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 2007. 11. 20.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잘 나가던 아시아국가들이 갑작스럽게 외환위기라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이들 국가들이 외환위기를 당한 원인이 무엇이었으며, 그때 IMF의 역할은 어떠했는지? 외환위기 이후 국제금융질서는 어떻게 변화했으며, 앞으로 우리 경제가 외환위기를 다시 겪지 않고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이제 차분히 10년 전을 되돌아보고 교훈을 얻을 때가 되었다. 과거의 실패나 고통으로부터 교훈을 얻음으로써 미래에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자세와 지혜가 우리에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시아경제는 외환위기 발생 직전인 1990년대 중반까지 고도의 성장을 구가하다가 갑자기 상황이 반전되면서 외환위기를 겪게 되었다. 외환위기는 아시아 각국들에게 경제적으로 많은 고통을 주었으며, 정치·사회적으로도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불행하게도 한국도 아시아 외환위기를 비껴 나가지 못했다. 외환위기는 한국사회에 닥친 미증유의 사태로서 경제는 물론 사회적으로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외환위기가 발생한 이후 많은 기업이 도산하고 금융기관도 문을 닫았다. 기업 중에는 외환위기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부도가 나지 않았을 기업도 많이 있었다.
금융구조조정으로 총 33개의 은행 중 27.3%에 해당하는 9개 은행이 정리되었다. 이로 인해 약 30%에 해당하는 은행원들이 직장을 잃었다. 실업률은 1998. 2월 사상 처음으로 100만 명을 돌파한 후 1999년 1/4분기에는 181만 명까지 불어났다. 실업률이 8.8% 수준까지 올라갔다. 거리에 노숙자가 범람하고, 무료급식소에는 한 끼의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모여든 인파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많은 가정이 파탄되고 가족이 뿔뿔이 흩어진 경우도 많았다. 한마디로 비극적인 현장이었다.
그러나 한국은 IMF의 구제금융 지원과 국민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국가부도의 위기를 넘겼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지만 아쉬운 마음에 이런 가정을 해 본다. 만약 한국정부가 보다 일찍 부실기업과 종금사들을 시장원리에 따라 과감히 정리하고 국가신인도를 유지할 수 있었다면 IMF사태까지 가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대외신인도가 하락하여 단기외채의 만기연장이 되지 않고 환율이 치솟았을 때 외환보유고를 소진하지 않고 버텼더라면 IMF사태를 당하지 않고 견뎌낼 수 있지 않았을까? 그것도 여의치 않았으면 말레이시아와 같이 일시적으로 대외 외환지급정지조치를 취하고 숨을 돌리며 긴급한 외환위기를 넘길 수는 없었을까?
그러나 역사에 가정이란 없다. 한국과 같이 대외의존도가 높고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대외지급정지조치로 과연 얼마나 견뎌낼 수 있었을까? 아무도 명쾌한 답변을 할 수는 없다. 아무튼 한국은 당시 긴박한 외환사정 때문에 IMF에 도움을 청하지 않을 수 없었다. IMF프로그램 아래서 IMF구제금융과 은행의 단기외채 만기연장, 국제금융시장에서의 외화표시국채 발행을 통하여 급박한 국가부도위기를 벗어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면 지금 한국의 사정은 어떠한가? 외환위기 이후 지난 10년간 경제체질과 기업·금융부문의 건전성은 크게 개선되었다. 외환위기 이전과 같은 높은 수준의 경제성장은 달성하지 못하더라도 4∼5%대의 성장을 지속하고 있고, 경상수지의 흑자기조 유지, 순채권국으로의 전환, 외환보유고 세계 5위 국가로의 도약 등 대외부문의 건전성이 획기적으로 강화되었다. 기업의 재무구조도 크게 개선되고 금융기관의 수익성과 재무건전성 또한 몰라보게 달라졌다.
이러한 것만 보면 한국이 다시 외환위기에 빠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하겠다. 그러나 한국이 진정한 선진 경제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이것만으로 충분할까? 세계 10위권의 경제규모에 걸맞는 질적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아직 정비해야 할 것이 많다. 기업은 위험도가 높은 투자를 기피하고 있으며, 투자와 소비의 부진으로 새로운 일자리 창출이 늘어나지 않고, 금융기관도 국내시장에서 담보위주의 가계대출 등 안이한 영업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기업과 금융기관의 투명성과 수익창출역량은 지금보다 한층 더 제고 되어야 하며, 정부와 공공의 효율성도 훨씬 더 높아져야 한다. 시장감시자로서 당국의 역할과 역량도 한층 선진화되어야 한다. 기업, 가계, 정부 모두 세계 최고수준에 걸맞는 역량강화(capacity building)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이 선진제도와 관행인지를 정확히 알고 이를 배우고 습득해야 한다. 국제금융시장의 구조와 게임의 룰을 알고, 기업과 금융기관 그리고 정부가 무엇이 기회이고 위험인지 판단하면서 대처할 수 있어야 하겠다. 이것이 바로 총체적인 국가역량을 제고하여 한국이 명실상부한 선진 경제강국으로 발전하는 첩경이다.
무엇보다도 10년 전 아시아 외환위기가 왜 발생했으며, 어떻게 극복되었는지 되돌아보고, 지난 10년간 국제금융계에서 논란이 되어 온 소위 “신국제금융체제”(New International Financial Architecture)가 무엇인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동아시아지역에서 ASEAN+ 한·중·일간에 추진되어 온 지역협력방안이 어디까지 진척되고, 어떠한 문제에 봉착해 있는지 알 필요가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저자는 지난 10년간 국제금융계에서 일어난 사건과 논의과정을 기록으로 남겨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저자는 대통령경제비서실, 재정경제부 관료로서 1997년 한국의 외환위기 발생부터 그 극복과정에 직접 참여하였으며, 외환위기 이후 약 5년간 국제금융계를 중심으로 전개된 신국제금융체제 논의과정에도 정부를 대표하여 참여하는 기회를 가졌다.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신국제금융체제 논의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보람을 느낄 때도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많은 회한과 좌절도 느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다시는 한국이 지난날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지난 5년간 이 글을 준비해 왔다.
일상적인 업무에 매달리다 보니 작업의 진척이 느리고 생각보다도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이 책에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금년이 아시아 외환위기 발생 10년째이고, 최근의 국제금융시장 상황 등을 감안할 때 무한정 발간을 늦출 수만도 없어서 펴내기로 결심하였다. 앞으로 부족한 부분은 다시 수정하거나 보완할 기회가 있기를 기대한다.
이 책은 일반 국제금융이론서와는 달리 국제금융의 생생한 현장지식을 담고 있다. 국제금융시장에서 국제자본이동이 어떻게 일어나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으며, 그에 따른 보상과 기회, 그리고 위험은 무엇인지 알아볼 수 있도록 노력했다. 아무쪼록 이 책이 관련분야에 종사하는 분들에게 외환위기의 본질을 이해하고 나아가 국제금융시장에서 국제금융기관과 국제투자자, 국제기구 그리고 각국 정부간의 관계와 갈등 등 국제금융의 역학관계를 파악하는 데 다소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책의 최종본 원고를 처음부터 끝까지 일독하시고 자상하고 귀중한 조언을 주신 이규성 전 재정경제부 장관과 이 책 발간에 대해 많은 격려와 조언을 아끼지 않으신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전 재무부장관)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또한 이 책의 전체 체제의 정리와 발간과정에서 조력을 아끼지 않은 양원근 박사, 자료수집과 정리에 많은 도움을 준 김익주 국장, 이원식 국장, 임형석 박사 그리고 재경부 등 관계자들께도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쓰느라고 많은 휴일을 원고작업에 매달릴 수 있도록 이해해 준 나의 아내 그리고 가족과 함께 이 책 발간의 기쁨을 나누고자 한다.
2007년 가을
저자 씀
학 력
고려대학교 경영대학 경영학과 졸(1974. 2)
미국 워싱턴 대학교 경영대학원 PRBP 금융과정 수료(1979. 7)
필리핀 아테네오 경영대학원 졸(MBA)(1985. 9)
주요 경력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 겸 금융감독원 원장(2007. 8∼현재)
대통령 경제보좌관(2006. 11∼2007. 7)
건설교통부 차관(2005. 5∼2006. 11)
관세청장(2003. 3∼2005. 5)
재경부 국제업무정책관(1급)(2001. 4∼2003. 3)
재경부 국제금융국장(1999. 1∼2001. 4)
재경부 국제금융심의관(1998. 8∼1999. 1)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실(3급) 근무(1996. 5∼1998. 8)
재경원 예산실 과장(1994. 12∼1996. 4)
국무총리 행정조정실 과장(1991. 4∼1992. 8)
재무부 과장(국제금융국, 금융실명제실시준비단)(1989. 4∼1994. 12)
아세아개발은행(ADB) 재무담당관(Treasury Officer)(1982. 10∼1986. 6)
제15회 행정고등고시 합격(1974. 5)
포 상
황조근정훈장(대통령)(2001. 12)
주요 저서 및 논문
정부의 초일류화, 이젠 꿈이 아니다(매일경제출판사)(2005. 2)
최근의 국제금융체제 개편 논의에 관한 소고(경희대학교 아태지역연구원, 아태연구 제 6 권 제 2 호)(1999. 12)
Access to International Capital Markets by Selected Developing Asian Countries: From the Borrower, Perspective(아테네오대학 경영대학원 석사학위논문)(1985.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