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발행 2023.03.02
이 책은 “정치, 아(我)와 비아(非我)의 헤게모니 투쟁”이라는 나의 정치 개념을 소개한다. 이는 ‘우리의 정치학’을 수립하고자 하는 선후배 동료 학자들의 노력을 잇는 의미가 있다. ‘우리의 정치학’ 수립이 무슨 뜻인지 일반 독자들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이는 우리가 공부하고 가르치며 배우는 정치학이 ‘수입된’ 정치학으로서 우리의 현실과 거리가 멀다는 자각에서 비롯한다. 다른 학문 분야에서도 그렇겠지만, 정치학계에서는 상당히 일찍부터 많은 선학들이 우리의 실정에 맞는 정치학, 우리의 시각에 입각한 한국적인 정치학을 수립하려는 노력을 해왔다. 적지 않은 성과들이 축적되었으나, 만족스럽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여전히 우리는 서양, 특히 미국에서 발달한 정치학 이론과 개념들을 따라가기에 바쁘다. 한국정치학회나 한국국제정치학회가 발간하는 학술지에 실린 논문들이 우리 글을 읽고 인용하거나 준거로 삼는 것보다 외국의 문헌들에 의존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돌이켜보면 1980년대 초 내가 대학에서 정치학을 배우던 시절 학생들은 교수님들이 미국의 정치학만 교육한다고 비판했었다. 전두환이 무력으로 광주항쟁을 짓밟고 국가권력을 장악한 나라에서, 우리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미국의 정치학 이론과 개념들을 가르치는 교수님들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어느 수업 시간에 같은 학과 동기 박병정이 벌떡 일어나 수업과 전혀 상관없는 한국은행 자료를 소리 내어 읽을 때, 그것은 단순히 돌출적인 일탈 행위이기보다는 우리 현실에 기반한 정치학을 공부하자는 준엄한 목소리였다. 아둔한 나는 그 자리에서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여러 이유로 뒤늦게 공부를 하고 미국(!) 유학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뒤 강단에 섰을 때 내가 마주한 나의 모습은 나의 은사님들과 다를 바 없었다. 어느 <정치학원론> 수업 시간 갑자기 돌아본 나의 모습은 과거 내가 비판했던 선생님들의 모습 그대로였다. 옛날 나의 선생님들이 사용한 것과 대동소이한 교과서를 가지고, 주로 미국의 정치학자들이 개발한 이론과 개념들을 학생들에게 전달하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할 수 있을지 막연했지만, 무언가 새롭게 시작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학생들에게 그러한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마음만 굴뚝같을 뿐이었다. 나는 내 전공분야인 유럽통합의 노사문제라는 작은 공부에 바빠서, 우리 현실에 바탕을 둔 정치학을 수립하자는 생각을 전혀 실천으로 옮기지 못하고 있었다. (중략)
이 책은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1부와 2부는 아비헤투 정치 개념을 소개하고 체계화한 것이고, 3부는 대부분 이론적 논의의 확장이다. 1장과 3장, 6~9장은 기존에 발표한 글들을 수정 보완하거나 책의 편성에 맞춰 재구성한 것이다. 2장과 4장 및 5장은 대부분 새로 집필했다. 9장은 이론적 논의이기보다 경험적 연구에 해당하는 것으로, 3부의 다른 글들과 성격이 확연히 다르다. 아비헤투 개념이 분석틀로서 갖는 유용성을 보여주기 위해 함께 출판하는 게 좋겠다는 학생들의 의견을 좇아 이곳에 수록한다. 개별 논문들을 쓸 때마다 아비헤투 정치 개념을 소개해야 했기 때문에 중복되는 부분들이 있다. 중복을 생략하거나 줄이기 위해 노력했지만, 원래 논문 그대로 둔 곳도 있다. 특히 3부에서 개별 논문 자체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필요한 경우 다소 중복되더라도 원래의 모습을 유지했다.
2023년 2월
김학노
제1부 정치와 헤게모니
제1장 정치, 아와 비아의 헤게모니 투쟁
제2장 헤게모니
제2부 우리 형성의 헤게모니 투쟁
제3장 우리
제4장 아와 비아의 구분
제5장 우리 형성의 헤게모니 행사 방식
제3부 헤게모니 정치의 이념과 현실
제6장 정치는 어디에 있는가?
제7장 혐오와 대항혐오: 홀로주체적 헤게모니
제8장 서로주체적 헤게모니
제9장 누가 우리인가? 10월항쟁, 우리 형성의 헤게모니 투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