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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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반평화(개정증보판)
신간
평화와 반평화(개정증보판)
저자
전우택, 김선욱, 김회권, 박정수, 서경석, 심혜영, 이국운, 이해완
역자
-
분야
인문학/교양/어학
출판사
박영사
발행일
2021.01.09
개정 출간예정일
페이지
472P
판형
신A5판
ISBN
979-11-303-1144-9
부가기호
93340
강의자료다운
-
정가
20,000원

초판발행 2021.01.09


2016년 9월. 필자는 요르단 제라쉬의 전통시장 낡은 건물 2층, 좁고 허름한 창고방 속에 앉아 있었다. 다른 용도로 쓰이고 있다가 난민 임시 진료소로 급히 지정된 그 건물 속에서도 가장 작은 방이 정신과 진료실로 배정되었다. 정신과 의사인 필자와 통역을 맡을, 그 해 요르단 간호대학을 막 졸업한 아흘람(아랍어로 “꿈”이라는 뜻의 이름이었다)이 앉을 작은 의자가 들어오고 그 앞에 아주 조그만 책상이 하나 들어오자, 환자가 앉을 수 있는 의자 하나 놓기에도 빡빡한 그런 진료실이 드디어 마련되었다. 이미 건물 앞에는 시리아 난민들 백여 명이 앉아 내과, 소아과, 산부인과, 외과 등의 진료를 받으려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 난민들이 계속 밀려들어오고 있었다. 그렇게 첫 진료가 시작되었다. 

필자가 볼 수 있는 유일한 것은 43세 여인의 두 눈 뿐이었다. 검은 색 부르카가 온 몸과 얼굴을 다 덮고 있었다. 그러나 그 눈에서는 눈물이 쉬지 않고 흐르고 있었다. 그것이 모든 것을 말해 주었다. 3년 전, 6명의 자녀와 함께 부부가 시리아를 탈출하여 요르단에 난민이 되어 들어왔다고 하였다. 그러나 얼마 후 남편은 다른 여자와 도망을 가버렸다. 여섯 자녀를 데리고 살아남아야 했던 것은 오롯이 그녀의 몫이었다. 캐나다에 난민 이주 신청을 하였고 2년의 기다림 끝에 마침내 허가가 나왔다. 그러나 21살 난 맏아들이 문제였다. 허가를 기다리던 2년 사이에 20살이 넘어버렸기 때문에, 규정 상 이 아들에게만은 캐나다 이주 허가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아들만 놔두고 떠날 수는 없었기에, 결국 모든 가족이 다시 요르단에 남기로 하였다. 극한적 가난 속에 하루하루가 힘겹게 지나가고 있었다. 그녀는 아홉 살 난 다섯째 아들아이를 진료실에 같이 데리고 왔다. 시리아 고향 마을에 비행기 폭격이 있었을 때, 아이는 너무도 놀라 극단적으로 과호흡을 하다가 의식을 잃고 쓰러졌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나서부터 아이는 늘 불안해하였고, 아예 식사를 하려 들지 않았다고 하였다. 사탕이나 초콜릿 같은 것 정도를 먹는 것에만 집착하고 있다고 하는 그 아이가 큰 눈망울로 필자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난민촌 정신과 진료실에서 만나는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시리아에서 포격 속에 무너지는 집 밖으로 뛰쳐나온 이후, 다시는 엄마와 떨어지지 않으려는 분리불안(separation anxiety)을 보이는 딸아이를 억지로라도 학교에 보내려 하는 일에 지칠 대로 지쳐있는 젊은 엄마, 음식 냄비를 불 위에 올려놓고, 멍한 상태에서 그것을 기억 못한 채 다른 곳으로 갔다가 불을 낼 뻔했던 일이 반복되면서 심한 건망증을 호소하는 54세 여자, 난민으로 들어 온 이후 아무 것도 할 일이 없어 그저 시간만 보내고 있다가 어느 순간 점점 화가 나기 시작하면 미친 듯이 소리를 계속 질러대는 32세 남자와, 그런 남편을 옆에서 바라보며 너무도 무서워하는 가냘픈 24세의 부인 등. 눈앞에서 펼쳐지는 이 모든 이야기들은 정신과 의사인 필자를 한없이 왜소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짧은 진료 기간과 제한된 약 때문이 아니었다. 이들이 겪고 있는 그 고통의 무게가 너무도 거대하였기 때문 이었다.

인간의 삶을 그 뿌리부터 흔들면서 모든 것을 무너뜨리고 있는 이 반(反)평화적 상황 속에서, 평화에 대한 생각은 관념과 개념의 문제가 아닌, 현실 속의 절박한 문제였다. 그리고 그것은 시리아 난민촌에서만의 상황이 아니었다. 여전히 내전 중인 남수단과 예멘에서, 민주화 투쟁 과정 속에 있는 동유럽과 중남미,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서, 미국과 중국의 군사적 대치가 더 치열해 지고 있는 남중국해와 대만 해협에서, 그리고 그 어디보다도 더 안보적, 사회적, 이념적 갈등과 긴장이 높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한반도에서, 우리는 ‘평화’를 ‘보통명사’가 아닌, 마치 어느 딴 행성 속 현상인 것 같은 ‘특수 고유명사’로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평화를 이야기하지만, 평화에 대하여 냉소적이다. 인간은 궁극적으로 평화를 만들어 내지 못할 것이라는 그런 확신 아닌 확신이, 우리 사회와 우리 마음속을 점령하고 있다. 평화를 이야기할수록 반(反)평화적 상태가 되는 그런 모순과 딜레마가 우리를 휘감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이 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 이유였다.

이 책은 2013년 한반도평화연구원의 아홉 번째 총서로 나왔던 <평화와 반평화?평화인문학적 고찰>의 개정증보판이다. 당시, 이 책은 평화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을 여러 학문 분야에서 다양한 시각으로 구성하여, 관련 연구자들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신선한 도전을 주었던 바 있었다. 이제, 7년의 시간이 지나고, 이 책이 좀 더 깊어지고 넓어져서, 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개정증보판을 준비하게 되었다. 저자는 초판의 저자 8명이 그대로 다시 저자가 되었다. 초판은 각 저자들이 1장씩을 집필하여 총 8장으로 구성되었었는데, 이번 개정증보판에서는 기존 원고들을 크게 손보아 더 충실하게 다듬었고, 거기에 4명의 저자들이 새로 한 장씩을 더 추가로 실어 총 12장으로 구성되게 되었다, 새로 추가된 장은 5장 폭력과 휴머니티-인류에게 폭력 극복의 희망은 있는가?(김선욱), 7장 권력, 자유, 헌법(이국운), 11장 아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의 기원과 해결 전망(김회권), 12장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일곱 가지 특징(전우택)이다. 바쁘신 가운데서도 7년 전 원고들을 다시 정성스레 수정하시고, 또 새로운 원고들을 써주신 모든 저자 분들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초판을 만들 때는 숭실대 철학과의 김선욱 교수님께서 대표편저자로 수고하여 주셨다. 그리고 당시 서문에 이 책의 전체 정신과 구성 내용을 정리해 주신 바 있다. 그 정신과 구성은 지금 개정증보판에서도 그대로 유효하기에, 초판 서문을 같이 싣는다. 이번에 이 책은 한반도평화연구원의 열여섯 번째 총서로 나오게 되었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기독교 싱크탱크로서 그 역할을 시작한지 벌써 15년이 된 한반도평화연구원을 통하여, 향후 차세대 연구자들이 더 많이 양성되고 활동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15년 동안 한결 같이 한반도평화연구원을 섬겨주신 김지철 이사장님에게 감사드린다. 그리고 이렇게 아름다운 책으로 만들어 주신 박영사의 안종만 대표님과 안상준 대표님, 조성호 이사님과 전채린 과장님, 그리고 이미연 선생님께도 감사드린다. 

제라쉬의 그 구석진 방에서 바짝 마른 큰 눈망울로 필자를 빤히 쳐다보고 있던 그 아홉 살짜리 아이는 이제 15세의 사춘기 남자 소년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 동안 시리아 사태는 전혀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못하였기 때문에, 아마도 여전히 힘들어하고 있을 엄마와 가족들과 함께 제라쉬에 살고 있을 것이다. 지금쯤의 나이가 되면서, 자신과 자신의 가족, 민족, 국가가 놓인 상황에 대한 어떤 생각을 주입받기도 하고, 또 스스로 어떤 생각을 시작하기도 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 소년이 평화에 대한 깊은 확신을 가지고 당당히 평화를 위한 활동을 할 수 있게 커가기를 바란다. 가장 큰 반(反)평화의 공간 속에서 자라났기에, 오히려 그 누구보다도 더 평화를 깊이 생각하고 결심 속의 행동을 할 수 있는 조건도 가졌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책이 그런 소년들과 함께 나누어지는 책이 되기를 소망한다.  


2021년 1월
이 땅에 새로운 평화가 시작되기를 기원하면서
저자들을 대표하여
전우택 드림

전우택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였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다. 연세대학교에서 석사 및 박사를 취득하였다(정신의학). 미국 하버드 의과대학 사회의학교실 및 난민정신건강센터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였다. 정신의학 중 세부전공은 사회정신의학으로서, 북한, 난민, 북한이탈주민, 남남갈등, 사회치유 등에 대한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는 연세의대 의학교육학교실 교수이며, 정신건강의학교실 및 인문사회의학교실 겸무교수로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사람의 통일, 땅의 통일>, <평화에 대한 기독교적 성찰>, <용서와 화해에 대한 성찰>, <한반도 건강공동체 준비> <트라우마와 사회치유>, <정신의학과 기독교> 등이 있다.    
 
김선욱
뉴욕주립대 버펄로대학에서 철학박사를 받았다. 숭실대학교 철학과에서 학사 및 석사를 취득하였다. 뉴스쿨 및 UC 어바인에서 풀브라이트 연구교수를 지냈다. 주요 관심사로는 정치철학, 윤리학, 기독교와 정치 등이다. 한나 아렌트에 관해 주요 저술들과 번역서 및 논문이 집중되어 있고, 국내에서 번역 출간된 마이클 샌델의 저서들을 대부분 감수 혹은 번역하였다. 숭실대학교 철학과 교수이며, 인문대학 학장, 인문과학연구소 소장, 가치와 윤리연구소 소장으로 또 한국아렌트학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정치와 진리>, <한나 아렌트 정치판단이론>, <한나 아렌트의 생각>과 동화 <한나 아렌트가 들려주는 전체주의 이야기> 등이 있고, 역서로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등이 있다.

김회권
서울대학교 인문대 영어영문학과 졸업하였고, 장로회신학대학원에서 교역학 석사를, 미국 프린스턴신학대학원에서 신학석사와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독일 튀빙엔대학교(2009년),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방문교수(2019)를 지냈다. 성서학 중 세부전공은 구약 예언서이며 구약의 관점에서 나사렛 예수의 하나님 나라운동과 신약성서를 해석한다. 주요 연구분야는 예언서의 현실비판적 적실성을 탐구하기 위해 구약성서의 현대적 상관성을 다각도로 분석하는 데 열중하고 있다. 현재는 숭실대학교 기독교학과 학과장이며 기독교학대학원의 성서신학과 주임교수직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하나님 나라 신학으로 읽는 모세오경>, <하나님의 도성 그 빛과 그림자>, <하나님 나라 신학으로 읽는 이사야 주석 1>, <이사야 2>, <요한복음> 등이 있다.

박정수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서울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Dr. Theol.). 현재는 성결대학교에서 신약학 교수(2004~)로 봉직하고 있다. 한국신약학회 편집위원장 역임했고, 북한의 ‘평화학교’ 재건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저서로는 <고대유대교의 터·무늬>와 <성서로 본 통일신학> 외, 역서로는 <유대교와 헬레니즘> 1·2·3권, <요세푸스의 유대전쟁사> 1·2권(박찬웅 공역), <마태공동체의 예수이야기> 등이 있다.

서경석
서울대학교 인문대학을 졸업하였고, 현재 한양대학교 국문과 교수이다. 서울대학교에서 석사 및 박사를 취득하였다(한국현대문학). 미국 UC 어바인과 하와이 주립대학교에서 방문학자로 활동하였다. 현대문학 가운데 현대 소설사, 현대 문학비평사가 주전공이며 문학이론에 대해서도 새롭게 연구 중이다. 현재는 한양대학교 인문대학 교수이며, 한국언어문화학회, 우리말글학회 회장으로 활동하였다. 저서로는 <한국근대리얼리즘 문학사론>, <한국근대문학사 연구>, <한국문학 100년>(공저) 등이 있다.

심혜영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사회과학원 문학연구소와 UC Berkeley 동아시아센터에서 방문학자를 지냈다. 중국 근현대사회문화와 기독교 관련 주제로 진행한 공동연구(<19세기 전반 서구-동아시아 인식의 중층성-문화접촉지대로서의 The Chinese Repository>, 한국연구재단)의 연구책임자로 연구를 수행한 바 있다. 성결대학교 다문화평화연구소 소장을 역임하였고, 현재 중어중문학과에서 중국현대문학, 번역연습, 중국 근현대 사회문화와 기독교, 중국현대사회 관련 강의를 담당하고 있다. 저역서로는 <인간, 삶, 진리-중국 현당대 문학의 깊이>(저서), <붉은 수수밭>(역서), <천두슈(陳獨秀) 사상선집>(역서), <동서양의 경계에서 중국을 읽다》(공저), <통일에 대한 기독교적 성찰>(공저), <용서와 화해에 대한 성찰>(공저) 등이 있다.            

이국운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마치고, 같은 대학원에서 법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페퍼다인 대학교 로스쿨, 전미법률가재단, 스페인 오냐티 국제법사회학연구소 등에서 방문교수 또는 객원연구원을 지냈다. 헌법이론, 법률가정치, 프로테스탄트 정치사상 분야를 주로 연구하면서, 사법개혁 및 자치분권과 관련하여 제도개혁작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다. 1999년 이후 경북 포항의 한동대학교 법학부에서 가르치면서, 법학교육의 혁신 및 글로벌화를 몸소 실천하고 있기도 하다. 주요 저서로 <헌법>, <법률가의 탄생>, <헌법의 주어는 무엇인가?>, <헌정주의와 타자> 등이 있다.

이해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재학중 제27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였고, 사법연수원 수료 후 인천지방법원,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 창원지방법원, 서울지방법원, 서울고등법원 등에서 판사로 재직하였으며 사법연수원 교수를 역임하기도 하였다. 중국 사회과학원 법학연구소와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캠퍼스 동아시아연구소에서 방문학자로 있었다. 법률정보회사인 (주)로앤비의 창립CEO,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 정책위원장, 한국저작권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하였고, 2020. 9. 4. 제3회 지식재산의 날 지식재산유공자로 국무총리표창을 수상하였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서, 공공데이터제공분쟁조정위원회 위원장, 한국리걸클리닉협의회 회장, 한반도평화연구원 부원장 등의 책임도 맡아 수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저작권법>, <중국법>, <용서와 화해에 대한 성찰>(공저), <평화에 대한 기독교적 성찰>(공저), <통일에 대한 기독교적 성찰>(공저), <비전과 관점 열기>(공저) 등이 있다.

PART 01
평화와 반(反)평화에 대한 성찰

01  반(反)평화의 개념과 구조 이해 3
_김선욱
02  폭력의 내면적 원인과 평화의 내면적 토양 31
_이해완
03  ‘이웃사랑’의 철학 79
_서경석 _한양대 국문과
04  ‘모방 욕망’의 창으로 본 우리 안의 폭력과     예수를 모방한다는 것 99
_심혜영
05  폭력과 휴머니티:  인류에게 폭력 극복의 희망은 있는가? 135
김선욱


PART 02
한반도의 평화와 반(反)평화

06  인간의 공격성과 한반도의 평화 157
_전우택
07  권력‧자유‧헌법 201
_이국운
08  자치분권의 이념과 헌법개정의 당위 225
_이국운


PART 03
팔레스타인과 세계의 평화와 반(反)평화

09  기독교의 ‘반­유대주의’ 담론과 평화의 문제 259
_박정수
10  역대기서의 민족화해 신학 299
_김회권
11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의 기원과 해결 전망 349
_김회권
12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일곱 가지 특징 401
_전우택

찾아보기  _443
저자소개  _4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