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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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심리학자의 성경 보기
신간
어느 심리학자의 성경 보기
저자
이수원
역자
-
분야
상담학
출판사
박영스토리
발행일
2025.04.10
장정
무선
페이지
204P
판형
신A5판
ISBN
979-11-7279-035-6
부가기호
03040
강의자료다운
-
색도
4도
정가
17,000원

초판발행 2025.04.10


속지

1984년에서 건너온 아버지의 편지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벌써 25년이 훌쩍 지났다. 1998년, 내가 석사 과정 3학기일 때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셔서 큰 충격을 받았었다. 이제는 내가 어느덧 53세가 되었다. 아버지가 이 편지를 작성하셨던 것은 1984년, 그때 아버지의 나이는 45세였다. 지금의 나보다 8살이나 젊었던 나이였다. 이 편지는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았던 1984년, 아버지가 UCLA 교환교수로 귀인이론 창시자인 Weiner 교수의 초청을 받아 안식년을 보냈을 때 쓴 것이다.

약 15년 전쯤, Weiner 교수가 내가 재직하는 고려대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아버지에 대해 물어보았는데, 그는 매우 기뻐하며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하고자 했다. 당시 나는 다른 업무로 바빠서 그와 아버지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던 것이 아쉽게 남아 있다. 그런데 이 편지를 읽고 나니, 왜 그가 나와 아버지에 대해 그렇게 이야기하고 싶어 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Weiner 교수에게는 동양에서 온 아버지의 학문적 열정과 행보가 무척 신기하고 인상 깊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1984년 8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미국에 머무르면서 하루도 빠짐없이 Weiner 교수의 연구실에서 열심히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에 매진하셨다. 저녁과 주말에는 하숙방에서 영어 논문과 성경을 읽으며 편지를 쓰셨다고 한다. 아버지의 편지를 보면, 학문에 대한 깊은 고민이 담긴 구절들이 자주 등장한다.


“내 나이 벌써 45세가 지났는데 이때까지 내가 무엇을 했는지. 돌이켜보면 아무것도 한 것 없이 무엇이든 분주히 왔다 갔다 한 것밖에 없다는 것을 통절히 느낄 따름이오.” (중략) “도대체 내가 무엇을 하면서 이제까지 세월을 보냈는가 하는 자책에 젖곤 하오. 그러다 보면 내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하여 암담한 생각이 들 때가 많소. 그리고 내 밑에서 자라는 제자들이 불쌍하게 여겨지오. 최소한 내 후속 세대는 나와 같은 전철을 되풀이시키지 말아야 할 텐데. 그것마저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아직 판단이 서지 않고 있소. ‘나의 길’에 대한 방황이 50대가 되어 가는데도 안착하지 못하니, 나는 원래 그런 그릇이 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회한도 들곤 하오.” (중략) “그럴 때면 이곳 학자들의 자신만만함이 얼마나 부러운지 모르겠소. 다 합리화일지 모르지만, 그들은 이런 방황을 거치지 않고도 학문을 할 수 있으니 말이오. 이것이 다 학문적 식민지로서 약소국가가 안고 있는 비극이라는 생각에 미치면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분명해지는데, 그것은 후학을 위해 학문적 식민 상태에서 벗어나는 길을 제시하는 것이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상이며, 현실로 돌아오면 다시 그들의 학문이나 방법에 압도된 나 자신을 발견할 뿐이오. 그리하여 학문적 종노릇을 벗어나는 길조차 확신이 서지 않는 상태에 빠지곤 하오. 무엇이 이 시점에서 방황하는 나의 판단을 온전하게 할 수 있겠소?”


아버지는 학문적 방황과 좌절을 극복하기 위해 성경을 읽고, 그 의미를 깊이 되새기며 답을 찾으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세속적인 것(육)과 영적인 것(영)을 논하면서, 이 둘이 별개가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였다. 동시에 이 둘이 다른 차원에서 작용하는 것도 인정하면서 그 복합적인 관계를 풀어내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성경적 깨달음이 현실의 삶에 즉각적으로 적용되지 않는 점에 대해 깊은 고민을 안고 있었고, 그로 인해 스스로를 위선자이자 가증한 사람으로 여겼다. 성경을 통해 진리를 찾고자 했으나, 이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그에게는 괴로움이었다. 그는 10시간 이상 공들여 편지를 쓰면서도, 본인이 성경을 올바르게 이해했는지 끊임없이 의심하고, 자신에게 스스로 물었다.

아버지의 편지는 깊은 성찰과 사유를 담고 있어, 대학 교수로서 매일 논문을 읽고 쓰는 나조차도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심리학자였던 아버지의 복잡한 성경 해석은 때로는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라는 질문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글이 그렇듯, 각자가 이해한 만큼의 깨달음을 얻어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아버지도 이러한 이유로, 자신이 확신하지 못한 편지 내용을 남에게 공개하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그러나 37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이 편지 글을 통해 한 심리학자가 품었던 고민과 사유를 지인들과 나누고자 한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에 대한 해석은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이 편지도 어느 한 심리학자가 성경을 해석한 글로 봐주기를 바란다. 그래서 제목을 “어느 심리학자의 성경 보기”이라 붙였다. 아마도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역시 각자의 상황과 환경에 따라 이 편지와 성경 구절에 대해 저마다의 해석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상이한 해석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이 편지를 읽는 사람들이 성경을 통해 자신의 삶의 의미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생각하기를 원했을 것이다. 이 편지가 우리 가족에게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막내아들 상민


1984년에서 건너온 아버지의 편지 1


첫 번째 편지 9

두 번째 편지 12

세 번째 편지 15

네 번째 편지 19

다섯 번째 편지 23

여섯 번째 편지 27

일곱 번째 편지 32

여덟 번째 편지 37

아홉 번째 편지 41

열 번째 편지 47

열한 번째 편지 53

열두 번째 편지 59

열세 번째 편지 68

열네 번째 편지 75

열다섯 번째 편지 80








열여섯 번째 편지 84

열일곱 번째 편지 91

열여덟 번째 편지 97

열아홉 번째 편지 105

스무 번째 편지 113

스물한 번째 편지 118

스물두 번째 편지 126

스물세 번째 편지 132

스물네 번째 편지 142

스물다섯 번째 편지 147

스물여섯 번째 편지 154

스물일곱 번째 편지 162

스물여덟 번째 편지 168

스물아홉 번째 편지 175

서른 번째 편지 181

서른한 번째 편지 189

서른두 번째 편지 1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