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자서문
1억 불(1,200억 원)의 돈이 있다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아니, 무슨 일을 하고 싶을까?
2010년 9월 24일, 페이스북 창업자이자 최고 경영자인 마크 주커버그는 오프라 윈프리쇼에 등장하여 미국 공교육개혁을 위한 자선기금으로 1억불을 내놓는다고 발표하였다. 오프라 윈프리가 사회를 보는 가운데, 주커버그는 뉴저지 주지사인 크리스 크리스티와 뉴저지주 뉴어크 시장인 코리 부커와 함께 자신의 자선기금을 통하여 미국의 공교육개혁을 성공시키겠다고 선언하였다. 마크 주커버그나 오프라 윈프리만큼 전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인물은 아닐지언정, 이날 쇼에 등장한 크리스 크리스티와 코리 부커는 미국정치계의 떠오르는 별들로 향후 자신들이 소속한 정당의 정치적 리더십을 갖게 될 상징적인 인물들이었다. 사실 20대에 이미 억만장자가 된 성공한 기업가와 정치적 입장을 달리하는 두 정치계 거물들의 만남은 오로지 미국의 `공교육개혁’이라는 주제를 제외하면 달리 설명할 만한 연관성이 없었다.
이들은 2010년부터 2015년까지 5년 동안 사회경제적으로 가장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고, 전국적으로 학력이 가장 낮은 지역 중 한 곳인 뉴어크시의 공교육을 살리겠다고 뭉친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 시기는 페이스북의 창업과정에서 마크 주커버그의 비도덕적 행태를 다룬 <소셜네트워크>라는 영화가 개봉되어 상영되고 있을 때였다. 주커버그의 1억 불에 이르는 자선기금의 배경을 마치 이 영화에서 보여질 자신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한 것으로 여길 수도 있지만, 본서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는 전혀 사실과 다르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마크 주커버그는 1억 불의 자선기금을 내놓게 된 것일까? 그는 1억 불의 자선기금을 내놓고 어떤 결과를 원했던 것일까? 그것은 겉모습대로 미국의 성공적인 공교육개혁의 모델을 만들기 위한 방법으로 충분하다고 여긴 것일까?
주커버그가 교육개혁을 위해 거액의 기금을 내놓은 것은 이것이 유일하지 않다. 2015년 10월 27일, 페이스북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인 마크 주커버그는 그의 아내인 프리실라 찬과 함께 공동기자회견을 열어 샌프란시스코의 가난한 지역에 학교를 세워 질 높은 교육을 가난한 아이들에게 무상으로 제공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여기에 소요되는 모든 돈은 자신의 자선재단에서 충당할 것이라고 했다. 설립유형으로 보자면 사립학교일 것이고, 전 세계적으로 가장 부유한 사람이 관심을 둔 학교교육인 만큼 질적으로도 가장 뛰어난 학교가 될 것이라고 여겨졌다.
2016년 주커버그는 교육과 관련하여 또 다른 구상을 선보였다. 2016년 4월 8일 큰 돈을 들여 서아프리카의 라이베리아(Liberia) 초등학교 교육을 혁신하는 데 투자한다는 뉴스거리를 제공하였다. 두 사례가 전부 교육개혁과 학교혁신을 위한 주커버그의 관심을 실현하는 방안이라는 데서 목적이 같다. 물론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재단이 직접 학교를 설립하고 운영하게 될 터이지만, 라이베리아에서는 초등학교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초등학교교육을 민영화하겠다는 스타트업 단체들에 투자한다는 것 정도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2015년 9월, 그의 이름을 딴 자선재단을 설립하고, 여기에 30억 불을 예치하였다. 주커버그는 이 책의 내용인 뉴저지주 뉴어크의 교육개혁실험이 끝난 이후에도 자신의 교육개혁에 대한 관심과 의지를 놓지 않고 있다.
성공한 기업가가 실패하고 있는 공교육의 개혁에 관심을 갖고, 이를 위해 기부금을 내놓는다는 것에 딱히 ‘왜’라는 질문을 던질 이유는 없어 보인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공교육은 국가가 정부 예산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공히 양질의 교육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면, 여기에 기업가의 돈이 왜 필요한지, 그는 왜 굳이 공교육 개혁을 자기 자선사업의 핵심적 목표이자 과제로 제기하고 있는지 의아해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국가는 교육주체들의 다양한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질 높은 교육시스템을 유지, 변혁하는 데 필요한 재원을 확보해야 하고, 이는 국가의 다양한 요구들과 경쟁관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따라서 국가의 정책을 위해 누군가 지지하고 지원한다면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쩌면 주커버그의 자선기금은 본인의 의지라고 해석할 수 있지만, 주정부의 수장인 주지사와 관심의 대상이 되는 도시의 시장이 적극적으로 기금을 내놓도록 설득한 결과라고 보아
야 한다. 그런 점에서 교육시스템에 책임을 지고 있는 공적 기관의 의제를 기업가가 돕는 모양새임에 분명하다.
공교육의 이념과 실천은 프랑스에서의 혁명적 기운 속에서 배태되었다. 그러나 전세계적으로 공교육의 이상과 기대를 확산한 국가는 미국이었다. 미국의 독립 이후, 토마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이 ‘교육받은 시민'을 위하여 국가적 의무교육을 제안하였었다. 제퍼슨의 제안에 따라 연방정부에서의 공교육 체제가 법률로 제정되지는 않았지만, 공교육의 이념은 버지니아주에서 아주 초라하게 실천되기 시작하였다. 이후 공교육의 희망은 19세기 중반 호레이스 만(Horace Mann)과 캐서린 비처(Katherine Beecher)의 신실한 종교적 신념에 터한 보통학교 운동을 거치고, 20세기 초 학교가 국가의 미래를 기약하는 것이라 소망했던 공립학교 확장의 시기를 거쳐 발전해왔다. 그리고 1980년대 이후 지금까지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는 교육개혁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본서의 배경이 되는 뉴저지 뉴어크는 전쟁터 같은 공교육 문제를 드러내고 있는 미국 도시 중 하나이다. 어쩔 수 없이 뉴어크에 살아가고 있지만, 언젠가는 꼭 떠나고 싶은 곳, 그럼에도 떠날 수 있는 가망성은 누구 하나 쉽게 재단하기 어려운 곳이다. 공립학교는 학교 교문 바깥의 피 묻은 상처를 그대로 안고 있다. 그 속에서 학생들은, 교사들은, 그리고 학생들을 학교에 보내고 있는 학부모들은 교육적 생존을 위한 하루하루의 투쟁을 벌이고 있다. 누구하나 제대로 책임지는 사람 없이 오로지 개인의 능력과 오감에 의존한 채. 학교와 교육을 희망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없겠는가마는, 그들의 희망적이고 낙관적인 기대와는 달리 현실은 훨씬 더 어려운 모습으로 고착화되어 왔다. 도대체 학교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 그리고 학교에서 배움이라는 것은 애당초 이들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처럼 여겨진다 해도 누구 하나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프라이즈(prize)’라는 제목과 함께 달려 있는 이 책의 원래 부제는, “누가 미국교육을 쥐고 흔드는가”(“Who's in charge of America's Schools?”)이다. 주거버그가 내놓은 1억 불을 포함하여 뉴어크에 주어진 2억 불이라는 거액의 교육지원금을 ‘프라이즈’라고 부른다. ‘프라이즈’는 그 행위의 결과에 근거하여 주는 것으로, 치하와 더불어, 격려 혹은 대중을 향한 동기부여의 의미를 담는 상징적인 것이다. 그러나 뉴어크의 공교육체제에서 주어진 ‘프라이즈’는 이러한 상징적 의미와는 거리가 있다. 오히려 하늘에서 뚝 떨어진 ‘선물’과도 같은 것이다. 마치 칼라하리 사막의 부시맨들에게 하늘에서 떨어진 ‘콜라병’과 같다고나 할까? 부시맨에게 ‘콜라병’은 공동체 붕괴의 매개였고, 마을의 평화를 깨뜨리는 문제덩어리였다. 교육개혁의 모델을 만들 수 있도록 하겠다는 ‘선의’로 시작한 주커버그의 1억 불 자선기금은 결과적으로 뉴어크 지역사회의 공동체를 해체하도록 하는 매개가 되었다. 뉴어크 교육개혁의 구체적인 대상으로서 학교, 교실, 교사, 학생, 그리고 학부모의 이해 관계와는 상관없이 돈의 규모, 돈을 사용할 수 있는 정치적 권력, 돈이 만들어내는 상징과 이미지, 돈-권력-이미지를 둘러싼 긴장과 갈등은 당사자들에게는 뼈아픈 경험으로 남게 되었다.
2009년 말부터 시작되는 ‘프라이즈’의 에피소드는 2015년까지 5년 동안의 교육개혁실험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비록 이 책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라면 페이스북 창업자이자 CEO인 마크 주커버그이겠지만, 뉴저지 주지사로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등장했던 크리스 크리스티나, 2014년 뉴저지주 상원의원으로 연방의회에 진출한 코리 부커는 세계적인 유명인사라 할 수 있다. 크리스 크리스티는 대통령 선거전에서 낮은 지지율로 고전하다 일찍이 후보직을 사퇴하였지만, 다음 대통령 선거를 기약하는 공화당의 ‘잠룡’ 대열에 끼어 있다. 코리 부커는 시의원으로 시작하여 시장, 그리고 연방의회 상원의원으로 경력이 화려하지만, 그의 꿈은 적어도 미국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되는 것이리라. 마치 그의 친구들이 예언했던 것처럼 미국의 다음 대통령이 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이 책의 에피소드들은 한 기업인의 자선이 두 정치가의 야망과 맞부딪치면서 만들어내는 긴장과 갈등을 속속들이 보여주고 있다. 이들을 묶어주는 주제가 바로 ‘공립학교교육’이라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다. 이미 저자가 이 책의 결론과 후기, 그리고 저자의 글에서 잘 밝히고 있듯이 이들의 불안한 관계는 애초 ‘교육개혁’을 하나의 수단으로 삼아 유지되고 있었다. 이 점 때문에 이 책의 주제는 ‘교육개혁의 길’을 따져 묻는다기 보다는, ‘교육개혁을 둘러싼 정치지형과 교육개혁의 정치역학’을 보여준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은 분명 미국의 교육 문제, 뉴저지주 뉴어크시의 공립학교문제를 다루고 있다. 정치인들의 야망과 이들간의 긴장은 우리의 정치지형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러나 이 책의 내용은 단지 미국 한 도시의 이야기 혹은 정치인들의 이야기를 넘어서는 의미를 가진다고 믿는다. 교육을 주제로 한 이들의 이야기는, 우리나라 교육과 교육개혁의 문제, 그리고 보다 아래로부터의 교육실험을 시도하는 모든 이들에게 의미있는 배움거리를 줄 수 있다고 믿는다. 아니,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역자는 2015년 어느 날, 미국에서 막 발간된 『PRIZE』에 관한 짤막한 서평을 담은 신문기사를 보게 되었다. 『PRIZE』는 평소 교육의 사회적 이슈, 교육의 정치적 역학, 교육개혁의 수사학에 관심이 많았던 역자의 눈을 휘어잡았다. 그 이후 1년 하고도 반년이 더 지나 번역서를 내놓게 되었다. 평소 쓰던 말이 아닌 글을 우리 말에 맞게 번역한다는 것은 늘 새로운 모험임에 틀림없다. 더욱이 정제된 글쓰기의 고수라 할 수 있는 기자들의 선택된 단어와 문장의 내공을 충분히 소화하지 못한 채 기술적으로 글을 옮기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 깨닫게 되었다. 이 책의 글이 전달하는 세세한 느낌들을 온전히 전달하지 못하고, 혹 잘못된 방식으로 오해될 수 있는 여지는 오롯이 역자 본인의 책임이다. 무엇보다도 인내심을 갖고 번역작업을 기다려 주었고, 또 세세하게 윤문과 수정작업을 도와준 박영스토리 출판인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 이선경 실장 및 문선미 과장의 지지와도움이 없었다면 거친 역자의 말들이 가감없이 전달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번역이 출간되는 기회마저 없었을지 모른다. 또한 번역을 진행하는 중간 중간 바쁘다는 핑계를 대는 남편과 아빠를 너그러이 이해해 주었던 가족에게 감사과 사랑의 마음을 전한다.
2017년 3월
유성상
역자 : 유성상 (서울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교육과 사회의 복잡 미묘한 관계를 해석하고 설명하는 데 관심을 갖고 있다. 특히 현재의 교육문제를 설명하기 위하여 역사 사료들을 뒤지고, 정치적 이해관계를 분석하는 데 관심이 있다. 미국의 공교육 형성 및 전개과정에 주목하고 있고, 그 일환으로 [스쿨: 미국 공립학교 역사 1770-2000]를 번역한 바 있다. 국제사회의 빈곤과 개발문제에 관심을 갖고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개발도상국을 방문하지만, 교육을 화두로 벌어지는 논쟁은 국경을 넘어 세계화되어 간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서울대학교에서 학부와 석사를 졸업하고, 미국 UCLA에서 박사(Ph.D.)를 받았다. 한국교육개발원(부연구위원), 한국외국어대학교(부교수)를 거쳐 현재는 서울대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