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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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淸江 류지태 선생 10주기 기념) 현대 행정법의 이해
(故 淸江 류지태 선생 10주기 기념) 현대 행정법의 이해
저자
故류지태교수 10주기 추모논문집 간행위원회
역자
-
분야
법학 ▷ 행정법
출판사
박영사
발행일
2018.03.23
개정 출간예정일
페이지
720P
판형
사륙배판
ISBN
979-11-303-3183-6
부가기호
강의자료다운
-
정가
54,000원
간 행 사

“현대 행정법의 이해”를 출간하게 되어 제자로서 기쁘고 다행입니다. 류지태 교수님께서 2008년 3월에 작고하신지 만 10년이 되었습니다. 지금처럼 차가운 겨울이 가고 봄의 기운이 싹트던 때였습니다. 만감이 교차합니다. 이 책이 출간되기까지 바쁘신 가운데에도 논문을 투고해주시고 도와주신 여러 교수님들과 동료, 선후배님들의 노고에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현대 행정법의 이해”는 류지태 교수님이 생전에 출판한 “행정법의 이해(2006)”를 모티브로 간행위원회 의견을 모아서 정한 것입니다. 고 류지태 교수님은 ‘理解’(Verstand/ understanding/ ratio)라는 표현을 매우 의미깊은 단어로 생각하셨습니다. 어떤 대상을 정밀하게 검토하고 개념적으로 분석하여 결론을 얻는다고 하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이해’라는 개념정의를 근거로 하여, 학자의 인생은 학문적 주제를 ‘이해’하려는 노력에 최선을 다하는 데서 보람을 찾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인식은 교수님 개인의 학문적 지향점이면서 바람을 담고 있습니다. 류지태 교수님의 이러한 생각은 우리 제자들의 게으름을 깨우쳐주고 학자로서의 자세를 일깨워 줍니다.

이러한 말씀을 실천하기라도 하시는 듯이 평소에 선생님은 거의 매일 아침 일찍 연구실에 나와서 밤늦게까지 연구에 매진하였습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1998-2000년 초반에 선생님의 조교였던 저는 아침 9시에 출근하여 오후 6시면 퇴근하였는데, 선생님 연구실은 아침 7시면 불이 켜지고 밤 10시-11시가 되어서야 불이 꺼졌습니다.

연구에 열심인 한편으로 교수님은 대외활동도 활발히 하셨습니다. 국무총리행정심판위원회 위원(2001.4-2003.4)과 대법원 행정소송법개정위원회 위원(2002.4-2004.10), 서울특별시 토지수용위원회 위원(2003.8-2008.3), 정보통신윤리위원회 위원(2005.4-2007.4), 서울특별시 제2인사위원회 위원(2007.2-2008.3) 등 각종위원회 활동을 하셨고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위원회 일정을 소화할 정도였습니다. 학자로서 학회활동도 열심히 하셨습니다. 한국토지공법학회에서 총무이사와 기획이사, 공법학회, 지방자치법학회, 환경법학회의 이사를 맡아 소임을 다하였고 2006년부터는 정보통신법포럼을 창립하여 작고하시기 전까지 대표를 맡으셨습니다. 학회의 발표와 토론에 참여할 때도 늘 깊이 고민하고 성실하게 준비하셨고 법학자로서의 치밀함과 예리함을 보여주셨습니다.

선생님은 한독법률학회에도 열심히 참여하셨는데, 제가 독일에 있을 때인 2004년과 2005년에 한독법률학회 학술대회에 참석하기 위하여 독일에 오신 적이 있습니다. 저는 두 번 다 뵈었는데 한번은 튀빙엔에서, 한번은 만하임에서 뵈었습니다. 한독학회 당시 독일학자들과 같이 했던 학술대회에서 교수님은 발표시간을 정확하게 엄수하면서 차분하고도 여유있게 발표하고 토론하셨습니다. 그 전날 발표준비를 하고 원고를 읽으면서 시간체크까지 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선생님의 학문에 대한 열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당일 발표가 인상적이었던지 나중에 독일의 쉔케 교수님이 류 교수님의 글을 독일 잡지에 기고했으면 한다는 뜻을 전해왔습니다. 이후 그 글은 좀 다듬어진 후에 2006년 Verwaltungsarchiv(S. 541 ff.)에 실리게 됩니다.

류지태 교수님은 학생들에게도 명 강의로 인기가 높았습니다.
당시에 류지태 교수님께 강의를 들었던 학생들은 손으로 직접 쓴 편지나 쪽지를 많이 보내왔습니다. 그 때 보내온 편지들에는 선생님에 대한 감사와 존경을 표하는 후기들이 많습니다. 명쾌한 강의에 대한 경이로움, 듣는 내내 즐거웠고 행정법 공부에 자신감이 생겼다는 글들도 있습니다. 조교로 있던 어느 날 보니 중간고사 문제지에 유쾌한 만화가 그려져 있었는데 이것을 보여 주었더니 타 전공의 박사과정 학생이 엄지손가락을 척하고 드는 것을 보았습니다. 당시 선생님 교과목의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시험은 어렵기도 하였거니와 성적평가도 엄정하였습니다. 당시 긴장할 수밖에 없었던 학생들의 스트레스를 조금이라도 풀어주고자 하였던 배려였습니다. 즐거운 추억입니다. 일종의 여백이자 여유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류지태 교수님은 그 바쁘신 와중에도 학생들의 문학회 동아리 지도교수로서 학생들과 문학작품을 같이 읽고 토론도 하고 작문을 하기도 하셨습니다. 법학자이면서도 남다른 문학적 감수성을 가지고 계셨던 선생님께서는 문학에 대한 애정과 열정을 가지고 학생들과 함께 하셨고 저명 문학자들을 초대하여 강의도 듣고 토론하는 시간을 갖기도 하였습니다. 생전에 그 바쁜 시간을 쪼개어 틈틈이 쓰신 시가 남아 있습니다. 이 책에 시 두 편을 소개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간행사를 준비하면서 류지태 선생님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학문적으로 한창 왕성하게 꽃피울 시기에 학자로서 너무나도 짧은 나이에 돌아가셨기에 선생님을 더 가까이 알아볼 수 있는 기회를 많이 갖지 못하였습니다. 분당에 사실 때 어느 날 제자들이 새해 인사를 갔었던 것 같습니다. 그날 호수 공원을 산책하면서 제자들과의 친밀했던 기억이 너무나도 생생합니다. 자유로움, 창의, 상상력, 여유가 느껴졌던 하루였습니다. 일상의 기억입니다. 이것을 생각할 때, 지금 살아계셨더라면 얼마나 즐거운 추억을 많이 쌓고 학문적으로도 깊이 있게 토론하였을까 생각하면 스승의 부재에 가슴이 매어집니다.

교수님의 유학시절 독일에서 아데나워 재단의 장학금을 지원하던 때의 일화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교수님은 1985년 당시 결혼 직후 가지고 있던 얼마 되지 않은 자금을 가지고 독일 유학을 떠나게 됩니다. 당시 류 교수님 입장에서는 반드시 장학금을 받아야만 독일에서 공부를 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아데나워재단에 장학금을 신청하였고 재단이 있는 곳에 가서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인터뷰 도중 독일 측 심사위원은 류 교수님에게 “독일 기본법(GG) 제16a조에 근거하여 독일 난민법(Asylrecht)상 제한없이 인정되고 있는 박해받는 자의 권리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하였습니다. 독일은 당시 외국인들의 난민과 망명이 증가하여 골머리를 앓던 시기였는데, 류 교수님은 당당하게도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독일은 수백만의 유태인을 학살했다. 독일은 박해받는 자들에 대하여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는 취지의 답변을 하였고 심사위원과의 사이에 옥신각신하다가 심사위원이 “당신도 외국인인데 독일의 현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우리 재단은 당신 같은 사람을 원하지 않는다”고 까지 하였다고 합니다. 심사장을 나온 류교수님은 실망하여 같이 간 한국 사람에게 장학금을 못 받을 것 같다고 말하였고 장학금이 되리라고 생각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후 아데나워재단 장학금의 지원을 받게 되었다고 하면서 신기해 하셨다고 후일담이 전해집니다. 가난한 유학생입장에서 비록 궁박한 처지에 있을지라도 의기를 잃지 않고 당당하게 행동했던 일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은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이후에도 학문적으로 끊임없이 탐구하고 자신만의 독자적인 생각을 행정법학에 반영하려고 노력하셨습니다. 기존의 입장을 그대로 따르려 하지 않고 늘 고민하고 분석하여 새롭게 이론구성을 하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교과서인 행정법신론에 잘 드러나는데 재량행위나 하자승계론, 부관론, 국가배상법, 손실보상법, 행정심판과 행정소송법 등 총론뿐만 아니라 각론의 여러 분야를 읽다보면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고민한 흔적이 곳곳에 드러납니다. 이러한 노력은 선생님의 논문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재량행위이론의 이해(2006.6); 생활보상 논의의 비판적 검토(2005.12); 행정입법의 형식성 논의의 헌법적 평가(2005.2);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법제의 개편에 관한 검토(2002.4); 행정법 방법론 소고(2002.4); 공물법 체계의 재검토(2001.10); 행정행위의 하자승계 논의(1995.7); 개별공시지가의 법적 성질논의(1995.4); 행정법에 있어서의 위해와 위험(1992.3); 행정심판의 대상으로서의 부당한 처분(1992.2); 재량행위론의 재고(1990.12) 등의 글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들 논문에서도 기존의 이론과 실무를 그대로 수용하기 보다는 독자적이고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재검토하는 노력을 하였습니다. 그밖에 환경법과 통신법 분야에도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그에 관한 책과 글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환경법(2005)과 독일 정보통신법(2007)이 그 결과물입니다.

선생님은 자신이 가진 학문적인 견해는 관철하려고 노력하셨지만 한편으로 다른 학자들이나 제자들과 학문적인 견해나 생각이 다른 점에 대하여는 상당히 관대하셨던 것 같습니다. 학문적인 견지에서 자신의 의견과 다를 경우에는 결코 타협하지 않으면서도 일상적인 일에 있어서는 관대함을 잃지 않으셨고 제자들의 진로에 대해서도 항상 열린 자세로 친절하게 대해주셨습니다. 제자들의 어려움을 기꺼이 걱정해주시고 진로에 대하여도 구체적인 도움을 주려고 애쓰셨습니다. 그 덕분에 제자들이 오늘에까지 이르렀다고 생각합니다.

글을 쓰는 지금도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어느 날 꿈속에서 선생님을 뵈온 적이 있습니다. 책상에 앉아 연구에 열중인 저를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조금 뒤에 선생님에게 인사를 드리자 악수를 해주시면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데 소리는 들리지 않고 너무나 마른 모습에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일어서서 가자고 하시는데 커다란 가죽 가방을 가져오셨기에 제가 그 가방을 들고 따라 갔습니다. 옛날 법대건물이었습니다. 문으로 들어가시는데 밖은 비가 오고 있었고 선생님은 우산을 쓰고 쪽문으로 가시고 나는 쪽문 옆의 문으로 들어갔습니다. 쪽문에 우산이 걸리지 않을까 걱정되었습니다. 앞서서 가시는 선생님 뒷모습이 뼈만 남았고 런닝셔츠를 입고 그 위에 셔츠를 어깨까지 내려입으시는데 런닝셔츠에 하얗게 비치는 뼈만 남은 모습에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렇게 얼마쯤 따라가니 문구점 같은데서 제자들을 위해 선물을 사서 포장지 위에 빨강색 펜으로 일일이 이름을 적어주시는 것이 보였습니다. 제자 중의 누군가 다가와서 제 등을 토닥이기에 돌아보다가 꿈에서 깨었습니다. 너무나 생생했습니다. 일어나자마자 잊어먹지 않기 위해 바로 노트북을 켰습니다. 노트북에 적으면서 또다시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고 류지태교수님의 호(號) ‘청강(淸江)’은 맑은 물이 흐르는 강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탁한 강물이 아니라 깨끗하고 맑은 강물을 닮고자 하였던 선생님의 그 곧은 정신이 몸을 지치게 하였고 몸이 버티지 못하였던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어 너무나도 안타깝습니다.

10년 전 제자들은 급작스럽게 병환으로 작고하신 선생님을 위하여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하릴없이 보내드리고 말았습니다. 그 생각에 지난 10년 동안 저희들은 커다란 마음의 빚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매년 스승의 날이 되어 제자들끼리 모이게 되면 10주기에는 선생님을 추모하는 의미있는 행사를 하자는 등의 제안이 있었습니다만 구체화되지 못하였습니다. 2017년 봄이 되어서야 드디어 10주기 추모행사를 하기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이제 마음의 빚을 다소 덜었다는 생각이 들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고 제자들은 앞으로도 학계와 실무계에서 각자 최선을 다하기로 다짐합니다.

제자들도 벌써 중년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추모논문집을 준비하면서 치열하게 분석하고 사고하였던 스승의 학문에 대한 열정과 노력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가난한 제자가 진로를 고민하면서 방황하고 있을 때 모든 것을 이해하고 기꺼이 학문의 길로 인도해주셨던 그 깊은 은혜를 생각해봅니다. 인간은 영원으로부터 와서 유한을 살다 영원으로 가는 존재라고 합니다. 우리는 그저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하고 우리 앞에 놓인 빈 공간을 채워갈 뿐입니다. 스승께서 못 다 채운 빈 공간을 저희 제자들이 채워가겠습니다. 이제 편히 쉬시길 바랍니다.

고 류지태 교수님의 10주기 추모논문집에 흔쾌히 글을 투고해 주시고 지원을 아끼지 않으신 교수님들과 동료, 선후배님들께 다시 한번 고개 숙여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그동안 마음고생이 크셨을 유족들, 특히 사모님과 두 아드님, 형원, 형일의 앞날에도 늘 건강과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2018년 3월 23일
간행위원회 위원장 문병효, 정탁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