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발행 2026. 10. 30
조사실은 생각보다 우리 가까이에 있다
전화기 너머로 울음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변호사님, 저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는데요… 출석하라고…”
그는 중견기업에 다니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전날까지만 해도 주말에 가족과 어디를 갈지 고민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월요일 오전, 경찰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고 그의 일상은 산산조각이 났다. 몇 달 전 퇴사한 후배가 직장 내 괴롭힘으로 그를 고소한 것이다.
“저는 정말 그런 적 없어요. 억울해서 미칠 것 같아요.” 나는 그에게 물었다. “그럼 그 후배와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기억나세요? 메신저 내용은 남아 있나요? 당시 상황을 목격한 동료는 있나요?” 그는 한참을 침묵했다. “그런 건 생각도 못 했어요.”
변호사로 일한 십여 년 동안 비슷한 대화를 수백 번 나눠왔다. 조사 통보를 받고 일주일 동안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혼자 울었다는 사람. 회의 중에도 머릿속이 하얘진다는 사람. 새벽마다 식은땀에 젖어 깨어난다는 사람. 그들 대부분은 이렇게 말했다. “저는 평범하게 살아왔는데, 설마 제가 조사를 받게 될 줄은 몰랐어요.”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직장에서 팀원에게 했던 질책 한마디, 지인에게 빌려준 돈을 독촉하며 보낸 메시지, 주차 문제로 이웃과 벌인 언쟁,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린 글 한 줄, 술자리에서 건넨 농담. 이 중 어느 하나라도 상대가 고소장을 쓰기로 마음먹는 순간, 당신은 ‘피의자’가 된다. 평범하던 일상이 ‘수사’라는 프레임으로 다시 비춰지는 순간, 격려는 협박이 되고 친근한 스킨십은 추행이 되며 정당한 독촉은 공갈이 된다. 그리고 문제는 ‘기억’이 아니라 ‘전략’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수많은 사건을 거치며 분명히 깨달은 한 가지가 있다. 진실은 저절로 밝혀지지 않는다. 준비한 사람에게만 드러난다. 같은 사실관계를 가지고도 누군가는 무혐의로 풀려나고 누군가는 기소되어 재판정에 선다. 운도 일부 있겠지만, 결과를 가른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따로 있었다. ‘조사 단계에서 얼마나 준비되어 있었느냐.’
한국에는 아직 ‘조사받는 법’을 제대로 알려주는 책이 거의 없다. 서점에는 판례 해설서, 법률 용어 사전, 변호사의 법정 무용담은 넘쳐나지만 정작 ‘경찰서에 출석하기 전에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를 알려주는 책은 찾기 어렵다. 마치 전쟁터에 나가는 병사에게 전쟁사는 가르치면서 총 쏘는 법은 알려주지 않는 것과 같다.
실제 사건의 방향은 판결문이 아니라 조사실에서 이미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수사관 앞에서 진술이 한 번 무너지면, 나중에 아무리 유명한 변호사를 선임해도 엎질러진 물을 되담기 어렵다. “그때 한 말은 그런 뜻이 아니었습니다”라고 아무리 해명해도 조서에 찍힌 서명과 지장은 당신을 계속 따라다닌다. 법정에서의 싸움은 조사실에서 이미 시작된다.
이 책은 단순히 법률 지식을 나열하지 않는다. 조사실에서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반대로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말은 무엇인지, 어떤 자료를 언제 어떻게 제시해야 하는지, CCTV는 어떻게 확보하는지, 변호사는 언제 선임해야 하는지, 진술거부권은 언제 행사하는 것이 유리한지, 휴대폰 제출 요청을 받으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다룬다. 책에 담긴 43가지 원칙은 수많은 사건을 거치며 체득한 것들이다. 어떤 것은 승소 사건에서 배웠고, 어떤 것은 패소 사건에서 뼈저리게 깨달았다.
기억해야 할 것은 단 하나다. 믿어달라고 말하지 말고, 믿을 수밖에 없게 만들어라. “저는 정말 그런 적 없어요”라는 말은 조사실에서 아무런 힘이 없다. 수사관은 당신의 감정에 공감하기 위해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논리이고, 증거이고, 설명이다. 당신의 억울함은 ‘느낌’이 아니라 ‘사실’로 증명되어야 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당신은 더 이상 조사실 앞에서 막막하게 서 있는 사람이 아니게 될 것이다.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알고,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알고, 어떤 상황에서 침묵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싸울 준비가 된 사람이 될 것이다. 그것이 조사실에서 살아남는 첫 번째 방법이다.
저자 약력
김민규(법무법인 은율)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시립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법학전문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법무법인 은율의 변호사이자 대한변호사협회 등록 형사법 · 부동산 전문변호사로, 산업기술 유출, 영업비밀 침해, 기업형사 대응 분야에서 전방위적인 법률 조력을 제공하고 있다. 경찰수사연수원 외래교수 및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기업법무 강사로 활동 중이며, 인하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 국회 가상자산/디지털자산 특별위원회 위원, 대법원 국선변호인 등을 역임했다. 실무 현장과 교육을 아우르는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수사 단계에서의 피의자 권익 보호와 효과적인 조사 대응 방안을 연구하는 데 힘쓰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프랜차이즈의 시작과 끝: 김변 · 이변의 장사하는 법 1』(2020), 『스타트업 스타트: 김변 · 이변의 장사하는 법 2』(2025) 등이 있다.
이상훈(IT기업 준법감시인)
「인공지능 이용 금융투자행위에 관한 형사책임 연구」로 법학박사(형사법) 학위를 취득하였다. 형사법 전문등록 변호사로서 송무와 자문을 수행하였고, 서울남부지방법원 국선전담변호인을 역임하였다. 국회사무처 비서관으로 입법 · 대관 업무를 담당하였고, 핀테크 및 금융회사에서 준법감시인으로 재직하며 인공지능 활용 금융투자 서비스의 컴플라이언스 체계를 구축하였다. 현재는 IT기업 준법감시인으로서 기업 법무와 컴플라이언스 실무를 총괄하는 한편, 인공지능의 형사책임, 기술형법 및 기업 컴플라이언스 관련 논제들을 주요 연구대상으로 삼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만화로 보는 학교법률분쟁사례』(2015), 『프랜차이즈의 시작과 끝: 김변 · 이변의 장사하는 법 1』(2020), 『인공지능이 금융하는 법』(2022), 『스타트업 스타트: 김변 · 이변의 장사하는 법 2』(2025) 등이 있다.
임남택(법무법인 메리트)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를 졸업하고 서울시립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법학전문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법무법인 메리트의 변호사이다. 기업법무 자문과 송무, 각종 민 · 형사, 행정, 가사소송을 다수 진행해 왔다. 서울시립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 호서대학교 교양법학강의 강사 경력이 있으며 현재 한국저작권위원회 상담 자문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중앙일보 중앙선데이 법툰 연재, 포스코투데이 법툰 연재, 네이버법툰 연재, 서울지방변호사회 회보 법툰 연재, 전국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로스쿨 창) 법툰 연재, 한국저작권위원회 오픈소스 만화 작업, 문체부 발간 ‘K공감’, ‘공감하는 법’ 만화 연재, 좋은생각 ‘생활법률만화’ 연재, 대한변호사협회 발간 법조신문 ‘변호사법툰’ 연재 등 법률만화를 그리는 활동을 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알아두면 유용한 퇴근길 법툰』(2020)이 있다.
목차
제1부 수사, 이것만은 알아야 한다 9
01 수사기관의 구조와 역할을 이해하라 11
02 수사관의 친절한 태도에 속지 마라 17
03 수사기관은 사람을 ‘지위별’로 본다 21
04 수사기관은 ‘어떤 사람인지’를 먼저 본다 25
05 조사는 기억의 싸움이 아니라 전략의 싸움이다 31
06 명확한 증거가 없다면 수사관은 선입견 없이 조사할 수 있다 35
제2부 수사 연락을 받았을 때 39
07 수사 연락이 왔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 41
08 조사 일정 연기는 권리다. 단, 근거를 갖춰라 47
09 부끄러워하지 말고 주변에 알려라 53
10 고소장은 열람 · 등사 신청과 정보공개청구로 확보하라 59
제3부 변호사 선임 63
11 변호사 선임은 최고의 투자다 65
12 전관 신화의 진실 — 연줄의 시대는 끝났다 69
13 좋은 변호사를 고르는 진짜 기준 73
14 변호사 비용은 ‘결과’가 아니라 ‘시간’을 사는 것이다 77
제4부 조사 전 준비 — 증거 확보 81
15 자료 없는 조사는 총알 없는 전쟁과 같다 83
16 CCTV는 골든타임이 있다 87
17 내용증명과 증거보전신청으로 CCTV를 지켜라 91
18 사실확인서는 충분히 힘이 될 수 있다 97
19 탄원서는 무조건 도움이 된다 103
20 육하원칙으로 사건을 시간표처럼 정리하라 107
제5부 조사 당일의 마인드 111
21 긴장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죄의 증거가 아니다 113
22 말은 논리로 하는 것이다 117
23 수사관도 인간이다. 적이 아니라 설득 대상이다 121
24 수사관이 화를 내도 흔들리지 마라 127
제6부 진술 전략 131
25 기억에 의존한 진술은 위험하다 133
26 애매할 땐 답하지 말고 ‘기억이 안 난다’고 답해라 139
27 정말 답변하기 어렵다면,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라 143
28 학력 · 종교 · 가족관계 질문은 당신을 판단하는 기준이다 147
29 구속 여부를 가르는 핵심은 ‘주거의 안정성’이다 151
30 조사실에 자료를 가져가서 보면서 답해도 된다 157
제7부 조서와 절차 161
31 피의자 신문조서는 반드시 꼼꼼히 확인하고 고쳐라 163
32 조사 직후 조서를 당일 교부받아라 169
33 지문 등록은 범죄자 등록이 아니다 173
34 거짓말탐지기, 준비되어 있다면 적극 활용하라 177
제8부 디지털 증거와 포렌식 181
35 휴대폰 임의제출, 무조건 좋은 게 아니다 183
36 포렌식 선별 절차에 반드시 참여하라 189
37 스마트폰 보안은 평소에 챙겨두는 것이다 193
38 수사 중 SNS와 온라인 언행을 조심하라 197
제9부 수사 이후 — 끝까지 싸우는 법 201
39 송치 후에도 끝이 아니다 203
40 합의는 굴복이 아니다. 전략적 판단이다 209
41 무혐의를 받아도 기록은 남는다 213
42 구속됐을 때, 포기하지 마라 219
43 수사가 길어질 때, 심리적으로 버티는 법 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