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발행 2026. 7. 31
서문
2000년대 이후 분자생물학의 비약적인 발전과 함께 DNA를 활용한 범죄수사는 이제 '신원확인의 황금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단 한 방울의 혈흔, 눈에 보이지 않는 상피세포 하나만으로도 수십 년간 미제로 남아 있던 사건의 해결이 가능해졌고, 억울하게 유죄판결을 받았던 이들의 결백이 밝혀지기도 하였다. 대한민국 역시 DNA 분석기술의 측면에서는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해 있다.
그러나 과학기술이 이처럼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동안, 이를 규율하고 정당화하여야 할 법적 · 헌법적 장치는 충분히 정비되어 있다고 보기 어렵다. DNA는 단순한 증거물을 넘어 개인의 생물학적 정체성과 잠재적 특성을 내포하는 고도의 민감정보이며, 그 수집과 이용, 보관의 전 과정은 필연적으로 기본권 침해의 가능성을 수반한다. 특히 디엔에이신원확인정보 데이터베이스의 구축과 확대, DNA 집단테스트, 가족 DNA 탐색, 포렌식 DNA 표현형, 게놈분석과 같은 새로운 수사기법은 형사절차의 기존 원리와 긴장관계를 형성하고 있으며, 이러한 상황에서 어떠한 법적 기준이 적용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아직 충분히 정립되어 있지 않다.
과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묻지만, 법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묻는다. 기술적 가능성이 곧바로 법적 정당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DNA 분석이 범죄수사의 결정적 수단으로 자리매김할수록, 그 이면에서는 인권 침해와 개인정보의 오남용이라는 위험 또한 증대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본서는 "DNA 분석은 어디까지 형사절차에서 허용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로 삼고 논의를 전개한다.
나아가 본서는 DNA 분석과 형사절차의 관계를 개별 쟁점의 나열에 그치지 않고, 수집 · 이용 · 보관의 전 과정에 걸친 하나의 통합적 규범구조로 파악하고자 한다. 특히 DNA 분석의 허용 여부와 범위를 판단하기 위한 기준으로서 형사절차상 통제 원리를 체계화하고, 이를 통하여 과학기술의 발전과 기본권 보호가 조화될 수 있는 이론적 토대를 제시하는 데에 본서의 의의를 둔다.
본서는 총 3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편에서는 DNA 분석의 과학적 기초와 증거법적 의미를 정리하고, 제2편에서는 범죄수사의 영역에서 DNA 분석의 활용과 그에 수반되는 법적 쟁점을 심층적으로 검토하며, 제3편에서는 DNA 분석이 향후 형사절차 전반에 미칠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찰한다. 특히 「디엔에이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에 대한 비판적 검토와 헌법재판소 결정에 대한 분석, DNA 데이터베이스의 운영성과에 대한 실증적 평가 그리고 DNA 집단테스트, 가족 DNA 탐색, 포렌식 DNA 표현형 및 게놈분석에 대한 비판적 검토는 본서의 핵심적인 내용을 이룬다.
이 책은 저자가 지난 20여 년간 이 주제에 관하여 축적해 온 연구성과를 토대로 구성된 것이다. 그동안 개별적인 논문 형태로 발표되었던 논의들과 그 밖의 연구 결과들을 하나의 체계 속에서 재구성함으로써, DNA 분석과 형사절차의 관계를 보다 입체적으로 조망하고자 하였다. 기술적 활용의 효율성뿐만 아니라 그 이면에 존재하는 법적 쟁점들을 짚어보고 합리적 대안을 모색해 보고자 노력하였다.
아무쪼록 이 책이 관련 분야에 관심을 가진 학생이나 연구자 그리고 실무가에게 작은 참고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묵묵히 자료를 모으고 글을 써 내려갔던 지난 시간의 흔적들이, 우리 사회가 과학기술과 기본권 보호 사이의 균형을 고민하는 과정에 소박한 디딤돌이 되기를 희망한다. 범죄로부터의 안전과 개인의 존엄이라는 두 가치가 DNA의 이중나선 구조처럼 조화롭게 맞물려 작동하는 형사사법 체계가 구축되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2026년 7월
조성용
차례
제1편 DNA 분석의 기초
제1장 역사적 그리고 분자생물학적 배경 / 2
제2장 DNA 분석의 활용 / 11
제3장 DNA 증거의 증거능력과 증명력 / 18
제2편 범죄수사의 영역에서 DNA 분석
제1장 당해사건의 수사절차에서 DNA 감식 / 36
제2장 범죄자 유전자은행 / 66
제3장 DNA 집단테스트 / 233
제4장 가족 DNA 탐색 / 275
제5장 게놈분석을 활용한 범인추적? / 314
제6장 포렌식 DNA 표현형 / 333
제3편 범죄수사의 영역을 넘어 형사절차의 다양한 영역에서 DNA 분석
제1장 책임능력의 판단에서 게놈분석의 적용 가능성 / 364
제2장 증인의 신용성 조사에서 게놈분석의 적용 가능성 / 381
제3장 상해 결과에 대한 인과관계 문제에서 게놈분석의 적용 가능성 / 387
제4장 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에서 게놈분석의 적용 가능성 / 392
참고문헌 / 403
색인 / 404
저자 약력
조성용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동 대학원 법학석사
독일 Humboldt zu Berlin 대학 법학박사
현재 단국대학교 법과대학 형법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