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발행 2026. 8. 10
감사의 글
이 책은 혼자 쓴 책이 아니다. 본문에서 나는 배움이 고립 속에서 일어나지 않는다고 거듭 말했는데, 이 책을 쓰는 일 자체가 그 말의 작은 증거였다.
가장 먼저, 나의 아내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이 책이 줄곧 정원사의 일이라 불러온 것 - 결과를 대신 만들지는 않지만 결과가 자랄 수 있는 자리를 지키는 일 - 을, 그는 내 곁에서 매일 해 보였다. 내가 새벽에 깨어 글을 쓰는 동안, 그는 우리 삶의 보이지 않는 조건들을 묵묵히 살펴 주었다. 문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그는 내 문장이 학자의 관성으로 굳어질 때마다 그것을 알아차렸다. “이 문장은 옳지만 읽히지 않는다”는 그의 한마디가 이 책의 여러 대목을 다시 쓰게 했다.
초고를 끝까지 읽어 준 춘천교대 서순식 교수에게 감사한다. 그는 따뜻한 격려와 뾰족한 지적을 같은 무게로 건넸다. 격려만 있었다면 나는 안심했을 것이고, 지적만 있었다면 길을 잃었을 것이다. 그의 읽기는 이 책이 스스로에게 요구한 기준 - 매끄럽게 읽히되 근거 위에 서 있어야 한다는 기준 - 을 바깥에서 다시 한번 시험해 준 과정이었다.
이 책은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작성되었다. 제미나이는 문헌 검색에, 챗GPT는 한국어, 영어 이외 외국어(주로 독일어) 원전 번역에, 클로드는 교열에 큰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나는 인공지능에게 감사하지 않는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피조물이며, 피조물은 감사의 의미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피조물의 뒤에는 그것을 빚은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어려운 문제 앞에서 밤을 새우고, 틀린 가설을 수없이 버리며, 자신이 만든 것이 인간의 곁을 더 잘 지킬 수 있도록 평생을 바쳐 온 헌신적이고 열정적인 과학자와 수학자들이 있다. 이 책이 인공지능을 조건의 관찰자로 다시 돌려놓을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먼저 그 가능성의 토대를 쌓아 두었기 때문이다. 감사는 피조물이 아니라, 그것을 빚어낸 창조자들을 향해야 마땅하다.
새벽의 등장을 허락해 준 딸 내외에게 깊이 감사한다. 이 책의 새벽은 여러 학습자의 가능성을 빚은 인물이지만, 그 출발점에는 실제로 자라고 있는 한 아이가 있다. 그 아이의 이름과 첫 사진, 블록을 쌓던 영상이 이 책의 처음과 끝에 놓이도록 기꺼이 허락해 준 두 사람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무엇보다 그들이 아이 앞에서 가장 먼저 답을 내려놓을 줄 아는 부모로 서 있다는 사실에 깊이 감사한다.
인지과학을 공부한 딸에게도 따로 감사하고 싶다. 그는 내가 배움을 한 사람의 안쪽에서만 일어나는 일로 좁혀 쓰려 할 때마다, 인지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도구, 사람과 환경 사이에 걸쳐 작동하는 일임을 일깨워 주었다. 그와의 대화는 이 책이 시뮬라리움을 ‘환경’으로 그릴 수 있게 한 중요한 바탕이 되었다.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사위에게도 감사한다. 이 책이 인공지능의 수학적 토대를 다룰 때 미적분을 앞에 두고 확률론을 그다음 층에 놓아도 되는지 마지막까지 망설였는데, 그의 설명은 이 책의 수학 서술이 어디에 무게를 두어야 하는지를 잡아 주었다.
끝으로 졸고를 책으로 만들어 준 박영스토리의 이선경 부장과 전채린 부장에게 감사드린다. 이 책의 기획을 맡은 이선경 부장은 일상의 언어로 쓰되 근거를 잃지 않는다는 까다로운 방향을 처음부터 함께 세워 주었고, 편집을 맡은 전채린 부장은 그 약속이 원고의 문장과 구성 속에서 끝까지 지켜질 수 있도록 세심하게 다듬어 주었다. 좋은 책은 좋은 기획과 좋은 편집 없이 세상에 나오지 못한다는 사실을, 나는 이번에 다시 배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의 부제 ‘배움의 조건’은 한 분의 그림자 안에 있다. 교육공학을 하나의 학문으로 세운 로버트 가네(Robert Gagne) 선생님이다. 그의 대표작 <학습의 조건(The Conditions of Learning)>은 내가 학자로 자라는 동안 한 번도 책상에서 멀어진 적이 없다. 2001년, 나는 병상의 선생님을 마지막으로 뵈었다. 그날 선생님께서는 “교육공학은 학습의 조건을 설계하는 학문이다”라는 한마디를 유언처럼 남기셨다. 이 책의 부제는 그 한마디에 대한 제자의 헌사이다.
이 모든 분들이 이 책의 정원사였다. 부족함이 남아 있다면, 그것은 온전히 나의 몫이다.
조일현
Florida State Univ. 교육공학 박사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 산업교육학 석사
서울대학교 농경제학과 경제학사
(현) 이화여자대학교 교육공학과 교수, 에듀테크융합연구소 소장, 교육과학연구소 소장
(전) 이화여자대학교 교수학습개발원장, 인재개발원 원장, 한국기업교육학회 회장, ㈜크레듀 이사, 삼성 그룹(물산, 국제경영연구소, 인력개발원) 과장
차례
감사의 글 5
프롤로그 11
PART 01 다시 묻는다
CHAPTER 01 구구단이 싫은 아이, 미적분을 빼버린 나라 21
CHAPTER 02 ChatGPT가 등장한 날 33
CHAPTER 03 배움은 안에서만 일어난다 42
PART 02 안으로 들어간다
CHAPTER 04 미시간 대학, 새벽 2시, AI와 함께 씨름하기 51
CHAPTER 05 한국과 미국, 14시간의 시차, 삶이 곧 배움터 62
CHAPTER 06 AI와 함께 틀리기, 오답의 설계 74
PART 03 답의 윤곽을 그린다
CHAPTER 07 가르치면 배운다는 착각 89
CHAPTER 08 AI가 아이의 배움을 망치는 두 가지 방식 104
CHAPTER 09 아이의 배움을 설계할 수 있을까 116
CHAPTER 10 배움이 일어나는 네 가지 조건 128
CHAPTER 11 AI를 어떻게 쓸 것인가 141
PART 04 살아 있는 환경을 만든다
CHAPTER 12 시뮬라리움, 살아 있는 배움의 환경 161
CHAPTER 13 가정과 교실에서의 배움의 조건 170
CHAPTER 14 일터에서의 배움의 조건 180
에필로그 193
미주 1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