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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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능력주의의 탄생
신간
일본 능력주의의 탄생
저자
Takehiko Kariya․Jeremy Rappleye
역자
유성상․하승천
분야
교육학
출판사
박영스토리
발행일
2025.11.10
장정
무선
페이지
324P
판형
신A5판
ISBN
979-11-7279-016-5
부가기호
93370
강의자료다운
-
색도
1도
정가
18,000원

초판발행 2025. 11. 10

역자 서문



누구나 포용적이고 균등한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 말은 누군가의 울분에 찬 주장이 아니라, 2015년 유엔 참여 국가들이 마음을 모아 앞으로 2030년까지 힘써 노력하겠다는 공동의 약속이다. 그다지 이해하기 힘든 말과 약속이 아니다. 

이 문장의 의미를 좀 더 깊이 살펴보자. ‘누구나(all)’, ‘포용적이고(inclusive)’, ‘균등한(equitable)’, ‘양질의(quality)’, ‘교육(education)’을 ‘받을 수 있어야(to be provided)’ 한다. 교육이 포용적이라는 말은, 개인의 특성(장애, 젠더, 계층, 인종, 민족, 언어, 기타)에 제한받지 않고 모두가 교육의 기회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교육이 균등해야 한다는 말은, 교육이란 기본적인 재화가 공정하고 형평성 있게 분배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두 말의 의미가 약간 달라 보이기는 하지만, 가장 포괄적인 의미를 택해 정의하자면 교육에서 이 두 개념의 차이는 거의 없지 않나 싶다. 즉, 개인 입장에서 원하는 만큼의 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하고, 사회는 개인의 필요에 따른 양질의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 즉, 누군가 이런저런 이유로 교육의 기회를 제한받거나 교육 수준에 있어 차별적 대우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전자의 경우를 들어 흔히 기회의 평등이라고, 후자의 경우를 (완벽하지는 않지만 이상적인 의미로) 결과의 평등으로 이해해 논쟁이 이뤄지곤 한다. 이렇게 교육평등(혹은 ‘평등한 교육’)을 둘러싼 논의는 이론적으로든, 실천적으로든 우리 주변에서 늘 풀어내기 어려운 교육문제로 자리하고 있다. 비록 ‘포용’이니, ‘균등’ 혹은 ‘공정’이란 표현으로 달리 표현되지만, 교육은 모두에게 ‘평등’해야 한다. 이 말에 이의를 달기 어렵고, 누구도 이 말에 반하는 화법을 내세우려 하지 않는다. 마치 ‘모두에게 평등한 교육’은 절대 깨뜨릴 수 없는 명제로 공고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듯하다. 아마도 이 두 개념의 포괄적인 뜻을 담아 전달하는 표현이 ‘양질’의 교육으로 표현되고 있기 때문일 테다. 교육의 질적 수준이 양호하기 위해서는 물리적인 교육환경을 넘어 교육의 기회와 과정, 결과에 있어 포용적이어야 하고 균등해야 한다.

그런데 ‘모두에게 평등한 교육’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까? 이 질문에 난감한 표정을 짓지 않을 수 없다. 비록 하나의 명제로서 ‘모두에게 평등한 교육’을 부인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래서 그 명제의 현실적 모습을 구상하고 이를 실현해 온 현실적 모습은 그다지 분명하지 않다. 분명하지 않은 것은 둘째로 치고, 흐릿하다 못해 정말 그런 것이 있는가 싶을 정도이다.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는 것이 가치롭고 또 효과적인지에 대해 각 사회는 서로 다른 방식의 사회문화적 체제를 형성해 왔다. 흥미롭게 이들 사회에서 ‘모두에게 평등한 교육’은 일종의 전 지구적인 이데올로기로서 수용되어 왔다. 하지만 이 이데올로기는 각 사회에서 수사적 표현으로 읊어지고 있을 뿐, 서로 다른 교육 체제 속에서 모두에게 평등한 교육은 요원한 목표로 남아 있다. 어쩌면 그 반대 모습인 교육의 불평등한 양상은 계속 생산, 재생산, 강화, 혹은 확산되고 있는 듯하다. 한마디로 교육 불평등의 전 지구화가 아닐 수 없다. 평등한 교육을 옹호하는 목소리는 점차 커지는데도 말이다. 대단한 역설이다. 

마이클 샌델은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미국 사회의 교육 공정성 담론과는 달리, 현실에서 교육을 파이프라인 삼아 계층 재생산을 이뤄내려는 사회의 어두운 모습을 잘 담아내고 있다. 로버트 프랭크는 ??실력과 노력으로 성공했다는 당신에게: 행운, 그리고 실력주의라는 신화??에서 개인의 능력을 과대 포장하고 이를 정당화하는 교육을 통해 미국 사회의 불평등이 공고해진다고 했다. 사이먼 쿠퍼는 ??옥스퍼드 초엘리트??에서 영국 사회의 오랜 엘리트 교육의 전통이 현실 속 민중에 와닿지 못하고 오히려 사회의 불평등과 불안정을 확대, 재생산하는 모습을 선출된 고위 공직자의 교육 배경을 매개로 그려냈다. 그린과 카이너스톤은 ??Engines of Privilege: Britain’s Private School Problem??에서 평등에 위배되는 사회적 특권을 재생산하는 기제로서 사립학교의 사회적 기능을 탐색하고 있다. 이런 부류의 비판은 미국과 영국에 국한되지 않는다. 클라이브 해밀턴은 ??특권계급론??에서 호주의 사례를 언급하면서 극단적 소수의 특권계급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고, 이런 특권은 사회 질서에 구애받지 않고 특권을 행사하는 명문 사립학교를 통해 유지, 강화된다고 역설하고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닌 듯하다. 김동춘의 ??시험능력주의??와 박권일의 ??한국의 능력주의??는 특정 능력이 사회적 지위를 배분하기 위한 주요 준거로 작동하면서 이 능력을 배양하고 측정, 평가하는 방식으로 한국 사회의 학교교육이 사회 불평등을 강화하는 기제로 작동함을 보여주고 있다. 중국(Liu, 2023), 대만(Chen et al., 2021) 등의 사례 또한 동아시아에서 능력주의에 기반한 교육 불평등에 주목하고 있으며, 이 지역의 불균등한 교육 결과는 곧 사람들의 삶의 질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Kim, 2024).

교육평등을 향한 각 사회의 구체적인 실천은 오히려 평등하지 못한 교육 모습을 더 분명하게 보여준다. 마치 각 사회의 교육이란 엔진은 ‘능력주의’라는 연료로 더욱 활활 불타올라 평등과는 반대 방향인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사회로 내달리는 듯하다. 이렇듯 교육평등을 둘러싼 작금의 전 지구적 논의는 무엇이 교육평등을 저해하는지, 왜 그런지, 이를 바로 잡기 위한 사회정책적 방안은 무엇일지에 대해 논쟁의 장을 이어오고 있다. 예를 들어, 샌델이 제기한 ‘제비뽑기를 통한 대입 선발’이라든지, 김종영의 ‘서울대 10개 만들기’, 김동춘의 ‘교육-노동연계를 통한 사회구조 개선’ 등이 그렇다. 극단적으로는 한국의 ‘서울대 폐지론’, 영국의 ‘사립학교 폐지론’도 일종의 고려할 수 있는 카드로 거론되곤 한다. 즉, 이런 주장들은, 특정한 사회정치적 정책과 개입이 사회적 평등을 훼손하는 교육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과연 한 사회의 엘리트라 불리는 인재 양성 과정으로서의 교육은 특권계층의 계급 재생산 통로라는 비판을 넘어설 수 있는 토대역량(capabilities)을 갖고 있는 걸까? 

그런데 여기 일본의 사례를 들어, 교육 평등과 능력주의의 상호 관련성을 독특하게 설명하고 있는 흥미로운 연구물이 있다. 다케히코 카리야와 제러미 래플라이, 두 저자는 일본이 능력주의를 기반으로 ‘모두에게 평등한 교육’을 양적으로, 또 질적으로 구현해 낸 유토피아라는 저간의 해석을 비판하면서 오히려 일본의 교육 평등은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는 이념적 영역이 되었다고 본다. 특히 1980년대 발흥한 신자유주의는 개인의 능력에 기반한 교육적 성취가 사회적 지위 획득의 구체적인 메커니즘이 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면서 일본의 사례를 능력주의에 따른 유토피아로 그려냈다. 그런 점에서 본서는 이미 형성된 능력주의가 어떤 방식으로 사회의 문제로 일탈하는지를 보여주기보다, 애초 일본은 능력주의가 왜 이토록 독특한 방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는지 역사사회학적인 설명에 천착한다. 두 저자는 능력주의라는 이데올로기의 기능이 아닌, 능력주의 이데올로기의 형성을 통해 현재 일본의 능력주의가 다른 국가의 능력주의 비판과 뒤섞이는 지점을 제대로 비판하고 있다. 


본서의 원제는 ??Education, Equality, and Meritocracy in a Global Age(글로벌 시대 교육, 형평성, 능력주의)??이다. 저자들은 지난 수십 년간 세계화가 진척되어 오면서 능력주의 이데올로기가 교육격차 및 불평등에 대한 비판뿐만 아니라 이런 격차와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기제로 작동했음을 비판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일본도 다른 국가와 마찬가지로 근대화 과정을 거치며 ‘모두에게 평등한 교육’을 제공하려는 목표를 내세웠다. 이상으로서 제시된 ‘모두에게 평등한 교육’은 지금이야 “절대적인 것에 가까운 뿌리 깊은 평등주의”로 자리매김했지만, 하나의 이상을 구체적인 정책으로 구현하려는 상황은 도전적인 어려움에 봉착했다. 일본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 이후 1950년대를 거치며 교육재원의 부족 속에서 교육 평등을 향한 정책 구현에 제약을 받게 된다. 즉 전후 주요 일본 정책입안자들 사이의 개인적 차이에 뿌리를 둔 개인적 평등 모델에 대한 명확한 욕구에도 불구하고, 그 특정한 역사적 시점에서의 교육재정적 제약이 학생 개인을 교육의 기본 단위로 설정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열악한 교육비 상황 때문에 학생 1인당 교육비를 교원 정원으로 대체한 교육 재정 접근법을 통해 일본만의 독특한 교육평등화가 만들어져 시행되게 되었는데, 저자들은 교육평등에 대한 서구적 관점인 ‘개인 평등’이 일본의 ‘공간 평등’으로 바뀌어 오늘날 의심되지 않는 교육평등의 공식으로 자리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본서에서는 이를 ‘미지의 혁명’이라 표현하며, ‘애초 의도하지 않은 역사적 제약의 모호한 결론’ 혹은 ‘신중하게 계획된 정책 개입이라기보다는 의도하지 않은 정책적 파생물’이었고 강조한다. 

이런 저자들의 교육평등에 대한 관심은 사회의 평등을 진작해야 하는 수단적 현상으로서의 교육에 대한 해석, 비판, 설명에 놓여 있지 않다. 앞서 이야기했듯 ‘모두에게 평등한 교육’을 구현하는 방식은 각 사회마다 다양하게 형성되어 왔다. 일본의 사례는 국제사회에서 신자유주의자들이 보고 싶어 하는 능력주의적 유토피아로 등장하지만, 저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일본의 능력주의는 다른 사회의 능력주의와는 확연히 다른 역사적 계보와 형성과정을 거친 것으로 서구의 눈으로 판단되어서는 안 된다. 저자들은 교육 체제 내부의 고유한 논리로서 ‘모두에게 평등한 교육’을 구현하기 위한 선택 과정으로 좁히고, 이 과정에서의 의도(‘목표달성을 위해 고려된 효과적인 수단’)와 비의도(‘어쩔 수 없이 선택될 수밖에 없는 대안적 수단’) 사이의 경쟁을 흥미롭게 기술하고 있다. 서구(특히 미국)의 경우, 공정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정책은 어떻게 공교육비를 학생당 배분할 것인가의 문제였지만, 일본의 경우에는 똑같은 화법을 실현하는 정책목표하에 다른 방법을 택하게 된다. 즉, 공교육비는 학생 수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교실 수(혹은 교실을 맡아 가르치는 교사 수)에 맞춰 적절하게 배분하는 문제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직접적인 원인이야 예산의 부족이기는 했지만, 교육을 구성하는 가르침과 배움의 기본적인 단위가 개인에게서 집단, 즉 가르치고 배우는 사람들의 집단으로 이해, 수용되어도 상관없는 사회문회적 맥락 때문이었다. 따라서 ‘모두를 위한 평등한 교육’의 화법이 동일하기는 하지만, 서구와 일본(이렇게 둘을 비교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의 정책 기획과 실행은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저자들은 같은 정책 목표하에서 서로 다른 길이 택해진 이후 일본의 역사사회학적 조건에서 의도되지 않은 선택이 연속적으로 이뤄졌고, 결국 교육평등을 구현하는 일본 나름의 이념이 사회 깊숙이 자리 잡게 되었다고 논증하고 있다. 교육시스템의 작동과 변화에 대한 서구화된 설명이 동아시아, 정확하게는 일본에는 그대로 적용되지 않음을 사료로 논증해 보여주는 교육연구의 탈식민적 접근의 일례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본서가 갖는 학술적 의미는 작지 않다. 본서의 학술적 의미와 강점, 저자들의 탁월한 통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사유할 수 있다. 

우선, ‘능력주의’라는 이념은 받아들일지, 말지를 이분법적으로 결정해야 하는 이념이 아니다. 본서에서 저자들은 전 지구적 차원에서 맹위를 떨치는 능력주의의 기능을 낙관적으로 보아 수용할 것인지, 혹 비관적으로 보아 피해야 할 것인지를 이분법적으로 대하지 말 것을 주문한다. 지난 10여 년간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전 지구적 불평등’, ‘격차사회’, ‘특권계층’, ‘엘리트지배’, ‘출생, 연줄, 성공’ 논쟁은 ‘능력주의’의 폭군적 만행을 되돌아보게 했다. 사회학자인 마이클 영이 냉소적으로 묘사한 능력주의는 다니엘 벨이 이를 경영학 분야에서 유능함의 지표로 급선회시키면서 구현해야 할 이념적 지향으로 황금기를 누려왔었다. 즉, 능력주의는 추구할 것인지, 아니면 사장시켜 없애야 할 것인지를 둘러싸고 시끄러운 전장의 논쟁이 이어졌었다. 특히 능력주의를 내면화하게 하는 교육제도의 틀과 내용을 둘러싼 쟁론은 여전히 팽팽한 긴장상태에 놓여있다. 일본의 지식인들이 지속적으로 제기하는 격차사회 및 교육의 역할에 대한 비판이나, 문재인 정부에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던 한국 사회의 공정성 논쟁에 대한 비판 또한 이런 긴장의 일부로 이해된다. 하지만 본서는 능력주의가 체화된 사회 현상을 이렇게 평가의 대상으로 삼아 ‘좋다’라거나 ‘나쁘다’고 해 추구, 혹은 비추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한 사회에서 ‘능력주의’가 어떻게 구현되는지, 왜 그런지를 설명하는 것이 그 사회의 교육 이념과 실천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더 낫다고 본다. 누군가의 눈에 일본 사회는 능력주의가 긍정적으로 열매 맺은 유토피아, 즉 누군가의 출생 시 여건이 사회적 성공에 가장 덜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저자들은 능력주의를 이런 평면적인 기술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지난 수십 년에 걸쳐 하나의 교육이념으로 자리 잡게 한 제도의 형성과정을 통해 ‘좋다’ 혹은 ‘나쁘다’를 넘어선 일본 사회의 특징을 설명하고자 한다. 

둘째, 정책 목표를 위한 화법은 정책이 실행되는 사회, 문화, 정치, 경제적 맥락에 따라 의도된 대로 구현되지 않는다. 정책 목표에 따라 기획된 구상은 의도되지 않은 다양한 요인에 따라 굴절되거나 조정되는 과정을 거친다. 일본의 사례를 다룬 본서에서 이런 과정이 잘 그려져 있다. 저자들은 서론을 비롯해 본문의 여러 곳에서 일본의 능력주의가 평등한 교육제도로 구현되는 과정은 의도된 것과 의도되지 않은 것 사이의 긴장과 조정 속에서 만들어진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본서에서 핵심 키워드로 등장하는 ‘공간평등’은 기존의 ‘개별평등’에 대응하면서도 교육평등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도록 이끄는 놀라운 발견이 아닐 수 없다. 왜 일본은 서구의 다른 나라(특히 영미)와는 다른 교육재정 배분 논리를 유지하고 있는가? 어떻게 이런 체제가 일본에 자리 잡은 것이고, 교육평등과 관련해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저자들의 질문은 똑같은 목표를 지향하는 교육체제의 서로 다른 제도적 접근을 통해 이를 포괄하는 이념의 구현방식이 맥락에 따라 달라졌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즉, 교육평등을 구현하려는 일본만의 독특함은 교육을 둘러싼 사회, 정치, 경제의 영향하에서 일방적으로 결정된 것도, 그렇다고 교육논리에 따른 것만도 아님을 보여준다. 아마도 방법론으로서 교육역사사회학의 특징과 역사사회학의 방법적 쓰임새를 잘 보여준 성과가 아닌가 싶다.

셋째, 본서는 교육이념에 대한 탈서구적 관점을 담고 있다. 각 사회에서 교육의 이상으로 제시된 화법과 정책 구상은 서구 사회의 근대성 틀 안에서 진전된 성과로 수용되어 왔다. 이유야 여러 가지겠지만, ‘우리’ 주변의 사회현상을 ‘우리’의 시각으로 보고 설명할 수 있는 틀을 제대로 가져본 적도, 그래야 한다는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좀 더 직설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우리가 지닌 교육, 좀 더 거시적인 사회를 분석하는 틀이 ‘우리’ 것인지 아닌지 볼 수 있는 안목이 부재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아시아의 사회적 실천을 아시아적인 눈으로 보고 이해해야 한다는 Kwan-Sheng Chen의 ??asia as method??는 아시아권 사회과학자들의 눈을 새롭게 할 걸작임이 분명하다. 이런 점에 비추어, 동아시아에서의 교육 실천은 서구 사회의 실천과는 다르게 이해, 설명되어야 한다. 본서는 ‘일본의 경험이 글로벌 문제에 대해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는지, 그리고 앞서 언급했듯이 이미 늦은 이 시점에 능력주의, 평등, 교육에 대한 보다 엄격한 논의를 다시 시작’하도록 하는 데 궁극적인 목적이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서문의 첫 부분에서 던진 교육 구상, ‘누구나 포용적이고 균등한 양질의 교육’은 마치 객관적이고 누구나 추구해야 할 마땅하고 당연한 개념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이를 이해하고, 또 구현해야 하는 사회에서의 개념은 동일하지 않으며, 이를 구현해 내는 사회, 정치, 문화, 경제 체제는 모양도, 수준도, 심지어 지향도 동일하지 않다. 어떤 것을 우선하고 또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한 정당화 또한 동일하지 않다. 그런 점에서 두 저자가, 일본의 능력주의가 탄생하고 일종의 강력한 교육 이념으로 자리 잡은 교육평등의 토대가 작동하는 상황을 일본 고유의 특징으로 제시한 것은 서구 중심적 시각을 넘어선 교육적 특성을 이해하도록 하는 좋은 길잡이가 될 수 있다. 

넷째, 본서는 물적 기반 없는 교육평등은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역사사회학적 분석으로 밝히고 있다. 일본의 사례는 교육이 평등해야 하며 공정하게 주어져야 한다는, 일종의 종교적 신념에 가까운 이념이 연속적인 정책 결정의 산물임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강력한 신념으로서의 교육평등은 물적 조건에 기반한 정책이 사회에 실현된 결과물인 셈이다. 즉, (기회의 평등이든, 결과의 평등이든) 평등을 내세운 교육 이념은 물적 기반 없이는 등장할 수 없으며, 구체적인 이행 수단으로서의 자원이 동반되지 않고는 교육평등은 늘 불완전한 정책 목표일 수밖에 없다. 저자들은 이 과정을 ‘미지의 혁명’이라고 부르면서 일본의 교육평등이 ‘자원배분의 논리에 따른 결과로써 공간적 평등’ 형태로 출현하게 되었음을 추적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한번 ‘절대적인 것에 가까운 뿌리 깊은 평등주의’로 자리 잡은 교육이념은 ‘개인적 차이에 뿌리를 둔 개별 평등’ 모델을 선호하는 전후 정책결정자들의 분명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특정한 역사적 시점에서의 교육재정상 제약으로 인해 학생 개인을 교육의 기본 단위로 설정하지 못하도록’ 했다. 본서에서 교육평등의 구현을 교육재정 상황에 따른 자원 배분논리로 파악하는 것은 그다지 새롭다 할 것이 없다. 하지만 교육평등을 비롯한 교육의 이념을 구현하기 위한 논의에서 종종 자원 동원을 제외한 사회문화적 설명, 혹은 대중의 인식 고양 및 참여 증진에 지나치게 초점이 맞춰지는 경우가 있다. 흥미롭게도 이런 이야기는 곧, 교육체제를 보완하고 혁신하고 또 개혁하는 데 굳이 ‘많은 돈’을 써야 하는지 반문한다. 단적으로 말해, 국가는 사회정책에 많은 돈을 쓰려는 데 소극적이다. 말할 필요 없이, 사회정책의 하나로서 교육체제를 형성하고 또 증진하는 일에 국가는 소극적이다. 교육이야 각 개인의 일이고, 교육의 성과가 각 개인의 이해관계로 취급받는 사회에서 굳이 국가가 각 개인의 이익에 관여된 체제에 돈을 쓸 이유를 찾겠는가? 안타깝지만, 교육은 개인의 사회경제문화적 자본을 개별적으로 취득하고 활용하는 독립적 활동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국가를 본위로 하는 사회는 교육에 투자하고, 교육을 통해 사회적 응집성 및 사회구성원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물질적 토대를 증진시켜야 한다. 즉, 자원동원은 교육에 있어 필수불가결하고, 그 정도에 따라 한 사회의 교육이 사회적 이해관계를 반영할 수 있는 정도가 달라진다는 이야기이다. 이런 점에 있어, 본서는 자원 동원 없는 교육가치 구현이란 불가능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역사사회학적 사료를 통해 강조하고 있다. 

다섯째, 교육의 이념은 좀 더 거시적인 사회정치경제 이념과 깊은 상관성을 갖고 있다. 1980년대 이후 우리는 글로벌 경쟁과 수월성을 핵심가치로 내세운 교육개혁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한마디로 쓸모 있는 교육을 위한 개혁의 토대로서 신자유적인 이데올로기가 튼튼하게 자리 잡고 있다. 흥미롭게도 일련의 교육개혁 어젠다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형평성을 내세운 교육평등이란 이념이다. 그런데 교육이 평등해야 한다는 작금의 화법은 교육 접근성의 강화, 즉 교육기회의 평등으로 이해되는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누구나 제도로서 제공되는 교육에 접근하는 기회가 공평하게 분배되면 곧 교육이 평등하다’라는 생각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현대 국가의 교육개혁은 ‘개별화’와 ‘국제화’, ‘수월성’의 기치 아래 제도의 ‘표준화’, ‘분권화’, ‘민영화’를 향해 빠르게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저자들은 ‘교육이 근대성에 내재된 긴장을 해소할 수 있다는 유토피아적 희망에 집착하는 것은 근본적인 양면성을 인정하지 않고 신자유주의가 글로벌 능력주의의 형태로 “초대”되는 상황으로 이어진다’고 주장하면서, ‘개별화된 학습, 국제화, 재정 및 행정 분권화를 목표로 한 교육과정 및 교육 개혁이 어떻게 지탱’되었는지 비판적으로 탐색하고 있다. 즉, 세 가지 정책 개혁은 전후 체제가 일본을 새로운 글로벌 세계에서 정체되게 했다는 병리 현상인 획일화와 표준화를 낳았다는 믿음에 그 기반을 두고 있는데, 이러한 정책 해석의 문제점은 후속 개혁이 “표준화된 세계”의 표면적인 현상만을 다루었을 뿐, 더 심층적인 메커니즘을 인식하지 못한다고 저자들은 비판한다. 결국 저자들의 눈에 이런 신자유주의적 교육개혁은 개혁을 앞세운 교육정책의 실패와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했다. 교육개혁의 이념으로 작동하는 기존 신자유주의적 지향의 토대가 상당히 약하다는 점, 결국 교육은 정치경제적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좀 더 큰 담론체계에 휘둘리는 상황임을 본서에서 또다시 확인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본서는, ‘교육평등’이라는 이념이 교육 체제의 논리 내에서 투입-산출의 격차로만 설명될 것이 아니라, 교육과 직간접적으로 연계된 거시적 사회체계와의 관련성을 통해 비판, 평가, 재해석되어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저자들의 논점들은 사회적 현상으로서의 교육을 더 깊게 사유하고 비판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통찰을 갖게 해준다. 그런데 이들의 비판적 논점을 보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이어가지 않을 수 없다. 교육 평등 이념을 창출해 낸 일본식 능력주의가 일본 사회를 유토피아도, 그렇다고 디스토피아도 아니게 조형해 냈다면, 현재 일본 교육의 문제는 능력주의와 별 상관이 없는 것일까? 일본 사회가 지향하겠다고 품어온 평등한 교육을 위해 풀어가야 할 일본 교육의 다음 단계는 어떻게 될까? 이는 사실 우리 주변의 교육에 내면화된 능력주의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를 묻는 질문과 다르지 않다. 저자들은 일본의 사례를 들어 능력주의에 기반한 사회적 성공으로의 교육평등 이념이 자리 잡게 된 상황을 기술하면서 능력주의가 긍정적으로도, 그렇다고 부정적으로도 비칠 수 없는 중간적 형태를 취하고 있다고 결론짓고 있다. 이들의 이런 입장은 ‘능력주의를 수용하거나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는 믿음에 내재된 위험’을 지적하는 것으로 설명된다. 즉, 저자들은 일본이 능력주의 사회로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나름 조화롭게 달성한 사회라는 세간의 평가를 비판하고 있다. 그렇다면 일본의 교육에 있어서 능력주의는 어떤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것일까? 능력주의에 기반해 교육체제를 형성해 왔으면서도 서구의 능력주의가 생산해 온 계층 간 불평등을 강화, 확대, 재생산하고 있지 않은가? 전후 지속되는 정치적 보수주의, 대기업에 의존하는 경제체제, 격차사회로 비판되는 사회 다방면의 불평등 증대, 취약한 개인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점증하는 집단주의, 더 공고해지는 학벌과 교육엘리트들의 특권집단화, 특권 계층의 재생산과 이를 반영하는 교육의 기능 등. 마이클 영이 냉소적으로 내세웠던 개념으로 등장한 ‘능력주의’가 현재 일본에서 능력의 다원성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기존 특권적 계층의 재생산과 사회구성원들 사이의 격차를 증대시키고 있음을 부인할 수 있을까? 안타깝지만 본서에서 능력주의에 대한 저자들의 접근은 특정 능력에 기반한 교육의 수행과 이를 반영한 제도의 변화를 어떻게 이해하고 혹 변화해야 할지에 대해 별 함의를 주지 못한다. 

더욱이 저자들은 본서에서 일본 내에서의 ‘교육 불평등’에 대한 비판적 논의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염려하며, 이를 재개하는 데 일본 능력주의에 대한 역사사회학적 논의가 의미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런 저자들의 기대와 함께 본서는 일본의 교육 연구가 서구의 교육 연구 전통 속에 있지 않을 수 있음을 탐색하는 시도로도 읽힌다. 즉, 동아시아의 탈식민주의적 교육연구가 어떤 내용을, 어떻게 수행할 수 있는지에 대한 사례로 비춰지기를 기대하는 듯하다. 이는 교육이 한 사회의 오랜 체제적 변화 속에서 역사사회학적으로 설명되어야 할 특수성임을, 그래서 보편적 이론의 적용, 혹은 보편적 이론의 탐색과는 다른 축으로 이해, 설명되는 것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역자들은 이런 저자들의 문제의식과 본서의 학술적 기여를 통한 서구 중심의 탈식민성에 대해 박수를 보내면서도, 이런 일본의 특수한 사례와 분석이 또 다른 의미의 보편적 이론화를 추구하는, 다른 말로, 또 다른 의미의 이론화와 무엇이 다른지 의문을 갖고 있다. 교육평등에 대한 서구적 접근이 개인의 교육기회에 초점을 맞춘 것과 달리 일본의 한 공간 내 소속된 구성을 묶은 집단적 교육기회로의 전환이 주는 의미가 지역 및 시대적 맥락을 넘어 어떤 의미를 갖는지 과도하게 이야기하기 어렵다고 역자들은 판단한다. 여전히 서구 주류 이론에 바탕해 아시아적, 동아시아적, 혹 특정 국가(한국, 일본, 중국, 대만, 싱가포르 등)의 교육을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적절한지, 이를 위한 방법론이 어떤 모습일지에 대해 깊은 사유가 필요하다. 본서는 이를 위한 하나의 중요한 연구이기는 하지만, 일본 교육의 고유성을 강조하는 것을 넘어 서구의 약탈적 식민성을 탈피할 수 있는 탈식민지적 담론을 대표하거나 혹 대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읽히는 것은 조심스럽지만 경계되어야 할 부분이다. 지구상의 다른 지역에 비추어 동아시아, 특히 동북아시아의 문화적 유사성이 큰 지역 내 공동체의 유사한 사회적 문제, 교육적 문제(인구감소, 격차사회, 낮은 포용성 등)를 어떻게 사유하고 또 연구할 것인지, 진전된 민주주의 사회를 만들 수 있도록 어떤 방식으로 교육의 변화를 일궈갈 것인지 지속적인 논의의 장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본서의 번역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감사한 분들이 많다. 특히 번역된 원고를 다듬는 과정에 꼼꼼한 조언과 도움을 준 분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한 분 한 분 주신 의견과 제안은 본서가 좀 더 가독성 있게 읽힐 수 있도록 하는 데 꼭 필요했던 채찍이었다. 무엇보다 본서를 출판하는 박영스토리의 편집진에게 감사드린다. 그나마 좋지 않은 출판시장 상황에서도 학술서적을 발간하는 것은 적잖은 부담일 것인데, 선뜻 학술적 의미에 공감하고 출간을 승인해 주어서 감사할 따름이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꽤 여러 번의 윤독과 검토, 수정을 거친 글이지만 여전히 부족한 문장과 건조한 문체가 눈에 띈다. 혹 있을지 모르는 오역, 오기, 혹 오타는 오롯이 우리 공역자들의 것으로, 서둘러 학술서의 번역에 나선 오만함의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너그러이 양해해 주시고 읽어주시면 감사하겠다. 일본의 사례로 보는 능력주의와 교육평등의 근현대 역사를 다룬 본서를 통해 한국의 지난 100년, 교육의 형성과 변화를 이해하고, 그리고 앞으로의 좀 더 민주적이고, 좀 더 변혁적인 교육을 만들어갈 수 있는 공론의 장이 많이 생기를 공역자들의 두 손 모아 염원한다. 


2025년 11월

유성상, 하승천

저자 약력

 

다케히코 카리야(Takehiko Kariya)

도쿄대학 교육학부의 교수를 거쳐, 이후 16(2008~2024) 동안 옥스퍼드대학교 샌안토니칼리지 및 니산일본연구원의 교수였고, 지금은 명예교수이다. 교육사회학 분야의 연구자로, 사회계층 및 사회이동, 사회변화, 전후 일본의 교육, 비판적 교육개혁론 등에 관심을 기울여 연구해왔다. 대표적으로 󰡔Education Reform and Social Class in Japan󰡕(Routledge; 2013), 󰡔The State and Higher Education󰡕(Symposium Books, 2013), 󰡔Challenges to Japanese Education: Economics, Reforms, and Human Rights󰡕(Teachers College Press, 2010; co-editor) 등의 저서가 있다.

 

제러미 래플라이(Jeremy Rappleye)

일본 교토대학 교수를 거쳐, 현재 홍콩대학교의 교육학과 교수이다. 주요 관심사는 세계화와 교육정책차용, 국제비교교육, 지식생산의 탈식민성, 동아시아교육이론, 기후환경 및 지속가능성 등이다. 󰡔Educational Policy Transfer in an Era of Globalization󰡕(Peterlang, 2012), 󰡔日本教育はダメじゃないー国際比較データでいなおす󰡕(Chikuma, 2021), 󰡔An Interdependent Approach to Happiness and Well-Being󰡕(Palgrave Macmillan, 2023) 등의 저서가 있다.

역자 약력

 

유성상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UCLA)에서 국제비교교육학으로 박사를 취득하고 한국교육개발원 부연구위원, 한국외국어대학교 부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 교육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최근 연구 관심 분야는 사회정의교육, 교육역사사회학, 21세기 교육발전론, 개발도상국의 교육, 토대역량으로서의 교육 등이다. 저서로는 󰡔배움의 조건󰡕, 󰡔인권과 학교교육󰡕, 󰡔모두를 위한 양질의 교육󰡕(공저) 등이 있고, 역서로는 󰡔PRIZE󰡕, 󰡔골리앗 무찌르기󰡕, 󰡔비난받는 교사󰡕(공역) 등이 있다.

 

하승천

서울대학교 교육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였으며, 주요 연구 관심 분야는 교육역사사회학, 21세기 교육발전론, 초등교육, 시민교육 등이다. 현직 초등학교 교사로서 오늘날 우리가 서 있는 교육 현장을 역사의 관점에서 이해하고자 꾸준히 탐구하고 있다.

차 례

 

감사의 글 ∙ ⅰ

역자 서문 ∙ ⅳ

 

1장 도입: 불평등 시대에서의 교육과 평등의 재고찰 1

글로벌 능력주의? 능력주의 이상(理想) 형성의 간략한 역사 / 능력주의 유토피아? 논의에서 일본 맥락의 중요성 / 책의 목적 / 세부 목표 / 각 장의 개요

 

2장 이야기의 시작: 1958년부터인가? 33

1950년대 후반인가? / “중앙 집권 중심 교육과정의 의미-의견 차이 / 문부성 대 일본교직원조합(일교조) / 국가 통제 / 문부성 설명 /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 위대한 6-3 실험-지역 간 교육 불평등 / 교육 제공의 불평등: 교육 자원, 교원, 학업 성취도 / 교육과정 실행의 차이 / 문제 파헤치기: 좌파/우파 대립을 넘어서는 것-새교육과 학습으로부터의 이탈 / 교육 불평등을 줄이는 방법?

 

3장 부정적인 전전(戰前) 유산과 미국 모델의 뿌리 71

전쟁 전 교육 자원 배분-빈곤 지역의 공공재정 / 교육기회균등과 교육 재정시스템 / 교사 간 불평등한 조건 / 문제 해결 방법-교사 단위 / 1872년 이래 가장 중요한 문제 / 미국의 뿌리: 과학적 관리 혁명-세기의 전환 / 교육 시설의 균일성 보장 / 교육 재정 불평등 해소 / 단위 비용의 기술 / 학생 시간 기준 / 학습 개별화와 교육 재정의 논리-학교 중심에서 아동 중심으로의 전환 / 개인으로서의 학습자

 

4장 전후의 교육 청사진 초안 107

전후, 다시 시작-의무교육의 제도화 / 문부성의 인식 / 전후의 요구-교육 재정의 독립성 / 교육 환경의 질적·양적 평등 보장 / 학교 최소 기준 / 평등에 대한 접근법으로서 표준화의 세계-숨겨진 가정 / 계산 공식의 세 가지 핵심 요소 / 학생 1인당 세계 / 또 다른 요인: 인구통계학적 변화 / 차선책

 

5장 미지의 혁명 139

공간적 평등 / 교육 재정 동향과 지역 간 불평등 / 공 투입 확대 / 교육비 지출 배분의 구조적 변화 / 미지의 혁명-교육 여건의 균질화-교사당 학생 수 / 교사 정원 개선 / 예기치 않은 결과 / 공간적 평등성: 더욱 큰 균등화를 향해-도서 벽지의 현실 / 할당 기준 / 교사를 위한 광범위한 지역 인적 자원 확보 / 기후 현 사례 / 후쿠시마 현 사례 / 지방 분권의 공동화(空洞化) 현상 / 아래로부터의 강력한 의지

 

6장 표준화의 양면성 189

전국 학업 성취도 조사: 재분석-시험 시행 / 업적 조사 논쟁의 의의 / 교원 성과 평가와의 연결 / 표준화는 어떻게 진행되었나? / 공통 잣대 / 교육 자료 표준 설정 / 성과와 연결-성과 순위 뒤집기 / 경제적 지표와 성과 / 수월성과 평등성 달성 / 공간 평등과 양면성: 학급, 집단적 질서, 시험 경쟁-학급: 평준화 기술 / 집단 질서 / 고교 입시 경쟁

 

7장 현대 일본의 공간적 평등의 행방 231

너무 쉬운 비평 대상 / 표준화 세계 해체? 정책 개혁 1995-2020 / 교육과정 및 교육방법(1992-현재) / 글로벌 인재 양성(2011-현재) / 탈중앙화(2004-현재) / 공간적 평등과 개별화된 학습을 위한 개혁의 대립 / 일방 지식 주입 교육에 대한 이미지 구축 / 중앙 통제식 교육에 대한 고정 관념: 교육 행정의 획일성 / 굴절된 관점: 개별화와 개인주의의 착시 효과

 

8장 결론 261

글로벌 시대에서의 시사점 / 디스토피아도 유토피아도 아닌 것: 마이클 영의 비전 다시 돌아보기 / 표준화의 역설 / 불평등 감소에 기여한 능력주의적 차별과 업적 / 세계적인 대화 속의 일본: 여전히 능력주의의 경계에 있는 일본? / 불평등의 변화 / 개인의 상태 / 글로벌 담론 내의 일본 / 신자유주의 30, 교육과 평등

 

찾아보기 291

참고문헌 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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