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 2013.12. 30.
“새로운 정권이 출범할 때마다 각 정권들은 부정부패 척결이라는 구호와 함께 다각적인 부패개선 노력들을 강구해 왔다. 그러나 과거 정권들의 부정부패 척결의 공언은 정권이 가진 내재적·구조적인 한계로 인해 무위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며, 이로 인한 부패 노력의 후퇴는 곧 새로운 부패의 확산이라는 악순환을 가져오게 되었다.” (시정청렴성 측정을 위한 모형개발 Ⅱ, 서문에서 발췌)
필자가 처음 우리 사회의 부패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연구를 시작하게 된 것은 2000년 서울시정개발연구원(현 서울연구원)에서 [시정청렴성 측정을 위한 모형개발] 2단계 사업에 참여할 때인 것으로 기억합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지난 10여 년간 세부적인 평가기법이나 부패방지 대책 측면에서는 많은 개선이 이루어졌습니다. 지방자치단체 수준에서 시행되던 청렴도평가가 범정부적인 차원의 부패방지시책과 제도로 확산되었고 이를 전담하는 기관이 설립되었다는 것은 분명 진일보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최병대 박사님(현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을 포함하여 당시 연구진들과 함께 했었던 그때의 고민들은 여전히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이후 필자는 국민권익위원회의 청렴도측정모형 개선 작업과 부패방지시책평가를 수행하면서 동참했던 전문가 분들과 우리 사회의 부패 문제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풀지 못한 숙제에 대해 함께 연구해보고자 약속했는데, 어느덧 4년의 세월이 지나 이제야 그 결과물이 책으로 엮이게 되었습니다. 본서는 법학, 경제학, 행정학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의 시각으로 우리나라 반부패 관련 정책과 제도, 현황을 진단하고 그 해법을 찾고자 하였습니다.
역사적으로 정부 주도의 경제발전과 이로 인한 정경유착의 유산이 강하게 남아 있는 우리나라에서 반부패 관련 정책들은 주로 국가 경제성장을 견인하기 위한 효율성 제고의 수단으로 간주되어 온 측면이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간 부패방지를 위한 정부의 시책들은 나름의 성과를 나타내고 있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경제적 환경 하에서 부패 문제에 대한 이러한 단편적 시각은 한계에 부딪힐 가능성이 큽니다. 공공부문의 투명성과 책임성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수준과 잣대는 분명 과거 어느 때보다 엄격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공직자들의 부패 연루 사건들은 국가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이는 정책 의도의 진정성에 대한 불신, 더 나아가 정책 수혜 집단과 비용을 분담하는 집단 간의 불신을 야기하여 궁극적으로 국가 공동체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공공 부문의 부패 문제는 이처럼 사회 구성원 간 신뢰를 구축하는 기본적인 요건이며, 국민들의 행복지수와 직접 연계되는 사회의 불평등 수준 및 소득 수준과도 매우 밀접하다는 연구결과들이 도출되고 있습니다.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는 쌍방향 의사소통, 세대와 분야를 초월한 정보의 교류, 다원화된 시민들의 정책 수요 속에서 국민들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결국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할 것이며, 정부의 역할은 무엇인지, 효율적인 정부란 어떠한 의미인지를 보다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그동안 수단적 의미에서의 부패방지 대책, 그리고 결과 중심의 반부패 정책이라는 관점을 넘어 연구의 대상을 보다 확대해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주제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의해보고자 하는 것이 바로 본서의 집필 목적입니다. 본서는 서장을 제외하고 세편으로 구성이 됩니다. 서장에서는 부패의 개념과 현황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고, 제1편에서는 국가 발전에 있어 부패가 왜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논의하였습니다. 제2편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시행된 반부패 정책과 제도에 대한 현황을 짚어보고 문제점 진단 및 해결책을 모색하고자 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제3편에서는 부패 통제를 위한 향후 전략에 대하여 논의함으로써 앞으로 반부패 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제시하고자 하였습니다.
정부의 강력한 의지 하에 부패 척결을 위한 다양한 정책들이 꾸준히 시행되어 왔지만 한국사회 전반 혹은 관료 조직의 부패 수준에 대한 국민들의 시각은 아직도 회의적입니다. 이는 ‘반부패’를 하나의 수단으로 간주하는 협소한 시각에서 벗어나 부패 문제가 사회 불평등의 개선, 정부 신뢰의 회복, 민주 정치의 발전 등 보다 광범위한 측면에서 접근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을 일깨워줍니다. 이에 본서를 구성하고 있는 내용들이 우리 사회의 부패 현상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부패 척결을 위한 올바른 전략을 정립하는데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본서의 출간은 집필진 외에도 많은 분들의 노고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수많은 교정작업을 한마디 불평없이 기꺼이 수행해주신 박영사 조성호 부장님, 엄주양 대리님, 열 명이 넘는 집필진들과 1년 이상의 긴 시간동안 의사소통을 매끄럽게 진행해 준 한국정책지식센터 이희선, 손지은, 현승숙 연구원, 그리고 디자인과 편집에 아이디어를 주신 이수영 부소장께도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이 나오기까지 전 과정이 가능하도록 저서발간을 지원해주신 행정대학원 김준기 원장님께도 집필진을 대표하여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2013년 12월
한국정책지식센터 소장 박순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