 시작하면서 2004년까지 월드시리즈 우승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반면, 1920년에 뉴욕으로 간 베이비 루스의 방망이는 그때부터 절정기가 시작됐다. 이전까지 한 번도 우승을 해본 적이 없었던 양키스는 베이브 루스 활약에 힘입어 명문구단으로 발돋움하며 2002년까지 26번의 월드챔피언이 되었다. 밤비노는 베이비 루스의 애칭이다. 사람들은 보스턴이 베이비 루스를 뉴욕에 팔아넘기면서 그의 저주가 내렸다고 수군댔다. 그래서 ‘밤비노의 저주’였다. 두 팀은 지금도 경쟁을 벌이고 있는데 가끔씩 집단 난투극이 벌어지기도 한다. 규칙이 있다. 포스트 시즌에 들어가려면 각 지구에서 1등을 해야 한다. 지구 1등을 하면 모든 것이 순조롭다. 반면 지구 1등을 못하면 그 팀은 와일드카드 레이스에 들어 가야한다. 즉, 각 지구 1등 경쟁에서 탈락한 팀들 중에 가장 높은 승률을 올린 팀에게 디비전시리즈 출전권을 준다.

와일드 카드
그래서 와일드카드다. 패자부활전, 즉 2등 경쟁이다. 패자들이 몰렸다고 해서 그 와일드카드 레이스가 쉬울거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약팀들이 모여있는 지구도 있고 강팀들이 모여 있는 지구도 있다. 뉴욕과 보스턴이 속한 아메리칸 리그 동부 지구가 그런 경우이다. 패자들은 마지막 카드 한 장이 절박하기에 패기 넘친다. 그래서 모든 것이 와일드하다. 팀들은 진 빠지는 와일드카드 레이스를 피하고 싶다. 실제 경우에 따라선 지구 1등을 노리는 것이 오히려 쉽다. 와일드카드로 포스트 시즌에 진출한 팀이 그 기세를 몰아 월드시리즈까지 우승한 경우도 많다. 지금은 제도가 바뀌어 1등 경쟁에서 탈락한 팀들 중에 두 팀을 뽑아 다시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치르게 한다. 와일드카드 팀이 포함되어 각 리그당 네 팀이 5전3선승제 디비전 시리즈를 치른다. 그 다음 리그 챔피언십에 올라 7전4선승제 승부를 벌이고 양 리그 우승팀들이 7전4선승제 월드시리즈를 벌인다.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는 우승 욕심이 가장 많은 두 팀이다. 돈을 가장 많이 쓰는 두 팀이라고 봐도 된다. 그런 두 팀이 동부지구에 나란히 들어가 있다. 그리고 동시에 지구 1등을 노린다. 둘 중에 한 팀은 와일드카드를 노려야 된다. 그리고 리그 챔피언십에서 두 팀이 다시 격돌한다. 보스턴이 월드시리즈에 진출하려면 반드시 뉴욕을 꺾어야 한다. 그런데 보스턴은 잘하다가도 뉴욕만 만나면 힘이 빠졌다. 선수를 영입하고 만반의 준비를 해 객관적 전력이 앞선다고 해도 뉴욕만 만나면 깨지고 말았다. 그럴수록 보스턴 팬들은 까칠해져갔다. 자기들이 응원하는 보스턴 팀 선수라도 한 번 실수하면 온갖 욕을 퍼붓고 야단을 냈다. 선수들은 주눅 들었고 팀 경영은 더 고집스러워졌다. 선수들은 대부분 보스턴 팀을 싫어했다. 팬들과 불화를 일으키는 선수도 많았고 매니 라미레즈라는 선수는 공개적으로 자신을 트레이드 시켜달라고 작은 소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2004년 저주가 깨졌다. 저주를 깬 것은 테오 엡스테인이라는 32살의 젊은 단장이었다. 그는 선수 출신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보스턴을 완전히 새로운 팀으로 만들어 놓았다. 2003년 리그 챔피언십은 정말 보스턴이 이길 것 같았다. 하지만 7차전에서 10회 애론 분(현 양키스 감독)에게 역전 끝내기 홈런을 맞고 뉴욕에게 다시 무너졌을 때 보스턴에 우울증 환자가 증가했다고 한다. 그 이듬해 귀때기 새파란 테오 엡스테인이 부임했을 때 팬들의 기대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2004년 이후 보스턴 레드삭스는 완전히 달라졌다. 2012년 시즌부터 그는 시카고 컵스 단장으로 부임했다. 한국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실제 ‘밤비노의 저주’보다 더 오래된 것은 시카고 컵스의 ‘염소의 저주’였다. 2016년 테오 엡스테인은 108년간 시카고에 남아있던 그 저주마저 깨트렸다. 그가 저주를 깬 것은 그가 직접 야구를 잘해서가 아니다. 대신 그는 모든 게임들을 정확히 분석했다. 게임이론 시각에서 보면 그 저주들은 조정실패 상황과 유사했다. 그는 철저히 과학과 수학에 의존했다. 무조건 몸값 비싼 선수에 의존하지 않았고 대신 각 선수에게 정확한 역할을 맡겼다. 저주는 없었다. 전략이 없었을 뿐이었다. 보스턴은 항상 와일드카드였다. 승리가 절박했다. 절박한 팀은 모든 것이 와일드해진다. 심지어 관중들도 와일드해진다. 승리를 위해 전략보다 선수들의 투혼을 강조한다. 선수가 실수하면 투혼이 없어서라고 몰아붙인다. 그럴수록 승리는 더 멀어진다. 멀어질수록 더 집착한다. 선수도 팬들도 더 까칠해지고 예민해진다. 어느새 패배주의가 파고든다. 패배주의는 전염된다. 어차피 해도 안 될 거라는 생각이 번지면서 선수들의 플레이를 비웃는 사람들도 나온다. 지금의 한국은 2004년 이전 보스턴 레드삭스와 어딘가 닮아있다. 레드삭스는 꼴찌 팀이 아니다. 차라리 꼴찌 팀이라면 패배감이 깊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해도 1등이 될 수 없는 더 기분 나쁜 패배감이다. 요즘은 한국을 ‘헬조선’이라고 칭하는 사람들까지 있다. 어쩌다 동방예의지국 또는 조용한 아침의 나라가 헬조선이 되고 말았을까? ‘헬조선’이란 말은 ‘밤비노의 저주’ 또는 ‘염소의 저주’란 말처럼 패배주의 다른 표현일 수도 있다. 야구 팀들에게 내려진 그 저주들과 패배주의는 야구에만 국한됐다. 그렇다고 보스턴과 시카고가 살기가 힘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야구에 관심 끊는 팬들이 늘어났을 뿐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헬조선’이란 사회경제학적 의미를 담는 용어이다. ‘헬’은 지옥이란 뜻이다. 한국이 얼마나 싫었으면 지옥이라고 할까 싶다. 원인이 있을 것이다. 원인은 무엇일까? 이 질문은 한국인들에게 지리한 말싸움을 촉발시킬 수 있다. 이념과 연결지을 수도 있다. 게임이론 관점에서 보면 헬조선은 이념 또는 정책과 무관하다. 게임 방식이 문제일 뿐이다. 한국은 모든 것이 등수경쟁이다. 이미 살펴봤지만 등수경쟁은 토너먼트이다. 그래서 필요할 때마다 와일드카드 결정전들을 만들어낸다. 즉, 2등 경쟁들이다. 그러한 2등 경쟁들이 조용한 아침의 나라 한국을 지옥으로 만들어놓았다는 것이 결론이다. 2등 경쟁은 1등 경쟁보다 와일드하다. 비열해지기도 한다. 즉, 갑을 향한 도전이 아니고 을들 중에 갑이 되기 위한 경쟁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사대주의도 실은 2등 경쟁이었다. 1등 문화국 중화에 이어 조선이 2등 문화국이 되려는 포부였다고 한다. 그래서 모화사상이라고도 한다. 뼛속 깊은 반일감정은 2등 지위를 언더독(underdog) 3등에게 뺏기고 나서 느끼는 그 기분 나쁜 패배감과 비슷하다. 지금도 한국은 여전히 와일드카드이다. 1등이 못되는 2등은 차별의식이 더 깊어진다. 한국의 갑을문화는 우연히 나타난 것이 아니다. 수많은 을들이 갑은 따로 모셔놓고 자기들끼리 경쟁을 벌인 결과 갑을관계가 굳어진 것이다. 2등 경쟁은 스포츠 리그에서 벌이는 것이다. 한데 한국에선 그러한 2등 경쟁들이 사회 모든 구석에 보편화되어 있으니 어찌 지옥이 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럼 어떻게 헬조선을 탈출할 수 있을까?
결론이다. 허탈하지만 한국은 헬조선을 벗어날 수 없다. 많은 정치인들이 헬조선을 바꾸겠다고 선무당처럼 나서겠지만 절대 성공할 수 없음을 꼭 지적하고 싶다. 헬조선이란 결과 그 자체가 게임이론에서 말하는 균형상태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면 불균형과 연결시키기 쉽다. 하지만 한국의 문제들은 불균형이 아니라 균형상태에서 나타난 것이기에 바꿀 수 없다. 한국인들은 곧잘 어떤 딜레마 상황에 봉착할 때 ‘누구 하나 나서지 않는다’라는 표현을 자주 한다. 이 말은 매우 직관적이다. 실제로 게임이론에서 가장 기본 개념이 내쉬균형인데 그 균형상태의 가장 큰 특징은 어느 경기자도 그 균형에서 홀로 이탈할 유인이 없다는 것이다. 홀로 이탈하면 자신의 이득이 해쳐지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의 그와 같은 표현은 그 상태가 균형을 실현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즉, 어느 누구도 나설 유인이 없다. 자세한 얘기는 본문에서 할 것이다. 이 책의 가장 큰 목적은 비전공자들에게 게임이론을 재미있게 소개하는 것이다. 한국은 게임이론을 익히는 데 매우 유리한 환경이다. 왜냐하면 치열한 경쟁 속에 한국인들의 하루가 게임으로 시작해서 게임으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신경전이라도 벌어진다. 즉, 모든 것이 게임 상황이다. 여기서 한가지 포인트가 있다. 승부를 벌일 때 한국인들의 투혼이 대단하지만 게임이 무엇인지 왜 게임을 벌여야 되는지에 대해 원론적 이해가 결여되어 있다. 그럼 게임은 뭘까? 일단 게임이론을 소개하기 위해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삼국지 얘기를 조금만 해보자.

조조의 계륵: 딜레마와 지배전략
계륵은 ‘닭갈비’라는 뜻이다. 삼국지에 나온다. 한때 조조는 유비와 한중 땅을 놓고 다투고 있었는데 진격이냐 철군이냐를 놓고 고민이 깊었다. 늦은 밤 암호를 묻기 위해 찾아온 수하 장수 하후돈에게 조조는 계륵이라고만 답했다. 하후돈은 돌아가 암호가 왜 계륵인지 아래 장수들과 얘기해봤지만 아무도 그 뜻을 알지 못했다. 그 중에 양수란 이가 잘난 체 나서더니 하후돈에게 곧 철군결정이 내려질 것이니 늦기 전에 미리 짐을 싸두라고 했다. 하후돈이 무슨 뜻이냐고 양수에게 묻자 그는 닭갈비란 커서 버리기엔 아깝고 막상 먹으려면 먹을 것이 없다고 일러줬다. 즉, 조조가 한중 땅을 닭갈비처럼 여기고 있다는 뜻인데 먹을 것이 없는 이상 결국 철군을 결정할 것으로 내다본 것이다. 양수가 맞았다. 이튿날 조조는 한중 땅에서 철군을 결정했다. 계륵이라는 암호는 조조의 딜레마를 반영한다. 진격 또는 철군? 진격을 위해선 승산을 따져봐야 한다. 승산이 높으면 진격, 아니면 철군…. 그래서 조조가 승산을 재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아니다. 조조는 이기고 난 다음을 생각해본 것이다. 결론은 양수가 내다본 대로였다. 즉, 이겨도 얻을 것이 없었다. 아무리 한중 땅이 외지고 험하다 하더라도 조조는 싸움이라면 일단 자신 있었다. 마음 같아선 쫓아가서 유비를 혼쭐내고 싶었지만 유비는 심리전에 능했다. 선동도 잘했다. 가는 곳마다 얼마나 조조 욕을 해놨는지 한중 땅 사람들이 조조라면 이를 갈았다. 그런 싸움은 하나마나였다. 이긴다 해도 백성들이 조조를 마음으로 따르지 않기 때문에 지키기가 더 어렵다. 그 틈을 타 북쪽 유목민들이 중원으로 내려오면 그야말로 큰일이었다. 그래서 조조는 마음속으로 철군을 결정해놓고 있었는데 부산 떠는 하후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하후돈은 어렸을 때부터 조조를 친형처럼 알고 따라다녔고 충성심이 깊었다. 조조는 그를 잘 알았다. 부산 떨 사람이 아니었다. 소문이지만 원래 조조가 하후 씨란 말도 있다. 어쨌든 조조가 뭔가 이상해서 불러 자초지종을 물었더니 하후돈이 양수가 한 말을 조랑조랑 들려줬다. 양수는 원래도 조조에게 찍혔었다. 조조가 왕위를 누구에게 물려줄까 고민할 때 양수가 차남 조식 편에 붙어 집안을 토막 낸 적이 있었다. 그 이후 장남 조비는 조식의 꼴도 안 보려고 했다. 그런 양수가 이번엔 어리숙한 하후돈을 조종했다고 생각하니 조조는 화가 치밀어 양수를 참수하고 말았다. 삼국지에선 조조가 양수의 재주를 시기해서 죽인 것으로 나오지만 조조가 볼 때 양수는 위험한 사람이었다. 길었지만 대충 여기까지가 조조의 계륵에 관한 일화이다.

모든 것은 게임이다
게임이론으로 풀면 인간사 모든 것이 게임이라고 볼 수 있다. 즉, 두 명 이상이 모여 있는 상태면 게임 상황으로 표현할 수 있다. 계륵에 관한 일화엔 많은 게임들이 녹아있다. 가장 크게는 천하를 놓고 벌이는 조조와 유비의 게임이다. 조조 내부에선 왕위를 잇기 위해 두 왕자, 조비와 조식이 치열한 권력 게임을 벌였다. 아우인 조식이 형 조비보다 재주가 나았다고 하나 아우는 아우였다. 조식은 특히 문재가 뛰어났고 조비는 노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한때 조조는 조식에게 왕위를 물려주겠다고 마음먹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포기했다. 자신의 경쟁자였던 원소와 유표가 장남 대신 차남을 후계자로 올렸다가 집안이 가루가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속 깊은 가후도 어쩔 수 없다며 조비 편을 들었다. 그렇게 된 이상 조식이 모양 좋게 왕위를 형에게 양보하고 형을 도와 같이 태평성대를 이루면 조조로서는 더 바랄 것이 없었다. 그런데 눈치 빠른 양수가 조식에게 귓속말을 해대면서 집안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조식이 글재주는 뛰어났지만 신하들을 다스리기엔 너무 순수한 데가 있었다. 그대로 두면 양수가 조식을 허수아비 왕으로 만들고 말겠다는 생각이 들자 조조는 양수를 살려둘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조조가 일부러 양수를 한중 땅까지 데리고 갔다는 말도 있다. 책의 후반부에서 신호주기 게임에 대해 설명하겠지만 조조의 그와 같은 조치는 대신들에게 후계구도를 재론하지 말라는 강력한 신호를 날렸다. 이 책은 게임이론에 관한 이야기를 할 것이다. 게임이론으로 설명하면 조조는 ‘계륵’이라는 딜레마 상황을 지배전략 개념을 활용해 해결했다. 즉, 진격을 하고 난 다음 두 가지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 이기거나 아니면 지거나. 설령 이긴다 한들 얻을 것이 없다고 해보자. 경영자 입장에서 볼 때 투자비용이 너무 많이 들면 그 투자가 성공한다 해도 별로 의미가 없다. 투자한 비용보다 이윤이 적기 때문이다. 만약 그 투자가 성공하지 못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조조 입장도 마찬가지였다. 싸워서 이긴다 해도 얻을 것이 없는데 싸워서 지면 어떻게 될까? 말할 것도 없이 최악의 경우이다. 그래서 조조에겐 철군이 지배전략이었다. 양수는 그런 조조의 전략 결정을 예측했다. 그래서 하후돈에게 자신의 식견을 과시했다. 조조는 사람들이 자기 속내를 몰라주길 바랐다.

게임이론은 경기자들의 행동을 예측한다. 양수는 늘 조조의 행동을 예측해서 자랑했다. 그래서 미움을 샀다. 때로는 알아도 모른척하는 것이 처세 방법일듯 하다. 게임이란 말은 사람들에게 묘한 흥분감을 준다. 승부가 나기 때문이다. 삼국지가 인기가 많은 이유는 과장도 있지만 승부가 주는 묘미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패배를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겨도 남는 것이 없을 수도 있고 져도 남는 것이 있을 수 있다. 이겨서 남을 것이 없다면 그런 싸움은 할 필요가 없다. 명분이 없는 경우이다. 설령 이겨도 문제가 된다. 져도 남는 것이 있다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을 것이다. 명분이 분명한 경우이다. 대개는 져도 이기는 싸움이다. 어떤 정치인은 지는 싸움을 일부러 계속 하기도 한다. 남는 것이 있어서이다. 가장 어리석은 경우는 화를 풀려고 싸움에 나서는 경우일 것이다. 게임이론은 싸움의 기술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싸움을 통해 무엇을 얻는지를 파악하도록 돕는다. 게임이론을 처세술과 도박에 연결시키는 이들이 곧잘 있는데 무지해도 한참 무지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모든 것은 게임이라고 앞서 말했다. 따라서 누구나 매일매일 게임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인들이 무슨 게임을 하느냐고 빈정댈지 모르겠다. 우스개이지만 그들은 일단 장기나 바둑을 둔다. 더 중요한 것은 노인들은 투표라는 게임에서 절대 강자다. 투표율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인들에게 미움을 사면 정치권력을 잃을 수도 있다. 실제 그런 적이 있었다. 노인은 힘이 없을지 모르지만 노인회는 힘이 강하다. 철없는 아이들도 학교에서 동급생들보다 공부를 더 잘하기 위해 그리고 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출구 없는 제로섬게임을 벌이고 있다. 부모들은 아이들 교육의 후원자이기에 승리를 기원하며 자신의 아이들을 전폭 지원한다. 부모들이 더 경쟁적이다. 한때 그런 내용의 드라마가 인기를 얻은 적이 있다. 그래서 한국의 입시경쟁은 게임의 결정판이다. 대학에 가도 게임은 계속된다. 보다 나은 직장을 얻기 위해, 직장에 들어가면 승진을 위해서 또 게임을 해야 한다. 게임은 경쟁이고 경쟁이 곧 게임이다. 돈을 더 벌기 위해, 부동산 투자를 위해, 그리고 재테크를 위해 끊임없이 남들과 게임을 펼쳐야 한다. 한국인들에겐 하루 일상이 게임으로 시작해서 게임으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선시대에는 태어날 때도 게임을 통해 태어난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적서차별과 남녀차별이 있었기에 후궁과 후실은 전략적으로 아들을 원했다. 즉, 자기의 위치를 인정받기 위해 전략적으로 자식을 낳은 경우이다. 그렇게 전략적으로 낳아진 자식들이 사랑은 받을 수 있었을까 싶지만 사실이다. 심지어 지금도 그런 경우들이 있다고 한다. 재벌들과 고위관료들에게 사생아들이 많은 이유이다. 한국인들은 게임이란 말을 좋아한다. 그리고 투혼이 강하다. 하나 지적하자면 게임에 열광하는 만큼 게임 자체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느냐이다. 게임에 몰입하는 것과 다른 문제이다. 한국에서 벌어지는 게임들은 중요한 요소가 빠져있다. 규칙이다. 즉 게임의 룰이다.

한국형 게임: 비협력적, 일회적, 그리고 제로섬(zero-sum)
현재 한국은 전환기에 있다. 한국을 ‘헬조선’이라 칭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해결할 수 없는 모순과 갈등 속에 ‘헬조선’이란 말이 나타났을 것이다. 앞서 한국의 모든 경쟁 형태가 와일드카드 레이스, 즉 2등 경쟁을 닮아 있다고 지적했다. 때로는 와일드카드 승부가 더욱 극적이다. 단판 승부이기 때문이다. 2002년 월드컵을 기억해보자. 당시 한국인들의 열광적인 응원은 전세계를 놀래켰다. 정부가 국민들을 동원했다고 오해받기도 했다. 사실 월드컵을 할 때마다 한국 축구는 조별리그에서 2등 지위를 노린다. 그래서 조 추첨할 때부터 약한 팀들과 같은 조가 되길 노골적으로 바란다. 방송에서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들도 그런 염원을 드러낸다. 조 리그가 시작되면 경우의 수를 따지기 시작한다. 한국 팀이 자력으로 본선 진출이 힘들어질 것 같으면 특정 나라 팀이 못하길 온 국민이 같이 염원한다. 방송사에서도 그런 걸 다 이슈화하기도 한다. 한국 팀의 본선진출을 결정짓는 게임은 한국의 경기든 다른 나라 경기든 한국인들을 들끓게 한다. 어느새 선수들도 국민들도 모두 와일드 해진다. 경기 내용에 실망하면 와일드 해진 국민들은 선수들 중에 누군가 속죄양을 찾는다. 그리고 그 선수에게 과도한 비난이 쏟아진다. 심지어 국민들이 나서서 선수 교체를 요구하기도 한다. 월드컵 도중 감독이 경질되기도 한다. 그럴수록 중요한 것은 전략적 사고이다. 한국을 요동치게 하는 것은 2등 경쟁들이라고 했다. 옛날엔 대학 입시도 전기전형과 후기전형으로 나뉘어 있었다. 2등 경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게임의 규칙이다. 1등 경쟁에서 탈락한 이들 중에 다시 1등을 뽑는 것이어서 경기자들은 절박하고 그래서 경기는 더욱 와일드해진다. 그렇기에 심판 역할이 중요하다. 2등 경쟁에서 심판의 오심은 치명적이다. 하지만 심판도 사람인 이상 오심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오심들이 계획적이었다고 생각해보자. 게임의 규칙을 들어 심판들에게 항의하니 이젠 심판들이 모여 규칙을 바꿔버렸다고 생각해보자. 그 이후 게임들은 볼 것도 없다. 경기자들과 관중들은 순식간에 폭도로 변할 수도 있다. 상실감, 허탈감, 분노에 투혼이 더해지며 경기장은 완전히 난장판이 되고 말 것이다. 미안하지만 이게 게임이론으로 투영해본 한국의 모습이자 조용한 아침의 나라가 영문도 모른채 헬조선이 된 배경이다. 즉, 모든 것이 극단적 형태의 제로섬게임이다. 2등 경쟁들이어서 그렇다. 2등 경쟁은 경쟁 밑에 경쟁이라고 볼 수 있다. 한번 경쟁에서 밀린 절박한 경기자들이 다시 붙는 경쟁이다. 그래서 규칙이 더더욱 중요하다. 한국 정치권을 한바탕 난장판으로 몰아간 전 법무부 장관 사태의 본질은 이렇다. 전혀 절박함이 없는 이가 고의로 2등 경쟁에 들어가 절박한 이에게 돌아갈 와일드카드를 가로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그 전 장관은 억울감을 느낄 수도 있다. 남들 다 하는 대로 했을 뿐인데 자기에게 너무 가혹하다고 여길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는 국민들을 지치게 하는 와일드카드 경쟁을 차라리 없애 온 국민이 평등해지자고 외쳐왔던 인물이다. 그의 주장이 꼭 틀렸다고 볼 수도 없다. 와일드카드 경쟁은 말 그대로 와일드하다. 경기자들에게 긴장감만큼이나 극심한 피로감을 준다. 그래서 그를 좋아한 사람도 많았다. 그런데 그가 나서서 남들 모르게 와일드카드 한 장을 슬쩍했다고 하니 2등 경쟁을 준비한 이들이 분노한 것이다. 

한국에서 나타나는 게임들은 범주화 해보면 일회적, 비협력적 그리고 제로섬게임에 속한다. 게임의 기본은 승부다. 승부에서 중간은 없다. 이기든지 아니면 지든지 둘 중에 하나다. 그래서 게임은 사람을 열광시킨다. 와일드카드 게임은 더더욱 그렇다. 정치도 권력을 얻기 위한 게임으로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게임을 연구해보면 반드시 사생결단식 제로섬게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게임이론이라고 하면 얄팍한 수를 써서 상대를 제압하는 방법을 배울 거라고 쉽게 짐작하는 경향이 있다. 오해 중에 가장 큰 오해이다. 손자병법 때문이리라. 손자병법에 적과 싸우는 방법이 잘 소개되어 있다. 때에 따라 적을 속이는 것도 허물하지 않는다고 한다. 계략을 써서 적을 이기기도 하고 권력을 차지하는 과정에 드라마가 있다. 그래서 인기가 많다. 실제 손자병법은 중국보다 한국에서 인기가 더 많다. 오해를 차단하기 위해 미리 밝히면 게임이론은 과학이다. 그래서 출세와 거리가 멀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과학자는 대개 출세를 못한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하면 융통성 없게 끝내 사슴이 아니라 말이 맞다고 하고 말 것이다. 갈릴레오도 그랬다. 게임이론이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경제학의 한 분야이지만 수학과 많이 겹친다. 실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내쉬는 경제학자가 아니라 수학자였다. 이 책은 쉽고 재미있게 게임이론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책을 통해서 게임에 대한 기본 개념들을 익힐 것이다. 게임이론에선 경기자가 게임을 하면 그는 그 게임을 통해 반드시 뭔가를 얻는 것으로 본다. 그 얻는 뭔가를 쉽고 표현해 보수라고 한다. 게임의 종류는 다양하다. 제로섬게임이란 경기자들의 보수들을 합치면 0이 되는 게임이다. 즉, 한 경기자가 얻으면 다른 경기자는 반드시 잃는다. 두 경기자들이 동시에 얻을 수 없다. 와일드카드 게임은 제로섬이다. 한국에서 서민들은 대부분 와일드카드 게임 경기자들이다. 그래서 경쟁 형태가 극단적이다. 반면 ‘win-win’게임도 있다. 즉, 협조적 게임이다. 한국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경우이다. 간혹 있기는 하다. 대기업들의 담합이다. 담합은 독과점 구조를 고착시킬 우려가 있는데 소비자후생을 감소시키므로 모든 선진국에서 금지된다. 일회적 게임과 반복게임이 비교될 수 있다. 한국에서 게임들은 대개 일회적이다. 게임이론에선 일회적 게임을 ‘원샷(one-shot)’ 게임이라고 한다. 다음이 없다는 뜻이다. 한국인들은 ‘원샷’을 선호한다. 농담이지만 술도 원샷이다. 일회적 게임의 특징은 게임을 더욱 극단적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다음 게임이 없기 때문이다. 와일드카드 게임을 생각해보자. 메이저리그 와일드카드 경기는 한국보다 덜 극단적이다. 왜냐하면 메이저리그 시장이 크기 때문에 다음 시즌을 생각해서 그렇다. 즉, 어린 유망주 투수가 아무리 잘 던진다고 해도 선수 생명이 위태로울 때까지 던지게 하는 일은 절대 없다. 도덕적이어서가 아니라 미래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쇼헤이 오타니는 없다
예전 한국 고교야구 결승중계방송을 본적이 있다. 지역의 작은 고교에서 결승까지 올랐는데 매우 유망한 투수가 있었다. 그의 활약은 눈부셨다. 타자들이 득점을 내지 못한 가운데 그 투수가 8회까지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해설자가 전날 준결승에서 공을 150여 개 가까이 던지고 결승전 마운드에 다시 올라 공을 100개 이상을 던지고 있다고 전했다. 감독이 투수를 바꿨어야 했다. 그래도 잘 던졌다. 찬사가 이어졌다. 부모로 보이는 이들이 관람석에서 아들의 호투를 지켜봤다. 관중은 열광했지만 어른들 중에 그 어린 투수의 선수 생명을 염려한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는 듯했다. 감독은 우승을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말렸어야 했다. 그런데 한국에선 절대 그럴 수 없단다. 우승을 해야 다른 선수들 모두 대학에 갈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단다. 일회적 게임이다. 감독에게 그해 고교야구 결승전은 다시 없다. 선수가 망가지는 것은 다음 문제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직업 선수가 되면 될 것을 왜 그렇게 대학에 가려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결국 그 어린 투수는 투구 수가 140여 개가 넘어서자 견디지 못하고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부모는 울었다. 감독은 우승을 못해 아쉬운 표정이었다. 그 어린 투수는 잠재력이 충분했다. 해설자들도 입을 모아 그를 칭찬했다. 하지만 그 선수는 그 이후로는 그 이름조차 들리지 않는다. 선수 생활을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어린 시절 공을 너무 많이 던지면 성인이 되어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없다. 한국에서 메이저리그에서 그나마 성공한 선수는 박찬호다.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으로 한국 고교 시절에 관심을 덜 받아서 그럴 수도 있다. 현재 메이저리그엔 쇼헤이 오타니라는 일본인 선수가 너무나 잘하고 있다. 투타에 걸쳐 엄청난 활약을 하고 있다. 한국에도 재능 있는 선수는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청소년시절에 대학 입시를 위해 너무 열심히 던진 결과 사장된 경우도 많을 것이다. 이제는 모두 옛날 얘기일 것이다. 요즘은 고교 야구 선수들 투구수 제한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왜 미리 규칙을 마련하지 못했을까 아쉽다. 대학입시를 위해 선수생명을 포기한 그 선수들은 야구 경기를 보면 무슨 생각을 하려나 싶다. 일회적 게임은 이렇게 전략선택을 극단적이게 하는 특징이 있다. 단 한 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걸 건다. 그 감독은 그 전도유망한 어린 투수의 선수생명을 걸었다. 그래서 선진국에선 일회적 게임보다 반복게임 상황이 더 많다. 예를 들어, 주인이 장사를 하루만 하려는 목적으로 고객을 대하면 그것은 ‘원샷’ 게임이다. 반면, 고객을 단골로 삼아 계속 거래할 목적이 있다면 그것은 반복게임 상황이 된다. 반복게임에선 미래에 대한 안목이 필요하지만 ‘원샷’ 게임에선 미래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미래를 고려할수록 승부내기에 불리해진다. 그래서 당장의 이득을 놓고 눈에 불을 켠다. 당연히 상대방도 그렇다. 그렇게 나올 것을 알기에 상대방은 더더욱 불을 켜고 덤빌 것이다. 한국에선 게임들이 일회적이다. 그래서 더욱 극한 대결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 누군가 슬쩍 규칙을 바꾸고 판정도 일관성을 잃었다고 해보자. 그 결과가 현재 ‘헬조선’이라 볼 수 있다. 

헬조선 딜레마
게임이론엔 사회적 딜레마라는 것이 있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경기자들이 절대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 한국에선 입시와 부동산이 사회적 딜레마이다. 해결하겠다고 나서는 정치인들이 많은데 딱 잘라 말한다. 해결이 불가능하다. 어설프게 해결하려다 나섰다가 더 심해질 수도 있다. 차라리 포기하는 것이 빠르다. 왜 해결을 못할까? 내쉬균형 상태이기 때문에 그렇다. 내쉬균형에 대해선 본문에서 다시 설명할 것이다. 쉽게 말해 모두가 동시에 사교육을 포기한다는 전제가 있으면 자신도 포기할 수 있다. 그 중 누구라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존재한다면 어느 누구도 포기 못한다. 한국에서 사교육은 없어질 수 없다. 없어질 수 없는 사교육을 없애자고 나서는 사람들이 도리어 비현실적이다. 아무리 평등주의자라도 자기 자식에게만큼은 사교육을 통해 ‘부모찬스’를 몰아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게 현실이다. 한국은 입시지옥이다. 수능성적은 등수경쟁이다. 등수경쟁은 본질적으로 제로섬게임이다. 등수가 높은 이들은 대부분 미래 전문직 또는 직업이 보장되는 쪽을 택한다. 그들은 대학에서 그들만의 커리큘럼을 따라가며 큰 불안 없이 대학생활을 보낼 수 있다. 나머지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와일드카드 경쟁에 돌입할 수밖에 없다. 1차 와일드카드들은 고시, 공무원 또는 전문직 자격증 취득이다. 2차 와일드카드들은 공사, 대기업 또는 언론사 입사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2차 와일드카드 결정전부터는 대학 평판이 중요하다. 게임이론에선 평판이라고 하는데 한국 사회에선 평판이란 간판이라고 보면 된다. 즉, 졸업생들 중에 출세를 얼마나 많이 했느냐가 가장 중요한 척도이다. 출세한 졸업생이 많으면 ‘빽과 줄’을 이용할 수 있어 사회생활에 유리한 측면이 있다고 한다. 승진도 빨리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간판 큰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사교육이 필요하다. 한국에서 사교육은 내쉬균형 상태를 반영하는 것이기에 없어질 수 없다고 설명했다. 온 국민이 좋은 의도를 갖고 사교육을 폐지하자는 운동을 전개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럼 이 책을 읽는 당신부터 딜레마에 빠질 것이다. 사랑하는 자녀가 간판 작은 대학을 다니며 무시 받을까봐 불안해질 것이다. 그게 자식에 대한 부모 사랑일 것이다. 그럴 리 없지만 가정을 해보자. 이 책을 읽고 모든 사람들이 감화를 입어 동시에 사교육을 안 시키기로 작정했다고 치자. 당신은 어떻게 할 생각인가? 처음엔 당신도 사교육을 안 시키겠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다. 당신에겐 오히려 더 좋은 기회가 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모두가 사교육을 포기한 가운데 당신 자식만 홀로 사교육을 받을 수 있다면 당신 자식에게는 그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즉, 사교육을 통해 당신 자식만 수능고득점을 받게 되면 2등 경쟁을 안 해도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좋은 기회를 당신이 포기할 리 없다. 특히 자식문제라고 생각한다면 한국인들은 더 본능적이다. 기회포착을 위해 더더욱 나설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이 있다. 남들도 다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한국에서 사교육은 절대 사라질 수 없다. 그들에게 사교육은 지배전략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의 모든 한국인들이 사교육에 참여하는 지배전략균형이 나타난다. 실제 한국교육개발원 조사에 따르면 2019년도에 전 국민의 97.8%가 사교육을 시켰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교육을 없애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위선적이다. 왜냐하면 자기 자녀만큼은 예외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자기 자녀만 빼고 남들이 사교육을 그만두라는 것이다. 그런 정책은 의미가 없다. 전직 법무장관이 자녀에게 와일드카드를 쥐어줘서 지탄을 받고 있다. 사실만을 추려 얘기하면 그 사람만 그렇게 한 것이 아니다. 실제 한국에서 기득권층은 자식들에게 그런 식으로 와일드카드를 쥐어주는 경우가 많다. 그 전직 장관에게 하나 묻고 싶은 것은 그가 사회적 딜레마 현상에 대해 게임이론적 이해가 있었느냐 여부이다. 앞서서 말했지만 사회적 딜레마는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내쉬균형이기 때문이다. 내쉬균형에선 어느 경기자도 홀로 이탈할 유인이 없게 된다. 이탈하게 되면 자신의 이득만 줄어들기 때문이다. 즉, 모두 사교육 시키고 능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부모찬스’를 써서 자식에게 와일드카드 쥐어주는데 어느 한 사람에게만 그 균형에서 ‘홀로 이탈해서’ 모범을 보이라고 하는 격이니 그 전직 장관은 억울해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가 잊은 것이 있다. 사회적 딜레마 속에서 개선을 기대하려면 모든 경기자들이 동시에 바뀌어야 한다는 점이다. 단 한 사람이라도 바뀌기를 거부하면 바뀔 수 없다고 이미 강조했다. 그래서 사실상 불가능하다고도 얘기했다. 그 ‘단 한 사람’이 없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장관이 욕을 먹는 것은 ‘단 한 사람이라도 바뀌기를 거부하면 바뀔 수 없다’고 했는데 스스로가 벌써 그 한 사람이 되어 나타났으니 허탈할 따름이다. 그에게 돌을 던져대는 이들도 보기 좋은 꼴은 아니다. 제발 스스로를 돌아보기 바란다. 그가 이번 일을 교훈 삼아 한국에서 벌어지는 와일드카드 결정전에 관심을 갖고 정말 절박한 경기자들을 배려하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한국에서 진정한 의미의 교육은 사라진지 오래되었다. 너무 오래되어서 얘기를 꺼낸 것 자체가 새삼스럽다.
또 하나 한국은 부동산 지옥이다. 인간에게 의식주는 기본이다. 옛날엔 먹을 것이 부족해서 힘들었지만 지금은 살 집이 없어 문제라고 한다. 사람들은 부동산투자에 열광한다. 실은 부동산투자도 2등 경쟁이어서 더 심각하다. 한국에서 부동산은 자산증식을 위한 마술이다. 땅이 좁아서 말 그대로 부동산 불패이다. 평균 지가는 계속 오른다. 재밌는 것은 소득이 증가하는 폭보다 지가상승률이 훨씬 높다. 한국에서 진짜 부자들은 땅 부자들이다. 그들은 일할 필요가 전혀 없다. 다만 자산증식을 위해 전략적으로 지가만 올리면 된다. 그들의 자산 가치는 항상 물가수준보다 더 높게 뛰어 오른다. 한국에서 부자가 될 수 있는 방법은 수능고득점을 받아 전문직 종사자가 되거나 땅 거래를 잘하는 것이다. 그래서 온 국민이 부동산투자에 열을 올린다. 그리고 땅값에 관심이 많다. 그러니 땅값이 안 올라갈 수 없다. 시장에서 관심은 가격으로 이어진다. 실험을 해보라. 국민들이 모두 특정 중소기업 주식 가격에 관심을 기울인다고 해보자. 그럼 그 주가는 삽시간에 뛰어오르게 된다. 땅값 상승을 진정시킬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다. 온 국민이 동시에 부동산투기에서 손을 떼는 것이다. 사교육과 비슷하다. 부동산투기 역시 사라질 수 없다. 온 국민이 부동산투기를 자제하고 당신만 부동산투기를 한다면 당신은 더 큰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에겐 부동산투기 역시 지배전략이다. 그래서 결코 사라질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동산투기를 없애겠다고 나선 사람들은 위선적이다. 대책도 없고 전략도 없다. 사람들은 안다. 한국에서 입시와 부동산은 사라질 수 없다는 것을. 하지만 자기가 그 문제에 직접적 당사자라는 것은 모르고 있다. 국회의원들이 자기 자녀들은 사교육시키면서 국민들은 사교육을 자제하라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 또 누군가는 아파트를 몇 채씩 보유하고 있으면서 부동산투기를 자제하자고 한다. 그런 국회의원들은 도덕성 부족으로 도마에 오르게 된다. 도덕성도 문제이지만 게임이론에 대한 무지가 더 안타깝다. 한국에서 국민총생산의 상당 부분이 사교육과 부동산에 할애된다. 한국 경제에서 입시와 부동산은 모든 자원을 빨아들이는 블랙홀과 같다. 경제에서 펀더멘탈은 생산이다. 한 나라가 부자나라가 되는 것은 간단하다. 비싸면서 잘 팔리는 것을 만들면 된다. 대부분의 부자나라들이 비싼 걸 만들어 판다. 만약 가난한 나라에서 명품이라고 만들어 팔면 한국의 소비자들은 거들떠도 안 볼 것이다. 사교육과 부동산을 통해 무엇을 만들어 팔 수 있을까? 사교육을 통해 인재양성을 한다고 할지 모르겠다. 하품 나는 소리다. 기술력은 대학경쟁력과도 관련이 깊다. 사교육을 많이 한다고 해서 대학 경쟁력이 오르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아파트를 많이 짓고 가격이 오른다 한들 그 아파트를 수출할 수는 없다. 한국 경제는 무역의존도가 매우 높은데 사교육과 부동산은 철저히 국내용이어서 문제이다. 그러니 국가경제에 전혀 도움이 될 수 없다.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하지 못한다. 그러면서 물가는 계속 인상된다. 일자리는 없는데 물가는 계속 오르니 헬조선이 안 될 수 없다.

승자독식약탈게임: 한국정치
일자리가 부족해지면서 청년들이 어려움을 겪는다. 정치인들은 그런 청년들을 선동해 권력을 얻을 생각을 한다. 정부가 직접 나서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라고 기업과 공공기관들을 압박하기도 한다. 그 결과 누군가는 노력 없이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신분이 바뀌기도 한다. 정규직 특별전형이다. 와일드카드 특별전형이라고 불러도 좋다. 누군가는 공부를 안 했는데 공무원이 되는 행운을 누리기도 한다. 공무원 되겠다고 열심히 공부해온 청년들은 황당해 한다. 한국은 이상한 나라다. 정권만 바뀌면 행운아들이 나온다. 일자리가 부족하면 기업 활동을 장려해야 맞다. 좋은 일자리는 기업들이 만드는 것이 정상이다. 정규직 특별전형을 위한 인위적 일자리 창출은 국가 경제에 기여하지 못한다. 오히려 생산성 향상을 기대할 수 없다. 다시 강조하지만 와일드카드 게임에서 중요한 것은 규칙이다. 정부가 인기에 영합하기 위해 규칙을 바꿔버리면 모든 이익집단들에게 단체행동에 나설 유인이 발생한다. 어차피 규칙이 없는 마당에 무조건 목소리를 크게 해야 보수가 커지기 때문이다. 즉, 모든 이익집단들이 단체행동에 나서는 것이 지배전략이 된다. 모두 정규직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즉, 정규직 특별전형을 원한다. 선거에 나서는 후보들이 표를 얻기 위해 그 특별전형을 약속해주는 경우도 많다. 그들이 대통령에 거는 기대는 구체적이다. 자본주의 나라에선 정규직은 대통령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노동시장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선 노동시장을 거치지 않고 정부가 정규직 특별전형을 실시한다. 그래서 한국은 와일드카드 게임의 끝장판이다. 한국에선 모든 이해관계와 이익집단들이 주기적으로 충돌한다. 민주주의란 형식을 갖췄지만 선거는 당선자와 그 지지자들이 승자독식으로 전체보수를 나눠먹는 게임이다. 당선자가 와일드카드 특별전형을 실시한다. 그래서 선거는 권력투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와일드카드 쟁탈전이다. 5년마다 벌어지는 대통령 선거는 실은 왕을 뽑는 것과 유사하다. 조선시대엔 성군이 들어서면 백성들이 굶주림에서 벗어났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나라님이 모든 모순과 갈등을 해결해주고 배고픈 국민들에게 시혜를 베풀 수 있다고 믿는 모양이다. 자본주의 국가는 시장을 통해 재화와 자원이 배분된다. 시장엔 자율조정기능이 있기 때문에 효율적이다. 일자리는 노동시장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정상이다. 대통령과 정부는 기업활동을 장려하여 기업이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낼수록 유인을 제공할 수 있다. 만약 대통령이 일자리를 직접 만들어 내기 시작하면 그 나라는 멀지 않아 망한다. 과장이 아니다.
한국은 민주주의란 이름 아래 선거들도 참 많다. 국회의원, 광역의원, 기초의원, 도지사, 시장, 교육감, 구청장, 군수, 당대표, 지역위원장, 심지어 아파트 동대표 각종 학교 총동문회장도 선거로 뽑는다. 그들은 대개 봉사를 하기 위해 선거전에 나섰다고 한다. 한데 선거전이 그렇게 치열한걸 보면 그들이 정말 봉사하기 위해 출마했을까 싶다. 한국에서 선거는 벼락출세를 상징한다. 당선자뿐만 아니라 당선자를 도운 사람도 벼락출세 혜택을 누린다. 와일드카드 특별전형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기기 위해 모든 것을 건다.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다 이용하고, 동원할 수 있는 것은 다 동원한다. 편가르기 역시 빠질 수 없다. 네 편과 내 편을 분명히 갈라 어차피 자기편이 아니면 빨리 져버리는 전략을 취한다. 그렇게 해야 자신의 지지 세력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비극이자 희극이다. 선거가 끝나고 나면 편이 갈려 뒤끝이 남는다. 줄을 잘못 서면 보복도 따른다. 조선시대엔 권력을 두고 사화가 발생하면 그 끝은 대대적인 살육극이었다고 전한다. 그런 DNA가 남아서인지 한국인들은 편을 나눠 싸우기 시작하면 그야말로 사생결단이다. 이긴 편에 서면 남는 것이 꽤 있다고 한다. 벼락 출세길이 열리기도 한다. 임명직에 오를 수도 있고 권력을 이용해 자녀를 취업시킬 수도 있다. 고시에 합격해서 한평생을 일해도 못 올라갈 만큼 높은 자리를 누군가는 선거를 도와 와일드카드 특별전형을 통해 단숨에 올라가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이 오히려 권력을 더 많이 누리고 권력에 집착한다. 실로 한국에서 선거는 제로섬게임의 가장 극단적 형태이다. 누군가는 승자독식이라고 표현했는데 실제로는 승자독식보다 더하다. 모든 책임을 패자가 짊어지기 때문이다. 헬조선의 근본적 배경엔 제로섬게임이 있다고 언급했다. 그 제로섬게임의 끝장판이 선거라고 보면 된다. 사실 승자독식은 승자가 모든 걸 다가져간다. 도박이 그렇다. 그래서 한국에서 선거는 도박과 다를 것이 별로 없다. 선거는 권력을 두고 그리고 도박은 돈을 두고 게임을 벌인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한국에서 권력은 돈이다. 그렇기에 한국 선거는 도박과 동음이의어이다. 도박에서 패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하지만 도박에선 승자가 패자를 괴롭히진 않는다. 경우에 따라 개평이란 것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선거에선 승자가 권력을 이용해 패자를 죽이기도 한다. 엄밀히 말하면 승자독식이 아니라 승자독식약탈게임이다. 게임이론이 분석하는 점은 승부가 아니라 경기를 통해 얻는 이득이다. 그래서 협조와 조정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협조와 조정을 통해 상호 간에 이득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담 스미스와 존 내쉬
게임이론은 경제학에 많은 기여를 했다. 경제학에서 경쟁은 시장을 작동하게 하는 동력이라고 가르친다. 하지만 결과가 좋은 경쟁이 있고 결과가 나쁜 경쟁도 있다. 고전경제학에선 전자만을 강조했다. 게임이론은 후자의 경우를 보여줬다. 게임이론에 따르면 경쟁이 무조건 좋을 수 없다. 잘못된 경쟁은 오히려 모든 것을 망가뜨릴 수 있다. 아담 스미스는 인간의 이기심을 긍정적으로 파악했다. 인간은 대개 이기적이다. 게임이론은 인간의 이기심들이 긍정적인 결과를 내려면 사람들이 이기적인 동기에 따라 움직이되 올바른 경쟁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잘못된 경쟁으로 들어가면 그 결과는 돌이킬 수 없는 비극으로 끝나게 된다. 앞서 지적했지만 한국인들은 게임에 열광하지만 정작 게임이론에 대해선 철저히 무지하다고 볼 수 있다. 시장원리를 강조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게임이론에 무지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극단적 주장을 편다. 수도권 아파트 가격이 오르니까 문제의 원인을 공급부족이라 여겨 수도권을 더 개발해 공급을 늘리자고 주장한다. 그것이 시장원리라고 생각하나보다. 또 다른 극단적 주장은 아파트 거래를 금지하자는 쪽이다. 어이없긴 마찬가지이다. 수요를 없애면 가격이 진정될 거라고 보는 단순한 발상이다.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그와 같은 주장을 한다는 것이 황당하기 이를 데 없다. 본문에서 논의하겠지만 수도권 아파트 가격 문제는 수급상황과 무관하다. 거품이기 때문이다. 수도권 아파트 가격을 진정시키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간단하다. 수도권 수요가 줄어들게 하면 된다. 어떻게 하면 그 수요가 줄어들까? 인구 분산 외엔 대안이 없다. 청와대와 국회가 세종시로 내려가면 된다. 정부와 정치인들은 정답을 알면서도 일부러 모른 척 하고 있다. 하긴 그것이 한국 정치의 본질일 수도 있다. 엉터리 명분을 끌어내 자신들의 보수를 극대화하는 것. 관습헌법이라는 것이 있는데 한국인들이 서울을 관습상 수도로 여기기 때문에 청와대와 국회가 서울을 떠나면 안 된다는 취지였단다. 게임이론에 대한 이해부족은 소모적인 논쟁을 야기시킬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을 수요와 공급 시각에서만 보려하기 때문이다. 수요와 공급은 상호작용할 수도 있다. 현재 국내에 정작 중요한 것은 게임이론에 대한 수요와 공급이다. 공급이 수요를 만들어내는 경우도 있다. 부족하지만 조금 쉽게 게임이론을 공급하고 싶었다. 그게 이 책을 생각한 이유이다. 이론이 현실에 무슨 소용이 있냐고 넌더리부터 내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이론은 필요하다. 지구가 자전하고 공전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과 먹고 사는 것이 무관할 수도 있다. 실제로 조선시대 때만 해도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살았다. 몰라도 아무 문제없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래도 지구의 자전과 공전 사실을 몰랐다고 하면 자랑은 아닌 것 같다. 갈등구조에 대한 근원적인 이해 없이 외눈박이 정책들을 양산해내는 것을 보면 지구의 자전과 공전을 모르는 것처럼 약간 한심하기도 하다. 또 말하지만 엉터리 정책들을 통해선 헬조선의 갈등과 모순이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문제를 과학으로 풀자. 게임이론은 과학이다. 하지만 자연과학과는 다르다. 자연현상들은 그 움직임을 관찰한다고 해서 그 움직임이 달라지지 않는다. 게임이론에선 경기자들의 행동을 관찰하면 경기자들의 행동이 달라진다. 심판이 보고 있을 때 경기자와 보지 않을 때 경기자의 행동이 다를 수 있다. 아무리 관찰한다고 해도 지구가 태양을 도는 균형경로는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관찰을 통해 경기자들이 택하는 균형경로는 바뀔 수 있다. 앞서서 한국의 사교육과 부동산투기는 절대 사라질 수 없다고 했다. 그와 같은 문제들은 경기자들의 균형경로가 잘못 택해진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 균형경로가 달라져야 한다. 게임을 재밌게 하는 것은 투혼과 열정이다. 하지만 분명한 규칙과 판정의 일관성이 있었을 때 투혼과 열정도 빛을 발휘할 수 있다. 규칙이 없고 판정이 일관성을 잃는다면 투혼과 열정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한국이 딱 그런 상황이다. 한국을 지옥으로 만든 것은 그 투혼과 열정이 발산한 독성이다. 흔히 한국인들은 모두 열심히 사는데 모두 힘들게 산다는 말을 많이 한다. 게임이론에서 정확히 예측하는 것이다. 모두가 합리적으로 행동한다고 행동하지만 비합리적 결과가 나타난 경우이다. 본론에서 설명할 것이다. 한국에서 나타나는 역경들은 사회적 딜레마를 반영한다. 사회적 딜레마는 경기자들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고 했다. 한국은 그런 딜레마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양심이나 도덕심에 호소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게임이론 시각에서 볼 때 그러한 호소는 문제해결과 전혀 무관하다. 보다 정확한 분석과 방법론이 필요할 뿐이다. 정리를 해보자. 앞서 게임이론을 과학이라고 강조한 바 있는데 과학은 뭔가를 예측가능하게 한다. 예를 들어, 내일 해가 뜨는 시각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 그렇다면 게임이론은 뭘 예측할까? 경기자의 행동을 예측한다. 행동은 사람 마음인데 그런 예측이 가능하냐고 물을 것이다. 그 사람이 합리적이란 전제만 있으면 가능하다. 물리학에 균형이 존재하듯, 게임이론에도 균형이 존재한다. 쉽게 말해 그 균형은 행동들의 조합이라고 볼 수 있다. 전자의 균형은 대개 불변적 진리에 가깝지만 후자의 균형은 경기자들의 전략적 판단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렇다면 전략적 판단이 달라져야 한국의 사회적 딜레마들이 해결될 수 있다는 결론이 되겠다. 전략적 판단은 전략적 사고를 필요로 한다. 그럼 전략적 사고란 무엇일까?

저자 이 양 승

North Carolina State University에서 통계학과 경제학을 공부했고 The University of Kansas 에서 게임이론을 연구해 경제학 박사를 취득했다. 그리고 캐나다로 건너가 University of Alberta에서 Gaming에 대한 연구와 강의를 같이 했다. 이후 한국에 들어와 한국건설산업연구원(CERIK)에서 연구위원으로 일하며 주로 산업정책과 계약제도 등을 연구했다. 지금은 (국립) 군산대학교 무역학과 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서론 3
와일드 카드 · 5
조조의 계륵: 딜레마와 지배전략 · 9
모든 것은 게임이다 · 10
한국형 게임: 비협력적, 일회적, 그리고 제로섬(zero-sum) · 13
쇼헤이 오타니는 없다 · 16
헬조선 딜레마 · 18
승자독식약탈게임: 한국정치 · 22
아담 스미스와 존 내쉬 · 25

제1장 전략적 사고 31
관우 제갈 물린 제갈량 · 33
반드시 알 것: 경기자, 전략, 보수 · 36
행동을 예측하라  · 38
게임 유형을 파악하라 · 40
판을 흔들어라 · 42
‘헬조선’: 전략부재가 낳은 비극 · 44
제2장 사회적 딜레마 51
공유지의 비극 · 53
“쓰레기를 너무 많이 버려 쓰레기통을 없앴다” · 54
스타벅스의 딜레마 · 61
도덕 딜레마 · 62
죄수의 딜레마 · 64

제3장 내쉬 균형 73
한국 간판이 큰 이유: 지배전략 균형 · 77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참는다 · 80
지배전략에 중독된 한국 · 81
땅값이 미친 진짜 이유 · 82
당신이 모르는 균형  · 89
예측불허 게임: 치킨 게임 · 93
호텔링 게임: 중간이나 따라가라  · 97

제4장 혼합전략 내쉬균형 103
승부차기 · 103
가위바위보 · 106
헷갈리게 해라 · 107
투수와 타자 · 110
전쟁속의 혼합전략: 노르망디와 인천 · 114

제5장 조정실패 121
자포자기 조정실패 · 124
습관과 관습 · 126
조정실패의 끝장: 한국 명절 · 128
음력이냐 양력이냐 · 130
명절 칼부림 · 131
유행도 ‘조정’이다 · 135
제6장 순차적 게임 139
괴철의 ‘토사구팽’ 공식 · 141
미리 보는 특종 · 144
알파고는 안다: 역진귀납법 · 146
앞을 내다봐라: 게임나무 해법 · 148
도전자 겁주기 · 151
‘이상한’ 균형: 겁주고 겁먹기 · 155
부분게임완전 내쉬균형  · 156

제7장 약속 161
조조가 의심한 도원결의 · 162
오디세우스와 세이렌 · 170
못믿을 약속: 선거공약 · 174
선도자가 되는 법: 스스로 묶어라 · 176
나라 구한 약속: 인센티브 · 184
약속 지키는 도시들 · 189
하찮은 약속: 층간소음 살인사건 · 191
귀찮은 약속: 주차장 살인사건 · 193

제8장 거짓말 203
거짓말 가르치는 나라 · 207
돈으로 못사는 신용 · 212
최악의 거짓말 · 213
더 나쁜 정부의 거짓말  · 217
국민사기극들: 세종시와 새만금 · 221
‘사기 공화국’과 ‘거짓말 공화국’  · 228
‘거짓말이면 살고 정말이면 죽는다’  · 230
한국인의 거짓말 DNA · 233


제9장 교섭과 경매 241
기싸움 · 244
교섭 결렬점을 알아내라 · 246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 · 248
최후통첩과 갑질 · 252
거부권과 상호제안 · 254
인내심과 교섭력 · 258
‘Nuclear Unclear’: 핵무기 교섭력  · 263
공포의 균형: 교섭이 필요없다 · 267
교섭의 신: 스캇 보라스 · 269
경매도 교섭이다 · 271
승자의 저주 · 275

제10장 반복게임 281
 유한반복게임 · 284
 무한반복게임: 길게 봐라! · 285
 방아쇠전략 · 288
 협력과 포크정리 · 291
 미중 갈등과 협력 · 295

제11장 도덕적 해이 299
 행동을 끌어내는 계약  · 302
 위험 프리미엄 · 307
 노벨상 받은 갑-을 모형 · 311
 한국의 갑-을 모형 · 315
 ‘갑질’보다 무서운 ‘을질’: ‘알바 추노’ · 318
 계약미이행: 숨겨진 행동 · 320
 도덕적 해이 ‘끝판왕들’ · 325
 막장 포퓰리즘 · 326

제12장 정보와 선택 333
 역선택 · 337
 꼭 떠나야 할 사람이 꼭 남는다 · 340
 나쁜 경찰과 착한 깡패 · 342
 카멜레온 평등주의자들 · 344
 정보 비대칭 · 347
 정보분석과 전략 · 351
 신호보내기와 선별 · 355
 완전베이지언 내쉬균형 · 363
 신호 비용 · 364

에필로그: 헬조선 표류기 369
 한국의 신호 비용: 사교육비 21조 · 369
 인간이 벌레가 되는 나라 · 373
 공부에 목숨 건 역사 · 378
 문제은행의 나라: 객관식 코메리카 · 380
 청소년들 줄세우기 · 383
 고등교육은 없다: 영원한 ‘Rat race’ · 385
 부분적 평준화와 대학원 키우기 · 390
 아인슈타인을 위한 기여 입학 · 392

참고문헌 _ 3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