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발행 2026. 10. 30
머리말 PREFACE
이 책을 펴내며
300만 창업기업 가운데 작지만 강한 기업으로 성장한 곳은 단 2만 8,000개, 전체의 0.9%에 불과하다. 이 수치를 어떻게 산출했는지는 부록 3에 자세히 밝혀두었다.
이 숫자를 처음 계산했을 때, 나는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전 재산을 쏟아붓고, 잠을 줄이고, 가족과의 저녁 식사까지 포기하며 창업에 뛰어드는데도 강소기업으로 분류되는 기업은 0.9%에 불과하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왜일까. 능력이 부족해서일까. 노력이 모자라서일까. 아니면 운이 따르지 않아서일까.
나는 그 답이 다른 데 있다고 생각한다. 사업의 방정식을 몰랐기 때문이다.
나는 2013년에 창업했다. 자본금 5,000만 원, 직원 다섯 명, 경기도 김포의 임대 공장 하나가 전부였다. 가장 고전적인 산업인 제조업에서, 가장 고전적인 방식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주변에서는 만류했다.
“왜 하필 제조업이냐. 플랫폼 사업을 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
하지만 손으로 제품을 만들고, 품질로 증명하고, 거래처와 신뢰를 쌓아가는 것. 그것이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사업이었다.
10여 년이 지났다. 태상은 이제 두바이, 베트남, 상하이에 제품을 납품하는 강소기업으로 성장했다. 직원은 11명이다. 전국 200여 개 대리점, 중소벤처기업부 성능인증, 국무총리 표창, 다수의 특허. 11명이 함께 일군 성과는 처음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컸다.
2025년, 나는 서강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에 박사학위 논문을 제출했다. 논문 제목은 <창업기업은 어떻게 강소기업이 되는가>였다. 수도권 중소기업 경영자 2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10년간 축적된 실제 경영 데이터를 분석했다. 그 결과, 창업기업이 강소기업으로 성장하는 과정에는 여섯 가지 요인이 결정적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것이 바로 GROWTH 모델이다.
학술 논문은 연구자의 언어로 쓰인다. 하지만 이 책이 필요한 사람들은 연구자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금 압박에 시달리고, 직원 문제로 고민하며, 다음 달 납품을 걱정하는 중소기업 경영자들이다. 나는 그들을 위해 논문의 엄밀함은 유지하되, 내용을 현장의 언어로 다시 풀어 쓰기로 했다.
이 책이 독자에게 건네는 세 가지 약속
첫 번째 약속은 숫자다. “매출이 늘었다”가 아니라 “ERP 도입 후 재고 폐기율이 8%에서 4%로 절반으로 줄었고, 연간 2억 원의 비용을 절감했다”고 쓴다. 구체적인 숫자만이 독자가 자신의 상황과 비교해볼 수 있는 기준점이 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약속은 실패도 숨기지 않는 것이다. 성공 사례만큼이나 실패에서 얻는 교훈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AI 수요 예측 시스템이 첫해에 실패했던 일, 직원들의 저항으로 ERP 도입이 6개월이나 지연됐던 일, 2024년 건설 경기 침체로 매출이 급감했던 경험까지 그대로 담았다.
세 번째 약속은 도구다. 읽고 끝나는 책이 아니라, 책을 덮은 뒤에도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쓰는 책을 만들고자 했다. 각 장 끝에는 그 장을 쓰며 떠올린 생각과 스스로에게 던져볼 만한 질문 하나를 남겼다. 부록의 60문항 자가진단표는 독자가 자신의 기업에 직접 적용해볼 수 있는 실전 도구다.
2026년
민경
프롤로그 PROLOGUE
계곡 앞에 서다
1. 2026년 봄, 숫자는 내려가고 있었다
2026년 봄 어느 아침. 매출 지표를 열어놓은 채 한참 동안 화면을 바라봤다. 숫자가 말하고 있었다. 하락.
10여 년 동안 이어온 성장 곡선이 꺾였다. 이 사실을 책의 맨 앞에 써야 할지 오래 고민했다. 성공담으로 시작하는 편이 훨씬 편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쓸 수는 없었다. 이 책은 성공의 기록이 아니라 원칙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위기 속에서도 그 원칙이 작동한다는 사실을 지금 이 순간 내가 직접 겪고 있기 때문이다.
2024년부터 건설 경기는 급격히 냉각됐다. 고금리로 착공 건수가 줄었고, 미분양 아파트가 쌓이면서 인테리어 발주도 감소했다. 원자재 가격은 2022년 고점 이후에도 좀처럼 내려오지 않았다. 경쟁사들은 단가를 낮추며 물량 경쟁에 뛰어들었다. 태상만의 위기는 아니었다. 건자재 업계 전체가 흔들리고 있었다.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단가를 낮춰 물량 경쟁에 뛰어들거나, 원칙을 지키며 버티는 것. 두 번째 선택은 단기적으로 더 고통스러웠다. 그래도 나는 이 책의 각 장을 다시 읽었다. 그리고 그 안에 적힌 원칙으로 돌아갔다.
그제야 깨달았다. 이 책은 내가 독자에게 건네기 위해 쓴 것만은 아니었다. 위기의 순간마다 나 자신이 꺼내 보는 나침반이기도 했다.
2. 2015년 3월, 주차장에서의 30분
밤 12시였다. 경기도 김포의 작은 공장 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 시동을 끄지 않은 채 30분이 흘렀다. 창문 너머로 가로등 불빛이 주차장 바닥을 노랗게 물들이고 있었다. 히터 돌아가는 소리만 낮게 이어졌고, 계기판 위 시계의 숫자만 말없이 바뀌고 있었다.
거래처 두 곳이 동시에 결제를 미뤘다. 2,000만 원. 그 돈이 들어오지 않으면 다음 달 직원 다섯 명의 월급을 줄 수 없었다. 창업한 지 2년도 채 되지 않은 회사였다. 자본금 5,000만 원으로 겨우 버텨오던 작은 공장이었다.
그날 밤, 처음으로 포기를 생각했다.
“이쯤에서 접는 게 맞지 않을까. 어차피 나보다 자본도 많고 경력도 긴 사람들이 이미 이 시장에서 자리 잡고 있다. 나는 여기서 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그 생각에 잠긴 채 30분이 흘렀다. 차에서 내렸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아무런 결심도 하지 않았는데 몸이 먼저 움직였다. 공장 문을 열고 불을 켰다. 그리고 다음 날 납품할 제품의 마감 상태를 하나씩 점검했다. 포기하는 것과 포기하지 않는 것 사이에 거창한 결심은 없었다. 그저 몸이 먼저 공장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순간이 이 책의 출발점이었다. 왜 몸이 그쪽으로 움직였을까. 그 이유를 알게 된 것은 10년이 지난 뒤였다. 창업 이념이 어느새 몸에 배어 있었기 때문이다.
“꾸준한 연구개발과 새로운 가치 창조를 통해 사회에 공헌하는 기업.”
그 문장을 의식적으로 떠올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문장이 몸을 먼저 그 방향으로 움직이게 했다.
이것이 기업철학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생각보다 빠르다. 위기의 순간에는 논리가 도착하기도 전에 방향이 먼저 정해진다.
3. 10년 뒤, 같은 공장이 두바이에 납품한다
2013년 7월 19일. 경기도 김포의 작은 임대 공장 앞에 섰다. 공장 입구의 철제문을 열자 빈 공장 특유의 냄새가 밀려왔다. 페인트와 기름, 먼지가 뒤섞인 냄새였다.
직원 다섯 명이 뒤에 서 있었다. 모두 나보다 제조업 경력이 오래된 사람들이었다. 입을 열자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잘 부탁드립니다.”
자본금 5,000만 원. 그날 아침 통장에 찍힌 숫자를 세 번이나 확인했다. 임대료, 설비 리스비, 첫 원자재 발주 비용.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시작도 하기 전에 이미 세 달 치 자금이 나갈 판이었다. 계산기를 내려놓고 다시 공장 문을 열었다.
일단 시작하자.
첫 주문은 3주 뒤에 들어왔다. 방염 몰딩 500미터, 납품 금액 130만 원. 그날 저녁 직원들에게 삼겹살을 샀다.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고 말했다. 고기를 괜히 여러 번 뒤집으며 떨리는 목소리를 들키지 않으려 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났다. 작은 임대 공장에서 출발한 회사는 이제 두바이, 베트남, 상하이에 제품을 납품한다. 직원은 11명이다. 국내 200여 개 대리점, 중소벤처기업부 성능인증, 국무총리 표창, 다수의 특허. 11명이 함께 만들어낸 성과는 창업 당시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컸다. 무엇이 달랐을까?
이 책은 그 질문에 대해 지난 10년 동안 찾아온 답을 담고 있다. 당신이 지금 어떤 계곡 앞에 서 있든, 이 책에는 그 계곡을 건너기 위해 내가 배운 원칙과 방법이 담겨 있다.
민경호
태상 오너(2013~현재) | 경영학 박사
2013년 제조기업 ‘태상’을 창업해 10년 넘게 제조 현장에서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제품개발부터 생산, OEM, 정부지원사업, 디지털 전환, 해외시장 진출까지 제조기업의 성장과 위기를 직접 경험했다.
경희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서강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박사학위 논문 「창업기업은 어떻게 강소기업이 되는가? - 제조업 중심으로 -」를 통해 제조기업이 강한 기업으로 성장하는 조건을 연구했다.
현장의 경험과 연구를 연결해, 작은 제조기업이 위기를 건너고 다음 성장을 준비하는 방법을 이야기하고 있다.
머리말 1
프롤로그 4
PART 1 왜 어떤 기업은 살아남는가
CHAPTER 1 창업 이후가 더 무섭다 13
CHAPTER 2 0.9%의 비밀-강소기업은 크기로 싸우지 않는다 27
CHAPTER 3 200명이 현장에서 고른 여섯 가지 40
CHAPTER 4 GROWTH-창업기업이 강소기업이 되는 성장 방정식 51
PART 2 엔진을 켜다
CHAPTER 5 왜 어떤 사장은 망해도 직원 월급을 먼저 주는가 63
CHAPTER 6 건자재 회사가 3D 시뮬레이션을 팔기 시작한 날 82
CHAPTER 7 이름 없는 공장이 대기업의 대체불가 파트너가 된 방법 97
CHAPTER 8 같은 돈으로 왜 어떤 기업만 살아남는가 112
CHAPTER 9 직원 11명의 공장이 30명을 뽑지 않는 이유 129
CHAPTER 10 ERP 하나로 연간 2억을 아낀 작은 공장의 비밀 144
PART 3 다음 계곡을 앞두고
CHAPTER 11 GROWTH 2.0
-AI 시대에 맞게 엔진을 재정비하라 163
에필로그 177
맺음말 181
감사의 글 185
부록 1 태상 10년, 여섯 개의 엔진이 켜진 순간들 191
부록 2 GROWTH 자가진단표 60문항 196
부록 3 더 깊이 알고 싶은 독자를 위하여 200
참고문헌 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