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얼마나 될까?
언젠가 우연히 들었던 우스갯소리가 생각난다. 갓 입학한 초등학교 1학년 교실의 수업을 참관하던 한 학부모가 맨 뒤에 앉아있는 자그마한 여자 아이에게 물었다. “애야, 학교수업이 재미있니?”그러자 아이는 모기만한 소리로 “아니요, 다음 달에는 끊을 거예요”라고 대답했다. 수업이 재미없고 지루할 때면 이 아이의 계획처럼 언제든지 학교를 그만 둘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각종 법령으로 강제된 학교교육의 현실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안타깝지만 아이의 소원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앞으로 12년을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수많은 교육개혁에도 불구하고 왜 학교는 늘 그대로인가? 초중등학교를 불문하고 수업시간에 잠자는 아이들의 모습은 어느덧 학교의 일상이 되었고, 학교폭력으로 학교를 떠나는 중도탈락자의 행렬이 줄을 잇는다. 성적에 대한 압박감으로 자살하는 학생 수와 천정부지로 치솟는 사교육비는 OECD 국가 중 단연 1등이다. 이 모든 것이 우리 학교교육의 민낯인 것을 어찌하겠는가?
-iv-
한동안 거의 성역으로 군림했던 학교현장이 소란스럽다. 최근“학교에 배움이 있느냐”고 일격을 가한 뒤 당당히 학교를 떠난 한 여고생의 행동이 많은 누리꾼들 사이에서 공감을 일으킨 적이 있다. 이는 오랫동안 잠재해 있던 학교교육에 대한 학생들의 누적된 불만이 언제든지 일시에 폭발할 가능성을 암시한다. 이제 학교는 아이들에게 꿈을 키우는 곳이 아닌 가능하면 피하고 싶은 루저양산공장으로 생각되고 있다.
이 책의 저자인 피터 그레이는 평생에 걸쳐 인간의 성장과 발달을 연구한 세계적인 발달심리학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매우 특이하게 교육의 생물학적인 관점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교육연구영역을 개척하기 위해서 심리학, 인류학, 사학 등을 융합한 자신만의 독특한 학문세계를 구축했다. 그는 이런 학문적 바탕 위에서 우리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미국의 공교육을 향해 돌직구를 던진다. “학교는 아이들을 강제로 수용하는 감옥”이다. 즉 자유를 억압하는 학교교육이 학교를 스트레스, 집단괴롭힘, 과대망상증을 조장하는 불행한 곳으로 인식하게 만들어 점점 더 많은 아이들이 학교교육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그는 학교교육을 아이들의 호기심과 창의력을 방해하는 족쇄로 규정한 후, 하루빨리 아이들에게서 이 족쇄를 풀어 놓으라는 반직관적인 주장을 펼친다. 이런 주장은 전통적인 학교교육의 근본을 송두리째 뒤집는 것을 의미한다.
그레이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⑴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잘 배울 수 있는가? ⑵ 수렵시대 아이들의 놀이 환경은 어떠했는가? ⑶ 어떤 점에서 오늘날의 교육제도가 감옥에 비유되고 있는가? ⑷ 대안교육은 아이들을 즐겁게 할 수 있는가? 등 도발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이에 대해 그는 “아이들은 학습본성을 가지고 세상에 태어나기 때문에 자신이 알 필요가 있는 모든 것들을 자기 주도적으로 배울 수 있지만, 오늘날 강제적인 학교교육이 아이들의 학습본성을 억압한 결과 공교육의 몰락을 눈앞에 두고 있다.”고 답한다.
이런 맥락에서 그레이는 가까운 미래에 “언스쿨링(unschooling)”이 학교교육(schooling)을 대체할 것으로 예측한다. 언스쿨링은 현재의 학교교육과 대치하는 반주류적인 대안교육의 극단적인 한 형태다. 간단히 말하면 이는 학교, 교사, 교육과정은 물론 평가, 시험, 숙제 등이 전혀 허용되지 않는 그야말로 자유천국의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자유교육의 원형은 수렵채집인들에게서 유래했으며 인간의 학습본성에 근거하는 교육의 자기책임을 강조한다. 그레이는 이런 언스쿨링의 모범사례로 미국의 서드베리 벨리 학교를 제시하고 이에 대한 많은 연구를 실시했다. 서드베리 벨리 학교는 교사와 교육과정은 물론 성인이 강요하는 수업시간이나 학습시간표 등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는 완전히 비구조적인 환경 속에서 학교의 모든 일들을 아이들이 민주적인 방식으로 운영한다. 이런 까닭으로 이 학교는 현대사회에서도 적용이 가능한 대표적인 언스쿨링으로 명성을 얻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서 그레이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즉 아이들은 자기학습의 주도권을 갖도록 생물학적으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안전한 환경에서 자기관심을 추구할 수 있는 자유와 수단을 제공하게 되면, 아이들은 다양한 방법을 좇아 성장하면서 인생의 도전에 맞설 수 있는 능력과 자신감을 자연적으로 획득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더 적은 학교교육, 더 많은 자유 그리고 더 즐겁게 놀고 더 넓게 탐색할 수 있는 안전한 환경이다.
그레이가 던지는 메시지는 우리의 학교교육에 대한 경고음인 동시에 미래교육이 나아갈 지침을 제공한다.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학교교육의 고질병은 공허한 “교육개혁”의 깃발을 흔드는 것으로 치유하기에는 불가능한 상태에 처해 있다. 이미 시대정신은 학교제도권 내의 개혁이 아닌 학교혁명을 상상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 아이에게 무슨 잘못이 있는지 묻지 말고 우리 교육제도에 무슨 잘못이 있는지 물으라고 일갈하는 그레이의 준엄한 질책은 우리 학교교육의 심장을 멎게 한다.
부디 이 책이 많은 독자들에게 읽혀, 아이들의 자연적인 학습본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사회적으로 확산되길 바란다. 또한 기존 교육제도의 틀을 과감하게 해체하는 데 요구되는 새로운 상상력을 자극하는 촉매제가 되길 희망한다. 나아가 빼앗겼던 아이들의 자유를 돌려주고 쇠퇴하는 놀이가 회복되어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자립적이고 안전하며 행복한 인간으로 스스로 성장하는 날을 기대한다.
이 책의 출판을 기꺼이 허락해주신 박영스토리 임직원들께 감사드린다. 또한 이 책을 기획하신 이선경 과장님, 그리고 정갈한 글로 다듬어 주신 배근하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특히 하리 숲 학교에서 언스쿨링의 씨앗을 뿌리는 정대현 교수님과 상큼한 조언을 아끼지 않은 손준종, 권순달 두 교수님께도 감사드린다. 무엇보다도 생소한 언스쿨링에 눈을 뜨게 안내해 준 귀여운 손주들에 대한 감사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자유를 갈망하는 이들의 일상은 무지한 나에게 영감을 주어 인간을 새롭게 이해하게 해주었다. 이들이 대학에 진학할 무렵이면 제법 많은 언스쿨러 출신들이 대학교정을 누빌 것으로 상상한다.
2015년 8월
역자 황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