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발행 2025.07.01
2018년 시작한 한국연구재단의 7년 장기과제도 올해 6월로 마무리된다. 그동안 필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정치 체제에 관한 최초의 논쟁을 기록한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서 출발하여 2차 세계대전 이후 본격화된 좌우이념 논쟁을 반영한 슘페터의 ??자본주의, 사회주의 그리고 민주주의??에 이르기까지 서양의 주요 정치학 고전에 등장하는 정치 체제 논의와 민주 개념을 비판적으로 재검토하는 작업을 해왔다. 이런 작업의 첫 결과물로 ??서양 민주 개념 통사: 고대편??을 2021년에 출간하였다. 이 저술은 헤로도토스의 ??역사??부터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서양 고전에 등장하는 민주 개념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작년에는 우리가 다루는 2천 년이 넘는 서양 정치 사상사에서 민주 개념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핵심 텍스트들만 고전에서 골라 국문과 영문으로 동시에 편집해 ??민주주의 고전 산책??이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 출간하였다. 이 2권의 연구 결과물에 이어서 ??서양 민주 개념 통사: 근현대편??을 이번에 마지막으로 내놓게 되었다.
개인적인 연구 계기에 관해서는 앞선 저술들에서 이미 상세히 이야기했기에 여기서는 생략하고 다만 이러한 작업의 의의를 다시 강조하고자 한다. 정치학만 벌써 40년이 넘게 공부하고 민주 개념사 연구를 7년이라는 적지 않은 세월 동안 집중적으로 연구해 온 필자지만, 누군가 민주주의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여전히 명확히 답하지 못하고 주저하게 된다.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 진정으로 아는 것’이라는 궤변을 늘어놓고자 하는 말이 아니다. 민주라는 용어는 적지 않은 정치학자들이 때로는 의도적으로 때로는 무의식적으로 모호한 의미로 사용하면서 혼란이 점차 가중되어왔다. 또한 그 용어는 더 이상 정치학자들만의 전유물도 아니다. 우리나라 현실 정치에서도 다양한 의미의 민주라는 용어가 일상적으로 사용되면서 개념적 혼란은 더욱 심화된 상태이다. 예를 들어 민주라는 용어는 ‘더불어민주당’처럼 특정 정당의 이름에 들어가 있기도 하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처럼 국가 재정으로 운영되는 재단의 이름에도 나온다. 또한 ‘5.18 민주 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이나 작년에 논란이 된 ‘민주 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안’ 등에도 등장한다. 이 결과 적지 않은 국민이 현실적으로 민주주의와 관련하여 금전적 이해관계나 다른 형태의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사적인 이해관계가 개입된 만큼 민주주의의 의미를 객관적으로 규정하기가 더 어렵게 되어버렸을 뿐만 아니라, 특정 법률안에 담긴 민주주의처럼 우리 역사의 특정 시점에 박제된 개념으로 전락해 버렸다.
이러한 정치학 이론의 혼란과 우리 역사 속의 박제 작업은 우리가 오늘날 민주 정치에 실망해 새로운 정치 모형을 모색하는 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미래 사회에 알맞은 정치 모형의 설계는 민주 개념이 가진 현재의 특수성을 제거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이러한 특수성을 제거하려면 우선 그 특수성이 무엇인지부터 파악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다시 현재 이전 민주 정치의 특성을 살펴보고 오늘날과 비교해 봐야 한다. 이러한 작업의 일환으로 ??서양 민주 개념 통사: 고대편??에 이어, 필자는 홉스부터 슘페터까지 서양 근현대 정치 사상가들의 민주 개념을 되돌아보는 기회를 가져 보고자 한다.
구체적으로 필자는 제1장에서 서양 민주 개념 근현대사의 출발점을 홉스에게서 찾고 있다. 그 이유는 오늘날 민주 개념의 핵심 구성 요소 중 하나인 대의 개념을 현대적 의미로 재정립한 인물이 홉스이기 때문이다. 홉스 이전의 대표 내지 대의 개념은 상징의 의미에 가까웠다. 이런 의미의 예로는 ‘우리 마을을 대표하는 볼거리는 무엇이다’라는 표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대표는 행위자의 위임이 필요 없다. 하지만 홉스는 작자(author)와 행위자 또는 연기자(actor) 개념을 통하여 대의는 작자의 위임을 통하여 연기자가 행하는 것으로 정의하였다. 이러한 개념을 바탕으로 그는 공동체를 구성하려는 자연인들이 각자 작자로서 자신의 권한을 공동체 전체에게 위임하면 그것이 민주 정부(혹은 국가)라고 규정한다. 이것은 그러한 권한을 공동체의 일부나 1인에게 위임하는 귀족 정부(혹은 국가)나 군주 정부(혹은 국가)와 대비된다. 결과적으로 홉스는 민주 정부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정부를 대의 정부로 간주한다.
제2장에서는 홉스에 이어서 서구의 대표적 자유 민주주의자로 칭송받는 로크의 민주 개념을 다룬다. 통상적으로 알려진 바와 달리, 로크는 민주정을 다른 정치 체제보다 우위에 둔 이론가가 아니다. 그는 민주정보다 질서 정연한 정치 공동체(well-ordered commonwealth)를 더 선호한다. 로크에 따르면, 자연인들은 다수의 의결을 곧 공동체의 의결로 수용하기로 합의하면서 사회 혹은 정치 공동체를 구성한다. 이렇게 공동체의 전권을 위임받은 다수가 최고의 권력인 입법권을 직접 행사하면서 행정권을 별도로 선발된 이들에게 위임할 때 비로소 민주정이 수립된다. 그렇지 않고 이 다수가 입법권을 소수나 1인에게 위임하면 과두정이나 군주정이 들어서게 된다. 홉스의 주권 개념은 로크에 와서 최고 권력 개념으로 바뀌고, 이 최고 권력에는 입법권력만 포함된다. 그런데 로크는 이 입법권력을 행사하는 자들이 행정권력도 동시에 행사하게 되면 폭정이 우려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는 입법 기관과 행정 기관을 분리한 공동체가 필요하다고 보며, 이러한 공동체를 질서 정연한 공동체라고 부른다. 여기서 질서 정연한 ‘정부’라고 하지 않고 ‘공동체’라고 한 이유는 로크의 시각에서 보면 입법권을 행사하는 기관은 질서 정연한 공동체 이전이든 이후이든 동일하기 때문이다. 즉, 로크에게 정부를 구분하는 기준은 오로지 입법권의 행사 주체이기 때문에 이 주체가 동일한 이상 정부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제3장에서는 이 저술에서 다루고 있는 사상가 중 개념적으로 가장 혼란스러운 사상가인 몽테스키외의 정치 체제 개념을 살펴본다. 특히 여기서는 흔히 민주정과 혼동되는 자유로운 정부(free government)의 의미를 명확히 하고 있다. 몽테스키외가 사용하는 주권의 의미가 모호하긴 하지만, 민주정은 전체 인민에게 주권이 있는 공화 정부이고 이 정부는 인민의 일부에게 주권이 있는 귀족 공화정과 대비된다. 또한, 이 정부는 주권이 1인에게 있으면서 법치가 이루어지는 군주정과 무법의 1인 통치 정부인 독재정과도 대비된다. 그는 특이하게도 민주정에서 행정권이나 정치적 자문권은 정치 지도자들에게 얼마든지 위임될 수 있지만, 최종적인 법률 결정권은 여전히 인민에게 남아있다고 본다. 그는 이러한 공화정(민주정과 귀족정), 군주정과 독재정이라는 정부 외에도 온건한 정부(moderate government)와 자유로운 정부 개념을 추가로 설정하고 있다. 온건한 정부는 심리적 절제심에 해당하는 통치 원칙을 가지고 권력의 폭력적 행사를 예방하는 정부이다. 그리고 자유로운 정부는 폭력적 권력에 대한 통제가 단순히 통치자의 심리적 자제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 권력의 인적인 분리와 같은 제도적 견제 장치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정부이다. 다시 말하면, 온건한 정부와 자유로운 정부는 둘 다 권력의 폭력성을 제어하지만, 하나는 통치자의 내재적인 혹은 심리적 절제에 의존하고 다른 하나는 권력 간의 분리와 이에 기반한 외적인 상호 견제 시스템에 의존한다. 따라서 몽테스키외의 자유로운 정부는 로크의 질서 정연한 공동체와 유사하지만, 전자가 후자보다 더 엄격한 권력 간의 견제를 보장한다. 전자는 단순히 권력을 기능적으로만 분리해 놓은 정부가 아니다. 나아가 그것은 더욱 협소한 의미의 권력 분리, 즉 인민, 귀족 그리고 군주 이렇게 3개의 사회 세력 간의 권력 분점을 전제로 하는 혼합 정부이다. 그것은 인민이 최종적인 입법권을 독점하는 민주정과 거리가 멀다. 몽테스키외의 자유로운 정부에서는, 군주를 제외하고 귀족과 인민이 입법권을 나누어 가진다.
제4장에서는 대의(혹은 위임) 개념과 정부 개념의 관계에 관해 더욱 엄밀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 루소의 사고를 다루고 있다. 루소 역시 홉스처럼 자연인 개개인이 가진 권한을 공동체로 위임하는 것에서 사회 계약론을 시작한다. 하지만 홉스와 달리, 그는 자연인 개개인이 권한을 위임해 주는 대상은 공동체 전체뿐이라고 주장한다. 홉스처럼 공동체 일부나 개인에게 권한을 위임할 수도 없고 로크처럼 공동체의 다수에게 권한을 위임할 수도 없다. 이러한 전면적인 권한 위임으로 발생한 권력이 루소의 주권이며 이 주권은 공동체의 일반 의지와 동일하다. 이러한 주권 혹은 공동체의 일반 의지는 양도되거나 위임될 수 없다. 따라서 입법권으로 대표되는 일반 의지의 권능은 누구에게도 양도되거나 위임될 수 없고 언제나 공동체 구성원 전체, 즉 인민이 행사한다. 그리하여 정부 형태와 상관없이 주권은 언제나 공동체나 인민 전체에게만 귀속된다. 국가 혹은 공동체와 구분되는 정부는 일반 의지의 발현인 법을 구체적 사안에 적용하는 기구이며, 이 법 집행권력은 일반 의지에 의해 위임된 것이다. 이렇게 위임받은 법 집행권을 행사하는 시민이 인민의 절반이 넘는다면 민주정이고, 과반이 되지 않는다면 귀족정이며, 1인이라면 군주정이다. 따라서 민주정이든 아니든 모든 정부는 처음부터 일반 의지에 기반하고 법에 기초하여 운영되는 정부이다. 또한 모든 정부는 인민으로부터 법률 집행권을 위임받아 행사하는 대의 정부이다.
제5장에서는 사회 계약론의 대표적 사상가인 홉스, 로크 그리고 루소 이 3명의 정치 체제론과 민주 개념을 비교하고 있다. 이러한 논의는 제1장, 제2장 그리고 제4장에서 다룬 개별 이론과 일부 중복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비교 연구가 필요한 이유는 이 세 명의 정치 체제론을 종합적으로 비교하는 기존 연구를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에 관한 기존 연구는 대부분 비교론적인 시각이 부족하거나 비교하더라도 사회 계약론 자체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들의 민주 개념이나 정치 체제론에 관한 본격적인 비교 연구를 찾아보기 어렵다.
세부적인 내용은 본문에 맡기고 여기서는 이들의 이론이 분화되는 근원이 되는 정치 공동체와 정치 체제(혹은 정부 형태)의 관계에 관한 차이점을 간단히 언급하고자 한다. 홉스의 경우 정치 공동체가 곧 정부이다. 정부가 없다면 정치 공동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자연인이 상호 간 합의를 통해 만들어내는 정치 권력인 주권의 탄생은 정치 공동체의 탄생 그 자체이며 이 주권의 탄생은 언제나 구체적인 주권체의 설립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다시 말하면 주권의 탄생은 언제나 구체적인 정부 형태의 설립을 전제로 한다.
이에 반해 로크의 경우 정치 공동체의 탄생은 정부의 탄생이 아니다. 정치 공동체는 시원적 권력인 다수의 권력을 공동체 자체의 권력으로 인정하면서 탄생하는 것이고 이 다수의 권력이 입법권을 어떻게 행사하느냐에 따라서 다른 정부가 수립된다. 그리하여 정치 공동체와 정부는 개념적으로나 시간상으로 분리된다. 홉스에 의해 주권으로 통칭되던 권력이 로크에 이르러서는 정치 공동체를 형성하는 시원적 권력과 정부 형태를 구분하는 데 활용되는 입법권 혹은 최고의 권력으로 분화하게 된다. 이러한 분화로 인하여, 정부가 없더라도 정치 공동체는 여전히 존재할 수 있게 된다.
마지막으로 루소는 로크처럼 정치 공동체와 정부 개념을 분리하지만 이러한 분리를 훨씬 철저하게 한다. 그의 경우 자연인이 권력을 정치 공동체에 위임함으로써 정치 공동체가 수립된다. 그리고 이러한 정치 공동체가 하나의 단체로서 가지는 의지가 일반 의지이고 이것이 곧 주권이며 입법권이다. 이 주권을 가진 정치 공동체가 일반 의지의 표현인 법을 구체적인 상황에서 시행하는 주체를 별도로 설정하게 되면서 비로소 정부가 탄생하게 된다. 홉스의 관점에서 보면 주권이 민주정에 부여되었던 과정이 루소에게는 공동체 자체의 탄생 과정이 된다. 주권이 1인 군주나 소수 귀족 집단에게 부여되는 과정은 루소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즉, 루소의 정치 공동체 일반의 탄생은 홉스의 구체적 주권체 사례 중 하나인 민주적 주권체의 탄생과 동일하다. 그리하여 루소에게 주권은 언제나 인민 전체에게 놓여있는 것이며, 귀족이나 1인 군주에게 부여될 수 없는 것이다. 민주정, 군주정, 귀족정의 문제는 주권의 소재 문제가 아니라 이 주권 혹은 주권의 표현인 법률을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누가(혹은 어떻게) 하나하나 적용하여 나가느냐의 문제이다.
제6장에서는 루소 이후의 사상가들을 일일이 하나의 장에서 검토하기보다는 집필 방식을 변경해, 현대 민주 개념의 핵심 구성 요소들인 선거를 통한 대의와 경쟁 개념이 어떻게 근현대에 와서 민주 개념 속으로 들어오게 되었는지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 주제에 답하기 위해 홉스부터 루소까지 대의 개념을 다시 정리하는 동시에 지금까지 다루지 않았던 루소 이후의 사상가들인 칸트, 매디슨, 페인, 존 스튜어트 밀과 슘페터를 대의와 경쟁 개념에 초점을 맞추어 검토하고 있다. 이 저술을 마치기 이전에 이렇게 인물보다 주제를 중심으로 서술한 이유는 고대와 다른 근현대의 민주 개념이 갖는 특성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이를 통해 이 저술의 출발점이었던 문제, 즉 근현대 민주 개념의 역사적 특수성을 명확히 인식할 수 있다.
우선 홉스의 위임을 통한 대의 개념에서는 모든 정부가 자연인의 위임을 통해 탄생한 대의 정부이다. 로크의 경우는 자연인의 위임을 통해 다수가 지배하는 정치 공동체가 탄생하지만, 이 다수가 다시 입법권을 위임한 대의 정부는 군주정, 과두정, 혼합정뿐이며, 민주정은 이 다수가 입법권을 위임하지 않고 직접 행사하는 정부이다. 루소에 따르면, 자연인이 위임을 통해서 정치 공동체의 일반 권력인 주권을 만들지만, 이 주권을 가진 인민은 행정권을 위임하여 모든 정부를 만든다. 루소에게 있어, 전체 인민이 행정권을 직접 행사하는 정부를 제외한 모든 정부는 인민 전체가 위임한 행정권을 행사하는 대의 정부이다. 몽테스키외의 경우는 이러한 권력 위임 개념을 명확히 다루지 않는다. 심지어 그가 제시한 권력의 인적 분리와 자유로운 정부 개념에서도 명확히 인민에 의한 권력의 위임 개념을 찾아볼 수 없다. 각 세력은 어쩌면 자연적인 권리로 자신의 권력을 별도로 행사한다. 예를 들어, 그의 자유로운 정부 개념에서는 군주가 행정권을 행사하지만, 이 군주의 권력이 인민에 의해서 위임된 것이란 보장이 없다. 마찬가지로 귀족 집단도 별도의 입법권을 갖고 있지만, 이러한 권한이 인민에 의해서 위임된 권한이라는 설명은 찾아보기 어렵다.
칸트에 이르러, 대의는 공화와 민주를 구분하는 주요한 기준점이 된다. 즉, 대의 정부는 곧 공화 정부인데, 이 정부는 입법권을 가진 의회와 기능적으로 분리된 기관이 행정을 담당하는 정부를 의미한다. 여기서 의회가 대의원으로 구성될 수 있지만, 그의 대의 정부는 기본적으로 대의 행정부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 대의 정부의 대의는 선거를 통한 대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미국의 매디슨 역시 대의 정부를 강조하지만, 민주 정부와 대의 정부를 분리하여 대의 정부는 공화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칸트와 달리 그가 강조한 대의 정부는 대의원들로 구성된 의회 정부를 의미한다. 즉, 매디슨은 입법부의 대의를 염두에 두고 민주정과 구분하여 공화와 대의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그의 대의 개념은 선거를 통한 대의를 의미하지만, 그의 논의의 초점은 선거에 있지 않다.
하지만 동시대의 토마스 페인에 오면 대의는 선거를 통한 대의로 명확히 정의된다. 그에게 대의제는 세습제와 반대되는 제도로, 능력 있는 인물을 선거로 뽑는 정치 제도이다. 그렇지만 페인도 여전히 대의제 혹은 선거를 통한 대의제를 민주정으로 정의하지 않는다. 그는 민주정을 대의 정부와 분리하여 정의하고 있다. 이 두 정부는 같은 원리에 기반하고 있지만, 민주정은 고대의 정부이고 대의정은 근대의 혁신 정부이다.
이러한 대의와 민주의 개념적 구분은 밀에게 오면 종식된다. 밀에게는 대의정이 곧 민주정이다. 오히려 인구가 과다한 근대에서는 대의 정부만이 진정한 민주 정부가 될 수 있다. 단 그런 진정한 민주 정부가 되려면 일부나 다수를 대의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대의하는 정부이어야만 한다. 그리하여 전체를 대의하는 진정한 민주정이라는 표현이 이제는 자연스럽게 된다.
이렇게 대의, 선거를 통한 대의 그리고 대의와 민주 개념의 결합이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대의 민주정 개념이 확립된 상태에서 슘페터에 의해 경쟁 개념이 민주정의 요소로 추가된다. 슘페터는 공공선 혹은 인민의 의지나 일반 의지를 대의할 수 있다는 사고를 단순히 비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민주정의 정의에 전혀 새로운 요소, 즉 경쟁 개념을 집어넣는다. 그에게 와서 비로소 우리는 대의 민주정을 구가하는 과거 소련의 공산당 일당 독재체제가 민주정이 아니라고 규정할 이론적 근거를 찾아볼 수 있게 된다. 소련이나 다른 일당체제가 민주정이 아닌 이유는 이들이 선거나 대의 체제를 단지 형식적으로 채택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들 선거가 충분히 경쟁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주정은 더 이상 주권이 누구에게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인민의 표를 두고 경쟁하는 선거를 통해 정치 지도자를 선발하는 방식의 문제로 변질된다. 그리하여 군주 세습제처럼 선거가 없거나 선거가 있더라도 경쟁적이지 않은 체제는 민주정이 아니다. 이러한 선거로 선출된 정부가 민의를 대의하느냐의 문제도 민주정과 관련이 없다. 왜냐하면 슘페터에게는 민의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지막 7장에서는 ??서양 민주 개념 통사??의 고대편과 근현대편에서 다룬 민주 개념을 가지고 오늘날 우리나라 정치 체제를 평가해 본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지금까지 다룬 각각의 사상가들이 의미한 민주 개념을 더욱 분명히 이해할 수 있게 될 뿐만 아니라 현재 우리나라 정치 체제를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우리가 사는 오늘날 대한민국 정치 체제가 과거 사상가들의 눈으로 볼 때 과연 어떻게 평가될지 알아보는 것은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이 장에서 비록 일부 사상가들만 선별적으로 다루지만, 슘페터를 제외한 모든 사상가가 보기에 오늘날 대한민국은 민주정이 아니거나 가짜 민주정이다. 이것은 단순히 고대의 직접 민주정이 아니라는 말이 아니다. 여기서 고대나 근대 사상가들이 대한민국이 민주정이 아니라고 평가하는 이유는 직접 민주정과 간접 민주정의 구분과 무관하다.
서양 민주 개념사 연구를 이제 마치면서 필자는 고전을 통해서 미래의 정치 모형이나 민주주의 모형을 찾는 이들에게 한마디 조언하고 싶다. 선거를 통한 대의 개념 이전과 이후의 민주정은 이름은 같아도 의미가 전혀 다른 동음이의어다. 이 둘은 개념적으로 완전히 이질적이다. 또한 현대의 경쟁적 권력 투쟁 혹은 다당제 선거 시스템으로 정의되는 민주정 개념도 고대의 개념과 거리가 멀다. 이 역시 또 다른 동음이의어이다. 근현대에 와서 민주정에 새롭게 삽입된 위임을 통한 대의 개념과 경쟁 개념을 제거해야만 우리는 민주정의 고전적 모습을 명확히 파악할 수 있다.
근현대의 색채가 묻지 않은 민주정 개념의 핵심은 인민이 정치를 하는 것이다. 어쩌면 너무나 상식적인 이 말이 뭐 그렇게 대수인가 반문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새삼 깨닫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링컨의 유명한 어구인 “국민(인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the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에서 국민의 정부와 국민을 위한 정부는 민주정과 사실 관련이 없다. 민주정이 아니더라도 국민이 주인이라고 주장하는 정치를 할 수 있고, 국민을 위한 정치는 민주정이 아닌 정치 체제에서 더 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오로지 민주정에서만 진정으로 국민에 의한 정치를 할 수 있다. 고대부터 민주주의 전통이 없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민본주의 사상을 민주주의 사상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민을 위한 정치를 부르짖는 것이 진정한 민주주의자의 덕목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인민이 정치를 한다는 개념으로서 민주정을 인식하거나 인민에 ‘의한’ 정치를 민주정으로 간주하는 경우, 그러한 인민을 ‘위한’ 외침은 민주 정치가 될 수 없다. 그러한 외침은 민주정에서만이 아니라 군주정에서도 귀족정에서도 독재정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다시 말하면, 독재자나 왕도 얼마든지 대중을 위해서 혹은 공익을 도모하기 위해서 정치를 할 수 있다. 그들 또한 민본주의 사상처럼 백성을 하늘같이 받들며 정치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누구를 위하는 정치는 누가 정치를 하느냐와 완전히 다른 문제이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미래의 민주주의 모형은 대중이 정치하거나 공무를 보는 것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오늘날 기술 혁신과 물질적 풍요로 인하여 영토의 광대함이나 인구의 과다함은 더 이상 이른바 대의 정부를 하는 구실이 될 수 없다. 또한 대중적인 교육 시스템의 도입으로 더 이상 대중의 무지함도 대의정치를 하는 이유가 될 수 없다. 먼 미래에도 여전히 대중이 모든 권력을 행사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법안에 대한 최종적인 투표권은 대중에게 돌려줘야 한다. 미래의 민주주의에서도 의회는 살아남겠지만, 의회는 더 이상 의결기구가 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오로지 토론과 심의 기능 및 투표 의제 설정 기능만을 수행할 것이다. 이것을 전제로 우리는 이제 미래 정치 모형을 설계해 나가야 한다.
이러한 민주주의 모형이 좋으냐 아니냐의 문제는 여기서 우리의 논의 범위를 벗어난다. 필자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민주 정치가 앞으로 발전한다면 그런 형태로 나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 민주 정치가 공동체에 더 이로울지 아닐지는 필자가 현재 판단하기 어렵다. 이것은 한 차원 더 높은 규범 체계를 전제로 해서만 답할 수 있는 문제이다. 어떤 것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그보다 높은 차원의 가치 체계를 전제로 해야만 한다. 민주주의에 대한 평가 역시 마찬가지다. 민주주의 자체가 지고지선한 제1의 가치라면 더 이상 민주주의에 대한 평가가 필요 없겠지만, 만약에 그렇지 않다면 민주주의 개념과 별개로 존재하며 그보다 더 소중한 인간 공동체의 가치에 기반하여 민주주의 모형을 평가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감사의 말씀으로 넘어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것은 통상적인 전문서적과 달리 이 저술에는 참고문헌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이것은 결코 이 저술의 모든 내용이 필자의 고유한 생각이라 인용이나 주석이 불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직간접적으로 참고한 많은 문헌들이 있지만, 다른 이들의 주장보다 개인적인 생각 위주로 글을 써 내려갔기 때문에 참고문헌이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표기하지 않았다. 이를 통하여 가능한 고전과 직접 소통하는 필자의 모습을 전달하고자 하였다.
최정욱(1965년)
약력
경상남도 합천 출생
학남초등학교 졸업
반포중학교 졸업(덕곡중학교, 대성중학교 수학)
중앙대학교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서울대학교 정치학 석사
University of Texas at Austin 정치학 박사
학술도서
Governments and Markets in East Asia(Routledge, 2006)
Votes, Party Systems, and Democracy in Asia(Routledge, 2012)
인도의 사회적 취약층과 우대정책(글로벌콘텐츠, 2017)
서양 민주 개념 통사: 고대편(박영사, 2021)
민주주의 고전산책: 고대부터 근현대까지(박영사, 2024)
1948년 헌법을 만들다(포럼, 2023)[공저]
인도 대전환의 실체와 도전: 통합과 도전(씨아이알, 2023)[공저]
학술 논문
“democracy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다수정이다(2009)”
“근대 한국에서의 민주 개념의 역사적 고찰(2013)”
“동아시아 5개국 제헌과정의 민주적 정당성 비교(2021)”
“헌법 제1조의 민주 개념에 대한 제헌국회의 상충적 이해(2022)”
“한국 대통령의 항목별 법률안거부권 불허의 역사적 기원(2023)”
그 외 인도, 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말레이시아, 태국, 미국 관련 다수의 국내외 우수 학술지 게재 경험적 연구 논문들
연락처: drchoi@konkuk.ac.kr, (02)2049-6083,
http://www.eastandsouthasia.com
서문 · ⅲ
제1장 홉스에 의한 주권과 대의 개념의 결합: 근대적 민주 개념의 출발 1
제2장 로크의 민주 정부와 질서 정연한 공동체 35
제3장 몽테스키외의 온건한 정부와 자유로운 정부 67
제4장 루소의 인민 주권 개념과 민주 개념의 분리 99
제5장 홉스, 로크와 루소의 정치 체제 형성 과정론과 분류법: 비교론적 고찰 123
제6장 대의 개념의 변천과 경쟁 개념의 도입: 현대 민주 개념의 완성 151
제7장 서양 고전으로 본 오늘날 한국 정치 체제: 결론에 대신하여 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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