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판 2007. 10. 20.
이 책은 주체사상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이나 주체사상을 만든 사람이 의도했던 이데올로기적 구속과 같은 껍질을 깨고 주체사상의 본질을 사실대로 분석하고자 한다.
북한에서는 영생불멸의 사상으로 칭송받고, 남한에서는 주사파라는 사회세력을 형성하기도 하였던 주체사상,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라는 구호하에 북한의 전 역사와 정치와 경제와 사회와 문화를 재해석했던 주체사상, 북한의 모든 언론과 북한의 모든 담벼락과 모퉁이의 전봇대까지도 도배질하였던 주체사상, 그 주체사상이 이제 새로운 시대를 만나서 새로운 통치이념에 자리를 뺏기고 있다.
주체사상이 이제는 강성대국론, 선군사상에 의하여 대체당하고 있고, 또 한편으로는 이제는 정말 자기운명의 주인은 당국과 수령이 아니라 자기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북한주민들에 의하여 저항이데올로기로 활용되고 있다. 전자는 북한 당국이 의도한 것이지만 저항이데올로기로의 변질은 당국이 의도하지 않았던 경제난에 따른 자연발생적 산물이다.
주체사상의 퇴조와 주체사상의 배반, 이것은 주체사상이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잉태된 모순의 씨앗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전체주의 북한에서 자유민주주의에 가까운 인간중심의 사상을 통치이념으로 채택한 것부터가 무리한 일이었다. 국가중심적이고 수령중심적인 북한에서 인간중심의 철학이라는 주체사상을 통치이념으로 채택한 것은 후르시초프 소련의 개인숭배 비판과 수정주의의 격량 속에서 소련제 사상인 맑스-레닌주의를 하루빨리 폐기하고자 하였던 김일성에게 다행스런 대안이었으며, 인간중심의 철학은 ‘인민과 더불어’라는 구호를 내세운 김일성에게는 수령중심의 정치와 전체주의 체제를 은폐할 수 있는 도구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이데올로기적 은폐는 처음부터 무리한 정도였기 때문에 그 사상을 주도한 황장엽은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남한으로 오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사람이 주인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사람을 제대로 먹여주지도 못하고, 사람을 사람취급하지도 않는 것이 무슨 주체사상이냐고 볼멘소리가 나오게 된 것이 주체사상의 배반의 시작이다. 민주주의를 통치이념으로 내세운 이승만 정권이 민주주의를 하지 않고 독재를 하고 부정선거를 하자 우리 국민들이 민주주의를 제대로 하라고 요구하면서 4·19혁명을 일으켰던 사실을 감안한다면 사람이 주인이라고 해놓고 주인대접을 하지 않는다는 불평이 없을 수 없다. 북한 당국이 슬그머니 강성대국이니 선군사상이니 하면서 주체사상을 뒤로 물리고 있는 이유의 하나는 바로 여기에 있다.
주체사상이 북한 체제를 배반한 배경을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주체사상에 대하여 새로운 자료로 새로운 분석을 할 필요가 제기된 것이다. 또한 그동안 우리 학계에서는 북한 연구에 있어서 주체사상이 차지하는 중요성 때문에 관련 연구가 많이 이루어졌으나 이제는 주체사상을 기존의 연구와는 다른 문제의식에서 새롭게 연구해야 할 몇가지 중요한 새로운 변수가 발생하였다.
첫째, 김정일이 공식적인 국정의 최고수반으로 취임한 1998년 9월을 기하여 강성대국이라는 새로운 이념이 북한의 통치이념으로 활용되기 시작하였으며 최근에는 선군사상과 실리사회주의가 가장 빈번히 활용되는 통치이념이다. 주체사상이 폐기처분된 것은 아니지만 김정일시대라는 새로운 정치적 배경, 식량난이라는 정권창립 이래의 최대의 위기적 상황에서 새로운 통치이념들이 과거 주체사상의 기능을 대체하고 있다. 흔히들 주체사상을 북한 체제 그 자체와 동일시하기도 할 만큼 주체사상은 북한체제에서 중요한 요소였으며, 북한체제유지의 최대의 버팀목으로 간주되기도 하였으며, 남한학자들이 북한이 변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근거의 하나로 주체사상이 거명되기도 하였다. 북한체제의 근간을 바꾸고 있는 2002년 7·1경제관리개선조치의 내용의 하나는 주체사상의 핵심적 내용인 주인의식 계몽에 의한 노동동원의 정책을 폐기하고 화폐임금에 의한 물질적 자극의 방식으로 대체하였다는 점이다. 이처럼 북한의 지도부에서 주체사상의 효용성이 실패했음을 인식하고 대안을 선택하고 있을 만큼 주체사상의 역할에 큰 변화가 발생했기 때문에 주체사상에 대한 새로운 평가가 필요하다.
둘째, 경제난에 기인한 체제위기 속에서 주체사상이 주민들 사이에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지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 경제난 이후 북한주민들은 암시장에서 생필품을 조달하는 체제속에서 살고 있으며 이러한 암시장은 2002년 7·1경제관리개선조치이후 종합시장으로 양성화되었다. 배급제가 사실상 폐지되고 암시장과 시장에서 스스로 벌어서 생계를 유지하는 북한주민들에게 “혁명과 건설의 주인은 인민대중이며 자기운명의 주인은 자기자신”이라는 주체사상의 기본명제가 더 이상 정치적 슬로건이 아니라 정말 사실이라는 사실을 새롭게 체험으로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인간을 재발견한 르네상스적 각성같은 것이 북한주민들의 의식에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셋째, 황장엽 전노동당 비서 겸 주체사상연구소장이 탈북하여 남한으로 귀순함으로써 황장엽 자신의 글이나 증언 등을 통하여 주체사상의 형성과정과 주체사상의 내용에 관한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지게 되었다. 기존의 연구는 주체사상의 형성과정에서 김일성, 김정일, 황장엽의 역할을 구분하여 체계적으로 밝힌 연구는 거의 없기 때문에 주체사상의 형성과정과 그 구체적 내용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하기에는 미흡한 부분이 있었다. 주체사상은 때로는 대외적 자주성 또는 反사대주의 개념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때로는 인간이 혁명과 건설의 주인이라는 인본주의적 사상을 의미하기도 하고, 또 수령절대주의의 개념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매우 많은 개념과 의미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에 주체사상이 정확히 무엇인지 논리적으로 이해하기가 대단히 어려울 정도이다.
황장엽 증언에 의하여 새롭게 밝혀진 내용의 하나는 김일성에 의하여 주도된 초기의 주체사상의 내용과 황장엽의 주도로 만들어진 주체사상, 김정일의 주도로 만들어진 주체사상의 내용이 매우 다르다는 사실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체사상’이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포장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내용들이 제대로 이해되지 않고는 주체사상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하기는 어렵다.
넷째, 북한의 경제난이후 많은 탈북자들이 한국에 쏟아져 들어왔기 때문에 다양한 계층 출신의 탈북자들로부터 주체사상에 대한 인식, 주체사상의 기능에 대한 심층적 자료수집이 용이해졌다. 이들과의 면접을 통하여 위에서 만든 주체사상에 대한 이해를 넘어서 밑에서 보는 주체사상의 의미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가능하게 되었다. 이로써 북한 지배층에서 의도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게 주체사상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등 북한주민들의 의식변화에서 주체사상의 기능변화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다섯째, 북한이 맑스-레닌주의를 폐기하고 주체사상으로 대체하였다는 북한 당국의 이데올로기적 선언도 역시 이데올로기적이라는 사실을 밝힐 필요가 있다. 맑스-레닌주의를 공식적으로 폐기하였지만 프롤레타리아독재론, 계급투쟁론, 폭력혁명론, 전위당이론 등 맑스-레닌주의의 부품들은 그대로 온존해 있다. 북한의 지배이데올로기는 주체사상뿐이라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북한의 현재의 지배이데올로기에 오염된 생각이다. 북한체제의 특성 중에서 맑스-레닌주의가 미친 영향과 주체사상이 미친 영향을 정확히 구분하여 밝혀내는 작업이 필요하며, 이러한 작업이 이루어져야 북한체제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제대로 이해하게 되며, 북한 지배이데올로기의 본질이 제대로 이해되어야 북한의 향후의 변화 방향에 대해서도 제대로 전망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책이 주체사상 연구에 새롭게 기여하고자 하는 것은 위에서 제시된 다섯가지 문제의식을 중심으로 주체사상의 형성 및 변화, 주체사상의 기능을 새롭게 분석함으로써 주체사상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제시하는 것이다. 이 책은 주체사상이 1950년대 김일성에 의하여 형성되는 과정에서부터 황장엽에 의하여 새롭게 개작된 과정, 김정일에 의하여 권력승계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변형된 과정, 1980년대 말 사회주의권 붕괴의 와중에서 주체사상이 새로운 개념들로 변용된 과정, 그리고 2000년대 강성대국론과 선군사상, 실리사회주의가 등장한 배경을 구체적으로 분석한다. 끝으로 이 책은 주체사상의 기능이 지배이데올로기에서 저항이데올로기로 변화하는지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을 부각하고자 한다.
분석의 결과 이 책은 무엇보다도 주체사상에 대한 지도부의 의도와 일반인의 인식이 일치되지 못하고 괴리되고 있는 측면을 강조한다. 또한 경제난이 심화되면서 북한주민들이 주체사상을 개인주의적 일탈이나 체제이탈을 위한 이론적 정당성의 도구로 주체사상을 활용하는 경향을 중시하여 이 경향이 향후 지배이데올로기로서의 주체사상이 저항이데올로기로서 둔갑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지를 검토하고자 한다. 또한 주체사상이 퇴조하고 강성대국론과 선군사상이 등장하게 된 배경을 분석하고, 최근 강조되고 있는 실리사회주의의 의미와 파워에 대하여 심층 분석함으로써 향후의 주체사상의 거취에 대하여 전망하고자 한다.
저자는 통일연구원에서 동구사회주의가 무너지고 소련이 무너지던 해인 1991년 이후부터 북한 사회와 북한체제의 변화를 분석해왔다. 이 책은 필자가 그동안 축적해왔던 북한의 주체사상에 대한 분석을 지배이데올로기와 피지배자의 상호작용의 측면에서 살펴본 것이다. 이 책이 나오게 된 것은 주체사상에 대하여 많은 연구를 축적해놓은 선배, 동료 학자들의 연구, 탈북자들의 소중한 증언, 황장엽선생의 증언 덕분에 가능하게 되었다. 이 분야의 연구에 기여한 모든 이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특히 나의 북한 연구의 산실, 나의 직장, 통일연구원의 모든 가족들에게 감사드린다.
2006년 1월
서 재 진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학사
미국 하와이대 사회학 석사 및 박사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 정책연구실장, 북한인권연구센터 소장 역임
미국 American University 객원연구원, 미국 국방연구원(IDA) 자문위원 역임
현)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화여대 북한대학원 및 경희대 강사
제1장 서론: 지배이데올로기란 무엇인가
1. 지배이데올로기로서의 주체사상
2. 지배이데올로기의 개념
3. 지배이데올로기의 한계
4. 분 석 틀
제1부 주체사상 이전의 북한의 지배이데올로기
제2장 북한의 맑스-레닌주의
1. 맑스-레닌주의의 본질: 사회주의
2. 스탈린주의
3. 북한의 맑스-레닌주의: 소련의 맑스-레닌주의와의 비교
4. 맺 음 말
제3장 맑스-레닌주의가 북한체제에 미친 영향
1. 6ㆍ25전쟁 이전의 소련의 통일전선전술의 전략과 민주주의 및 인민민주주의 이념
2. 6ㆍ25전쟁과 북한만의 사회주의화
3. 프롤레타리아 독재이론과 북한의 통치양식: 유일체제와 수령제
4. 레닌의 전위당 이론과 북한의 일당독재
5. 맑스-레닌당의 조직원리와 북한의 전체주의
6.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북한의 계급투쟁노선
7. 레닌의 폭력혁명론과 북한의 테러의 정치
8. 맺 음 말
제4장 맑스-레닌주의와 주체사상의 관계
1. 맑스-레닌주의와 주체사상
2. 주체사상과 사회주의
3. 맑스-레닌주의 없는 사회주의의 의미: 맑스-레닌주의가 감추어진 사회주의
4. 맺 음 말
제2부 주체사상의 형성과 기능
제5장 50~60년대 정적을 숙청하기 위한 반사대주의 주체사상의 형성
1. ‘주체 확립’ 개념의 형성 배경
2. 자주노선의 ‘사상’으로의 발전에 영향을 미친 요인
3. 항일무장투쟁 중심의 주체사상의 컨텐츠 형성
4. 1967년 갑산파 숙청 이후 유일사상으로의 승격
5. 주체사상의 기본노선 정립과 초기 주체사상의 특징
6. 맺 음 말
제6장 70년대 사회주의적 생산양식하의 인성을 개조하기 위한 인간중심론의 주체사상
1. 황장엽의 인간중심론 주체사상 개발이 계기
2. 인간중심론 주체사상의 내용
3. 황장엽의 인간중심론 주체사상의 출처
4. 인간중심론 주체사상 개발에서의 황장엽의 역할
5. 새로운 주체사상이 북한의 지배이데올로기로 채택된 배경
6. 맺 음 말
제7장 70~80년대 김정일의 권력세습을 위한 수령중심론의 주체사상
1. 김정일 주도의 주체사상 개발
2. 온사회의 주체사상화와 주체사상의 김일성주의화
3. ‘수령중심론’으로의 주체사상 변형
4. 1982년의 체계화된 주체사상과 주체사상 총서의 내용
5. 김정일 후계자 체제에서 주체사상의 기능
6. 맺 음 말
제8장 80~90년대 체제위기시의 ‘우리식 사회주의’ 구호하의 주체사상
1. 반사대주의의 측면
2. 인간중심론의 측면
3. 수령중심론의 측면
4. 맺 음 말
제9장 주체사상의 체계, 원리, 내용
1. 주체사상 개념의 전개과정
2. 주체사상의 이론적 체계화
3. 주체사상의 정의와 주체사상의 창시
4. 좁은 의미의 주체사상: 혁명의 사상
5. 주체사상의 혁명이론
6. 주체사상의 영도방법
7. 맺 음 말
제10장 주체사상이 북한체제에서 행한 기능
1. 김일성-김정일의 반대세력 제거 및 권력승계의 이념적 도구
2. 사회주의적 생산양식이 야기한 수동적 인성의 인간개조이론
3. 주민동원 정책에 대한 정당화
4. 체제붕괴 위기에서 체제이반 통제이론
5. 맺 음 말
제3부 주체사상의 변화
제11장 주체사상에서 강성대국론과 선군사상으로의 전환
1. 주체사상 퇴조의 배경
2. 붉은기 사상
3. 강성대국론
4. 주체사상의 일부 재활용
5. 선군사상
6. 주체사상, 강성대국론, 선국사상의 관계
7. 맺 음 말
제12장 주체사상의 기능부전과 실리사회주의 개념의 등장
1. 7ㆍ1경제관리개선조치와 노동동원 양식의 변화
2. 실리사회주의 개념의 도입
3. 시장의 도입
4. 개방정책의 시도
5. 맺음말: 주체사상의 논리에서 본 개혁ㆍ개방의 의미
제13장 지배이데올로기에서 저항이데올로기로: 주체사상의 이반
1. 주체사상의 개념에 포함된 개인주의 이론의 요소
2. 자력갱생 개념의 변화와 개인주의 생활양식으로의 변화
3. 주체사상에 대한 주민들의 인식 변화와 주체사상의 역기능
4. 주체사상의 개념에 포함된 혁명이론적 요소
5. 주체사상이 저항이데올로기로 사용된 사례: 남한의 주사파 학생운동
6. 지배이데올로기가 저항이데올로기로 사용된 사례: 동독 붕괴 당시의 반체제운동과 남한의 4ㆍ19혁명
7. 맺 음 말
제14장 결 론
1. 주체사상의 주요 내용과 문제점
2. 주체사상의 기능 부전과 대안적 통치이념으로의 교체
3. 주체사상은 퇴조하고 맑스-레닌주의는 남다
4. 지배이데올로기에서 저항이데올로기로: 주체사상의 이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