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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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스턴 S. 처칠
신간
윈스턴 S. 처칠
저자
강성학
역자
-
분야
정치/외교학 ▷ 정치/외교 일반
출판사
박영사
발행일
2019.10.30
개정 출간예정일
페이지
456P
판형
신A5판
ISBN
979-11-303-0854-8
부가기호
93340
강의자료다운
-
적립금 :
560원
부수 :
정가
28,000원

“선했건 악했건,
20세기의 모든 거대한 인물들 가운데
처칠이 인류에게 가장 소중했고
또 가장 호감 가는 인물이다.”
- 폴 존슨(Paul Johnson)


1965년 1월 25일 윈스턴 처칠(Winston S. Churchill)의 서거 다음 날 정치철학자 리오 스트라우스(Leo Strauss)가 미국 시카고 대학교에서 자신의 강의시간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처칠의 죽음은 정치학도들에게 자신들의 한계, 자신들이 하는 일의 한계를 건전하게 상기시킨다. 폭군은 자기 권력의 정상에 서있다. 꿋꿋하고 장엄한 정치가와 미친 폭군 간의 대조, 즉 가장 간결한 이 장관(spectacle)이야 말로 인간들이 언제든지 배울 수 있는 가장 위대한 교훈들 가운데 하나였다. 너무도 위대해서 비극이라고 부를 수 없는 처칠의 실패에 의해서 알게 되는 교훈도 못지 않게 계몽적이다. 히틀러에 대항한 인간의 자유를 위한 처칠의 영웅적 행동은 처칠의 잘못을 통해서가 아니라 스탈린이나 그의 계승자들에 의해서 제기되는 자유에 대한 위협을 증대하는 데 기여했을 뿐이라는 사실을 나는 의미한다. 처칠은 그리스와 미주리 주의 플턴(Fulton)에서 공개적으로 그리고 가장 현저하게 그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한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그의 행동과 연설보다 전혀 덜 중요하지 않은 것은 그의 글쓰기, 특히 무엇보다도 그의 <말보러>(Marlborough)라는 작품이다. 이것은 우리의 세기에 쓰여진 가장 위대한 역사에 관한 작품이다. 이것은 모든 정치학도들에게 필독서가 되어야 할 정치적 지혜와 정치적 이해의 무진장한 광산이다. 처칠의 죽음은 우리 학문의 한계를 상기시키고 또 그와 함께 우리의 의무를 상기시킨다. 우리에게 우리 자신과 우리의 학생들에게 정치적 위대성, 인간적 위대성, 인간적 탁월성의 정점들을 상기시키는 것보다도 더 높고 또 더 절박한 의무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 자신들과 타인들이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도록 훈련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무엇보다도 그들의 위대성과 비참함, 그들의 탁월성과 그들의 타락, 그들의 고결함과 그들의 승리, 그리고 그리하여 제아무리 현란해도 평범한 인물을 진정한 위대성으로 결코 착각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처칠의 위대성에 관한 성격이 이런 언급보다 더 간결하게 서술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사회과학이 되어버린 현대 정치학은 처칠 같은 위대한 정치지도자에 관해서 가르치거나 배우지 않는다. 정치적 영웅들은 너무도 우연적인 것이라서 정치과학(Political Science)의 연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오늘날 역사학에서도 위대한 영웅은 거의 사라져버렸다. 맑시즘과 프랑스 아날학파(Annales School), 소위 민중사관의 헤게모니 하에서 인간 개인은 아무리 위대해도 보다 큰 사회적 패턴 속에 포함시켜 버리거나 아주 낮은 차원에서만 개인의 역할을 인정한다.

오늘날 몰가치적 사회과학의 폭군적 패러다임의 관점에서 볼 때 “위대한 처칠의 연구”는 문제가 많은(?) 주관적 의견이며 편협한 가치 판단일 뿐이다. 그리하여 젊은이들은 대학 교육에서 처칠 같은 위대한 인물에 관해 배울 수 없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비록 “역사의 영웅”(the Great Man) 이론이 오늘날 심히 격하되었다고 할지라도 때로는 개인이 아주 중요하다. 처칠은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살고 또 생각하는 가에 대해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비록 그가 번영하는 자유주의의 서방세계를 창조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을 야만적 나치즘으로부터 구원했기 때문이다.

어려운 시대에 사람들은 일종의 종교적 메시아 같은 위대한 정치지도자, 정치적 영웅을 그리워하는 법이다. 오늘날 많은 한국인들도 어려운 시대 속에서 영웅의 등장을 염원한다. 그러나 우리는 영웅적 정치지도자의 출현이 거의 불가능하게 생각되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가 친숙한 정치지도자들은 일반적으로 영웅이 아니라 슈퍼스타(superstar)가 되기를 갈망한다. 슈퍼스타는 인정받으려고 애를 쓰는 반면에 영웅은 홀로 간다. 슈퍼스타는 합의를 열망한다. 그러나 영웅은 자기가 가져오는 것을 과업으로 보는 미래의 판단에 의해 자신을 정의한다. 슈퍼스타는 지지를 끌어내는 테크닉에서 성공을 추구하지만 영웅은 자신의 내적 가치들의 성장으로 성공을 모색한다.

그러므로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가 지적했듯이, 우리 시대는 윈스턴 처칠 같은 정치지도자를 마주치기가 어렵다. 널려 있는 슈퍼스타 같은 정치인들이 아니라 진정으로 영웅적 정치지도자를 만나려면 역사 속으로 들어가 역사적으로 공인된 영웅인 처칠을 찾아가야만 한다.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은 “매우 뛰어난 천재는 이미 난 길을 가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천재는 새로운 개척자이다. 그러나 영웅은 남들이 늘 하는 일을 아주 탁월하게 해내는 인물이다. 정치지도자가 늘 행하고 또 해내야 할 일은 모든 정치지도자가 직면하는 보편적인 과업이다. 그래서 천재에겐 스승이 없지만 영웅에겐 스승이 있다. 처칠은 우리에게 바로 그런 스승이 될 수 있다. 본서는 바로 그런 마음으로 작성된 것이다. 그리하여 본서의 주인공인 위대한 정치가 처칠을 통해 한국인들의 영웅에 대한 갈증이 간접적으로 어느 정도 해소되길 기대한다.

1919년 6월 28일 제1차 세계대전을 공식적으로 종결짓는 베르사이유 조약(the Treaty of Versailles)의 서명을 세계가 기록하던 바로 그날 전후세계에 대한 염려와 소련식 볼셰비즘의 성장을 두려워한 윈스턴 처칠은 러시아의 내전에서 차르 지지자들인 백색군대(the white army)를 지원하기 위해 러시아의 북방에 영국, 미국 그리고 일본의 군대들을 착륙시키는 동맹의 작전을 역설했다. 처칠은 베르사이유 조약을 ‘기이하고 괴물같다’고 부르면서 좋아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이 독일을 너무 지나치게 약화시킨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처칠은 볼셰비키들이 해체된 독일을 차지하려고 투쟁하면서 유럽에 치명적 힘의 진공상태를 남기게 될 것을 두려워했다. 볼셰비즘이 그것의 “요람에서 질식되는 걸” 보고 싶어했던 처칠은 베르사이유 조약을 전후 세계를 재창조할 잃어버린 기회로 보았다.

처칠은 1930년대 초부터 독일에서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의 정치운동을 면밀히 관찰했다. 그는 히틀러와 나치즘이 잠재하고 있는 위험성을 보았다. 그리고 1933년 처칠은 다가오는 위험을 모든 사람들에게 경고한 첫 번째 정치가였다. 1934년 2월 7일 처칠은 1920년대의 예산삭감으로 크게 축소되었던 영국 공군의 재건을 홀로 외롭게 역설했다. 같은 해 처칠은 국제연맹의 갱신을 촉구했다. 그러나 히틀러에 대한 처칠의 경고는 대체로 무시되었다. 당시 영국인들은 제1차 세계대전의 결과에 여전히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하여 영국은 나치스의 군사적 행진을 방관했고 처칠의 지각 있는 경고를 무시해버렸다. 처칠은 이 1930년대의 시기를 황야에서 헤매던 시기, 즉 황야에서 외로운 늑대처럼 홀로 울부짖던 시절로 묘사했다.

당시 영국에서 그는 유일하게 통찰력 있는 예언자였지만 트로이의 비극적 카산드라처럼 아무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당시 영국인들은 1938년에 출간된 처칠 연설문집의 제목(While England Slept)처럼 ‘환상적 평화의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잠자는 영국인들을 깨우고 방황하는 영국민들에게 그의 제2의 연설문집의 제목처럼 “피와 땀과 눈물”(Blood, Sweat and Tears)로 호소하여 히틀러와 단호히 맞서 히틀러와 나치스의 야만으로부터 서구문명과 민주주의를 구원한 처칠은 현대 리더십 연구의 선구자인 제임스 맥그리거 번즈(James MacGregger Burns)의 용어로 표현한다면 소위 “변환적 리더십”(transforming leadership)의 화신이었다.

21세기의 문턱에서 영국 자유민주당(과거 노동당) 정치인이며 직업적 역사가인 로이 젠킨스(Roy Jenkins)는 80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처칠의 정치적 전기를 펴냈다. 그리고 그 두꺼운 전기의 말미에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글래드스톤(Gladstone)이 작은 차이로 더 위대한 인간이고 분명히 인류의 보다 비범한 표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처칠의 전기를 쓰는 과정에서 나는 내 마음을 바꾸었다. 그의 모든 특이성, 그의 탐닉, 그의 간헐적인 유치함뿐만 아니라 옳든 그르든, 성공적이든 비성공적이든 간에 그의 인생 보다도 더 큰 그의 천재성, 그의 고집과 그의 개인적 능력을 고려하여 이제 나는 처칠을 영국의 수상관저를 차지한 가장 위대한 인간으로 기록하고자 한다.”

그러나 처칠은 단지 영국의 역사에서 최고의 정치지도자요 영웅으로 머물지 않았다. 지난 2003년에 영국, 독일,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폴란드 등 유럽 6개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19세기 이후 유럽 위인들에 대한 선호도” 조사에서 윈스턴 처칠이 1위를 차지하였다. 이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 서구문명과 자유민주주의를 야만으로부터 구원한 20세기 최고의 정치지도자이며 세계사적 영웅이었기 때문이다. 처칠이 리더십을 발휘하던 시기에 국제사회에서 영국의 위상을 고려한다면 그는 이미 세계 최고의 정치지도자였으며 동시에 최고의 전쟁지도자였다. 그는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과 소련의 스탈린 원수와 함께 히틀러의 나치즘과 일본의 군국주의와 싸워 승리를 거두었지만 소련과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을 윈스턴 처칠이 홀로 싸우며 견디어 낸 한참 후에, 즉 소련은 독일의 침략을 받고 난 후에 그리고 미국은 일본의 진주만 공격을 받은 후에, 그들에겐 무조건 수행할 수밖에 없는 전쟁을 치렀다.

오직 처칠만이 히틀러의 침략적 근성을 사전에 미리 간파하고 그것에 대해 경고하고 또 전쟁이 영국에 아주 불리하게 전개되는 상황 속에서 수상직을 맡아 절망에서 영국을 구하고 세계의 민주주의를 구원한 탁월한 영웅적 지도자였다. 처칠은 동맹국 지도자들 중에서 히틀러를 이기는 길을 안 첫 지도자였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히틀러와 싸운 유일한 지도자였다. 즉 오직 그만이 홀로서 인류 최대의 시련을 극복한 지도자였다.

정치지도자로서 처칠의 드문 풍부한 경륜은 개인적 경험과 주의 깊은 역사책들의 자율학습으로 얻어진 그의 군사문제에 관한 전문성이 정치가로서 그의 위대성에 본질적이었음을 보여주었다. 정치가는 군사적 지도자들을 지도하기 위해서 정치적 문제뿐만 아니라 군사적 문제에도 긴밀한 친숙성을 갖고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일반 대중이 그것에 대한 이유를 이해하는 일은 별로 없다. 정치가가 군사문제를 이해해야만 하는 이유는 전쟁철학자 칼 폰 클라우제비츠(Carl von Clausewitz)가 간단하고 정확하게 말했다: “전쟁은 그 자체의 언어를 갖고 있지만 그 자체의 논리가 없다.” 전쟁을 수행하는 명확한 방법들이 있지만 전쟁 그 자체는 정치적 목적을 지원하여 수행되어야만 한다. 군사력의 적용은 그것이 국가정책을 지원할 때에만 의미를 갖는다. 처칠이 자신의 제2차 세계대전의 회고록 제1권인 <몰려오는 폭풍>(Gathering Storm)에서 지적한 대로 최고의 정치지도자는 전반적인 전략적 목표에 대해 견해를 갖는 것이 긴요하다. 이 간단한 원칙을 지키지 못하는 실패는 행동의 혼란과 무익을 낳고 그리고 거의 언제나 후에 사태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

전반적인 전략적 목표들은 국가가 달성하려고 애쓰는 최고의 정치적 목표들이다. 정치가는 이 목표들을 표출하고 또 그것들을 달성할 책임이 있다. 국가의 전략은 전반적인 전략적 목표들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의 선택과 관련된다. 이것들은 외교적, 경제적, 심리적 그리고 군사적 수단을 포함한다. 군사전략은 전반적인 전략적 목표들을 달성하는 걸 돕기 위해 모든 전장에서 군사적 수단의 사용과 관련된 국가전략의 바로 그 부분이다. 군사적 전술들은 전반적인 군사전략에 봉사하는 현지화된 군사작전들과 관련된다. 전반적인 군사전략뿐만 아니라 이들의 현지화된 군사작전들은 보다 큰 맥락, 즉 전반적인 전략적 목표들의 오직 일부로서만 중요하다. 그 속에서 결정이 내려져야만 하는 카테고리가 높으면 높을수록 비록 그의 책임이 군사적 전술들의 것을 포함하여 어떤 카테고리도 배제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정치가의 책임은 그 만큼 더 큰 것이다.

역으로 군사 지도자들의 적절한 영향은 행동해야 할 규모를 축소시킨다. 처칠은 정치와 전략의 구별이 지위가 올라가면서 감소한다고 말했다. 정상회담에서 진정한 정치와 전략은 하나이다. 처칠은 군사지도자들의 개입이 최고지위에 부적합할 뿐만 아니라 현명하지도 못하다고 보았다. 군인들, 수병들 혹은 공군병사들이 정치에 개입하는 것은 언제나 위험하다. 그들은 지금까지 그들이 친숙한 것들과는 아주 다른 가치 영역에 들어가는 것이다.

정치적 및 군사적 문제들 모두에 전문성을 동시에 갖춘 처칠 같은 정치가만이 최고의 정치지도자로서 책임을 수행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군사보좌관들에 의해 주어지는 권고를 완전히 평가할 수 있었고 그리하여 군사적 고려는 국가의 전반적인 전략적 목표에 부응하는 적절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다른 어떤 현대 정치가에게서 보다도 더 처칠에게서 정치적 지혜와 군사적 능력의 다행스러운 일치가 가장 명백했다. 따라서 정치적 리더십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처칠의 연구가 가장 생산적이다. 처칠은 거의 70년 동안 자신이 스스로 리더십에 관해서 글을 썼을 뿐만 아니라 최고의 정치적 책임을 가진 지위에서 리더십의 원칙들을 적용할 기회를 가졌다. 행동하는 정치가로서 그는 정치가의 책임에 초점을 맞추었고 또 그리하여 언제나 발생한 모든 것이 필연적이었다는 환상을 피할 수 있었다. 그의 포괄적인 전략적 마음은 그가 영국의 수상임과 동시에 방위성 장관으로서 동시에 봉사했던 제2차 대전 중에 분명히 가장 중대했고 또 가장 칭송을 받았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윈스턴 처칠은 그의 유명한 연설 대목인 “피와 땀과 눈물”이라는 말과 “철의 장막”이라는 용어가 널리 알려져 있을 뿐이라고 해도 아주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마치 에이브러햄 링컨의 “민주주의란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라는 말만 주로 널리 알려진 경우와 비슷할 것이다. 이들은 어쩌다 저널리스트들이나 칼럼리스트들의 글에서 간혹 피상적으로 인용되고 있을 뿐이다. 그것도 처칠의 올바른 비전이나 위대한 리더십이 아니라 그의 유명한 수사학적 경구가 인용되는 정도이다. 왜냐하면 그들도 학창시절 처칠에 대해 공부할 기회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처칠의 역사에 관한 저작들, 특히 195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제2차 세계대전>(The Second World War)의 제1권 <몰려오는 폭풍>은 1930년대 히틀러에 대한 유화정책의 비판으로 아마도 국제정치학 분야에서 영원한 교훈서가 되었다. 그의 비판 목적은 제2차 세계대전의 비극이 얼마나 쉽게 방지될 수 있었을 지, 그리고 사악한 자의 악감정이 덕스러운 자의 위약함에 의해 어떻게 심화되었는 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가 선의의 유능한 역사학자들에 의해 형성된 ‘이 잘못된 판단의 이 슬픈 이야기’라고 부른 것은 그 전쟁이 실제로 “불필요한 전쟁”이었음을 입증하려는 것이었다. 그의 목적은 요컨대 미래세대에게 과거의 교훈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1930년대의 카산드라가 1940년대의 투키디데스(Thucydides)가 된 것이다. 즉, 처칠은 인류에 대한 전후 공산주의 폭정의 위험을 경고하는 예지적 선구자가 되었다. 그리하여 그의 경고에 따라 1930년대와는 달리 이번에는 미국의 주도하에 서방국가들이 공동으로 소련주도의 공산주의 위협에 대처하여 자유세계를 지켰다.

나에게 윈스턴 처칠에 관한 책을 내고 싶은 염원은 아주 오래된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 처칠의 전기 작가인 앤드류 로버츠(Andrew Roberts)가 밝힌 것처럼 처칠의 전기만 해도 1,010권에 달하고 제2차 세계대전을 다룬 수많은 책들이 처칠을 다루다 보니 오랜동안 처칠에 관련된 책들을 꾸준히 사보기에도 벅찼다. 고려대학교 재직시 수십 년간 20세기 국제관계사를 강의하면서 종종 처칠을 칭송했지만 처칠에 관한 이런 저런 책을 가끔 사보기만 할 뿐 교수생활에서 개인적 관심사인 처칠의 연구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따라서 내 스스로 처칠에 관한 저서의 집필은 감히 엄두를 낼 수 없었다. 결국 2014년 2월 고려대학교에서 퇴임 후 시간적으로 보다 자유로워지면서 처칠에 관한 나의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퇴임 후 내 인생의 주사위가 묘하게 돌다 보니 나는 위대한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에 대한 저서들을 먼저 내게 되었다. 그러나 처칠에 관한 나의 연구는 간헐적이지만 계속되었다. 약 2년간의 준비를 한 뒤 내가 이사장으로 있는 한국지정학연구원에서 리더십연구의 일환으로 2017년 1월부터 셋토네(매달 셋째 주 토요일 오후 4시) 심포지엄을 열고 윈스턴 처칠의 생애에 대한 일종의 공동연구를 시작하였다. 첫 교재로는 처칠의 공식 전기 작가인 마틴 길버트(Martin Gilbert)의 <Churchill: A Life>를 택했다. 그리고 2018년에 로이 젠킨스(Roy Jenkins)의 <Churchill>이 두 번째 교재가 되었다. 이렇게 2년간 처칠에 관한 집중적인 심포지엄을 마치자 그에 관한 저서의 집필을 향한 욕망이 새롭게 솟아났다. 그래서 2019년 정월 초부터 집필에 관한 집중적인 준비작업과 조금씩 글쓰기가 시작되었다.

본서는 윈스턴 처칠의 전 생애를 다룬 전기가 아니며 더구나 제2차 세계대전의 전쟁사도 아니다. 본서는 1930년대 당시 수많은 영국의 슈퍼스타 정치인들 속에서 유독 홀로 가는 영웅의 자질을 뚜렷이 보여준 처칠의 카산드라 시절을 출발점으로 하여 개전 후 그가 수상이 되어 보여준 놀라운 정치적 리더십과 전시에 보여준 탁월한 군사전략적 안목과 전후 세계질서를 위한 여러 주요 역사적 회담에서 보여준 탁월한 협상능력 그리고 그 후 평화시에 보여준 처칠의 위대한 리더십의 발휘과정 등을 다룰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본서는 처칠이 외로운 카산드라에서 영국의 수상이 되어 보여주는 탁월한 정치지도력, 그리고 그가 루즈벨트와 스탈린과의 정상회담에서 보인 달인의 외교 솜씨, 전쟁 수행에서 보여준 전략적 주도, 전쟁말기에 평화의 전략가로서의 안목과 그리고 전후세계에 대한 소련 공산주의의 위험을 경고하는 선구자로 시간적 흐름과 함께 추적하는 특정된 시기(1932-1955), 즉 그가 독일의 히틀러와 나치즘의 위험을 처음으로 경고하던 때부터 그가 두 번째 수상직을 사임할 때까지 일종의 “처칠의 전쟁과 평화의 드라마 같은 것”을 제시하려고 시도할 것이다. 그리하여 본서가 한국의 국가적 어려운 시기에 역사적으로 국가적 위기를 극복한 영웅, 위대한 정치적 지도자에 관한 하나의 중대한 본보기를 제시하여 한국인들의 정치적 성찰을 위한 기회가 되길 기대한다.

본서가 나오기까지 많은 도움이 있었다 우선 2년 동안 처칠의 생애를 다루는 셋토네 심포지엄에 즐거운 마음으로 꾸준히 참석하여 처칠 연구에 활력을 넣어준 모든 셋토네 심포지엄 회원들과 이 심포지엄이 중단없이 계속될 수 있도록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은 한국지정학연구원의 후원회장인 이영석 박사에게 깊이 감사한다. 또한 지난해 말까지 극동대학교에서 지금은 없어졌지만 3학기 동안 교양과목인 “지도자와 리더십” 과목을 가르치면서 다른 지도자들과 함께 윈스턴 처칠의 리더십에 대해 강의했던 경험도 본서의 집필에 도움이 되었다. 그런 강의 기회를 주신 극동대학교 류기일 전 총장님에게 감사한다.
끝으로 본서의 집필을 위해 새로운 노트북을 준비해준 막내아들 강승온 박사에게 고맙다. 그리고 언제나 변함없이 집필 내내 틀린 철자법을 고쳐주면서 온갖 내조에 헌신해 준 아내 신혜경 여사에겐 본서를 헌정하면서 다시 한번 감사한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아내의 헌신적 내조 없이는 내가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없었을 것임을 나는 주저없이 고백한다. 끝으로 본서의 출간을 위해 수고해 준 한국지정학연구원 제1연구실장 김연지 박사와 교정작업을 포함하여 본서 출판의 전과정에서 헌신해 준 수석연구원 모준영 박사에게 깊이 감사한다.


2019년 10월 15일
구고서실(九皐書室)에서
강성학

강성학(姜聲鶴)

 고려대학교에서 정치학 학사 및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모교에서 2년간 강사를 하다가 미 국무부 풀브라이트(Fulbright) 장학생으로 도미하여 노던 일리노이 대학교(Northern Illinois University)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그 후 1981년 3월부터 모교의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평화연구소 소장, 교무처장 그리고 정책대학원 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저자는 1986년 영국 외무부(The British Foreign and Commonwealth Office)의 펠로우십(Fellowship)을 받아 런던정치경제대학(The London School of Economics and Political Science)의 객원교수를 역임한 바 있으며, 1997년에는 일본 외무성의 국제교류기금(Japan Foundation)의 펠로우십을 받아 도쿄대학의 동양문화연구소에서 객원연구원 그리고 2005년 말과 2006년 봄학기에는 일본 와세다 대학의 교환교수를 역임하였으며, 2017년부터 2019년 봄학기까지 극동대학교 석좌교수였다. 또한 제9대 한국 풀브라이트 동문회 회장 및 한국의 영국정부장학수혜자 모임인 한국 셰브닝 동창회 초대 회장을 역임하였다. 그동안 한국국제정치학회 상임이사 및 한국정치학회 이사, 한국유엔체제학회(KACUNS)의 설립 사무총장과 제2대 회장을 역임하였고 이것의 모태인 미국의 유엔체제학회(ACUNS)의 이사로 활동하였다.

 저서로는 2011년 영국에서 출간한 영문저서 《Korea’s Foreign Policy Dilemmas: Defining State Security and the Goal of National Unification》(425쪽. 2017년 중국 사회과학원 출판사가 번역 출간함)을 비롯하여 1995년 제1회 한국국제정치학회 저술상을 수상한 《카멜레온과 시지프스: 변천하는 국제질서와 한국의 안보》(688쪽)와 미국의 저명한 외교전문지인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에 그 서평이 실린 데 이어 1999년 문화관광부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되기도 한 《이아고와 카산드라: 항공력 시대의 미국과 한국》(807쪽) 등이 있다. 이 외의 저서로는 그의 최대 야심작 《시베리아 횡단열차와 사무라이: 러일전쟁의 외교와 군사전략》(781쪽) 및 《소크라테스와 시이저: 정의, 평화, 그리고 권력》(304쪽), 또 한동안 베스트셀러이기도 했던 《새우와 고래싸움: 한민족과 국제정치》(402쪽)가 있다. 또한 2007년 대한민국 학술원의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된 《인간神과 평화의 바벨탑: 국제정치의 원칙과 평화를 위한 세계헌정질서의 모색》(756쪽), 《전쟁神과 군사전략: 군사전략의 이론과 실천에 관한 논문선집》(446쪽, 2014년 일본에서 번역 출간됨), 《평화神과 유엔 사무총장: 국제평화를 위한 리더십의 비극》(328쪽, 2015년 중국에서 번역 출간됨), 《무지개와 부엉이: 국제정치의 이론과 실천에 관한 논문선집》(994쪽)을 비롯하여 지난 33년 간의 교수생활 동안에 총 33권(본서의 말미 저서 목록을 참조)에 달하는 저서, 편저서, 역서를 냈다. 저자는 한국 국제정치학자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연구주제인 “전쟁”, “평화”, “한국외교통일” 문제들에 관한 각기 집중적 연구결과로 볼 수 있는 《시베리아 횡단열차와 사무라이》, 《인간神과 평화의 바벨탑》 그리고 《카멜레온과 시지프스》라는 3권의 저서를 자신의 대표적 “학술저서 3부작”으로 꼽고 있다. 아울러 2013년 《평화神과 유엔 사무총장》의 출간으로 “인간神”, “전쟁神”, “평화神”이라는 일종의 “神”의 3위일체를 이루었다. 현재는 고려대학교 명예교수로서 그리고 한국지정학연구원의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 활동의 일환으로 그는 나라와 문명을 위기에서 구한 역사적으로 위대한 정치지도자들(윈스턴 처칠 등)의 리더십을 논의하는 셋토네(매월 셋째 주 토요일 4시) 심포지엄을 주관하고 있다.

Ⅰ 프롤로그
Ⅱ 황야에 홀로선 반-나치의 카산드라
Ⅲ 위대한 정치가
Ⅳ 정상회담의 창설자
Ⅴ 장군들을 지휘하는 군사 전략가
Ⅵ 평화의 전략가
Ⅶ 다시 반-공산주의의 선구자로
Ⅷ 위장된 축복 속에서
Ⅸ 처칠의 위대한 리더십의 본질과 덕목들
X 에필로그

부록
1. 셋토네 심포지엄 취지문
2. 한국지정학연구원 셋토네 심포지엄 개시 담론
3. 윈스턴 S. 처칠의 약력
4. 윈스턴 S. 처칠의 저서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