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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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이주의 역사 ★우수학술도서 선정★
한인 이주의 역사 ★우수학술도서 선정★
저자
김게르만
역자
-
분야
인문학/교양/어학
출판사
박영사
발행일
2005.03.30
장정
페이지
460P
판형
신A5판
ISBN
89-7189-204-8
부가기호
강의자료다운
-
색도
정가
25,000원
오늘날 지구촌에는 수억의 사람들이 타향살이를 하며 살고 있다. ‘구세권(The Old World)’ 선진국에서는 지난 한 세기 동안 해외 이주가 급격히 증가하였으며, 이로 인해 이들 국가는 일정한 이익을 얻기도 하였다. 자국민들의 해외 이주가 안겨 주는 이익을 간파한 정부는 국제사회로의 팽창을 목적으로, 해외 이주정책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최초의 해외 이주민들은 노부모와 아내·자식·친지 등을 남겨두고, 미개척 지대, 벽지, 불모지, 야생정글 등지에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자 고향을 떠났다. 비유하여 말하자면, 이주 제1세대는 새 삶의 씨앗을 뿌렸고, 제2세대는 이 씨앗을 근간으로 싹을 틔웠으며, 제3세대에 와서야 그 열매를 수확할 수 있었다.

한인 해외 이주의 역사는 100년 남짓하다. 세계 각지의 한인 이주자들은 적잖은 어려움과 궁핍한 삶을 견뎌내고, 불평등과 비극을 겪으면서 제각기 처한 낯선 사회에서 나름대로 삶의 터전을 일궈나갔다. 이런 면에서 한인 이주민 공동체는 타민족 이주민 공동체의 모범이 되고 있다.

우리는 외국의 역사문헌에서 이민 수용국별 한인 이주의 역사 및 한인 이주자들의 정치·사회·경제 활동, 그리고 이민자들의 이주에 따른 인종학적 변화과정 등에 관한 어느 정도의 연구실험 결과를 찾아볼 수 있으며, 이에 대해서는 역사학자, 문화학자, 민속학자, 인구통계학자, 언어학자들도 적잖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구소련 시절, 한인 이주 관련 연구를 하기란 매우 열악했다. 관련 문서가 턱없이 부족하였을 뿐만 아니라──심지어 서유럽의 대규모 서고에서도 충분한 자료를 찾을 수 없었다──, 구소련사회가 지닌 폐쇄성으로 인해 대한민국과 교류가 전혀 없었다는 점 등의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소련의 붕괴 이후,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열리기 시작하면서, 저자는 여러 나라에 장기간 머물며, 해외 각지의 한인 이주자들과 특히 한인 이주의 역사에 관한 일련의 문서와 학술문헌을 수집할 수 있는 기회를 여러 차례 가질 수 있었다. 이와 관련하여 저자에게 협조와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해외 각국의 모든 학술기금 및 학술센터와 연구원 동료들에게 이 지면을 빌어 감사의 말을 전한다.

특히 한국학술진흥재단(韓國學術振興財團, Korea Research Foundation)은 1년 6개월 동안(1990년 봄~1991년 가을) 서울대학교 언어교육원 한국어 교육 프로그램(1년 과정)과 이후 서울대학교 인류학연구소 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국정부 지원금을 제공해 주었다. 덕분에 한국어 숙달은 물론, ‘해외 한인 이주민들의 과거와 현재에 나타나는 공통점과 차이점’이라는 연구방향을 설정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이후 6개월간 대한민국 외교통상부 산하 한국국제교류재단(韓國國際交流財團, Korea Foundation)의 초청으로 서울에 와서 ‘서울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 연구원 자격으로, 한국어와 영어로 씌어진 관련 자료를 수집할 수 있었다.

당시, 저자는 서울대 이광규 교수와 전경수 교수 연구실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였다. 우선은 이 교수와 전 교수는 이 분야의 권위 있는 전문가로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과 충고를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저자의 눈길을 붙잡는 자료들이 도서관 서고보다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도서관에서 찾아볼 수 없는 미출판 논문 사본·보고서·학위논문 등, 풍부한 자료가 이 분들의 연구실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광규 교수와 전경수 교수에게 무한한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한편, 1991년 8월에는 동경 ‘현대어학회(現代語學會)’의 초청으로 15일간 일본의 도쿄·오사카·고베·하라 등을 방문하여, 관련 문헌은 물론, 구전자료까지도 수집할 수 있었으며, 일본 거주 한인 이주민들의 다양한 삶의 일면을 직접 엿볼 수 있었다. 이런 기회를 제공해 준 토시오 타카야나기 학회장에게 감사드리며, 토쿠야 요네쥬 씨를 비롯한 나이히모 시노다 씨, 미치코 우메쥬 씨, 토시오 타카야나기 씨, 마사요시 미야유치 씨 등 학회원 여러 분과, 러시아학 대학원 과정에서 공부중인 나추코 오카 씨와 토루 이노에 씨에게도 감사의 말을 드린다.

1992년 2~3월에는 런던대학 동양·아프리카연구원(SOAS, The 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 University of London)으로부터 영국학사원(The British Academy) 회원인 로스 킹(Ross King) 박사와 공동으로 초청받아, 3주 동안 SOAS 도서관에서 연구작업을 하고, 한인 이주의 역사에 관한 적합한 사료를 수집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특히 5천 명 가량의 한인들이 밀집되어 있는 런던 외곽의 뉴 몰던(New Malden)에서는, 영국을 포함한 유럽 국가로 이주한 최근의 한인들에 관한 보충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영국에 있는 동안 로스 킹 박사가 베풀어 준 친절함은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아울러 SOAS측 한국학 분야 연구원 동료들에게도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1992년부터 국사편찬위원회 해외사료수집위원회는 저자에게 정회원 자격을 주어, 한국과 해외에서 발표된 학술보고서를 매년 배부해 줌으로써 일일이 목록을 보고 주문을 해야 하는 수고를 덜게 해주었다. 한국국제교류재단도 1995년부터 정기학술보고서를 보내 주고 있다.

1998년 6월에는 소로스재단(Soros Foundation)의 지원으로 3주간 캐나다의 밴쿠버, 미국의 샌프란시스코, 로스엔젤레스 등지에서 연구관련 자료수집 및 한인 이주자들의 현황 조사, 인터뷰 등을 할 수 있었고, 이 분야에 관한 논문을 발표한 미국의 여러 교수들과 간담회도 가질 수 있었다.

일련의 모든 연구는 본인에게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던 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박영석 교수, 전 서울대 노문과 학과장 이인호 교수, 건국대 한상도 교수, 하버드대 프랭크 호프만 박사, 유학수 교수와 홍종현 교수, 장민석 씨, 박도영 씨 등 여러 분들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매우 어렵고 힘겨운 작업이었을 것이다. 이 모든 분들에게 다시 한번 진심어린 감사의 뜻을 표한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내 사랑하는 아내 자리나 아키쉐바와 사랑하는 아들 김 아르쫌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그저 형식상, 또는 어떤 의무감에서 고마움을 표하는 것이 아니다. 연구하는 수 년 동안 보내 준 지지와 넓은 이해 그리고 그 인내에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고마움을 달리 표현하지 못해 아쉬울 따름이다.

끝으로 카자흐스탄 한국인연맹 츠하야(Y. A. Tskhaya) 대표와 알마티 계몽센터 심영섭 대표, NTS사 김준대 사장과 박영사 안종만 회장 등 출판에 도움을 주신 여러 분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2005년 3월
알마티에서 김 게르만
김 게르만(Kim German N.)은 고려인 3세로, 카자흐스탄 국립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카자흐스탄 국립대학교 한국학과 과장, 한국학연구소 소장, 세계사 교수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사와 한국문화 및 종교사를 가르치고 있다.

그는 전세계에 걸친 한국인의 해외이주를 역사학 및 인류학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작업과 러시아(구 소련 포함)로 이주해 온 한국인들의 현지 적응(또는 동화)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다.

『고려인: 구 소련의 한국인들』(Korean and Korean-American Studies Bulletin, vol.12, 2001) 등의 논문과 『한국 해외 이민사: 19세기 후반~1945년』(러시아어·한국어 출판)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한인 교육사: 19세기 후반~2000년』(러시아어·영어·한국어 출판), 『고려인: 역사와 출판 목록』(러시아어·영어·한국어 출판) 등의 저서가 있다.
제1장 방법론, 역사사료, 문제의 기원

제2장 한국의 상황과 대규모 한인 이주의 시작

제3장 러시아 극동으로의 이주와 강제이주

제4장 만주와 중국으로의 이주

제5장 미국 이주 한인

제6장 일본 이주 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