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발행 2025.05.30
서문
“도덕적 상대주의는 널리 퍼진 질병이다.”
벤자민 아론 샤피로 Benjamin Aaron Shapiro
『벤 샤피로의 세뇌 Brainwashed: how universities indoctrinate America’s youth(2004)』
한국어교육의 시작은 19세기 후반 조선에 입국한 개신교 선교사의 문화 적응과 함께 실시된 언어교육이다. 1920년 최초의 한국어교육기관인 연합 언어학교가 설립되어 한국어교육과정의 기초가 마련되었다. 그러나 초기 한국어교육은 한국어 개신교 선교사들에게만 제한적으로 실시되었다. 1959년에 이르러서야 연세대학교에 국내 최초의 근대적 한국어교육 과정이 설립되었다. 1980년대까지 한국어교육은 특수 목적 한국어 학습자를 대상으로 제한적으로 이루어지다가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외국인들이 대거 유입되기 시작하여 본격적으로 그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재한 외국인의 양적 증가와 함께 1990년에 이르러 한국어교육은 독립된 학술 영역으로 정체성을 확립하였다.
한국어 문화교육은 2000년대에 들어서야 본격적인 연구가 진행되었다. 2000년대 문화교육은 의 · 식 · 주 문화를 중심으로 한국 전통문화의 백과사전적 학습중심으로 실시되었다. 2007년 한국 체류 외국인 100만 시대가 열리면서 한국어교육의 양적 팽창과 함께 한국어교육의 세부 영역에 관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특히 2007년 유엔(United Nations) 인종차별철폐위원회(International Convention on the Elimination of All Forms of Racial Discrimination, CERD)의 권고로 민족 단일성 강조에 대한 우려와 함께 한국 사회가 다문화사회로 진입하고 있다는 목소리는 다문화 담론으로 확산되어 한국어 문화교육에서 다문화와 관련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었다.
그러나 2010년대 이후 프랑스 교육학과 독일어 교육학으로부터 다문화(Multicultural)교육과 변별되는 상호문화(Intercultural)의 개념이 한국어교육학에도 도입되면서 한국적 상황에 적합한 상호문화에 초점을 두어 문화교육 연구가 진행되었다. 한국어교육에서 상호문화 연구는 주로 한국어 교수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교육과정 설계와 교수 · 학습 방안, 상호문화 의사소통 능력에 중점을 두었다. 최근 10여 년간 한국어교육에서 상호문화교육의 필요성은 충분히 논의되었다. 그러나 실제 한국어교육 현장에서 문화 교수 시 상호문화 의사소통 능력 함양의 측면에서 충분한 연구와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국어 학당으로 통칭하는 대학 부설 한국어교육기관의 주 교육 대상인 일반목적 한국어교육에는 한국어와 함께 한국문화 교수가 비교적 다양하게 진행되는 반면 대학에 입학한 유학생 대상의 학문목적 한국어교육에서 문화교육이 차지하는 비중은 낮다. 대학에서 개설되는 한국어 수업은 주로 대학 수학능력에 초점을 두고 리포트 작성과 발표 토론, 전공 서적 독해에 필요한 쓰기와 말하기, 읽기와 어휘 능력 함양에 집중되어 있으며 문화 교양 과목 역시 기존 한국의 전통문화와 현대문화의 사전적 학습으로 제한되어 있다. 이러한 교육 현장 한계의 교육학적 대안으로, 이 책에서는 상호문화교육을 제시하였다.
선술하였듯이, 2000년대 들어서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는 학문목적 학습자, 결혼이주자, 이주노동자와의 관계 설정의 문제가 사회적 화두로 던져지면서 “다문화”와 관련된 다양한 담론이 생성되었다. 이러한 담론은 기존의 순혈주의에 대한 대안으로서 관용과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하는 다문화사회로의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로 확대 · 재생산된다. 2007년 8월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의 권고는 이러한 담론이 사회 저변으로 더욱 급속히 확대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는 한국이 실질적으로 “다인종 · 다문화사회”가 되었다는 인식의 발로에서 비롯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여전히, 다문화에 관한 담론이 문학, 철학, 교육학, 정치학, 사회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2010년대에 들어서 다문화 실패론이 대두되었다. 2010년 10월 6일 Angela Merkel 총리는 독일 포츠담에서 기독교민주당(CDU) 청년 당원들을 대상으로 연설하며 다른 문화가 공존하는 독일의 다문화주의는 완전히 실패했다고 선언하였다. 다음 해인 2011년 2월 5일 독일 뮌헨에서 개최된 국제 안보회의에서 영국의 David Cameron 총리는 “서로 다른 문화가 독립해서 공존하는 영국의 다문화주의는 영국의 가치 안에서 발전하지 못했다”고 선언한다. 뒤이어 2011년 2월 10일 Nicolas Sarkozy 프랑스 대통령 역시 다문화주의 정책 실패를 언급하며 “그동안 이주민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신경을 썼지만 정작 이들을 받아들이는 우리들의 정체성은 충분히 고민하지 않았다”고 공언하였다. 연이은 ‘다문화 정책 실패론’ 선언은 결국 유럽이 오랜 시간 지향해 온 다문화주의에 대한 논란을 촉발시켰다. 이어
2011년 2월 17일 파이낸셜타임스(FT)는 유럽연합 사무총장과의 인터뷰에서 ‘다문화주의 실패론’을 보도한다. Thorbjørn Jagland 유럽회의 사무총장은 “다문화주의 탓에 한 국가 안에서 ‘별개 사회(parallel society)’들이 성장하고 있다 … (중략) … 일부 별개 사회는 위험하고 급진적인 생각을 전개한다”고 비판하였다.
유럽의 다문화주의 실패론은 유로존의 경제적 문제 그중에서도 특히 청년실업률 문제와 더불어 극단적 무슬림에서 파생된 ‘테러’와 깊은 연관이 있다. 2015년 11월 자살폭탄테러로 시민 131명이 숨진 파리 연쇄 테러 사건은 이민자 사회통합 문제를 되짚어 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하여 유럽의 국가들은 기존의 다문화주의 정책에서 벗어나 동화주의로 선회하였으며 관련 정책 역시 변모하였다. 영국 · 프랑스 · 독일을 중심으로 이주민 대상 사회통합 교육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이주노동자의 유입 통제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물론 한국의 상황은 유럽과는 상이하다. 초기부터 이민 국가로 출범한 미국 · 캐나다 · 호주와는 달리 한국은 국민 국가로 출발하였다. 그러므로 국민 국가로 시작되어 이주민을 받아들인 유럽의 다문화 정책이 현재 한국에 주는 시사점이 매우 크다. 이 책은 ‘다문화정책 실패론’이 대두된 유럽과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한 고민에서 출발하였다. 그리하여 유럽과 변별되는 한국의 다문화 정책의 새로운 방향성으로 상호문화교육을 제시하였다. 이것이 이 책의 첫 번째 핵심이다.
다음으로 이 책에서 논의하는 상호문화교육은 상대주의와는 상이하며, 상호문화교육은 포스트모더니즘과는 거리를 둔다. 문화 상대주의는 본질상 “절대적인 전통적 가치와 도덕의 제약이 없다”는 전형적인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사고와 맞닿아 있다. 그러나 “윤리, 도덕과 법과 같은 절대성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명제 자체를 절대화하기 때문에 전제부터 성립될 수 없다. “절대적인 진리와 도덕과 법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명제 자체를 절대 진리로 상정하기 때문에, 절대성을 부정하는 명제 자체를 절대화한다는 오류로 귀결된다. 그렇기에 이 책은 미국의 대표적인 인류학자인 Hall의 “모든 사람과 문화에 등급을 매기는 일을 멈추어야 한다. 진리에 이르는 길은 여러 갈래로 진리 추구에 어떤 문화가 다른 문화보다 유리하거나 불리한 점은 없다”는 명제에 동의하지 않는다. 1장과 7장에서 논의하겠지만, 상호문화적 관점은 문화 상대주의와는 다른 개념으로 모든 문화를 동등하게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비판적 문화 인식(Critical cultural awareness)에 기반한 가치 판단으로 문화의 경중을 이해하는 것이다. 문화 상대주의에 기반하여 문화를 학습하게 되면 ‘명예 살인’, ‘여성할례’와 같은 문화 역시 존중되어야 할 문화라는 오류를 산출한다. 포스트모더니즘적 사고에 의하면 천부 인권과 같은 인간의 존엄성, 타인을 위한 희생과 헌신과 같은 선의 실행, 인간에 대한 신뢰 등은 무효화 된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이 부정하는 절대적인 전통적 가치와 도덕이 구현되지 않았다면 인류는 지속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므로 보편적이며 절대적인 도덕, 윤리의 개념과 연관된 문화의 가치를 단계적으로 구분해서 교수해야 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상대주의적 관점에서는 도덕률이나 자연법과 같은 가치 판단이나 문화적 전통의 근원이 설자리를 잃게 된다. 인간은 순간순간 ‘가치 판단’을 토대로 최선의 것을 ‘선택’하는데 그 기준이 모두 상대적이라면 모든 윤리와 도덕, 법과 질서가 사라진 상태가 될 것이다. 문화 상대주의와 동의어라 할 수 있는 있는 포트스모더니즘은 기존의 모든 윤리와 도덕, 법과 질서 체계의 해체를 그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윤리와 도덕은 명료하며 인간 안에 내재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문화 역시 타문화에 대한 존중의 기반에 토대하여 문화의 가치와 가치 체계를 판단하고 이에 기반하여 선택한 문화를 존중하며 개방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비판적 문화 인식(Critical cultural awareness)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므로 상호문화교육의 핵심은 지나친 문화 상대주의 관점을 지양하는 비판적 문화 인식 관점에 근거하여 문화의 범주와 가치를 명료하게 설정하는 것이다. 이것이 이 책의 두 번째 핵심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이 세상에 나오는 데 도움을 주신 분들이 계신다. 석사 시절, 문화교육으로 이끌어 주신 강현화 교수님, 그리고 박사논문이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끝까지 이끌어 주신 조태린 교수님께 고개 숙여 깊이 감사드린다. 더불어 장한업 교수님의 저작들이 이 책의 큰 틀이 되었다. 출간에 도움을 주신 이은경 교수님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또한 앞선 연구자들의 학문적 탁월성과 성실함이 책의 토대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을 출간해 주신 박영사 안상준 대표님, 박부하 과장님 그리고 원고의 편집과 교정을 맡아 수고해 주신 소다인 선생님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혹시 책 가운데 오류가 있다면, 그것은 온전히 나의 몫임을 밝힌다. 지난하고 고단한 과정을 응원해 준 가족에게 사랑을 전하며, 항상 선한 길로 인도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2025. 2.
이원희 드림
이원희 교수
-연세대학교 문학사(M.A)
-연세대학교 문학석사(B.A)
-연세대학교 문학박사(Ph.D)
말과 글의 힘을 믿는 언어학자이다.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한국학과에서 한국어교육을 전공하였다. 2021년 2월 연세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연세대학교에서 학술 글쓰기를 강의하고 있다.
Ⅰ 언어와 문화, 그리고 상호문화
01. 문화 5
02. 언어교육과 문화 17
03. 상호문화와 상호문화 화자 22
Ⅱ 상호문화 의사소통 능력
01. 상호문화 의사소통 능력 연구 39
02. 상호문화 의사소통 능력의 개념 53
03. 상호문화 의사소통 능력의 구성 요소 63
Ⅲ 한국어교육과 문화교육
01. 문화교육의 개념과 범주 107
02. 문화교육의 방향성 122
Ⅳ 상호문화교육
01. 상호문화교육의 개념과 특성 136
02. 상호문화교육의 구성 요소 149
Ⅴ 문화 포트폴리오
01. 문화 포트폴리오의 개념과 특성 164
02. 문화 포트폴리오 활용 교육 사례 174
Ⅵ 한국어 학습자의 상호문화 의사소통 능력 측정 결과
01. 연구 설계와 방법 192
02. 상호문화 의사소통 능력 측정 결과 205
Ⅶ 문화 포트폴리오를 활용한 상호문화교육 1
01. 문화 인식 포트폴리오 264
02. 상호문화 의사소통 능력 문화 포트폴리오 교육 설계 274
Ⅷ 문화 포트폴리오를 활용한 상호문화교육 2
01. 상호문화 능력 함양 문화 포트폴리오 294
02. 상호문화 감수성 함양 문화 포트폴리오 301
03. 의사소통 능력 함양 문화 포트폴리오 307
참고문헌 314
부록 3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