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발행 2025. 12. 12
머리말
분단시대 한국문학의 리얼리즘과 휴머니즘
이병주의 대표작 전 7권의 《지리산》에 주인공 박태영이 있다.
그는 일제강점기 진주에서 오사카로 건너가 아사히 우유 가게에
서 우유 배달을 하면서 전검시험에 수석 합격하게 되어 경도일일
신문, 대판조일신문, 대판매일신문에 특종 보도되었다. 그로 인해
이카이노에 거주하던 여학생 김숙자로부터 편지를 받게 되었고,
이 인연을 계기로 김숙자는 그의 인생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태영이 찾은 이카이노는 골목마다 펄 구렁이 되어 메스꺼운 냄
새를 풍겨 구토증이 자주 일었다. 숙자는 “이카이노 사람들은 바로
자기 자신을 위하는 일이 아닌 공동적인 일을 하는 것은 큰 손해나
보는 것처럼, 그런 사고방식에 젖어 있어요.”라고 태영에게 말했
다. 태영은 현재 조선 반도가 놓여 있는 사정의 축도가 바로 이카이
노일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지난 유월에 《분단시대 한국문학》을 엮으면서 오랫동안
방문하고 싶어 한 오사카 코리아타운의 옛 지명인 이카이노를 찾
았다. 이민진의 《파친코》에서도 이카이노는 선자의 두 아들 노아와
모자수의 정체성이 배양된 곳이다.
조지현은 열 살이던 1948년 8월, 제주 4?·?3이 일어나던 때에 제
주도 한촌을 떠나 아버지가 전쟁 전부터 돈벌이를 하고 있던 일본
오사카 이카이노로 건너갔다. 조지현은 1965년부터 1970년까지 6
년간 그의 소년기의 자서전이고 청춘의 만가인 이카이노를 촬영했
다. 조지현은 이카이노 사람들의 가난한 삶을 사진에 담는 것은 그
들의 삶을 엿보는 것 같아서 찝찝하고 슬펐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것이 ‘리얼리즘 사진의 정신’이라고 생각하며 극복했다.
내가 찾아간 이카이노의 히라노가와 운하는 청청했고 조선 시
장은 청결했다. 그들이 살았던 판잣집은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
다. 조지현의 사진집에 있는 이카이노는 오사카코리아타운역사자
료관에 자그마한 사진으로만 전시되고 있었다.
작가 박완서는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에 잠재된 작가의
빛나는 감수성에 조명을 받고 거기 홀려버린 독자에게는 서울에서
보낸 1964년 겨울은 이미 개인적이고 독자적인 의미를 상실하고
말았다고 한다. 박완서는 아무하고도 공유할 수 없었던 오직 나만
의 겨울, 1951년 서울의 겨울을 회상할 때조차 김승옥식의 감수성
을 빌려 와야만 말문이 열렸다고 한다. 1951년 서울의 겨울은 밤이
되어도 어디에도 불빛은 보이지 않고 온통 어둠뿐이었다. 얼어붙
은 거리를 휩쓸며 부는 차가운 바람이 펄럭이게 하는 것도 빈 거리
와 폐허의 구석구석에 괸 어둠뿐이었다.
박완서는 지금의 신세계백화점인 동화백화점에 설치된 미군 피
엑스에 취직이 되었다. 그곳은 당시 유일하게 밤이면 불이 들어오
고 사람들이 모여서 웅성대고 사고파는 상행위와 먹고 마시는 유
흥 행위도 이뤄지는 지대인 명동 충무로와 남대문 시장 사이에 있
었다.
박완서는 첫 월급을 타서 거저라고 할 정도로 헐값에 책을 사가
지고 걸신들린 것처럼 책을 읽었다. 소위 필독서로 치는 문학의 고
전을 거의 다 독파했다고 한다. 1951년 겨울의 가장 궁핍하고 비참
했던 그 시기가 박완서 문학의 토양이 된 것이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부모님께서 서울에서 피난하여 임시로 거
처를 삼은 부산 동구 수정동 330번지에서 겨울 추위가 시작되던
1952년 11월, 나는 부친 안병기와 모친 김유순의 슬하에서 출생했
다. 그러고 보니 1982년 《조용기 목사와 성령운동》에 이어 《분단
시대 한국문학》을 펴낸 벽송 안원옥 회장이 피난지 부산에서 설립
한 박영사의 전신 대중문화사와 동향인 데다 출생 연도가 같다.
아버지는 서울 수복이 되고 나서 남대문 시장 입구, 목 좋은 곳
에서 설탕과 밀가루를 도?·?소매하는 삼신상회를 경영하셨다. 어릴
적 어머니 말씀에 따르면 그때 아버지가 하시던 삼신상회가 돈을
억수로 잘 벌었다고 하였다. 그날 하루에 벌어들인 현금을 셀 수도
없어서 밀가루 포대에 담아 보관하였다가 다음 날이 되어서야 조
흥은행 남대문 지점에 입금할 수 있을 정도였다고 했다.
아버지는 남대문 시장에서 가까운 회현동의 공터에 있는 판잣
집에 살다가 남산 케이블카 정거장 아래 회현동 2가 19번지 10호,
일본식 2층 가옥을 매입하였다. 나는 남산국민학교에 들어가면서
박관서라는 반 친구를 사귀었는데 명동에 그의 아버지가 하는 양
복점이 1층에 있고, 2층에는 그의 가족이 사는 살림집이 있었다.
나는 하학길에 박관서를 따라 반 친구들과 어울려서 명동을 드나
들었다. 당시에는 명동 한복판에 어린이들을 위한 명동공원이 있
어서 그곳에서 놀기도 했다. 명동공원은 1976년에 제일백화점이
되었다. 그리고 집에서 가까운 동화백화점에 자주 드나들었다. 동
화백화점은 중앙계단으로 올라가면서 양편으로 계단이 나뉘는 구
조로 4층까지 계단으로 올라가게 되어 있었다. 꼭대기 층에는 서점
이 있어서 《안데르센 동화》, 《이솝 우화》, 《철가면》, 《몬테크리스
토 백작》, 《장발장》, 《나폴레옹 위인전》, 《소공녀》 등의 책을 샀다.
서점 옆에는 우표 파는 코너가 있어서 그곳에서 우표를 사서 모았
다. 내 취미는 우표 수집과 독서였다.
해방공간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한국사진사는 정적인 것이 아니
라 동적인 리얼리즘과 휴머니즘을 기록하게 되었다. 사진 작가 임
응식(1912~2001)은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 9월 3일, 미국문화
원장 유진 크네즈로부터 미 국무부 소속의 종군사진기자를 제안받
았다. 임응식은 맥아더 장군이 탄 미 군함 마운트 매킨리 호에 승선
하여 인천상륙작전을 겪었다. 그는 유엔군을 따라 경인전선(京仁戰
線)과 서울 수복에 이르기까지 전쟁의 현장을 기록했다.
임응식이 9?·?28 서울 수복 사흘 전, 1950년 9월 24일에 찍은 ‘서
울 수복일’이라는 사진에는 형체를 알 수 없는 명동의 집터로 돌아
온 노파는 망연자실한 모습인 반면 아이를 보고 미소 짓는 젊은 여
인의 얼굴에는 희망이 보인다. 서울 시내에는 아직 인민군 잔당이
게릴라전을 벌리고 있을 때 그는 혼자 떨어져 전쟁 전에 단골로 다
니던 명동의 조일여관을 찾아갔다. 내심 반가워할 줄 알았던 주인
은 미군 복장 차림의 임응식을 보더니 “제발 나가 달라”라고 애원
했다. 오전까지만 해도 인민군 지휘부가 들어 있었는데, 언제 또 들
이닥칠지 모른다는 거였다. 그러나 그는 오기가 발동하여 막무가
내로 하룻밤을 잔 뒤 다음 날 아침 카메라를 들고 폐허가 된 명동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사진 한 장을 찍을 때마다 권총을 빼 들고
사방을 경계하며 사진을 찍기 시작한 명동 사진의 시초였다.
임응식은 전쟁으로 폐허가 된 1950년의 명동을 비통한 심정으로
촬영한 이래 그가 세상을 뜬 2001년에 이르기까지 시종일관 명동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의 시선이 닿은 명동은 전통과 현대, 도회
적인 것과 비도회적인 것이 공존한 문화예술과 한국경제의 축도였
다. 그는 한국전쟁의 현장을 취재하다가 포탄에 의한 부상으로 스웨
덴 야전병원 병상에서 4~5일 동안 누워 있기도 했다. 그의 작가정신
은 사선의 경계를 넘나들며 한국 현대사의 리얼리즘을 기록하였다.
임응식은 1950년부터 2001년 작고하기까지 명동의 플라뇌르
(도시의 산책자)로서 폐허가 된 명동에서 만난 문인 이병주, 박인환,
김동리, 오상순, 서정주 등과 문화예술가의 풍모를 카메라에 담았다.
그리고 전쟁의 참화를 딛고 일어서는 명동의 반세기를 리얼리
즘 정지화로 기록했다.
《분단시대 한국문학》의 표지 사진은 활기를 찾아가고 있는, 임
응식의 1956년 명동 사진이다. 좌측으로 청동다방과 송옥양장이
있고 멀찌감치 시공관이 보인다. 무언가를 배달하러 가고 있는 군
복을 입고 모자를 쓴 소년이 걸어오고 있고 우측으로 명동의 중심
가로 걸어 들어가는, 가방을 어깨에 멘 여성의 뒷모습이 보인다.
해방 전에 정자옥(조지아백화점)은 경성에서 가장 크고 유명하
며 멋진 의상실이었다. 이후 정자옥은 1954년에 문을 연 미도파백
화점(현 명동 롯데백화점 영프라자)이 되었다. 전차가 다니던 앞길을
건너 명동 초입부터 수도극장(스카라극장)에 이르는 길, 충무로 태
극당까지의 거리에는 양장점과 미용실이 즐비한 산책로였다. 명동
중앙거리 양쪽으로 오송죽의 송옥양장점, 한동식의 한양장점, 서
수연의 아리사양장점, 노라노의 노라노의 집, 최경자의 국제양장
사 등이 늘어서 있다. 자연히 명동은 20세기 한국 패션의 중심지가
되었다. 송옥양장에는 장안의 멋쟁이들이 다 모여들어 맞춤 의상을
해 입었다. 서울 수복 후에는 대한항공 스튜어디스 유니폼에 여학
생 교복까지 하게 되어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최경자가 하는 국제
양장사는 박단마, 김시스터즈, 김지미, 최은희, 노경희, 윤인자, 나
애심, 김백초, 안나영 등 인기스타들이 단골이었다. 유네스코백화
점 앞에는 이용화양복점과 조훈양복점이 있어서 남성들에게 세련
된 멋을 더해주었다.
시공관 건너편으로 유네스코회관을 지나 골목 모퉁이에 있었
던, 연극인 이해랑이 운영하는 청동(靑銅) 다방에는 공초 오상순
시인이 터줏대감이었다. 청동다방으로 펄벅이 담배를 사서 공초에
게 선물하며 문학을 이야기했다고 한다.
문예싸롱은 시인 모윤숙, 서정주, 소설가 김동리, 황순원, 평론
가 조연현 등 문단의 실세들이 매일 모인 곳이다. 1955년 박경리는
문예싸롱에 가서 김동리에게 그의 습작을 보여드렸다. 김동리는
그가 쓴 《불안지대》를 《계산》으로 바꾸고 이름도 박금이를 박경리
로 바꾸어서 현대문학에 추천했다.
박완서의 《그 남자네 집》에서 화자가 퇴근하는 시간에 맞추어
지섭은 동화백화점 피엑스 후문에서 기다렸다가 둘이 명동 거리를
연인처럼 돌아다녔다. 명동에 있는 다방은 안 가본 데가 없이 한 번
씩 다 다녀 보았지만 ‘모나리자’와 ‘세븐 투 세븐’을 자주 갔다. 중
앙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명동의 은성한 불빛, 번화하고 풍성한 불
빛 안에서 자유를 만끽했다.
시공관은 1935년에 이시바시가 설립한 연극 전문극장 명치좌
로 시작해서 국제극장, 국립극장, 명동예술극장으로 이어오는 명
동의 랜드마크이다. 차범석의 사실주의 연극의 최고봉인 《산불》이
1962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이진순 연출로 초연되었다.
첫날부터 관객들이 몰려들었고, 마지막 공연 날에는 현관 유리문
이 깨질 정도로 인파가 몰려 기마순경까지 출동하게 되었다고 하
니 연극계의 이변이자 연극사에 기록될 만한 일이었다.
시공관 옆에는 세계 최정상의 연주자 첼로 정명화, 바이올린 정
경화, 마에스트로 정명훈의 어머니 이원숙 여사가 경영하는 장안에
맛있기로 소문이 자자한 불고기, 냉면을 주메뉴로 하는 고려정이
있었다.
명동의 동방싸롱 맞은편에 있던 ‘은성’은 탤런트 최불암의 어머
니 이명숙 여사가 영화제작자 남편을 과로사로 여의고 어린 아들
과 생계를 꾸리기 위하여 1953년에 차린 주점이다. 여기서 시인 박
인환(1926~1956)은 1956년 이른 봄, 밀린 외상값을 갚지 못한 채
술을 달라며 즉석에서 시 〈세월이 가면〉을 지었다.
지금 그 사람의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지금 그 사람의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내 서늘한 가슴에 있건만
박인환의 시에다 옆에 있던 작곡가 이진섭은 곡을 붙이고 동석
한 나애심이 바로 불렀다. 나중에 온 몸집이 크고 음량이 당시 제일
이었던 테너 임만섭이 목청껏 불렀다고 했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
이 은성주점으로 몰려와 노래를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박인환은
사흘이 지난 1956년 3월 20일, 서른 살 나이에 사흘 동안 내내 폭
음한 것이 급성 알코올성 심장마비로 이어져 종로구 세종로 135번
지 자택에서 숨을 거두었다.
문학평론 《분단시대 한국문학》이 해방 80년, 한국전쟁 75년이
된 2025년에 나올 수 있게 된 데에는 여러 스승의 가르침이 있어서
이다. 연세대학교 명예교수 민경배 박사님은 그의 저서와 강연으
로 민족사관 역사관을 내게 전수해 주어서 문학평론의 기반이 되
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이영훈 목사님을 그가 고등학교 3학년일
적에 1972년 순복음중앙교회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이영훈 목사
님은 내게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을 읽어보라고 권하며 존재의
본질에 성실해야 한다는 깨우침을 주었다. 새에덴교회 소강석 목
사님의 메시지와 시는 영혼의 감수성이 빼어나다. 소강석 목사님
과 문화예술의 길에서 동행하며 그의 서정적인 이야기와 노래에서
나는 깊은 울림을 받는다.
내게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고를 형성시킨 조용기 목사님, 문
화예술의 안목을 열어준 강원용 목사님, 전적으로 평론만을 쓰게
한 소설가 백도기 목사님, 내가 쓰는 문학평론에 짜임새를 넣어준
문학평론가 김종회 교수님은 나의 글짓기의 토대이다. 그리고 아
내 구명혜와 딸 안세실, 여동생 안종숙 박사가 내가 써낸 책의 원고
정리 작업과 교정을 봐주어서 아직도 나는 글쓰기를 하고 있다.
《분단시대 한국문학》의 출판을 맡아주신 박영사 안종만 회장님
과 안상준 대표님께 감사를 드린다. 더불어 본서에 인용된 작품과
사진의 저작권자에게 고마움을 드린다. 본서를 읽는 독자들은 분
단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안에 여전한 좌우 갈등과 대립이 자아낸
간격이 다소나마 좁혀지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2025년 겨울
낙산 아래 대학로 예인사랑에서
路山 安俊培
저자 안준배
한세대학교 신학과와 목회대학원, 명지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서울기독대학교대학원에서 역사신학을 전공하여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포스트모던》 연극평론, 《한국시》 수필, 《신한국문학》 시로 등단하여 문학 평론과 오페라·연극·문화평론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조용기 목사와 성령 운동》(박영사 1982/2판), 《쎄실로 가는 길》(예인사랑, 2003/3판), 《예술 그리고 예수》(예인사랑 2004/3판), 《예술무대, 빛과 어둠》(대한기독교서회, 2012/2판), 《내가 걸은 한국문화, 한국교회》(쿰란출판사, 2021/2판), 《조용기 목사 평전》(쿰란출판사, 2022/2판), 《한국문학속의 우상과 구원》(문학나무, 2023/2판), 《한국기독교성령백년인물사 I-V》 전 5권(쿰란출판 사, 2009~2021)이 있다.
이병주문학연구상, 기독교문화대상, 한국기독교출판문화상, 한국교회연합 과일치상, 한국교회인권상을 수상하였다. 현재 사단법인 세계성령운동중앙협의회 명예이사장, 한국기독교성령역사연구원 원장, 기독교문화예술원 원장, 대학로순복음교회 담임목사로 있으며 문화사역과 한국교회사 연구로 한국기독교연합사역을 하고 있다.
소설
박경리 소설 《토지》는 인생에 대한 질문, 생명과 삶 1
한과 생명의 원초적 토대, 《토지》 3
《토지》의 줄거리 4
《토지》의 바탕을 이루는 한과 생명 6
평사리 구성원의 도리 13
《토지》는 소유이면서 존재 14
첫사랑 용이와 월선, 그리고 봉순 17
《토지》의 주요 인물: 조준구, 김두수, 최서희, 김길상 24
시장과 전장 31
연안중학교 교사 지영의 6 · 25 34
《시장과 전장》 1장 줄거리 34
《시장과 전장》 2장 줄거리 38
기석의 부역, 지영의 옥바라지 39
전장의 코뮤니스트 하기훈 41
박경리가 걸어간 길, 통영에서 통영으로 43
이병주의 《지리산》, 또는 회색의 군상 51
1. 이병주의 삶과 문학의 고향, 하동 53
2. 이병주 문학의 특징적 성격 57
2-1.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조르바와 이병주의 이종문 57
2-2. 이병주 앞의 발자크와 그 의미 59
2-3. 이병주의 운명과 회색주의의 공간 61
3. 이병주 문학의 문학사적 연관성 63
3-1. 박경리 《토지》와 이병주 《지리산》의 주제, 산천 63
3-2. 도스토옙스키를 잇는 이병주의 회색 사상 65
3-3. 김은국의 순교자와 이병주의 지리산 67
4. 《지리산》의 인물과 활동 범주 72
4-1. 도쿄 중앙대 법학과 유학생, 하준수와 구호림 72
4-2. 이민진의 《파친코》, 이카이노 82
4-3. 제도권의 이규와 반제도권의 박태영 87
4-4. 《지리산》의 두 교사 권창혁과 이현상 92
4-5. 평행선을 타고 간 박태영과 김숙자 101
4-6. 태영의 수재성으로 판사, 검사가 되어 동포를 괴롭히지 말라는 숙자의 편지 103
4-7. 6 · 25가 낳은 김숙자와 김성길, ‘나는 기쁠 때에 눈물을 흘린다오.’ 110
4-8. 회색의 사상을 가진 태영은 운명적으로 지리산을 향했고 114
4-9. 《지리산》의 박태영과 정복희의 로망 118
5. 실록으로서의 소설과 그 역사적 위상 119
5-1. 이병주와 이태의 《남부군》 실록 119
5-2. 이태의 《남부군》과 이병주의 《지리산》 128
5-3. 이태와 백인숙의 사랑 132
5-4. 이현상의 최후, 남로당의 처형과 숙청 134
6. 《지리산》의 소설적 캐릭터와 인본주의 139
6-1. 순이의 사상과 보광당의 하준규 139
6-2. 순이와 북한 탈북민의 사상감정 동질성 143
7. 마무리: 시대적 삶의 총체성과 이병주 소설 145
7-1. 이승만의 농지개혁, 하석암의 돌체 145
7-2. 이병주가 걸어간 길, 몽블랑 한 자루와 71년의 정한 151
자전적 소설가 박완서, 한국전쟁과 모성 155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157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169
6 · 25가 부과한 야만과 좌절과 고통에 대한 묘사 170
미 8군 피엑스 초상화부, 박수근 172
첫사랑, 그리고 결혼 177
엄마의 말뚝 1 182
엄마의 말뚝 2 185
엄마의 말뚝 3 188
나목 191
박수근과 《나목》 197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201
그 남자네 집 205
한 말씀만 하소서 208
떠도는 뜨내기들의 애환을 서사한 황석영 소설 215
황석영과 자유문인실천협의회 218
작가 황석영 220
삼포 가는 길 221
객지 225
한씨연대기 229
떠도는 삶을 살아가는 밑바닥 인생의 통로 239
한강,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강렬한 시적 산문 247
왜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았는가 249
이병주의 《지리산》으로 시작된 증언소설 251
제주 4 · 3, 《작별하지 않는다》 252
성근 눈, 생명과 죽음의 진혼곡 254
생명은 통증으로 인해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 256
삶과 죽음, 현실과 상상의 경계 258
제주 4 · 3과 사진 작가 조지현의 이카이노 263
죽음에서 삶으로 건너가게 한 사랑의 서사 272
오월 광주, 《소년이 온다》 273
나무라는 생명을, 《채식주의자》 275
《돌이킬 수 없는》, 5 · 18과 12 · 3 279
윤동주의 〈서시〉, 한강의 〈서시〉 280
우리가 이 세계에 잠시 머무르는 의미 284
극작
사실주의 극작가, 《산불》의 차범석 293
사실주의 극작가 안톤 체호프와 유치진 295
예향 목포는 차범석 문학의 뿌리 297
세기의 무희 최승희, 차범석에게 무대라는 세계를 302
격동의 시대를 살아간 최승희 306
최승희, 남과 북 어디에도 정착할 수 없었던 예술혼 317
차범석의 영화 관람은 연극으로 가는 길 323
차범석의 처녀작, 노래극 《눈 내리는 밤》 324
유치진의 희곡론, 차범석의 민족 연극 326
비극의 원인은 가난과 전쟁이라는 《밀주》, 《귀향》 328
사실주의 연극의 최고봉, 《산불》 330
영화, 오페라, 뮤지컬, 창극으로 타오른 《산불》 338
아리엘 도르프만 대본, 뮤지컬 《댄싱 섀도우》 340
창극 《산불》 344
리얼리즘과 휴머니즘을 아우른 《산불》 346
전통과 현대가 충돌한 《불모지》 348
어항의 절망, 강효실의 《열대어》 349
《갈매기떼》의 주제는 사랑과 정의 352
누구나 세상 떠날 때는 빈손, 《옥단어!》 354
목포의 흥타령, 차범석이 걸어간 길 358
극작가 이반의 분단극과 종교극 363
분단극, 실향민 이반의 바다 365
이반의 분단극, 《그날, 그날에》 367
웁살라의 두 한국인 가정, 《환상무대》 374
분단극복의 의지, 이반 작, 《아버지 바다》 376
이반의 종교극 380
이범선 작, 이반 연출, 《천당 간 사나이》 381
올로프 하르트만의 예배극, 《예언자와 목수》 385
하르트만 작, 이반 연출, 연예인교회의 《예언자와 목수》 387
빌 게이더 작, 이반 연출, 여의도순복음교회 뮤지컬 《알렐루야》 389
황광은이 그려준 유토피아, 이반 작, 김윤태 연출, 《소년 공화국》 391
이반, 이강백 공동구성, 표재순 연출, 《빛과 하나되어》 400
이반 작, 우지다 토루 연출, 《아! 제암리여!》 404
이반 작, 표재순 연출, 《카운터 포인트》 406
실향민 이반의 분단극복은 종교극에서 풀렸다 408
색인 412
참고문헌 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