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대학원 재학시절부터 국가 형사사법시스템, 국가 형벌권의 존재목적에 대해 고민을 해왔다. 왜냐하면, 대학에서 배우는 형사에 관한 법률들은 피고인, 피의자의 권리보장에 많은 부분이 할애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형사소송법은 조문의 구성과 해석에 있어 피고인 이익을 주된 기준으로 삼고 있으며, 형법상 죄형법정주의도 피의자의 권리보장에 제도의 중심이 있다. 물론 국가 형벌권과의 관계에서 피의자든 피고인이든 개인의 지위에서 기본적인 인권의 보장을 받아야 한다는 가치는 무시할 수도 없거니와 이는 근대 형법이 시작되는 중심 사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 나라의 전체적인 형사사법시스템, 국가의 형벌권은 애초에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제정된 것이다. 형법 각론상의 모든 조문이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며, 따라서 형법의 피해자 보호기능이 중요한 것이다. 다만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형벌권의 행사에 있어 그 대상인 피의자와 피고인도 기본적인 인권의 보장을 받으며 수사, 기소, 재판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즉, 국가의 형벌권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잠재적 피해자인 일반 시민의 안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며, 범죄가 일어났을 때는 현실적 가해자도 법원의 유죄판결이 있을 때까지는 무죄이므로 피의자나 피고인이라는 특별한 지위를 부여해 이들의 기본적인 인권을 보장하면서 형사절차를 진행하는 것이다.
이렇게 형사사법시스템과 국가의 형벌권 행사는 피해자보호를 중요한 가치로 하여야 함에도 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나라가 이를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피해자의 지위는 형사절차에서 당사자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제3자이다. 따라서 수사, 기소, 재판에서 그들의 의견이 강한 힘을 갖지 못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기소제도에 있어 기소독점주의와 기소재량주의를 취함으로써 피해자의 의사는 거의 배제되어 있다. 그나마 우리나라에서 인정되는 피해자의 권리는 친고죄의 고소나 일반 범죄의 고소를 통한 것이고, 다른 나라들은 기소에 있어 사인소추나 기소배심을 통해 피해자나 일반 시민의 기소를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필자는 친고죄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이 책은 이 논문의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출간하는 것이다. 물론 그사이 성폭력범죄에 대한 친고죄 폐지 등 많은 변화가 있어 이 책 내용의 정치성이나 정확성은 떨어질 수 있으나 그럼에도 이 책을 출간하는 이유는 형사에 있어 피해자 보호의 중요성이 커질수록 결국 시민의 안전이 더욱 공고히 확보되기 때문이다.
몇 해 전 경찰청에서 ‘피해자보호 원년의 해’를 선포하며 피해자보호를 위한 시책을 내놓기 시작했다. 늦은 감이 있으나 이제라도 피해자 보호의 가치가 사회적 합의를 얻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경찰관은 피해자의 보호를 첫 번째 임무로 한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경찰관 직무집행법의 내용을 떠올려 본다.
“경찰관은 다음의 직무를 수행한다. 1. 국민의 생명, 신체, 재산의 보호”
2018년 8월 저자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