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판 2009. 8. 20.
초판 2009. 1. 25.
행정학이 한국에 소개된 지 이미 반세기가 넘었다. 그리 길지 않은 기간에 한국행정연구는 양적으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었다. 행정국가의 확대와 더불어 행정지식과 기술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면서 행정학을 교육하고 연구하는 기관과 학자들이 급증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적 차원의 “눈부신 발전”에도 불구하고 한국행정연구의 수준과 질은 그에 상응하여 심화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근대행정학의 발상지인 미국 행정학에 대한 지적 의존은 거의 변함이 없이 지속되고 있다. 물론 외국의 이론과 연구를 준거하는 것 그 자체가 시비 거리가 될 수는 없다. 문제는 적실성에 대한 검토 없이 미국 행정학을 한국의 행정현실을 이해하는데 가장 적합한 모형으로 상정하고 이를 무비판적으로 모방하였다는데 있다. 이러한 연구정향과 행태는 “행정학의 토착화” 혹은 “행정학의 한국화”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장애가 되었다. 사회와 문화의 경계를 넘어 이전 가능한 보편적 법칙과 이론을 제공하지 못하는 미국 행정학을 주기적으로 소개하고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으로는 한국행정학의 성숙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본서는 한국행정연구의 과거를 자성하고 한국행정학이 직면한 지적 도전과 이의 극복을 위한 과제를 다루었다. 저자들은 기존의 한국행정연구가 학문경계의 모호성, 연구대상과 초점의 한정성, 규범 및 비판이론과 반자연주의 인식론에 대한 몰이해, 이론 지향적 실증연구의 빈곤, 정량분석이 지배하는 방법론의 편협성, 이론적 사례연구의 부진, 해석연구의 결여, 역사와 맥락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부족, 처방연구의 부실성 등을 노정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런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해 개념과 이론에 의한 연구대상 설정, 규범적 접근의 강화, 이론적 실증연구의 촉진, 역사와 맥락의 중시, 방법론의 다양화, 처방연구의 내실화 등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이러한 시각에서 저자들은 개념, 이론, 접근법 및 방법론을 중심으로 현재 한국 행정연구의 성과와 한계를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하려고 한 것이다.
본서는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편은 행정연구의 대상, 범위 및 초점을, 제2편은 행정과 정책연구의 규범적 접근을, 제3편은 행정연구의 주요 개념과 이론 및 맥락을, 마지막 제4편은 행정연구의 방법론을 각각 다루었다. 보다 구체적으로 각 논문의 내용을 요약해 소개하면 박종민은 1장 “행정학의 연구대상”에서 행정학의 중심 개념의 부재 및 행정 개념을 현실제도와 일치시키는 물화로 인해 고유한 학문분야로서의 행정학의 경계를 한정하는데 실패해 왔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는 행정학이 중심 개념을 토대로 체계성과 통합성을 이루지 못하면 설사 주변이 확장된다 하여도 학문분과로서 독자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오히려 소산될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행정학의 정체성의 악순환 극복은 행정 개념의 물화를 지양하고 행정학의 중심 개념을 형성하는 일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하였다. 정무권ㆍ한상일은 2장 “공공부문의 다양화와 새로운 연구 영역”에서 준정부조직의 성장 등 공공부문의 다양화에 주목하면서 전통적인 정부조직뿐만 아니라 다양한 공공조직에 대한 관심과 그에 적합한 경험적, 이론적 및 규범적 연구를 촉구하면서 특히 민주주의의 위기 및 공공성과 효율성의 조화 문제를 한국행정연구의 주요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한국의 공공부문 조직의 존재양식의 다양성을 지적한 그들은 기존 행정연구가 정부조직에 집중하는 경향을 비판하면서 전통적인 정부산하기관만이 아니라 공적 삶에 영향을 주는 민간조직도 행정학의 정당한 연구대상으로 포함시킬 것을 주문하고 있다.
양재진은 3장 “발전국가론 다시보기”에서 비록 단절 부분도 있지만 발전국가론은 현재 한국의 행정현상을 이해하는데 여전히 유용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수평적 책임을 담보하는 통치기구의 영향력이 강화되었지만 정책과정에서 행정부의 중심성은 여전하며, 경제부처의 정책향도 역할이 실효성은 떨어지나 지속되고 있고, 국가의 산업정책 개입수단은 변했으나 기조는 그대로며, 복지개입은 사회권에 토대를 두기 시작했으나 발전주의 복지체제의 기본 틀이 유지되고 있다고 하였다. 그는 발전국가가 사라졌다 해도 오늘의 한국행정의 특수성은 발전국가론의 시각에서 이해될 수 있다고 하였다. 김근세는 4장 “집행부중심에서 입법부중심 행정으로”에서 기존 행정연구에서 발견되는 국회 역할에 대한 이론적 연구의 빈곤을 지적하면서 행정관료제를 입법부 및 사법부로부터 단절된 행정부의 배타적 통제대상으로 다루어왔던 기존 시각의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 그는 집행부중심 행정에 대한 대안적 시각으로 입법부중심행정 이론을 소개하면서 국회의 행정개입을 위한 제도적 장치, 행정부 견제를 위한 입법관료제의 제도적 장치, 정당정치와 행정, 분점정부와 단점정부 하에서의 행정과정의 차이, 정책정당의 제도적 기반, 입법관료제의 관리적 측면 등의 주제를 행정연구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하였다.
임의영은 5장 “행정에 관한 규범적 연구”에서 행정연구는 규범성, 과학성, 처방성이 조화를 이룰 때 학문성이 확보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그동안 행정학계에는 과학성과 처방성을 강조하는 과학적 문화가 지배적이었고 규범성을 강조하는 인문적 문화는 주변적이었음을 지적하면서 두 문화 간의 소통부재 및 두 문화 지지자들 간의 적대적 태도를 개탄하고 “두 문화” 간의 “실질적인 개방”을 위한 학문공동체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행정존재론, 행정인식론, 행정윤리론, 행정인간론 등을 규범연구의 내용으로 제시하면서 이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를 희망하고 있다. 김희강은 6장 “정책과 사회정의 및 규범이론”에서 주로 비용-편익 관점에서 다루어져 왔던 정책연구에 있어 가치의 문제는 중요할 뿐만 아니라 피할 수 없다고 주의를 환기시키면서 사회정의의 문제를 보다 적절히 다룰 수 있는 규범적 가치의 문제를 제시하고 있다. 그녀는 기존 정책연구에서 규범적 가치의 기준이 되어온 효율성과 사회적 형평성이 규범적 가치로서 유의미함에도 불구하고 사회정의의 문제, 특히 사회의 구조적 불평등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 한계가 있음을 지적하고 사회정의의 문제를 중심으로 하는 규범이론과 이에 근거를 둔 공공정책이 적용된 사회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김호정은 7장 “행정학의 위기와 조직연구”에서 행정학 및 조직학의 위기의 원인으로 신공공관리론의 유행이나 계량적 분석방법의 지배보다는 한국 행정학자들의 비학문적 연구행태를 지적하고 있다. 그는 한국 조직학자들이 조직론의 도구적 성격을 활용하여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정부의 입장을 합리화시켜 주는 정부용역 연구에 치중함으로써 조직론의 관변학문적 성격을 강화시켜 왔다고 비판하고 한국 조직학의 위기 극복을 위해 시의와 유행을 좇는 연구행태를 지양하고 기초이론 연구에 충실하고 특히 공공성의 성격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 임도빈은 8장 “행위론적 접근”에서 행정학 분야의 연구가 적실성이 떨어지는 이유는 행정인들의 행위에 대한 충분한 조사와 심층적 관찰이 없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이처럼 “겉도는” 한국 행정학을 제자리로 돌릴 수 있는 하나의 방법으로 행위론적 행정연구를 제시하고 있다. 그는 통계학의 무분별한 남용보다는 행위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심층적 관찰과 두터운 기술 및 통합적 해석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고 맥락에 대한 이해에 바탕을 둔 개념의 개발과 이론화를 강조하고 있다.
장지호는 9장 “역사적 제도주의의 적용과 극복”에서 행정연구의 주요 개념으로 제도를 제시하고 특히 역사적 제도주의의 유용성과 한계 및 극복 방안을 다루고 있다. 그는 역사적 제도주의가 이론적 독창성과 유용성을 담보하고 있음에도 이의 개념적 도구를 면밀하게 적용한 실증연구를 쉽게 발견하기 어려울 정도로 국내의 역사적 제도주의 연구는 부진하며 따라서 여전히 학계의 주변부에 머무르고 있다고 평가하였다. 그는 더 나아가 역사적 제도주의의 약점인 제도결정론을 극복하고 이론의 한국적 토착화를 위해 담론분석과 시차이론과의 접목을 제안하였다. 안도경은 10장 “행정학의 체계: 공공선택론의 관점”에서 공공선택론과 게임이론적인 제도론과 사회계약론, 정치 및 정책과정에 대한 형식이론, 거래비용경제학과 정보경제학을 바탕으로 하는 조직경제학을 총괄하여 행정학의 이론체계를 구성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즉, 사회적 상호작용의 형태와 협동의 가능성, 제도와 사회계약, 사회구성원들의 공동대리인으로서의 정부 등의 개념을 정립하는 거버넌스론, 정책형성과정에서 정치적 경쟁의 역할, 관료제와 선출정치인들의 상호작용, 정부와 사회, 이익집단의 상호작용 등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론, 조직과 비조직, 공조직과 사조직의 구분, 조직 내 협동과 조정, 인적자원관리, 조직문화와 관행을 다루는 조직론으로 행정학의 체계가 구성될 수 있다고 하였다. 이경원은 11장 “집합행동의 딜레마: 참여의 진화적 관점”에서 행정학의 주요 개념의 하나로 집합행동을 제시하고 이의 형성과 진화를 설명할 수 있는 다양한 이론적 시각을 소개하고 있다. 그는 진화적 관점에서 집합행동의 딜레마를 조명할 것을 제안하고 특히 한국의 집단주의 문화의 특성인 ‘우리성’의 해석을 통해 공공선의 달성을 위한 협력적 행동의 확산이 어려운 이유를 규명하려 하였고 우리사회에서 공공의 영역이 상대적으로 축소되어 있는 현상에 대한 대안적 설명을 제시하려고 하였다.
이혁주는 12장 “행태모형과 정책연구”에서 이제까지 행정학 분야에서 드물게 사용되어 온 행태론적 모의실험 접근법이 사회현상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이론화의 도구로서 잠재력이 크다는 인식에서 이를 행정연구의 중요한 방법론의 하나로 소개하고 있다. 그는 특히 공학적 접근법과 비교해 경제학적 의사결정주체를 전제한 미시적 접근법을 이용하는 행태론적 접근법이 이론 개발의 도구로서 유용함을 강조하면서 이제 한국 행정학계도 이를 활용해 이론의 개발을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승현은 13장 “실증적 사례연구방법: 분석, 평가 및 제언”에서 반자연주의자의 해석적 사례연구방법과 대비되는 자연주의자의 실증적 사례연구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그는 실증적 사례연구가 통계적 방법 및 수리적 모형과 방법론적 논리가 다르나 동일한 인식론적 논리를 공유하고 있으며 상호 경쟁적이라기보다 보완적이라고 하였다. 그는 양적 연구와 동일한 과학적 추론의 논리에 토대를 둔 실증사례연구에 대한 이해의 부족으로 한국행정학에서 질 높은 사례연구가 많지 않음을 지적하고 이론적 지향성을 갖는 사례 중심적 연구의 활성화 및 사례연구방법의 강화를 촉구하고 있다.
윤견수는 14장 “인문학적 성찰과 행정학 방법론”에서 행정학이 연구자와 연구맥락, 연구자와 연구대상 간의 거리두기를 근간으로 하는 과학주의에 매몰되어 왔음을 비판하고 관찰보다는 성찰, 분석보다는 집필, 설명보다는 소통의 관점에서 행정현상에 접근하는 인문적 사유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그는 인문학적 사유와 과학주의가 상호 경쟁적 관계가 아니라 보완적인 관계임을 지적하고 그동안 경시되어 왔던 인문학적 성찰을 강화하여 방법론의 다원화를 이루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구교준은 15장 “임상과학으로서의 행정학”에서 행정학을 의학과 비교하면서 순수학문보다 응용학문으로서 행정학의 위상을 정립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행정학을 공공부문의 문제해결을 위한 임상과학으로 정의하는 그는 행정학이 기초사회과학뿐만 아니라 인문학까지 아우르고 이들의 창의적 융합을 통해 임상성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행정학의 위치를 찾을 수 있으며 이를 위해 행정학은 통섭적, 실증적, 과학적 접근방법 모두를 필요로 한다고 하였다.
본서에서 저자들이 한국행정연구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를 지적하고 그에 대한 종합적 대안을 제시하려 한 것은 아니다. 또한 기존 한국행정연구에 대한 비판에서 저자들 스스로 완전히 자유롭다는 것도 아니다. 저자들은 본서를 통해 한국행정연구의 한계와 문제를 자성하고 제한적이나마 내실화를 위한 대안을 제시하려 한 것이다. 저자들은 한국행정학의 성숙을 위해 연구주제의 적합성, 방법론의 다원화, 규범 및 비판이론의 재발견, 이론적 경험연구의 강화, 해석과 의미의 중요성 인식 등이 절실히 요구된다는 것을 강조하려고 하였다. 이러한 의도가 충분히 전달되지 못해 아쉬움이 적지 않지만 한국행정연구의 성숙을 위해 이론과 연구의 결합 및 접근법과 방법론의 다양화에 대한 적극적 관심을 촉구한 것으로 만족한다.
본서의 출간은 2007년 봄 원주시 매지리 연세대학교 캠퍼스에서 가진 한국 행정학 및 행정학계의 현실을 우려하는 학자들의 모임(매지행정포럼)에서 구상되었다. 본서의 논문들은 모두 한국행정학회 2008년 춘계 및 하계학술대회에서 발표되었다. 저자들은 이들 학술대회에서 사회자 혹은 토론자로 논문의 개선을 위해 품앗이를 하였다. 이들 이외에 사회와 토론을 통해 논문들의 개선을 도와준 매지행정포럼의 강명구(아주대), 정성호(경기대), 강효진(서울산업대), 이영철(전남대) 교수, 그리고 김호섭(아주대), 김동원(인천대), 김항규(목원대), 심광호(고려대), 안성민(울산대), 이명석(성균관대), 이병량(순천대), 이시원(경상대) 교수께 감사한다.
연구년으로 참석이 어려웠던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저자들은 고려대학교 2007년 가을 학기 “한국행정론” 대학원 세미나에 참여하였다. 논문을 기고하지는 못했지만 당시 세미나에 참여했던 강효진(서울산업대), 김선혁(고려대), 문태훈(중앙대), 신동면(경희대), 원숙연(이화여대) 교수께 감사한다. 그리고 대학원 세미나를 수강하면서 유익한 토론을 펼쳐준 고려대학교 행정학과 석ㆍ박사 과정의 대학원생들에게 감사한다. 편집과정에서 수고를 아끼지 않은 고려대학교 박사과정의 배정현 선생 및 박영사 편집부의 김선민 부장께 고마움을 표한다. 끝으로 본서의 출간을 흔쾌히 허락해주신 박영사 안종만 회장님께 감사한다.
박종민ㆍ정무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