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판 2017. 2. 10
초판 2014. 5. 10
이 책은 여러 면에서 여느 법학서와 구별됩니다. 우선 이 책은 특이한 방식으로 이루어진 공동작업의 소산입니다. 주저자는 안경환 서울대 법학대학원 명예교수입니다만, 안 선생님과 다양한 인연을 가진 제자들이 안 선생님의 다양한 주제의 논문들에 대해 해제를 달았습니다. 이런 공동작업은 오로지 안 선생님께서 2013년 8월 말 정년을 맞으신 것을 기념하기 위해 기획되었습니다. 제자들은 각자의 인연을 머리글로 삼고, 안 선생님의 글에 대해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해제를 시도하였습니다. 해제는 원래 쓰여진 시점으로부터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보완하는 내용을 담기도 하고, 원래의 글이 쓰여졌던 당시의 시점에서 그 가치를 평가하거나 추측하기도 하고, 그 속에 담긴 쟁점이나 관점 혹은 방법론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제시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책의 공동작업으로서의 의미를 더하는 것은 해제들이 단순히 해제자들 개별적 생각으로 채워진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해제문은 안 선생님의 정년 1년여 전부터 안 선생님의 글을 모여서 읽고 토론하는 독서모임의 발제문에서 출발하였고 독서모임에 개진된 다양한 의견들이 음으로 양으로 반영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과정은 평소 정년기념논문집 발간과 같은 행사적 색채가 강한 이벤트에 대해 기꺼워하지 않으셨던 점을 잘 아는 제자들이 당신의 의사를 존중하면서도 제자된 도리로 선생님이 학문적 여정의 한 획을 긋게 된 시점을 기념하고자 한 고심의 산물입니다. 해제가 엄정한 학술논문의 형식보다는 개인적 소회에다 다양한 방식의 해설을 담는 방식으로 집필된 것도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고자한 기획의도를 감안한 것입니다.
한편 이 책의 내용은 최근에 쓰인 전혀 새로운 글이 아니라 시간의 무게가 켜켜이 쌓였으되 현재적 의미를 여전히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특색이 있습니다. 서울법대 역사상 처음으로 영미법 전임 교원이 되셨던 안 선생님은 영미법 중에서도 특히 미국헌법에 대한 연구와 강의에 상당한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이 책에 수록된 안 선생님의 글은 1987년 취임 후 2013년 퇴임기까지 쓰여진 미국헌법에 관한 글 중에서 오늘날에도 여전히 의미를 공유할 수 있는 글들을 선별한 것입니다. 어떤 동기에서건 미국헌법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은 미국헌법이 가장 오래된 성문헌법인 점에서 추정할 수 있듯이 미국헌법의 발전도 오랜 기간 서서히 이루어졌음을 안 선생님의 선구적인 글들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이처럼 오랜 기간에 걸쳐 작성된 글을 묶다보니 용어나 문체, 각주인용방법에 있어 각 장별로 차이가 있는 점에 대하여는 독자들의 헤아림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이 책의 또 다른 특색은 미국 헌법의 이해에 필요한 중요한 주제들에 대하여 다양한 방법론과 인식론으로 접근하는 전범을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헌법철학이나 헌법이론적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고찰하는 방식에서부터 개별 헌법조문에 대한 세밀한 주석이나 법사회학적 인식론에 토대를 둔 사회과학적 헌법이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접근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원래 체계적으로 기획되어 집필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당연한 것이기는 하지만 평소 방법론이나 인식론에 있어서 ‘교조적’ 태도를 지양하고 균형잡힌 학문적 자세를 견지하고자 하셨던 안 선생님의 폭넓은 지적 경향이 반영된 것입니다. 독자들은 미국헌법을 이해하는 방식이 다양하며 특정한 관점이나 방법론에만 집착하는 학문적 태도의 한계를 체험할 수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미국헌법은 한국의 학문풍토에서 중심적 연구주제라고 하기는 힘듭니다. 한국사회가 매우 미국화되어 있고 경제영역을 다루는 법학의 경우 현실적 동력을 반영하여 미국법에 대한 이해가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음에 비할 때 그러합니다. 헌법학의 방법론이나 인식론이 독일헌법학에 강하게 경도되어 있고, 현실과 이념간의 간극이 적지 않았던 한국의 헌정사적 상황도 이러한 풍토에 영향을 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민주화를 위한 오랜 과정에서 미국헌법이 선구적으로 발전시킨 입헌주의와 그 구체적 실현원리들, 예컨대 적법절차의 원리, 평등보호의 실질적 실현, 표현의 자유의 엄격한 보호를 위한 다양한 법리 등은 한국 헌법학은 물론 법제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습니다. 특히 헌법재판의 지속적 발전으로 미국헌법의 핵심원리나 경험은 수시로 한국의 헌정상황을 해결하는 주요한 도구가 되고 있기에 미국헌법의 이해가 곧 한국헌법이해의 과정이 되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이 앞으로 미국헌법을 통해 헌법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히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유용한 지침을 제공해 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이 책의 출간은 퇴임 후에도 학문활동이나 사회봉사활동의 끈을 놓치 않고 모범을 보여주고 계신 안경환 선생님과 함께 제자들이 학문적 자세와 삶의 지혜를 다시 한번 다지는 중요한 계기이자 새로운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자들의 애정어린 질정과 함께 이 책이 이 나라 입헌주의의 발전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2014. 4.
편집자 영미헌법연구회 회원 일동
해제자 약력(가나다 순)
강건우(창원지방법원 판사)
고일광(춘천지방법원 영월지원장)
김도균(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영진(인천대학교 법과대학 조교수)
김장한(울산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김재원(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종철(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박종현(국민대학교 법과대학 조교수)
이동민(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강사)
이상경(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연갑(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부교수)
이우영(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및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 화(베이징이공대학교(중국) 법과대학 전임강사)
조 국(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최정인(변호사,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
한상훈(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안경환(安京煥)
1948년 생으로 밀양과 부산에서 초·중·고를 마치고 1970년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 하였다.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 로스쿨에서 LL.M.을, 산타 클라라 대학 로스쿨에서 J.D.를 취득하고 워싱턴 D.C. 및 캘리포니아 주 변호사로 활동하다 귀국하여 1987년부터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의 교수로 재직하였다. 교내에서는 서울대학교 기획실장 및 법과대학 학장을 역임하였으며 교외에서는 한국헌법학회 회장, 전국법과대학학장연합회 회장 그리고 아름다운 재단 및 예술의 전당 이사를 역임하였고 2006년부터 2009년까지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으로 재직하였다. 한국여성단체연합회 여성권익향상 ‘디딤돌’상과 대한민국 법률대상(인권부문)을 수상하였으며 하버드 로스쿨, 스탠포드 로스쿨 등 미국의 로스쿨과 중국, 일본, 대만, 필리핀, 인도네시아, 멕시코, 포르투갈의 유수한 대학들에서 특강을 하였다. [미국법의 이론적 조명 : 윌리엄 더글라스의 법사상], [법은 누구 편인가], [미국법역사], [헌법학입문], [지혜의 아홉기둥]과 같이 헌법, 미국법, 영국법, 인권법 등에 관한 많은 저술을 쓰고 옮겼다. 또한 [법과 문학 사이], [조영래 평전], [법, 영화를 캐스팅하다], [법, 셰익스피어를 입다] 등 다양한 분야의 교양서도 펴냈다. 수십 편이 넘는 학술논문을 저술하였으며 다양한 신문, 잡지 등에도 많은 칼럼을 게재하였다. 2013년 8월에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직에서 정년퇴직하였고 현재는 같은 대학 명예교수, 공익법률재단 공감의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