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말諸行無常은 불변의 진리인 것 같다. 필자가 공직을 시작한 1980년대와 요즈음을 비교해보면 세상은 변해도 너무나 많이 변했다. 개발연대의 공무원은 저개발국이었던 우리나라를 잘 사는 나라로 만들기 위하여 이리 뛰고 저리 뛰어 우리나라가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 데 큰 기여를 하였다. 하지만 산업화라는 시대적 소명을 달성한 후 그동안 산업화를 위하여 유보된 민주화의 바람이 우리나라 전역을 뒤흔드는 소용돌이 속에서 공무원은 서야할 자리를 잡지 못한 채 옛날의 당당했던 위상은 온데간데없게 되었고, 오히려 21세기 지구촌 정보화사회를 이끌고 있는 기업 등에 사회 경제의 주도권을 내주게 되었다. 이런 현실에 더하여 요즈음은 공무원들이 세상 변한 것을 모르고 개발행정시대와 같이 경제에 무리하게 개입하여 국가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는가 하면, 하는 일 없이 세금을 축내고 있거나 ‘갑’의 지위를 이용하여 비리를 저지르는 집단이라는 빈축마저 받는 신세가 되었다. 이는 일부 공무원에 한정되는 일이기 때문에 억울한 면이 없는 것은 아니나, 세상의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여 자기 혁신을 못한 공무원들에게도 일정 책임이 없다고만은 할 수 없는 실정이다. 그렇다고 이대로 주저앉아 책임 탓이나 하고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의 상황은 녹록하지 않다. 우리나라가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나아갈 수 있기 위해서는 공무원들이 맡은 바 역할을 제대로 하여야 한다는 것은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오늘날의 공무원에게 주어진 역사적 소임이 무엇이냐에 대하여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공무원 자신들은 물론이며 국가적으로도 혼선을 빚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편에서는 공무원의 역할 강화가 자유.민주 사회의 발전에 장애가 된다고 보면서 그 역할을 축소시키려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공무원의 역할을 강화하여 사회적 모순을 해결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이러한 모순을 갈등관계로만 보고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한편의 주장만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어 우리 사회를 더욱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이러한 이분법적인 대립 논리에 우리가 갇혀 있게 된 것은 우리의 피와 땀으로 세운 우리 사회의 최고규범인 헌법을 외면하고 방치하였기 때문이라고 보고, 헌법의 입장에서 공무원이 나아가야 할 길을 찾고자 하는 것이 이 책을 쓰는 의도이다. 우리 헌법 제7조는 “공무원은 국민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고 규정하여 우리 공무원들이 국민을 위한for the people 민주행정을 행하고 이를 제대로 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책임행정을 행할 것을 명하고 있다. 오늘날 행정의 문제점으로 공무원들이 국민을 위하지 않고 사리사욕에 빠져 비리를 저지르거나 무사안일하고 무책임하게 되었다는 것을 일반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이는 우리 공무원들이 헌법의 명령, 즉 민주행정과 책임행정을 아니하였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짧은 헌정사에서 유난히 굴곡이 많았던 우리 헌법은 우리 세대가 지키지 않으면 우리는 역사로부터 지탄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입장에서 필자는 그동안 일반 행정관련 이론서에서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았던 민주행정과 책임행정이야말로 이 땅의 공무원들이 지향하여야 할 목표라고 보고 이를 이 책의 주요내용으로 하는 시도를 하였다. 민주행정을 행정의 최고 이념으로 삼고 책임행정을 우리 행정 깊숙이 뿌리내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을 이 시대 행정인의 사명으로 보고 행정의 현장에서 고민하고 논의되는 것을 좀 더 체계적으로 학문의 세계에 전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경영학 등 인접학문과의 중복 문제 등으로 학문의 정체성 논란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행정학에 민주행정과 책임행정을 연구의 주된 영역으로 제공하여 당당한 행정학으로 만들기 위한 시도이기도 하다. 행정의 일을 하면서, 그리고 그 일을 마친 이 시점에 ‘국민과 거리가 있는 행정이 아니 되도록 공무원과 학자를 비롯한 모든 국민이 힘을 합쳐야 한다’는 당연한 생각을 나만이 한 것은 아니라는 판단이 이 책을 쓰게 만들었다. 아무쪼록 이 작은 책자가 한국행정이 나아가야할 바람직한 길을 놓고 다지는 데 쓸모 있게 써질 것을 소망하면서 펜을 가다듬는다.
저자 소개 김정하(金貞河) 저자는 감사원 사무총장을 역임하고 현재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과 객원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행정에 대한 실무와 이론을 겸비한 행정개혁 전문가이다. 제28회 행정고시 합격 후 개발연대에 충청남도에서 지역경제계장, 유통계장 등의 보직을 받고 발전행정의 현장에서 공무를 수행하면서 국민을 위한 행정의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감사원으로 전직 후에는 실무 감사자인 부감사관에서 과장, 심의관, 국장, 제2사무차장을 거쳐 실무 감사책임자인 사무총장의 보직을 수행하면서 공공기관의 회계검사와 공직자의 근무기강 확립을 위하여 국정운영에 대한 감사에 참여하고 감사를 지휘하였다. 공직자의 무사안일과 부정부패를 방지하고 책임행정을 구현하는 업무로 국민에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것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갖고 산다. 미국 위스콘신-메디슨대학교 법학대학원에서 법학석사 학위를 받고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면서 행정의 발전을 위해서는 행정법학과 행정학의 이론적 융합이 필요함을 체감하였다. 그 후 러시아 극동연방대학교에서 명예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것을 계기로,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특임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과 객원교수로 한국행정운용체계의 발전방안에 대하여 연구하며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