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선택(public choice)은 국내에서 익숙하게 느껴지지 않는 용어이다. 영어권 사회의 일반인들도 생소하게 느끼기는 마찬가지이다. 선택이란 통상 각 개인이 하는 것인데, 앞에 공공이라는 단어가 붙었으니 좀 복잡하다. 개인과 집단 간의 관계가 바로 공공선택학의 오랜 연구 대상이다.
공공선택학이 그렇다고 집단주의를 지향하지는 않는다. 반대로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집단주의를 비판할 때가 더 많다. 집단주의는 정치 영역에서나 효과적이지 다른 영역에서는 대체로 비효율적이다. 특정 집단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이 그 배타적 집단의 이익보다 더 크게 손해 보더라도, 정치적으로 부당하지(politically incorrect) 않다면 그 집단은 존속하는 것뿐이다. 이러한 학문적 특성으로 인해 국내의 공공선택 연구자 다수는 패거리 현상에 대해 비판적이고, 따라서 한국공공선택학회의 회원 수나 활동은 많지 않은 편이다.
물론 외국의 공공선택학회 분위기는 한국과 사뭇 다르다.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일본의 경우, 학술대회의 발표논문 수와 참여인원 수가 많고, 정치학회장이 공공선택학회 전무이사로 봉직할 만큼 공공선택학회의 규모가 크다. 미국, 유럽, 일본 등 공공선택학회 활동이 활발한 사회는 공통적으로 학문분야 간 장벽이 별로 없다. 정치학 박사가 경제학과 교수나 경영학과 교수로 소속되어 있는 경우도 있고 그 반대인 경우도 많다. 그렇지만 한국에서는 아직 진정한 학제적 분위기가 숙성되어 있지 않다. 뒤집어 말하면, 한국에서의 학제적 접근은 공공선택학계 중심으로 가능하리라 본다.
정치학자 중심의 합리적선택연구회라는 소연구모임을 창설하여 이끄시다가 한국공공선택학회 초대 회장으로 추대되셨던 황수익 교수님, 또 개별 학문 중심의 연구모임들을 다학문적 한국공공선택학회로 통합하는 작업을 주도하셨던 최광 교수님, 그리고 제2대 학회장 이정전 교수님, 제3대 학회장 오연천 총장님, 제4대 학회장 유금록 교수님 등 여러 선배 학자들의 노력으로 한국공공선택학회의 활동이 지속되고 있다.
제5대 한국공공선택학회 회장단의 임기는 이 책의 기획으로 시작했다가 이 책의 발간으로 종료한다. 제5대 회장단은 유럽공공선택학회가 참가한 ‘공정의 공공선택적 모색’ 국제학술회의를 비롯해 몇 차례의 국내외 학술회의를 개최했지만 가장 큰 의미를 둔 사업은 이 책이었다. 공공선택학의 한국적 수용을 정리해보려는 취지였다. 그 이전 회장단에서 이미 여러 종의 도서를 발간한 적이 있지만, 공공선택학 교육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한글 도서는 이번이 처음인 셈이다. 물론 필자를 포함해서 여러 국내 학자들의 관련 도서들이 1990년대부터 출간되었지만, 광범위하고 자세하게 서술된 도서는 이 책이 처음인 듯하다.
이 책은 공동집필이지만 공공선택학적 관점에서 잘 분업되어 효율적으로 만들어진 결과물이라고 자평하고 싶다. 각 장의 책임집필자는 장 말미에 명기되어 있다. 이 책을 기획하고 총괄한 사람으로서 시장 가격을 지불해주지 못해 미안할 뿐이다. 집필자 모두는 이 책을 한국공공선택학회와의 공유 재산으로 느끼고 있다.
이 책에는 부족한 점도 많다. 빠트린 공공선택 관련 주제도 있을 것이고, 자세하고 정확하게 설명되지 못한 부분도 있을 것이며, 소개하지 못한 주요 문헌도 있을 것이다. 공유 재산인 이 책을 관리할 다음 한국공공선택학회 회장단들의 역할을 기대해 본다. 특히 개별 회원과 학문공동체의 관계에서 제도화 단계로의 진입을 기대한다.
2012년 9월
제5대 한국공공선택학회장 김재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