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발행 2024.08.30
<교정판례백선>을 출간하며
그동안 형법, 형사소송법 등의 분야는 판례백선을 비롯한 다양한 판례 선집이나 평석집이 출간되어 왔으나, 형집행과 교정 분야에 대한 판례 선집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교정 분야에 대한 판례의 형성이 더딘 탓도 있고, 그 분야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은 탓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동안 교정판례도 상당히 축적되어 왔고, 실무와 교육·연구의 차원에서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판례 선집의 필요성은 꾸준히 논의되어 왔다.
돌이켜 보면, 오랫동안 교정 분야는 인권의 빛이 비추어져야 할 가장 절실한 분야임에도 헌법 및 인권과 상극지대로 여겨져 왔다.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의 교정 분야는 행형법, 교도소라는 명칭에도 불구하고 감옥법, 감옥으로 통칭되어 왔을 만큼 문제투성이였다. 헌법과 인권은 감옥 담을 넘어가지 못하고, “감옥은 인권의 사각지대”라는 말이 통용되었다. 누구든 감옥 문을 들어서면 그때부터 시민들이 당연히 누릴 수 있는 권리는 유예되고, 행형의 문제에 대해 사법심사의 문을 두드리기도 어려웠다. 두터운 담벼락과 감방 안에서 수용자는 교정당국의 일방적인 지배-복종관계에 편입된다는 소위 특별권력관계론이 득세한 것이 교정 분야였던 것이다. 그 시대에는 수용자의 인권을 주장하며 헌법적, 사법적 구제를 시도한다는 발상 자체가 어려웠다. 따라서 교정 분야의 법리와 판례 형성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한 상황을 일변시킨 계기는 1987년 헌법개정과 민주헌정체제의 수립이다. 1990년대 초기에 들어 변호사들이 헌법소원을 통해 기존의 억압적 법령 및 관행에 도전했을 때, 헌법재판소는 적극적으로 반응했다. 헌법재판소는 1992년 변호인의 미결수용자 접견시 교도관 참여는 위헌이라는 위헌결정을 필두로, 미결수용자에 대한 사복착용권을 인정했고, 수갑 및 포승시용에 대해 위헌을 확인하는 등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2010년대에 들어와서는 수형자에 대한 선거권의 일률적 금지는 헌법불합치라 판정하여 수형자의 참정권을 확장하고, 더 나아가 지나친 과밀수용은 인간존엄성을 침해하므로 위헌이라는 적극적 결정을 내렸다. 물론 행형법, 형집행법의 조항에 대한 대부분의 헌법소원은 위헌·헌법불합치보다는 합헌·기각·각하 결정으로 귀결되고 있다. 하지만 그런 결정에서도, 적어도 교정의 모든 문제가 헌법적 심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분명히 하고 있다. “헌법과 교도소 사이에 어떤 철의 장막(iron curtain)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명제는 거듭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일단 합헌·기각 결정이 내려져도 그에 대한 지속적인 도전을 통해, 얼마 안 가서 위헌이나 헌법불합치로 반전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교정 분야에서 인간존엄성을 실현하려는 법조인들은 헌법재판을 주요한 수단으로 활용해 오고 있다.
두 번째 주요한 계기는 국가인권위원회를 통한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당초 그 업무범위 중의 하나로 “인권침해행위에 대한 조사와 구제”, “인권상황에 대한 실태조사”를 포함하고 있었고, 구금·보호시설에 대한 방문조사를 하고, 인권침해에 대한 구제조치 및 징계 등을 권고할 권한을 갖고 있다. 수용자의 처우와 인권침해 관련 진정과 상담의 처리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일상적 업무이고, 그런 과정에서 위원회는 개별 사건의 조사·해결 뿐 아니라 법적 지침이 될 만한 많은 결정례를 만들어오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법률을 중심으로 다룬다면, 국가인권위원회는 교정의 현실에 더 밀착하여 돋보기를 들이대고 살피는 셈이다.
이러한 추세에 적응하여, 사법부에는 교정 관련 사건들이 밀려든다. 법원은 수용자의 권리침해를 확인하고 주로 국가배상 혹은 위자료 재판을 통해 교정의 구체적 현실에 사법심사를 행하고 있다. 수많은 판례의 집적을 통해, 이제 모든 수용자는 헌법 및 법률상의 기본권 향유의 주체이고, 그에 대한 자유 제한은 필요최소한도에 그쳐야 하며, 그 기본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 거듭 확인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저절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수많은 법조인과 법률가 및 수용자들, 시민활동가들의 법적 문제 제기로 인해 가능해진 것이다. 다시 말해 현재에 이르는 수많은 변화와 개선은 지난 몇십 년간의 법률가와 수용자, 그리고 그를 지원하는 시민들과 전문가들의 노력의 산물로서 정당하게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교정 분야에서 새로운 판례의 형성과 적극적인 결정들은 입법적 변화의 촉매가 되었다. 그중 결정적인 전환점은 2007년에 <행형법> 체계에서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약칭 형집행법)로의 전부 개정이다. 행행법이 교정당국의 직무규범이고 수형자에게 의무규범으로 작동했다면, 새로운 형집행법은 수용자의 권리를 기본으로 하고 단서를 통해 일부 제한하는 방식으로의 질적 변화를 이룩했다. 물론 형집행법에는 여러 과도한 제한이 설정되어 있거나 아직 권리 중심의 사고가 진입하지 못한 부분이 적지 않지만, 그래도 전반적인 방향 전환을 꾀한 점 또한 분명하다고 할 것이다. 아울러 과밀수용 위헌 및 그에 뒤따른 일련의 국가배상소송의 추이를 보면, 교정 분야 전반에 걸쳐 헌법 및 인권의 잣대가 교정정책은 물론 전체 형사정책의 중심에 자리 잡아야 하는 단계에 진입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앞으로 교정 분야의 제반 정책은 헌법적·인권적 심사를 통과해야 하는 시대에 진입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 흐름에 맞추어, 우리는 교정 분야를 대표할 만한 헌법재판소, 법원, 국가인권위원회의 판례를 여러 차례의 논의를 통해 선별했다. 위헌·헌법불합치·불법으로 판정난 사안뿐 아니라, 합헌·합법으로 종결된 사안도 그 비중에 따라 포함시켰다. 본서에 포함된 사례는 헌재 결정 62건, 법원 판결 56건, 인권위 결정례 7건이다. 편집위원들이 토의하면서 주로 선정하였으나, 집필 의뢰를 받은 전문가들이 추가·변경 의견을 낸 것도 적극 반영했다. 처음엔 판례‘백선’을 기획했으나, 이러한 피드백을 거치며 최종적으로 본서에 수록된 것은 모두 125건이 되었다. 하지만 당초의 생각대로, 엄선의 원칙은 견지하고자 했다.
서술 방식은 사실관계, 결정(판결)요지, 해설, 후속논의, 참고문헌의 순으로 정했다. 처음엔 판례를 정리·소개하면 된다고 생각했으나, 현재까지의 판례에서 미흡한 점이 적지 않게 노출되었기에, 기존 판례를 비평하고 새로운 관점을 부각시키는 방향으로 진일보시키고자 했다. 따라서 본서는 단순 판례의 요약 소개 수준을 넘어서 교정법 및 교정판례를 살펴보는 데 일정한 방향성을 시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본서의 출간에 이르기까지 경과는 다음과 같다. 우선 천주교인권위원회는 2013년에 형집행법 등 수용자 처우 관련 법률·시행령·시행규칙·훈령·예규 등을 모아 <수용자를 위한 감옥법령집>을 발간했고, 2019년에 개정판을 발간한 바 있다. 법령집에 이어 판례집을 발간하기 위해 2019년에 소속 회원들이 ‘감옥 판례 공부모임’을 구성했다. 모임에는 좌세준, 박경용, 남승한, 김현성, 조영관 변호사가 주로 참여했고, 강성준 활동가가 실무를 맡았다. 모임에서는 서신수수, 접견, 의료, 과밀수용, 징벌, 보호장비, 작업과 직업훈련, 가석방과 귀휴, 분류심사, 수용과 이송, 물품지급과 금품관리, 운동, 정보공개 등 주제별로 수집 가능한 모든 판례를 수집·분석하고, 월례 모임을 통해 판례집에 수록할 판례를 선정했다.
애초 ‘감옥 판례 공부모임’에서는 판례 원문을 종합하는 ‘판례집’을 구상했으나, 수록할 판례의 분량이 방대하여 한 권의 책으로 출간하기에는 어려움을 절감했다. 특히 ‘나홀로 소송’을 진행하는 교정시설 수용자의 경우, 판례집에 실릴 판례 원문만으로는 해소되지 않는 심도 깊은 논의에 대한 목마름도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즈음 ‘교정판례연구회’를 구상하던 한인섭, 금용명, 김대근 등 전문가들과 함께 논의하면서, 형집행법 및 교정 영역에는 본격적인 판례평석집이 없는 현실에 주목하여 ‘판례집’이 아닌 ‘판례평석집’의 발간으로 궤도를 수정하기로 하였다. 이어 교정판례연구회와 천주교인권위원회의 공동 기획으로 <교정판례백선>을 발간하기로 하고 <교정판례백선 편집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이러한 논의를 토대로 교정판례를 일차 추출하여, 교정판례를 집필할 적임자를 찾아 집필을 의뢰했다. 교정판례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는 범위를 넓히기 위해 집필자의 범위도 가급적 넓게 잡고자 했다. 한 집필자당 2개 이내의 사안을 집필하는 방식을 취하여, 본서의 집필자는 모두 68명에 이른다. 집필자의 분포를 현 직책에 따라 정리해보면 변호사가 33명, 판사가 4명, 교수 및 연구기관 연구자가 31명에 이르도록 다채롭게 구성되어 소기의 성과를 달성한 것 같다. 특히 교정판례의 형성과 변화를 이끌어낸 법률가들이 직접 자신의 사건에 대해 그 경과와 의미를 도출할 수 있도록 필진을 우선 배정한 것도 실천적 의의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다수가 관여하는 이러한 첫 작업은 매우 힘들 수 있지만, 놀랍게도 전체 과정이 매우 속도감 있게 진행되었다. 조심스레 집필 의향을 타진했지만, 대부분은 기다렸다는 듯이 응했고, 원고 마감도 잘 지켜주어 생각보다 빨리 결실을 거둘 수 있었다. 집필자 모두에게 교정 분야에 대한 종합적 이해에의 갈구, 교정 개선에의 의지, 그리고 전문성의 향상을 향한 열정을 느낀다. 이러한 첫 작업을 토대로 하여 앞으로 교정법학 및 법실무의 발전에 동반자적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런 희망을 가져본다.
앞으로 본서가 교정 분야의 이론가, 실무가들에게 두루 읽히기 바란다. 헌법재판소, 법원, 국가인권위원회, 교정 분야 종사자에게는 이 책을 통해 이제까지의 성과를 확인하면서 동시에 미흡한 점도 짚어보고, 향후의 방향성도 가늠해보는 자기 점검의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교정 관련 교육 및 수험의 보조교재로서도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애쓴 부분도 있다. 또한 우리의 교정 현실에 문제의식을 가진 이들이 소송이나 진정을 할 때도 작은 길잡이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무엇보다 본서가 우리 시대 인권과 기본권을 가장 예리하고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마중물로 자리 잡기를 희망한다.
본서의 출간에 이르도록 자료 수집, 기획, 편집 작업에 관여한 편집위원들은 강성준, 금용명, 김대근, 김현성, 남승한, 박경용, 조영관, 좌세준, 한인섭 등이다. 편집위원들은 각기 변호사, 교수, 전문연구자, 인권활동가로서의 지식과 경험을 교환하면서 긴밀하게 소통해 왔다. 또한 이 초유의 작업을 위해 기꺼이 출판을 맡아주신 박영사와 출간에 도움을 주신 조성호 이사님, 편집 실무에 수고해주신 장유나 차장님께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이 책 발간을 계기로 정례적으로 판례연구회를 열어, 더 풍부한 내용의 개정판으로 독자와 또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2024년 8월
편집위원회를 대표하여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한인섭 교수
집필진 소개
집필자
강송욱 강재원 공두현 공일규 권수진 권오성 권지혜 금용명 김기범 김대근 김동현 김성규 김소연 김송이 김원규 김정환 김진하 김현성 김현숙 남승한 류경은 류다솔 류영재 문현웅 박경용 박승진 박인숙 박찬운 박한희 서채완 성중탁 송영진 송주용 신은영 심유진 안성훈 양성우 오현정 원혜욱 유경민 윤지영 이경렬 이덕인 이상현 이상희 이서형 이순욱 이지윤 이황희 장서연 장응혁 전주열 정민영 정승환 조영관 좌세준 주영달 차진아 최석군 최용기 최정규 최정학 최초록 최호진 하주희 한상훈 한인섭 허윤정
편집위원
강성준 금용명 김대근 김현성 남승한 박경용 조영관 좌세준 한인섭
공동기획
교정판례연구회 천주교인권위원회
차 례
제1부 교정 총론
제1장 수용자의 인권과 기본권 총설
제1절 수용자의 권리와 법적 지위
제2절 차별금지 - 소수자
제3절 정보공개
제2부 수용자 처우
제2장 수용
제1절 수용환경
제2절 수용과 이송
제3장 물품지급과 금품관리
제4장 위생과 의료
제1절 의료
제2절 운동
제5장 외부교통권
제1절 접견
제2절 편지수수
제3절 전화통화
제6장 종교와 문화
제7장 작업과 직업훈련
제8장 분류심사·귀휴·가석방
제3부 안전과 질서
제9장 신체검사 등
제10장 보호장비
제11장 조사수용과 징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