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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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향기
신간
사람의 향기
저자
고영건
역자
-
분야
할인도서 ▷ 심리/상담
출판사
박영스토리
발행일
2019.08.25
개정 출간예정일
페이지
296P
판형
신A5판
ISBN
979-11-90151-22-1
부가기호
03180
강의자료다운
-
정가
15,000 13,500원

중판발행 2022.06.24

초판발행 2019.08.25


사실, 인생은 살아보면 안다. 하지만 우리는 살아보기 전에 미리 알고 싶어 한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이다.

실존주의 철학의 창시자 키에르케고르(Soren A. Kierkegaard)는 바로 이것이 인생의 근본 문제 중 하나라고 하였다. 그에 따르면, “인생은 앞을 보면서 살아가야 하지만 정작 뒤돌아 볼 때라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2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문제에 답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미국 UCLA 농구팀의 전설적인 지도자인 존 우든(John Wooden) 감독은 한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 어떤 필기 구절로도, 그 어떤 웅변으로도,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그들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를 가르칠 수 없다. 선반에 있는 그 어떤 책들도 마찬가지다.”3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인생공부가 필요하다. 특히 세상 일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는 더더욱 그렇다. 

러시아의 대문호 레오 톨스토이(Leo Tolstoi)는 “인생은 학교”4라고 말했다. 노년기에 그는 주로 인생공부를 하면서 보냈다. 그가 인생공부를 한 방식은 후세에 전할 만한 현자들의 ‘인생지혜’를 찾아 정리하는 것이었다. 

이 책에서는 심리학을 기반으로 한 인생공부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사실 인생공부는 인문학의 전통적인 주제 중 하나다.

인문학은 “인간과 인간의 근원문제 및 인간의 사상과 문화”5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따라서 인문학이 인간 자체에 대한 탐구를 포함하는 학문인 한, 심리학을 빼놓고는 성립할 수 없다. 

그렇다면, 심리학에 기초한 인생공부법으로는 어떤 것이 있는가? 그 한 가지 예로는 바로 ‘심리분석 전기(psychobiography)’를 들 수 있다. 이것은 개인의 생애사(生涯史)를 심리학적으로 분석해 재구성한 것을 말한다. 

미국의 사상가 에머슨(Ralph W. Emerson)은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전기(傳記)가 있을 뿐이다!”6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오직 인간만이 역사의 주체일 수 있다. 동시에 모든 역사는 주관적이다. 그렇기에 과거에 대해 오직 하나의 설명만이 참된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허구일 수밖에 없다. 

에머슨의 말처럼, 인간의 삶에서 전기는 중요하다. 그리고 역사가 반복되듯이, 전기를 읽지 않는 사람들 역시 이전 세대 사람들의 삶을 구태의연하게 반복하기 마련이다. 때로는 비극으로, 때로는 희극으로!7 

칼럼니스트인 데이비드 브룩스(David Brooks)에 따르면, “삶이란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한 투쟁이다.”8 이런 점에서 심리분석 전기는 우리가 삶에 눈뜰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심리분석 전기는 우리가 이전에는 보지 못하던 것을 새롭게 볼 수 있게 해줄 뿐만 아니라, 우리의 발걸음이 미치지 못하던 곳에 우리가 기꺼이 가 닿을 수 있도록 해준다. 


◇◇◇

심리분석 전기와 전망의 지혜 

심리분석 전기가 우리에게 선사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 중 하나는 바로 인생공부다. 보다 구체적으로 심리분석 전기는 인생공부를 위해 필요한 ‘전망(prospection)의 지혜’를 선사해 준다. 심리학에서는 과거 사건에 대한 정신적 표상을 ‘기억’이라고 하고 현재 사건에 대한 정신적 표상을 ‘지각(知覺)’이라고 하며, 미래 사건에 대한 정신적 표상을 ‘전망’이라고 한다.9 

미래에 대해 생각하거나 예측하는 것이 모두 다 전망이 되는 것은 아니다. 본질적으로 전망은 실제 데이터를 기반으로 미래를 예측해내는 것과는 다르다. 스포츠 전문가가 과거 성적에 기초해 특정 선수의 승률을 예측하거나 경제전문가가 시장의 경기를 예측하는 것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전망과는 관계가 없다. 

심리학적으로 전망은 객관적인 자료가 없거나 오히려 자신의 기대와는 반대되는 사건들이 일어남에도 불구하고 미래에 대해 희망적으로 사고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전망과 낙천성 그리고 낙관성은 서로 다르다. 낙천성은 기질적으로 자신의 모습에 대해 특별한 근거 없이 긍정적으로 사고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타고나는 것이다. 이에 반해 낙관성은 주어진 자료에 기초해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 합리적으로 추론하는 것이다. 낙관성은 학습이 필요한 삶의 지혜에 해당된다. 

대조적으로 전망은 상황이 자신에게 호의적이지 않거나 미래를 객관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자료 자체가 없는 조건 하에서, 미래에 대해 긍정적으로 사고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눈앞이 캄캄한 상태로 방황할 때처럼 말이다. 이러한 전망은 낙관성과 마찬가지로 인생이라는 학교에서 배워야 하는 삶의 지혜이다. 

내 삶이 장차 어떻게 펼쳐지게 될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망 능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전망 능력은 문제 상황에서 내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삶에서 전망의 기술은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그리고 삶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과 ‘기대할 수 없는 것’ 등을 지혜롭게 구분할 수 있게 해준다. 문제는 이러한 것들을 구분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점이다. 

수백 명의 삶을 80년 이상 추적 조사한 하버드대학의 성인발달 연구에 따르면, 전망이 상대적으로 더 잘 발달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10 그런데 하버드대학의 성인발달 연구 참여자들 중 전망을 잘 활용한 사람들은 전반적으로 자신의 일을 즐겼고 정신장애를 나타내지 않았으며 그 대부분이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마음속에서 반짝이는 것

톨스토이는 행복의 문제와 관련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행복하지 못하다면 두 가지 변화를 꾀할 수 있다. 하나는 삶의 조건을 높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내적인) 영혼의 상태를 높이는 것이다. 첫 번째는 언제나 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두 번째는 언제든지 가능하다.”11

심리학자인 로버트 화이트(Robert White)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우리는 삶의 조건들이 인생을 조형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상당히 많이 알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지식은 매우 중요하다. 반면에 우리는 인간이 삶의 조건들을 조형해 나가는 방식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러한 지식이 덜 중요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12 

로버트 화이트의 주장은 왜 우리가 심리분석 전기에 주목해야 하는지를 잘 설명해 준다. 그에 따르면, 정작 우리는 역사의 주체로서 인간이 역사를 스스로 만들어 나가고 그 결과로서 자신들이 삶의 결과물들을 어떻게 창출해 내는지에 대해서 무지하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아마도 이러한 심리분석 작업이 암묵적으로 불편함과 두려움을 야기하기 때문인 것 같다. 

프랑스의 소설가 쥘리앵 그린(Julien Green)의 이야기는 심리분석 작업이 얼마나 커다란 불편함과 두려움을 야기하는지 잘 보여준다. 그는 자신의 일기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누군가 이 일기를 찾아낸다면, 그는 나를 완전히 잘못 판단할 것이다. 나를 판단하는 데 진정으로 중요한 것을 쓰지는 않았기 때문이다.”13 

이처럼 심리분석 작업 과정에서 불편감이나 두려움이 나타나는 것은 전망이 효과적으로 기능하지 못할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현상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깊숙이 들여다보면 어떤 인간이든 저 안쪽에 반짝이는 무언가를 갖고 있기 마련이다.”14라고 말한 적이 있다. 바로 심리분석 작업은 우리들 마음속에서 약점이나 문제점을 끄집어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반짝이는 무언가를 발굴하기 위한 것이다. 

이 책에서는 심리분석 작업을 위해 하버드대학의 성인발달연구에서 사용한 ‘적응기제(adaptive mechanism)’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적응기제는 우리가 중요한 문제 상황에서 스트레스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거나 만족스러운 삶을 위해 무의식적으로 선택하는 책략을 말한다.15 적응기제는 기본적으로 프로이트(Sigmund Freud)의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와 바꾸어 사용하는 것이 가능한 용어다. 다만, 하버드대학의 성인발달연구진은 방어기제가 상대적으로 부정적인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해 적응기제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일반적으로 적응기제는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성숙한 적응기제는 문제 상황에서 ‘나도 행복해지고 다른 사람도 행복해지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다. 신경증적인 적응기제는 문제상황에서 스스로 불편하거나 고통스러운 것을 참아내기로 선택하는 것이다. 미성숙한 적응기제는 문제상황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감을 유발하거나 고통을 주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을 말한다. 

이 책에서 적응기제에 초점을 맞추고자 하는 이유는 바로 적응기제가 ‘우리 삶 속에 존재하는 반짝이는 무언가’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단, 이때 ‘반짝이는 무언가’는 성숙한 적응기제를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모든 성숙한 적응기제는 미성숙하거나 신경증적인 적응기제를 거쳐서 탄생하게 된다는 점이다. 

인간은 삶 속에서 애벌레가 나비로 변하는 성숙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인간의 삶이 이처럼 변해가는 과정을 지혜롭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심리학적인 전망의 기술’이 필수적이다. 왜냐하면, 적응기제는 기본적으로 무의식적 특성을 지닌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하버드대학 성인발달연구의 한 참여자는 세월이 흐른 뒤에 자신의 실제 과거 기록을 읽으면서도 그것이 자기 이야기라는 것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16 이러한 현상은 단순히 망각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이 자신의 심리적인 필요에 의해 나비가 된 다음 과거 자신이 애벌레 시절에 있었던 일들을 체계적으로 왜곡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심리분석 작업을 할 때 적응기제를 활용해야 하는 이유이다. 


◇◇◇

삶이 점화하기 위해 필요한 것

『장자(莊子)』의 제물편(齊物篇)에는 호접지몽(胡蝶之夢) 고사가 실려 있다. 어느 날 장자는 꿈에 나비가 되었는데,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가 되어, 저절로 깨치고 멋대로 지내느라, 장자임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문득 깨어 보니 어엿한 장자였다. 그러자 장자는 자신이 꿈에 나비가 되었는지, 아니면 나비가 꿈에 자신이 되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어린 아이들과는 달리, 성인은 꿈과 현실을 구분할 줄 알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장자는 이런 글을 적었던 것일까? 이러한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호접지몽’ 고사에서 ‘꿈’이라는 단어가 이중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간파할 필요가 있다. 그 고사에서 말하는 ‘꿈’은 우리가 잠을 자면서 꾸는 ‘꿈’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장자가 말한 ‘꿈’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는 영재들의 삶을 연구한 교육학자 터먼(Terman)과 하버드대학의 성인발달연구진이 함께 추적 조사한 사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17 라이어(Lyre)는 6살 때 영재 소녀로 선발되어 연구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여기에서 별칭으로 사용된 ‘라이어(Lyre)’는 표면적으로는 거문고를 뜻하지만 거짓말쟁이를 뜻하는 ‘라이어(liar)’를 염두에 두고서 작명된 것이다.

78세가 되던 해에 연구자가 방문했을 때, 라이어는 자신의 재능을 거의 활용하지 못한 채 평범한 삶을 살고 있었다. 영재였으면서도 이렇게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이 아쉽지 않느냐고 연구자가 묻자, 그녀는 자신은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고 대답했다. 또 연구자가 어렸을 때 의사가 되고 싶어 한 적이 있냐고 묻자, 라이어는 그런 적이 없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과거 기록에 따르면, 라이어는 14살 때 의사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으며 대학 때는 의학 관련 기초과목들을 이수한 적도 있었다. 그리고 연구자가 라이어에게 영재 연구 참여자로 선발된 것이 언제냐고 묻자, 그녀는 대학에 입학한 다음이었다고 대답하였다. 하지만 50세 때 그녀는 자신이 10살 때부터 영재 연구에 참여했다고 말했고 25세 때는 자신이 6살 때 영재로 선발되었다고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왜 라이어는 자신이 영재로 선발되었던 시기를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더 늦춰서 말했던 것일까? 라이어는 자신이 영재로 인정받았던 시기가 이르면 이를수록,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직면할 수 없었기 때문에 부지불식간에 영재 소녀로 선발된 시기를 가능한 한 늦춰서 떠올리려는 방어적인 노력을 기울였던 것이다. 이를 적응기제로는 ‘억압(repression)’이라고 한다. 

억압은 학습의 실패나 단순한 망각과는 다르다. 사람들은 흔히 영어단어를 외운 다음에 불과 몇 시간 정도 지났을 뿐인데 기억이 잘 안 나면 ‘잊어버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이 대부분은 망각이 아니라 학습에 실패해서 나타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해당 영어단어가 장기기억의 형태로 머릿속에 저장되지 않은 것이다. 

일단 학습이 이루어져 장기기억에 저장된 내용도 오랜 시간이 지나게 되면 망각이 일어날 수 있다. 이러한 자연스러운 망각은 주로 중요하지 않거나 잘 활용되지 않는 정보들에서 일어난다. 다시 말해서 이러한 망각은 특별히 망각해야 할 이유가 없는데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억이 희미해져 가는 것에 해당된다.

대조적으로, 억압은 무의식적인 동기에 의해 자기도 모르게 일어나는 것으로서 정보를 회상하는 데 실패하는 것을 뜻한다. 자연스러운 망각과는 다르게 억압에서는 동기가 중요한 요소가 된다. 억압이 일어나는 이유는 그러한 정보가 의식화될 경우, 불편하거나 두렵기 때문이다. 라이어가 6살 때 영재로 선발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내지 못했던 것은 과거에 영재였음에도 불구하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자신의 현재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불편감을 유발하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라이어의 삶이 비극으로 끝을 맺지는 않았다. 인생의 황혼기에 라이어의 삶은 극적으로 반전되었다. 성인기 이후로 계속 자신은 단지 평범한 사람일 뿐이라는 말을 반복해왔던 라이어는 노년기에 들어서 비로소 자신에게 음악적인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연구자들은 그녀가 30세 때 작성했던 직업흥미검사 결과를 통해 이미 오래 전부터 그녀가 의학뿐만 아니라 음악에도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 무렵 그녀의 숨겨진 재능을 간파하고 있었던 절친한 친구가 그녀에게 아름다운 바이올린을 유산으로 물려주었다. 그때부터 라이어는 자신의 재능을 꽃피우기 시작해 바이올린 독주회를 갖는 등 열정적인 삶을 살았다. 이처럼 생애의 마지막 시기에 그녀는 거짓말쟁이 ‘라이어(liar)’가 아닌 현악기를 상징하는 ‘라이어(lyre)’가 되었다.

장자의 관점에서 본다면, 라이어는 무려 78세가 될 때까지 상징적인 의미에서 ‘잠든 채로 꿈속에서 살아간 것’이 된다. 호접지몽 고사에 등장하는 ‘꿈’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라이어 같은 사람들이 변화하기 전에 보여주었던 삶의 모습을 가리키는 말이다. 라이어처럼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명백히 잠들어 있으면서도 스스로 꿈속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조차 못 깨닫는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라이어처럼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언제든지 꿈에서 깨어나는 것은 가능할 수 있다. 단, 라이어 사례가 보여주는 것처럼, 인간의 삶이 아름답게 점화하기 위해서는 누군가로부터 진정으로 사랑받는 경험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 


◇◇◇

아름다운 것은 슬픈 것!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중 하나는 바로 ‘좋은 사람의 향기’다. 하지만 사람의 향기를 말할 때 빼놓아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매화는 추운 고통을 겪은 다음에 맑은 향기를 발하는 법”18이라는 점이다. 

좋은 사람의 향기도 마찬가지다. 무릇 아름다운 향기에는 슬픔이 배어있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서정주 시인은 유고시에서 아름다운 것을 음미할 때 놓쳐서는 안 되는 세계를 이렇게 노래했다.

“아름다운 것은 슬픈 것이니라.

한없이, 한없이 슬픈 것이니라. 슬픈 것이니라.”19 

인생의 향기는 삶 속에 내재한 아픔과 슬픔을 조금씩, 하지만 꾸준히 치유해 나갈 때 자연스럽게 배어나오는 것이다. 바로 그렇기에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삶 속에 내재한 아픔을 ‘우아하게 수락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심리적 분석 작업은 비현실적이거나 미화된 긍정성이 아니라, ‘승화된 긍정성’에 주로 초점을 맞춘다. 비현실적 긍정성에서는 불가능한 것을 왜곡해 마치 가능한 것처럼 탈바꿈시킨다. 또 미화된 긍정성에서는 사실이 아닌 것을 좋게 포장해 그럴 듯하게 만든다. 대조적으로, 승화된 긍정성은 어둔 밤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에게 조용한 달빛이 선사해 주는 따뜻한 위로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기쁨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쁨은 쾌감이나 욕구충족을 통해 주관적인 만족감을 경험하는 것과는 다르다. 주관적인 만족감만으로는 행복한 삶이 보장되지 않는다. 

행복은 주어진 상황 하에서 ‘나’와 ‘남’이 동시에 만족하는 상태를 뜻한다. 그런데 미성숙하거나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은 자신의 만족감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행동한다. 그 결과 주변 사람들은 피해를 입게 된다. 이처럼 행복은 주관적으로 만족하는 것 이상의 심리적 과정을 요구한다. 

삶에서는 만족감보다 기쁨이 심리적으로 더 성숙한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고통을 배척하는 쾌감이나 만족감과는 달리, 기쁨은 그러한 고통까지도 기꺼이 수용하기 때문이다. 미성숙하거나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이유는 자신의 아픔을 끌어안을 줄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의 아픔과 슬픔을 다루는 법을 잘 모른다. 그렇기에 자신과 타인의 고통을 모두 외면해 버린다. 문제는 치유되지 않은 삶의 고통은 태양과 그림자처럼 제아무리 밝은 곳을 찾아가더라도 항상 따라다닌다는 데 있다. 

행복의 본질은 아픔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경험하게 되는 기쁨에 있다. 이런 점에서 행복은 쾌락의 ‘강도’나 만족감의 ‘빈도’가 아니라, 기쁨을 경험하는 ‘깊이’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삶에서 고통을 포용할 줄 모르는 사람은 희망의 기쁨도 경험하지 못한다.20 희망의 기쁨은 고통을 외면하는 자기기만이나 고통에 무감각해지는 자아도취와는 다르다. 삶에서 희망이 주는 기쁨은 슬픔조차도 끌어안을 마음의 준비를 갖춘 사람들만이 경험할 수 있는 세계다. 

희망(hope)은 소원(wish)과는 다른 것이다.21 소원은 사람들이 삶에서 일이 성사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을 말한다. 불행한 사람들은 자신이 불행해진 이유가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아서라고 믿는다. 하지만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반드시 불행해지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인생에서 소원은 이루어지기보다는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희망은 온갖 어려움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살아갈 가치가 있다고 믿는 것을 뜻한다. 이것이 바로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에게는 미래가 있을 수 없는 이유다! 이런 점에서 우울증은 ‘역기능적인 전망’에 의해 유발되는 대표적인 정신장애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의 향기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마음은 보이지 않는 세계다. 따라서 심리적 분석 작업에서는 ‘보이는 세계’를 통해 ‘보이지 않는 세계’를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 “탄소의 산소화는 보이지 않지만 불꽃은 우리 모두 볼 수 있다. 기침 반사는 보이지 않는 신경과정이지만 기침은 느낄 수 있는 소리다.”23 마찬가지로 사람의 향기 역시 눈에 보이지 않고 냄새로 맡을 수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 분명히 느낄 수는 있다. 좋은 사람의 향기를. 

사람의 향기를 변별해내는 문제와 관련해서는 대법관 포터 스튜워트(Potter Stewart)의 조언을 참고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1964년 미국의 대법원에서 포터 스튜워트는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다.24 실제로 어느 두 대상 사이에 분명한 차이가 존재하지만 그러한 차이를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경우, 사람들은 그 둘 사이의 차이를 “보면 안다”는 것이다. 

좋은 사람의 향기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 모두 느낄 수 있다. 단, 인생공부가 필요하다!

고 영 건

고려대학교 심리학과에서 임상심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삼성서울병원 정신과에서 임상심리레지던트로서 수련을 받았다.

세계 최초로 '감성지능(EQ)'의 개념을 이론화한 예일대학교 심리학과의 피터 샐로베이 교수의 지도하에 박사 후 연구원으로 정서지능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였다.

고려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로 부임한 후 한국건강심리학회 학술이사, 한국심리학회 총무이사, 그리고 한국임상심리학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고려대학교 학생상담센터장, 문과대학 멘토링상담센터장 그리고 교육대학원 상담심리교육 전공 주임교수를 맡고 있다. 

고려대학교의 대표적인 강의상 3가지(고려대학교 학부 석탑강의상, 교육대학원 명강의상, 그리고 평생교육원 우수강의상)를 모두 수상한 바 있으며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지방자치인재개발원, 서울특별시 교육연수원 그리고 주요 대기업의 다양한 심리학 교육 프로그램에서 강사로 활약 중이다. 삼성서울병원과 멘탈휘트니스 연구소가 공동으로 추진한 「삼성-멘탈휘트니스 CEO 프로그램」의 연구 개발자이기도 하다. 

삼성그룹 CEO들이 2011년부터 6년간 수요사장단회의를 통해 들었던 247번의 특강 중에서 조선일보 기자들이 삼성언론재단의 지원을 통해 삼성그룹 CEO들의 추천을 받아 최고의 명강의 30편을 선정해 수록한 『삼성의 CEO들은 무엇을 공부하는가』라는 책자에 강연 내용이 소개되었다. 그리고 한국의 대표적인 경영전문지인 ‘동아 비즈니스 리뷰(DBR)’와 경제 일간지인 ‘매일경제’에 CEO를 위한 심리학 칼럼을 연재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삶에 단비가 필요하다면: 인디언 기우제 이야기』, 『행복의 품격(공저)』, 『플로리시: 삶을 밝히는 마음의 빛』, 『심리학적인 연금술(공저)』, 『멘탈휘트니스 긍정심리 프로그램(공저)』 등이 있다. 그리고 역서로는 『내 마음속 천국: 영성이 이끄는 삶(공역)』과 『행복의 지도: 하버드 성인발달 연구가 주는 선물(공역)』이 있다.

I. 들어가는 글: 좋은 사람의 향기 1

II. 현대의 요정(妖精): 오드리 헵번의 투사 15

III. 어느 사회개혁가의 재미있는 인생: 버나드 쇼의 공상 33

IV. 마음속 독풍(毒風) 다스리기: 추사 김정희의 신체화 51

V.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사람이 된 말썽꾸러기: 혼다의 행동화 63

VI. 과학계의 잔 다르크: 마리 퀴리의 수동공격성 75

VII. 천재 코미디언의 어두운 코미디 같은 삶: 로빈 윌리엄스의 해리 91

VIII. 어린왕자의 슬픈 사랑: 생텍쥐페리의 반동형성 105

IX. 기억해내지 못하는 것이 주는 고통: 찰스 다윈의 억압 121

X. 열정적인 구두 제작자의 비밀: 페라가모의 전위 135

XI. 백조(白鳥)왕자의 동화 같은 인생: 앙드레 김의 이지화 149

XII. 어둠의 성인: 마더 테레사의 이타주의 167

XIII. 지옥을 천국으로 바꾸기: 마크 트웨인의 유머 185

XIV. 마음속 피가 솟구쳐 흐를 때: 주광치앤의 억제 203

XV. 20세기 철강왕: 박태준의 승화 217

XVI. 깊은 비밀을 감춘 리더의 얼굴: 아이젠하워의 예상 231

XVII. 맺음말: 인생이라는 학교에서 배우는 삶의 기술 249

XVIII. 미주 2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