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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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하는 머무름, 머무르는 사색들 『감정도서관』
신간
사색하는 머무름, 머무르는 사색들 『감정도서관』
저자
정강현
역자
-
분야
시/에세이
출판사
박영사
발행일
2023.12.19
개정 출간예정일
페이지
269P
판형
사륙배판
ISBN
979-11-303-1510-2
부가기호
03810
강의자료다운
-
정가
16,900원

초판발행 2023.12.19


이 도서는 박영사의 단행본 브랜드 '인북'의 도서입니다.





"밤의 서재는 마음의 해답지와도 같은 감정도서관처럼 여겨졌습니다."

기자이자 작가인 정강현의 5년 만의 산문집

 

사회부·정치부 기자이자 음악과 시를 이야기하는 작가 정강현이 5년 만에 신작으로 돌아왔다. 기자이자 직장인으로서 사회적 삶을 보내며, 아빠이자 아들로서 가정의 삶을 지나오며 마주한 감정의 순간들을 담았다.

 

작가는 밤마다 뒤적였던 책들을 어떤 영혼의 내전 기록들이라고 표현한다. 제 마음에서 벌어지는 영혼의 일들을 인간의 언어로 풀어내기 위해 치열하게 분투했던 흔적들이라고. 그렇게 마음의 표정을 들여다보기 위해 함께했던 책과 음악 그리고 일상의 순간들을 감정도서관에 담았다.

 

마음의 움직임을 세밀하게 관찰할 때, 반짝이지 않는 인생은 없다

김윤아(가수), 오은(시인), 김호정(기자) 추천!

 

늦은 밤, 자신의 내면과 오롯이 만나는 때에 밀려드는 감정을 하나의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언제나 그렇듯 마음이 한 가지 표정만 짓는 날은 거의 없다. 그럴 때면 누군가 당신 마음을 대신 읽어줬으면 싶다. 작가는 이 마음의 표정을 자신만의 뜻을 담아 감정도서관 서재에 넣었다.

 

태어난다. 만난다. 헤어진다. 죽는다. 영원히, 헤어진다.’ 사람의 일생을 요약하자면 이와 같다는 작가는 이 시간을 지나오며 사색한 감정에 대해 글로 표현했다. 머뭇거리다, 설레다, 허무하다, 무참하다, 벅차다, 애끊다 등 책에서는 총 30개의 감정을 이야기한다.

 

늦은 밤. 밤은 익어가고 도시는 물컹해지는 시간. 작가는 감정도서관의 문을 활짝 열어둔다. 마음의 문을 열고 있는 독자들을 맞이하기 위해.

 

 

정강현

기자, 작가/1977년생

중앙일보에서 사회, 문화, 정치 담당 기자로 활동했다. 2016JTBC 보도국으로 자리를 옮겨 정치부회의출연자, 정치부장 등으로 일했다.

지은 책으로 산문집 당신이 들리는 순간』 『다행이야, 너를 사랑해서』 『우리는 눈물로 자란다, 소설집 말할 수 없는 안녕등이 있다.

프롤로그

 

1.

머뭇거리다: 마음에 쉼표를 찍는 순간

시큰거리다: 딱 그만큼의 슬픔에서 멈출 때

소중하다: 시간이 자주 빼앗아 가는 것

애통하다: 슬픔의 비명 소리

애틋하다: 세상의 모든 B급에게

두근거리다: 모든 심장의 첫 멜로디

뜨끈하다: 옆은 모르는 곁의 온도

부풀다: 연애와 결혼의 밑감정

공감하다: 마음의 전류가 흐를 때

가난하다: 크리스마스의 마음

 

2.

자만하다: 삶에 보내는 긍정의 시그널

기울다: 마음이 들리는 순간

막막하다: 슬픔이 얼어붙는 순간

허무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의 마음

설레다: 꿈이 꿈틀대는 순간

욕망하다: 거위의 꿈? 거품의 꿈!

순수하다: 순결해서 위태로운 고집

단념하다: 마음을 잘라내는 마음

무참하다: 당신은 모르는 슬픔 앞에서

가련하다: 같은 아픔에 이웃하는 마음

 

3.

후회하다: 다시는 되찾을 수 없는 마음에 대하여

호젓하다: 가만히 내려앉는 생을 기억하며

참혹하다: 감히 가늠할 수 없는 비통함

무너지다: 마음의 건축학개론

벅차다: 까슬까슬한 성장통의 마음

비뚤다: 정치의 마음

꼿꼿하다: 저절로 굳어버린 마음에 대하여

아련하다: 일부러 흐려진 마음

가엽다: 울음을 참는 자의 표정

애끊다: 작별할 수 없는 슬픔

 

에필로그

추천의 글

밤의 서재에서 건져 올린 내밀한 사색의 실체

 

늦은 밤, 기자로서 바쁜 하루를 보낸 저자는 불빛이 꺼진 밤의 도시를 거슬러 집으로 돌아온다. 성가셨던 사회적 삶을 내팽개치고 자신의 내면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 그제서야 마음의 얼굴이 드러내기 시작한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마음이 한 가지 표정만 짓는 날은 거의 없다.

 

한 사람을 하나의 단어로만 표현할 수 없듯, 누군가의 마음도 하나의 단어로만 풀어낼 순 없다는 것. 그러니까 분인으로서의 인간은 분심(分心)’들로 복잡하게 구축된 영혼의 성채라는 것. 당신의 이런 생각을 마냥 반박하기는 쉽지 않다. 이를테면 슬픔만 해도 그렇다. ‘슬프다는 말로는 도무지 해명이 안 되는 슬픈 마음이 있는 것이다. 슬픈 마음은 그 슬픔의 농도와 강도에 따라 애끊거나 애달프거나 애통한 마음으로 분절될 수 있다. ‘슬프다는 말로는 감당할 수 없는 어떤 마음의 무게가 분심의 언어를 통해서만 겨우 해명될 수 있다. (10)

 

그럴 때면 서재에서 뒤적이던 숱한 책들의 이야기, 함께한 깊은 사색의 또렷한 얼굴을 글로 담았다. 누군가 대신 마음을 읽어주기를 기대하며 넘겨보던 책의 말들, 다정하게 위로해 주던 음악의 소리가 정강현 작가 특유의 따뜻한 문체로 표현됐다.

 

사회적 삶과 가정의 삶 그 사이에서 마주한 감정의 얼굴들

두근거림과 애끊는 마음의 소리

 

책에서는 머뭇거리다, 설레다, 허무하다, 무참하다, 벅차다, 애끊다 등 총 30개의 감정을 이야기한다. 기자이자 직장인으로서, 남편이자 아빠로서 또 그 역시 아들로서 느낀 다양한 감정의 실체를 보기 위해 머물렀던 사색의 시간 속으로 독자를 초대한다.

 

시간이란 생명의 다른 이름이다. 시간이 다 소진되면 생명도 그친다. 하루를 산다는 건 하루만큼 죽는다는 뜻이다. 우리의 일상은 실은 죽음의 한 절차인 셈이다.

사십 대의 중턱을 넘어서면서 나는 중요한 일이 아니라 소중한 가족에 내 시간을 내어줄 결심을 밤낮으로 하고 있다. 회사 업무의 압력에 짓눌려 쉽지 않지만, 아주 작은 틈새 시간이라도 소중한 가족과 공유하면서 시나브로 시간의 가치를 다시 가늠해 보려 한다. (43)

 

40대 중반을 지나가며 사회적 삶과 가정의 삶 그 사이에서 저자는 새로운 시선을 경험한다. 무릎이 시큰거리기 시작하지만 이것이 경고등이라기보다는 방향등에 가깝다는 것을 깨우치고, 심장의 첫 멜로디를 들으며 두근거림을 느낀다. 옆은 모르는 뜨끈한 곁의 온도를 깨닫지만 그러면서도 사랑하는 이로부터 슬픔의 비명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더 이상 무릎이 말을 듣지 않아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는 말을 하면서, 그는 눈물을 보였다. 그 고백에서 나는 인생의 한고비를 넘고 있는 자의 목소리를 들었다. 진짜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도 흔히 겪는 일이다. 특히 인생의 반환점이라고 할 수 있는 중년의 시기를 지나다 보면, 자주 그런 생각에 빠져들곤 한다. , 더 이상 내 지성과 열정의 무릎이 말을 듣지 않는구나.

극한 경쟁이 일상처럼 이어진다는 점에서, 스포츠와 인생은 꼭 닮았다. 무릎이 더 이상 말을 안 듣는다는 건 어쩌면 더 이상 경쟁에 매몰되지 말라는 경고인지도 모르겠다. (33)

 

끝내 마주한 작별의 시간

마음의 움직임을 세밀히 관찰할 때 감춰진 영혼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감정도서관에서 저자가 사색의 시간을 보내던 동안 그의 아버지는 투병했다. 그리고 끝내 저편 세상으로 건너갔다. 오랜 난임 치료 끝에 아이를 만나 아버지가 되었지만, 저자는 끝내 자신의 아버지와 작별했다. 그때 그동안 관성적으로 써오던 애끊는 마음이 실제로 작동하는 경험을 한다. 아버지를 저편 세상으로 떠내 보낸 지 1년이 지났지만 작가는 여전히 아버지를 추억할 때마다 애끊는 마음이 피어난다.

 

실은 장례가 아니라 면회를 하러 가는 길이었다. 기차에 몸을 파묻고 복잡한 생각을 떨쳐내려 음악을 들으며 내려가는 길이었다. 언니네이발관이 내 귀에 대고 노래했다. ‘너를 떠나보내고 난 침묵 속에 빠졌네 / 오지 않을 날들을 바보처럼 그리다 / 거울 속의 나에게 다짐하듯 했던 말 / 다시는 널 보내지 않겠다영원히 그립지 않을 시간

그래, 이 시간들은 영원히 그립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삶의 끝자락에서 식사조차 못 해서 관을 삽입하게 된 아버지. 곁에서 지켜보는 가족들도 아프지만, 누구보다 고통스러운 건 아버지일 것이다. 가족들에게도 아버지에게도 지금 이 순간은 영영 그립지 않을 테지.

그런 슬픈 생각에 잠겨 깜빡 잠이 들었을까. 다급한 진동음이 울렸고 전화를 받으니 더 다급한 엄마가 울먹이며 소리치고 있었다.

 

태어난다. 만난다. 헤어진다. 죽는다. 영원히, 헤어진다.’ 사람의 일생을 요약하자면 이와 같다는 작가는 이 시간을 지나오며 움직이던 마음의 소리를 꺼내 놓는다. 기쁨이 넘쳐흐를 때에도 애끊는 슬픔이 나를 덮칠 때에도 스스로 일렁이는 마음의 움직임을 세밀하게 바라보자고. 그럴 때 우리는 감춰진 영혼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책 속으로

 

마음알기의 소중한 가치를 아는 당신은 지금 여러 빛깔의 책들 앞에 앉아 있다. 저 숱한 책들은 어떤 영혼의 내전 기록들이다. 제 마음에서 벌어지는 영혼의 일들을 인간의 언어로 풀어내기 위해 치열하게 분투했던 흔적들이다. 온갖 책들로 가득한 당신의 서재는 실은 마음의 일들을 해명해 주는 감정도서관이기도 한 것이다. 모든 것은 마음 알기에 달렸다. 마음을 몰라서 그렇지 마음만 잘 알면 반짝이지 않는 인생은 없다. 책은 당신의 마음을 세심하게 진단하고 적절한 처방전을 건넬 것이다. 늦은 밤. 밤은 익어가고 도시는 물컹해지는 시간. 사회적 삶을 내팽개치고 오로지 내면에만 집중할 수 있는 깊은 밤. 감정도서관의 문은 항상 열려있다. 당신이 마음의 문만 활짝 열 수 있다면.

_ 프롤로그중에서

 

몇 해 전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 이상화의 은퇴 기자회견을 보면서, 어떤 장엄한 장례식에 참석한 것처럼 숙연해졌던 것도 그 때문이다. 진짜 장례식과 다른 점이 있다면, 생명을 다 소진한 주인공이 직접 참석해 자신의 소회를 밝히고 있다는 것 정도였다.

사실 이날 회견에서 내 마음을 무너뜨린 건 이 군더더기 없는 유언이 아니었다. 이상화는 자신이 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 역시 상세히 설명했는데, 나는 이 대목에서 조금 울컥했다. “다음 목표를 생각하고 더 달리려 했지만 무릎이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무릎이 말을 듣지 않아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는 말을 하면서, 그는 눈물을 보였다. 그 고백에서 나는 인생의 한고비를 넘고 있는 자의 목소리를 들었다. 진짜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도 흔히 겪는 일이다. 특히 인생의 반환점이라고 할 수 있는 중년의 시기를 지나다 보면, 자주 그런 생각에 빠져들곤 한다. , 더 이상 내 지성과 열정의 무릎이 말을 듣지 않는구나.

_ 시큰거리다: 딱 그만큼의 슬픔에서 멈출 때중에서

 

이 책의 제목은 그래, B급이라도 좌파로 살 수 있다면이란 대목에서 끌어온 것이었다. 저 문장은 스스로를 낮추기 위한 겸양의 표현이었겠지만, 실은 어떤 사람을 B급으로 지칭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사람에게도 일정한 등급이 매겨진다는 것은, 아이는 아직 도달하지 못한 서늘한 진실이었다.

말하자면 그때 나는 B급이란 말에 내 삶을 투영하고 있었다. 내 정체성을 지칭하는 어떤 명사를 잇대어도 B급은 어울리는 수식어였다. 그러니까 이런 식이다. B급 아들, B급 남편, B급 아빠, B급 기자. 어쩌면 저 책을 내민 아이 앞에서, 대체로 B급이었던 내 지난 삶을 들킬까 봐 허둥댔는지도 모른다.

_ 애틋하다: 세상의 모든 B급에게중에서

 

꿈은 삶의 한 지표일 수 있지만, 그 자체가 삶의 목적일 순 없다. ‘거위의 꿈은 대부분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로 판명 날 것이므로, 꿈은 삶의 한 추동력 정도에 그치는 게 옳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문학에 의탁해 살겠다는 꿈은 비록 이루지 못했지만, 기사 형식일지라도 글을 쓰는 일을 업으로 삼을 수 있었던 것도 한때의 꿈이 내 삶을 그 언저리로 추동해 준 결과라고, 나는 믿는다.

나는 문학을 꿈꾸는 일에 관한 한 내 뚜렷한 한계를 인정했고 기자의 길로 방향을 틀었던 것인데, 꿈을 끝내 놓지 못하고 문학을 욕망하는 것으로 허송세월하지 않았던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_ 욕망하다: 거위의 꿈? 거품의 꿈!중에서

 

순수함은 세속에 때 묻지 않으려는 드센 고집이다. 순진함이 어린 시절의 타고난 본성이라면, 순수함은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사사롭지 않으려는 안간힘이다.

하지만 순수한 시절을 아름답게 추억하는 것과 무관하게 순수함은 때론 위태로운 마음의 태도일 수도 있다. 어른들의 세계에선 순수한 것이 살아남기 힘든 법이니까. 순수함이란 단 하나만 아는 마음일 텐데, 복잡한 세상사는 그런 단견은 용납하지 않는다. 비단 세상사뿐 아니라, 순수함의 결정체로 여겨지는 사랑의 영역에서도 그 이치는 비슷하다. 어른들의 사랑은 아이들의 그것과 달라서, 순수함만으로 사랑을 쟁취하는 일 따위는 잘 벌어지지 않는다.

나는 순수함의 가치를 숭고하게 여기는 편이지만, 순수함이란 말 앞에서 머뭇거리게 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내 인생의 책을 꼽으라면 맨 앞줄에 세워야 할 오르한 파묵의 순수 박물관, 그래서 내게 모순적인 서사로 오래 기억되는 중이다.

_ 순수하다: 순결해서 위태로운 고집중에서

 

당신의 슬픔은 내게 건너오지 않는다. 함께 웃어줄 수는 있어도 함께 울어주기는 쉽지 않다. 당신이 지닌 슬픔의 매장량을, 나는 모른다. 그러므로 타인의 슬픔이란 난제 앞에서 나는 속수무책이다. 슬픔이란 층위에서 당신과 나는 타자다.

나는 끝내 네가 될 순 없지만, 내가 지금 살아서 네 곁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심장의 박동 소리. 서로의 왼쪽과 오른쪽이 포개져 함께 뛰는 심장. 어쩌면 이것이 너의 슬픔에 대해 내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 끝끝내 당신의 슬픔은 내게로 건너오지 못하겠지만, 그래서 나는 자주 무참할 테지만, 당신의 슬픔 곁으로 최선을 다해 가까이 가보는 것이다. 마치 울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울어야 할 일도 참 많은 세상. 너의 슬픔과 나의 슬픔은 그렇게 서로 포개지며 겨우 견뎌지는 것이다.

_ 무참하다: 당신은 모르는 슬픔 앞에서중에서

 

내가 느릿느릿 입원한 아버지를 찾아갔던 그날, 다행히 마지막을 알리는 선고는 없었다. 병원에선 며칠간 상태를 지켜봐야겠지만 어쨌든 퇴원은 가능할 거라고 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아버지는 삶의 끝자락을 향해가고 있었지만, 나는 애써 모른 척하기로 했다.

...... 병원을 워낙 자주 들락거리다 보니 아버지는 싱겁기만 한 병원 밥을 못 견뎌 했다. 대신 병원 로비에 있는 편의점의 인스턴트 음식에 입맛이 당긴다는 것이었다. 그날 나는 아버지를 모시고 편의점에 가서 인스턴트 비빔밥과 컵라면, 삼각김밥으로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아버지에게 대접한 마지막 밥이 되고 말았다. 나는 후회한다. 하필이면 그 누추한 식단이 아버지와의 마지막 식사가 되고 말았을까. 병원 안에 있는 고급 한정식이라도 함께 할 것을. 아버지가 떠나고 난 뒤, 편의점에 갈 때마다 나는 울컥 서러운 마음이 쏟아질 듯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그날 편의점 식사 자리에서 아버지는 그 어느 때보다 표정이 맑았다. 메뉴가 어떻든 멀리 있는 아들이 곁에서 함께 식사한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흐뭇했던 것이리라.

_ 후회하다: 다시는 되찾을 수 없는 마음에 대하여중에서

 

생각해 보면 그날의 벅찬 마음은 성장의 징표였는지도 모르겠다. 생의 한 계단을 올라서고 다음 계단으로 발을 내디딜 때의 가볍고도 초조한 발걸음. 벅차다는 것은 어떤 감정이 한껏 부풀어 올랐단 신호일 텐데, 벅찬 마음엔 풍선이 부풀 때처럼 아슬아슬한 긴장감도 있다는 것.

대학 신입생 시절 내 작은 일상을 깨뜨렸던 표절 의심 사건은 그래서 벅찬 성장의 이야기다. 그날의 벅찬 감정을 떠올리면 어쩐지 마음이 까슬까슬해진다. 마냥 기뻐만 할 수 없는, 잔뜩 움츠린 설렘이랄까. ‘벅차다는 우리말이 여러 뜻빛깔을 지닌 것도 그것이 성장에 관여하는 말이기 때문일 게다.

어떤 일로 기쁨이나 희망이 넘칠 때도, 어떤 일을 감당하기 힘들 때도, 우리는 똑같이 벅차다란 말을 쓴다. 기쁨으로 충만한 벅찬 순간이 지나고 나면 감당하기 힘든 벅찬 장벽을 마주하기도 하는 게 삶의 법칙이니까. 벅차게, 벅찬 만큼 생은 익어가고, 일상의 작은 틈에서 당신도 나도 그렇게 조금 성장한다.

_ 벅차다: 까슬까슬한 성장통의 마음중에서

 

그날 나는 분명히 보았다. 의사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병명이 불분명하다고 말할 때, 아버지 눈에 설핏 비쳤던 눈물을. 인간은 태어나서 부모 손에 이끌리다 다 자란 뒤엔 부모의 손을 이끌어야 하는 존재다.

힘들게 울음을 삼킨다는 건 실은 목 놓아 크게 울고 있다는 뜻이다. 나는 가까스로 눈물을 누르고 있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어쩐지 가엽다는 마음이 들었다. 적절한 비유인지 모르겠지만, 마치 어미 잃은 새끼 강아지를 바라보는 마음이랄까. 누군가로부터 어떤 연약함이 사무치게 감지되면, 내 마음은 어김없이 가여움에 가 닿는다. 연약함이란 존재의 한계이므로 쉽게 극복되기 힘든 본성이다. 그러므로 가여움이란 어쩔 도리가 없는 일 앞에서 쩔쩔매는 처연함이기도 하다. 울음을 참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일이 꼭 그랬단 말이다. 눈물을 끝내 누르고 있는 자의 표정 앞에서 나는 가여운 마음을 누를 길이 없었다.

_ 가엽다: 울음을 참는 자의 표정중에서

 

추천의 글

 

좋은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가. 나는 정강현 기자의 문장에서 좋은 사람을 발견한다. 책임감 있고 순수하며 사랑 많은 인간의 희망과 절망을 읽는다. 그의 희망과 절망은 어쩐지 나의 것들과 닮았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참혹한 세상을 애통해하고 가련한 것들에 공감할 줄 알며 소중한 것을 오롯이 애틋해하는 이 좋은 사람의 이야기를 많은 독자들이 사랑하리라 생각한다.

_ 김윤아(가수, 밴드 자우림’)

 

나 자신으로 향하는 문을 열기 위해 기꺼이 비행기에 오르는 사람이 있다. 책과 사람, 여행 등 만나고 헤어지는 일을 예사롭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낯선 세계 속으로 선선히 걸어 들어가는 사람이 있다. 몸을 경유해 각양각색의 마음을 살피는 사람이 있다. 작고 연약한 것들의 소리에 성심껏 귀 기울이는 사람이 있다. 바로 정강현이다. 그가 이 책에서 건져 올린 동사와 형용사는 하나같이 삶을 수놓는 것들이다. 그러나 그것은 지나치기 쉬운 감정을 직면하는 자에게만 제 비밀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사색하고 공감하고 성찰하고 때로 자책하기도 하면서, 정강현은 감정의 갈피를 잡고 마음의 밀도를 헤아린다. 항시 곁에 두고 심신이 시큰거릴 때마다 열어보고 싶은 책, 방문하고 싶은 도서관이다.

_ 오은(시인)

 

그의 단어를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그의 형용사와 부사를 사랑한다. 도무지 뻔하게는 못 사는 사람답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사람 모두가 겪는 일은 명사와 동사에 가깝다. 태어나고 성장해 직업을 가지고 가까운 죽음을 경험하는 그런 일들. 하지만 거기에 붙인 형용사나 부사는 그만의 것이다. 정강현 선배의 단어들은 예상치 못한 조합으로 등장해 불쑥 마음에 들어온다. 우연은 아니다. 그는 말할 때나 쓸 때나 기를 쓰고 단어를 골라내니까. 참으로 마음 깊숙이 내려가 쓰는 작가다.

이 책은 순전히 그만이 쓸 수 있는 단어의 모음집이다. 정확하게는 그 단어를 바로 그 자리에 위치시킬 수 있는 단 한 사람의 글이다. 우리는 누구나 아버지를 이미 잃었거나 잃게 될 사람들이지만 누구도 이 사람처럼 아름다울 정도로 아프게 쓸 수는 없다. 이 보편적 상실은 그가 적었기 때문에 읽는 사람의 박동을 바꾸는 일이 된다. 고르고 고른 단어 덕이다. 쓴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온 힘 다해 표현했는데, 그걸 읽은 우리는 각자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내 얘기를 털어놓은 희한한 기분이 된다. 이게 바로 정강현식 단어의 마법 같은 힘이다.

_ 김호정(중앙일보 음악 담당 기자, 오늘부터 클래식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