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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조선언론 통제사(제2판)
개정판
일제강점기 조선언론 통제사(제2판)
저자
이연
역자
-
분야
사회학/미디어/언론
출판사
박영사
발행일
2020.08.31
개정 출간예정일
페이지
642P
판형
크라운판
ISBN
979-11-303-1102-9
부가기호
93070
강의자료다운
-
정가
34,000원

제2판 2020.08.31

초판 2013. 10. 31.


2020년 8월 4일,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과 관련해 우리나라 법원은 신일본제철 자산에 대한 강제집행절차에 들어가게 되었다. 일본 또한 보복조치로 2차 규제를 예고하면서 한‧일 양국은 1965년 국교정상화 이래 최악의 대립상태에 놓여 있다. 마침, 문재인 대통령도 8․15 경축사에서 “우리 정부는 언제든 일본 정부와 마주 앉을 준비가 돼 있다”고 언급하면서, 문제해결을 위해 양국정부의 공동 노력을 촉구했다.
그렇다, 한일관계는 양국정부가 공동으로 함께 노력해서 해결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과거 한‧일간 교류가 가장 긴밀했던 1998년 ‘김대중‧오부치 케이조小淵恵三 교토 공동선언’에서 보았듯이 ‘21세기 파트너십’ 정신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우리가 일본과의 관계에서 진정으로 승리하기 위해서 외교관계를 단절하고 대립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보다 더 깊이 연구하고 분석하여 궁극적으로는 극일하는 길이다.

2012년 12월 아베신조安倍晋三 정권이 재등장한 이래 한일 양국관계는 마치 마주보고 달리는 열차와도 같다. 특히 일본의 ‘종군위안부 문제’나 ‘극우 세력의 재특위(재일조선인특별영주권폐지주장) 활동 방치’ 등으로 양국의 불신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무엇보다 일본은 2019년 7월 우리나라를 대상으로 불화수소 등 반도체 핵심 소재 3개 품목에 대해 전격 수출 규제를 단행한 바 있다. 우리도 이의 부당성에 대응해 WTO에 제소하는 한편, 지소미아(GSOMIA) 협정연장에 거부의사를 표명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민간 차원에서도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나면서 마침내 양국관계는 최악의 냉각상태에 직면해 있다. 우리가 극일하기 위해서는 지금과 같이 순수한 반일감정이나 애국심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과거 1910년, 조선이 패망하던 경술국치 때도 애국자들은 차고 넘칠 정도로 많았지만 일본의 만행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물론 당시 조선의 국력 자체가 일본에 미치지 못한 부분도 있지만, 일본을 좀 더 철저히 연구하고 분석하여 사전대비를 잘 했어야 했다는 아쉬움은 남는다.

현재 우리가 일본과 대립적인 국면에서 극일하기 위해서 분석해야 할 부분은 일본의 현재뿐만 아니라 일본의 과거이다. 과거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압적으로 통치한 사실은 부정할 수 없고, 이는 일본에게도 도덕적․윤리적인 취약점이자 급소이다. 우리가 일본의 과거 만행을 단순히 감정적으로만 비판할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사료를 바탕으로 논리적으로 따지고 국제사회에도 진실을 알린다면, 일본으로서도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필자는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극일할 수 있는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한‧일간 문화교류가 가장 활발했던 시기는 1998년 김대중‧오부치 케이조小淵恵三 교토 공동선언 이후 일본의 대중문화가 개방되었을 때이다. 그러나 2012년 8월 10일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방문에 이어 8월 14일 다시 일본천황의 사과발언 요구로 양국관계는 한층 대립과 불신이 심화되었다. 또한, 2012년 12월 17일 아베정권이 재출범하면서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 수정과 종군위안부 강제동원 부인 등으로 일제 식민지 역사는 점점 은폐되어 가고 있다.
그동안 중국이 G2로 새로 등장함과 동시에 미․중간 무역 분쟁, 그리고 북한의 제6차 핵실험, 2017년 문재인 정부의 새 출범 등으로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인 국제정치상황은 급변하고 있는 상태다.

과거 박정희 정권시대나 김영삼, 김대중 정부 시절에도 일본과의 마찰과 대립은 조금씩 있어 왔지만 양국 간의 공동이익과 우호증진이라는 큰 틀의 목표 앞에서는 모두가 이해를 같이했었다. 박정희,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 세 사람 모두 식민지시대에 교육을 받은 소위 일본어 교육 세대다. 그러나 이명박, 노무현, 박근혜, 문재인 대통령은 일본어 세대가 아닌 비 일본어 세대에 속한다. 일본도 마찬가지로 미야자와 키이치宮沢喜一 수상(1991.11.5~1993.8.9)을 끝으로 일제 강점기에 교육을 받은 세대가 집권하던 시기는 이미 끝이 난 셈이다.

일본의 정치가들 중에 자신이 직접 일제 강점기의 제국교육을 경험한 통치자들은 대체로 일본의 과거사를 부정하지 않았다. 그 예로 1993년 8월 미야자와 총리 당시 관방장관이었던 고노 요헤이河野洋平(河野 太郎아버지)가 종군위안부에 대한 일본군의 강제성을 인정해 사과와 반성의 담화를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이후에 교육받은 세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 아베 신조安倍晋三,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아소 타로麻生太郎,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간 나오토菅直人,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 등으로 이어지는 제국주의 역사를 경험하지 못한 비제국주의 세대가 집권하면서 한일관계는 다시 대립과 불신이 심화되어 가고 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의 원인이 있다고 본다. 먼저,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교육세대는 그동안 양국 공히 과거 일제 강점기의 역사적인 인식을 서로 공유하면서 상호 타협과 협력으로 외교관계를 유지하여 왔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이후, 전후 세대인 단카이 세대(1947년~1949년 사이 베이비붐)가 정치권에 등장하면서 과거의 일제 강점기 통치시대에 관한 역사 인식은 제대로 공유하지 못하는 상태다. 현실적으로 서로 실리만 추구하다 보니 양국관계는 대립과 마찰이 깊어지고 있다. 특히, 한국은 역사와 명분을 중요시하는 민족인 데 반해, 최근 일본의 정치 지도자들 대부분은 전후 세대로 역사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았기 때문에 역사와 명분인식이 부족한 현실주의자가 많다. 따라서 이들은 대체로 일제 강점기의 역사적 가해사실에는 모른 척 외면하고 회피하려 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문제시되는 부분이 과거 35년 동안 일제의 조선통치에 대한 일본정부의 진정한 사과와 반성이다. 예를 들면, 종군위안부 문제나 독도 영유권 문제,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등이 외교 마찰의 가장 주된 원인이 되고 있다. 이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보다도 1차적으로 일제강점기 조선통치에 대한 우리나라의 연구부족에서 온 것이다. 만시지탄이 있지만, 당시 일제 식민지통치에 대한 진실규명 차원에서라도 지금 양국이 집중적으로 연구하여 근본적인 매듭을 풀어야만 한다. 이러한 근본적인 매듭을 풀지 않았기 때문에 매번 한국의 대통령이나 일본 수상이 새로 선출될 때마다 한일관계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처음부터 새로 논의해야 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따라서 한일 양국이 근본적인 매듭을 풀기 위해서는 과거의 역사를 공유하고 존중하며 진실규명과 화해를 위해서도 진지한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본서는 이를 위해서 일제강점기 조선통치사 중에서도 조선언론통제사 부분에 관한 자료를 집중적으로 수집․분석해 보았다. 필자는 1984년 일본에 유학한 이래 일본에서 조선언론통제사 관련 연구 자료를 찾기 위해 35여 년간 백방으로 뛰면서 자료를 수집․분석했다. 특히 본서에는 처음으로 국내에 소개되는 문건들도 많다. 일본정부는 1980년대 후반부터 30년을 주기로 정부관계 공문서 공개정책에 따라 계속해서 역사적인 자료들도 공개하고 있다. 그 자료들 중에서 최근에 공개한 조선총독부의 언론정책이나 언론통제에 관한 자료들은 거의 수집하였다.
그 중 메이지明治 시대에 관한 자료는 도쿄대학 메이지 신문잡지문고東京大学明治新聞雑誌文庫에서 수집하였고, 이노우에 가쿠고로井上角五郎와 후쿠자와 유키치福沢諭吉에 관한 자료는 케이오 기주쿠대학 도서관慶応義塾大学図書館, 사이토 마코토斎藤実 조선총독에 관한 문서는 일본국회도서관 헌정자료실国会議事図書館憲政資料室, 식민지 관련 교육자료国文学資料館 및 조선총독부 관련 자료는 우방협회友邦協会, 学習院大学アジア文化研究所, 한일 외교자료문서는 일본 외무성 외교사자료관外務省の外交資料館, 영일동맹 및 한일합병 자료는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도서관Oxford大学図書館에서 직접 수집하였다. 또한, 본서는 그동안 필자가 쓴 󰡔日本統治下朝鮮における言論統制史󰡕(1991, 上智大博士學位論文) 및 󰡔朝鮮言論統制史󰡕(2002, 日本 信山社), 󰡔日帝下의 朝鮮情報委員會의 역할󰡕(1993, 나남), 「일제하 경성방송국(JODK)의 설립배경과 그 역할」(2011, 한울) 등의 자료나 논문을 바탕으로 번역, 또는 수정 보완하여 새롭게 개정판을 내게 되었다.
그 밖의 자료로는 특히 곤도 켄이치近藤釼一 전 󰡔京城日報󰡕 논설위원의 자택을 방문해 생전에 취재한 생생한 육성 인터뷰 내용 등도 포함돼 있다. 곤도 논설위원은 1990년 인터뷰 당시 91세가 되는 고령이었기 때문에 부인이 동석하기도 했으나 아주 귀중한 인터뷰가 되었다. 또한, 본서는 일제의 탄압이나 언론통제에 대한 자료를 분석함에 있어 될 수 있는 대로 감정적인 평가나 주관적인 분석은 자제하고 객관적인 자료에 입각해 실증적으로 분석하려고 노력했다. 또한, 기존의 관련 자료라 할지라도 재검토 및 재분석하여 수치상의 오류나 오역 등에 대해서도 수정하는 한편, 같은 내용이라도 한일 양국의 자료를 비교분석해서 최대한 오류를 줄이도록 노력했다. 특히 일제 강점기의 자료들 중에서도 메이지明治 시대의 자료나 신문들 중에는 난해하고 해독이 어려운 자료들이 많아,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원문을 의역하거나 직역하여 원래 의미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세하게 풀어서 기술했다.  

다음은 본서에서 밝힌 새로운 자료나 연구 성과 및 그 특징에 대해서 몇 가지 언급해 두기로 한다.

(1) 본서는 일제하 조선통치사 분야 중에서 일본에 있는 언론통제 분야의 자료는 거의 수집․발췌하여 체계적으로 분석하였다. 종래에는 막연하게 언론통제라고 말했는데, 본서에서는 언론통제에 대한 정의와 영역, 그리고 ‘무엇을 언론통제라고 하는가?’라는 문제에서부터 시작하여 역사적인 사례를 들어가면서 시기별로 언론통제를 명확하게 매듭지어 설명하고자 노력했다.
(2) 한국 최초의 근대 신문인 󰡔한성순보󰡕와 󰡔한성주보󰡕의 창간배경이나 창간과정에 대해 일본 측의 자료를 통해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은 자료들을 발굴해 소상하게 밝히고 있다. 특히 한성순보 창간배경에 관련한 이노우에 가쿠고로와 후쿠자와 유키치 등에 대한 일본 측의 추적 자료는 근대 한국언론사 연구에 있어서 최초로 발굴해 소개하는 귀중한 자료들이다.   
(3) 일본이 대 조선 언론정책을 수립함에 있어서 대만(臺灣)의 식민지통치정책 사례를 조선에 적용했다는 점도 처음으로 밝혔다. 대만의 척식국부총재拓殖局副総裁였던 고토 신페이後藤新平는 「대만통치구급안台湾統治救急案」에서 대만의 언론통제정책을 소상하게 제시하고 있다. 그는 후일에 「한일병합 준비 위원회 위원」이 되었고, 나중에 그 정책을 조선에 폭넓게 활용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1925년에 NHK의 전신인 일본방송협회(日本放送協會)를 설립하게 되는데, 그 후 일본방송협회의 프로그램을 경성방송국에까지 중계로 배급할 뿐만 아니라 만주지역까지 프로그램을 송출하게 된다. 
(4) 영일동맹(Anglo­Japanese Alliance)에 관한 자료는 영국 옥스퍼드대학 도서관에서 직접 발굴한 자료들로 한국이나 일본에도 잘 알려지지 않은 귀중한 자료들이다. 영일동맹관련 언론 분야는 한국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분야다. 신사의 나라라 불리는 영국도 당시에는 영일동맹에 의해서 사실상 일본의 조선통치를 승인하였고, 일본은 이 조약에 의해서 조선의 식민통치에 대한 결정적인 기반을 마련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히고 있다. 뿐만 아니라, 1902년 2월 14일 저녁, 일본정부의 주도로 도쿄에서는 4시간 동안 영일동맹을 축하하기 위해 시가행렬이 진행된다. 도쿄시가지에서는 전국에서 올라온 상공인들에 의해 대대적으로 횃불행렬 퍼레이드가 진행되는데, 여기 행진 당시 불려진 노래 가사를 보면, 사실상 조선의 식민 지배를 통한 중국진출의 찬가였음이 처음으로 밝혀졌다. 
(5) 조선에서 강력하게 언론탄압정책을 실시한 테라우치 마사타케寺内正毅 조선총독은 무관으로 언론에는 문외한이었다. 그러나 그를 지지한 야마카다현山形県 출신 카츠라 타로桂大郎 총리,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 야마카타 아리토모山県有朋 등의 당시 같은 파벌인 일본정계의 거물급 인사들이 그를 적극 지지했다. 게다가 테라우치는 당시 카츠라 타로桂太郎 총리대신을 적극 지지하고 있던 󰡔국민일보国民新聞󰡕 사장 도쿠토미 소호徳富蘇峰를 󰡔경성일보󰡕 감독으로 초빙하여 언론 통폐합을 주도했다는 사실도 밝혔다.
(6) 테라우치寺内 총독의 강압적인 언론탄압은 물론 윌슨의 자결주의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조선민중의 맹렬한 반발에 의해 결국 「3‧1운동」으로 이어진 점과, 조선의 언론통제가 과하다는 세유카이의 하라 다카시原敬 총재와 도쿄제국대학 요시노 사쿠조吉野作造 교수 등의 비판으로 인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또한, 사이토 마코토 총독이 유화정책으로 「문화정치」를 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 속에 놓이면서 󰡔조선일보󰡕, 󰡔동아일보󰡕, 󰡔시사신문󰡕 민간 3지紙가 창간되는 과정도 소상하게 밝히고 있다.
(7) 1931년 만주사변과 1937년 중일전쟁을 통해 일본은 조선을 대륙전쟁의 병참기지로 삼으면서, 사상통제 및 언론통제를 보다 더 엄격하게 단속하는 한편, 법적‧제도적으로도 전쟁 물자를 엄격하게 통제해 나간다. 구체적으로는 ①불온문서단속령 ②국가총동원법 ③신문지법 ④신문지규칙 ⑤출판법 ⑥치안유지법 ⑦조선사상보호관찰령 등 각종 법규 또는 제도를 만들어 언론통제내지는 사상통제까지도 강화해 나갔다. 뿐만 아니라, 일본이 설치한 ‘조선중앙정보위원회’가 언론통제에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에 대한 분석도 자세하게 밝혔다. 조선 중앙정보위원회는 당초 정보 및 개발선전에 관한 중요사항의 조사‧심의 등을 목적으로 설립되었으나, 실제로는 조선민중들에게 프로파간다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치는 한편, 모든 통치정책이나 언론통제정책 실행에 주안점을 두고 있었다. 본서에는 「조선중앙정보위원회」의 조직과 운영 규칙, 역할 등에 대해서 소상하게 밝히고 있다.
(8) 태평양전쟁 발발과 함께 언론통제는 점점 더 엄격해지는데 당시 언론은 총독부가 조직적으로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었다. 그 예로 「조선총독부출판통제협의회」, 「출판물용 양지 사용규정 요강」 등의 기구나 「조선임시보안령 및 동령 시행규칙」 등에 의해서 일제의 반식민지 언론이나 출판을 철저하게 통제하는 과정을 당시 자료들을 통해서 처음으로 밝히고 있다. 
(9)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경성방송국’에 관한 희귀한 자료들도 일본의 고서점이나 NHK방송문화연구소, 일본국회도서관, 외교사 자료관 등에서 수집해 상당 부분 처음으로 밝히고 있다. 특히 초기 방송국에서 근무한 한국인 종업원들의 이름이나 아나운서 이름 등이 잘못 기록된 부분도 원문을 통해 바로잡았다. 나아가서 재정 분야의 비밀자료도 발굴해 소개하였다.
(10) 본서는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 기관지였던 󰡔경성일보󰡕의 사사社史인 󰡔경성일보사지京城日報社誌󰡕를 처음으로 발굴해서 당시 언론통제에 관한 귀중한 자료들을 국내에 소개하고 있다. 이는 경성일보의 창간취지나 목적, 종사자 등 자세한 기록물까지 밝힐 수 있는 귀중한 자료들이다.

이상 본서는 일제의 조선통치사에 관한 수십만 건의 자료와 문건을 수집․분석하여 「일제 강점기의 조선 언론통제사」로 집중적으로 정리해 보았다. 특히 미국과 영국에서 일어난 「조선동정자회」의 활동 등도 소개하고 있다. 나아가서 일제의 조선 언론통제 정책을 일본의 국내외적인 정세와 함께 조선의 국제정세, 또한 당시의 관련 인물들에 대한 철저한 검증과 함께, 법과제도, 조직적인 측면 등의 관계를 종합적으로 분석하였다.

초판에 이어 재판에 즈음해 독자 여러분들의 이해를 돕고자 일본인의 이름이나 지명 등은 발음 그대로 표기하고 일본어 원문도 병기해 두었다. 특히, 메이지明治 시대의 난해한 자료는 일본어 원문 이외에 관련 해설도 첨가하였다. 이 밖에도 단순 문구수정 뿐만 아니라 관련 내용을 추가하는 등 초판에서 미진하였던 부분들을 본 판에서 상당 부분 보완하였다.

본서가 있기까지 필자는 일본에는 수많은 학자들이나 전문가, 언론인, 출판관계자들로부터 귀중한 자료와 조언을 받았으며, 이를 바탕으로 10여 년 동안 번역과 자료 분석 등을 거듭해 오다가 늦게나마 완성을 하게 되었다. 이제 35년간이나 미뤄오던 숙제를 마침내 다 끝내게 됐다는 마음에 홀가분한 느낌이 든다. 그동안 1984년 필자가 일본 조치대학上智大學 대학원 신문학과에 유학한 이래 지도교수로서 역사적 사료의 취급방법에서부터 연구자의 자세에 이르기까지 세심하게 지도해 주신 하루하라 아키히코春原昭彦(上智大学名誉教授‧前日本新聞学会会長) 교수님을 필두로, 학문적으로뿐만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던 다케이치 히데오武市英雄(上智大学名誉教授‧前 日本매스커뮤니케이션학회회장) 교수님, 구체적인 논문 기술방법 등까지 자세하게 조언해 주신 스즈키 유가鈴木雄雅(上智大学)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 드리고자 한다. 특히 본고의 집필에 있어서 󰡔京城日報社󰡕의 감독인 도쿠토미 소호徳富蘇峰에 관련된 자료나 일본의 정보위원회情報委員会의 귀중한 자료뿐만 아니라 일본을 더욱 비판해 달라고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던 도쿄대학명예교수東京大学名誉教授 고 우치카와 요시미内川芳美(前日本新聞学会会長‧東京大学新聞研究所所長) 교수님의 영전에도 삼가 감사의 말씀을 고하고자 한다. 또한, 관동대지진과 언론통제에 관해서는 전 도쿄대학東京大学 히로이 오사무広井脩(社会情報研究所所長) 교수님, 그리고 언론법에 관해서는 하마타 준이치浜田純一 전 도쿄대학東京大学(前社会情報研究所所長) 총장님, 도쿄대학東京大学‧조치대학上智大學 공동세미나 등에서 신세를 진 도쿄대학東京大学 미즈코시 신水越伸 교수님께도 본서를 통해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그 밖에도 세이케이대학成蹊大學의 오쿠노 마사히로奥野昌宏(成蹊大学) 교수님, 나카에 게이코中江桂子(成蹊大学) 교수님, 그리고 일본 방송의 산 증인 가와타케 카즈오川竹和夫(東京女子大学) 교수님 영전에, 언론법학자이신 이시무라 젠지石村善治(前長崎大学学長) 교수님, 미디어사연구회 아리야마 테루오有山輝雄(東京経済大学 교수) 회장님, 가나야마 츠토무金山勉(立命舘大学) 교수님 등 많은 교수님들께 본서를 통해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필자의 유학시절부터 현재까지 공사에 걸쳐 귀중한 연구 장소인, 조치대학上智大學의 오토 요시히로音好宏 교수님, 이시카와 사카에石川旺 교수님께도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자 한다. 또한 필자의 박사학위 논문을 기꺼이 출판해 주신 신잔사信山社의 와타나베渡辺左近 사장님에게도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코로나 19’라는 국가적인 재난상황 속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모쪼록 모든 국민이 합심하여 유례없는 재난상황을 잘 이겨내기를 소망한다. 또한, 어려운 출판사정에도 불구하고 학술도서인 본서의 개정판을 주저하지 않고 승낙하여 주신 박영사 안종만 회장님과 안상준 대표님, 이영조 차장님, 오치웅 대리님, 그리고 마지막까지 교정 작업으로 수고해 주신 조보나 대리님께도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자 한다.



2020년 8월 15일 영등포 서재에서
이  연


이연(李鍊)
이연 교수는 현재 선문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 학부 명예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사)한국재난정보미디어포럼 회장과 재난방송중앙협의회위원을 맡고 있다. 그가 일제하 조선의 언론통제에 관해 연구하게 된 것은 1984년 日本 조치대학(上智大學: Sophia Univ.)대학원 신문학연구과에 유학하면서부터이다. 특히 도쿄대학東京大学 히로이 오사무広井脩 교수와 ‘관동대지진과 조선인학살사건’을 공동연구하면서 국가위기관리와 언론통제 정책 연구에 주력하게 된다. 그 후 上智大學 석사, 박사과정을 졸업하면서 일제하 언론통제 연구에 전념한다. 경력으로는 선문대학교 사회과학대학장, 중앙도서관장, 행정대학원장, 대학언론사 주간, 언론중재위원, 국민안전처 기획위원, 행정안전부 기획위원 및 자문교수, 행정안전부 중앙평가위원, 소방방재청 자문교수, 기상청 자문교수, 日本 上智大學 신문학연구과 객원교수, NHK 자문교수(닛포로) 등이 있다.

〈저 서〉
∙『위기관리와 커뮤니케이션』(2003, 학문사)
∙『일본의 방송과 방송문화사』(2006, 학문사)
∙『위기관리와 매스미디어』(2007, 학문사)
∙『정부와 기업의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2010, 박영사)
∙『국가위기관리와 재난정보』(2016, 박영사)
∙『신문, 텔레비전의 소멸』(2010, 아카넷, 역서)
∙『일본의 케이블TV』(1997, 영풍문고: 공저)
∙『일본 대중문화 베끼기』(1998, 나무와 숲: 공저)
∙『朝鮮言論統制史』(2002, 日本 信山社)
∙『グロ-バル社會とメデイア』(2003, ミネルバー: 共著)
∙『サッカー文化の構図』(2004, 道和書院: 共著)
∙『マスㆍメディアと冷戦後の東アジア』(2005, 学文社: 共著) 
∙『メディアと文化の日韓関係』(2016, 新曜社: 共著) 등 다수

제1장  서  론
제1절  본 연구의 목적 및 필요성 1
제2절  본 연구의 범위 및 시대구분 9
제2장  근대언론 전사前史
제1절  한일관계사 13
제2절  정한론의 배경 15
제3절  한일강화도조약의 성립과 개항 17
제3장  근대신문의성립기와 일본의 언론인
제1절  역사적 배경 23
제2절  󰡔한성순보󰡕의 창간 27
제3절  󰡔한성순보󰡕 기사파문과 󰡔한성주보󰡕 31
제4절  후쿠자와 유키치와 이노우에 가쿠고로 34
제5절  이노우에 가쿠고로와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 41
제6절  조선의 근대화와 일본의 식민지화 정책 47
제4장  1905년 을사늑약 전후의 일본의 언론정책
제1절  일본의 식민지정책 연구 59
1. 식민지 이론의 전개 59
2. 일본에 있어서 식민지정책 연구 61
제2절  일본 언론의 침투 66
1. 일본인 경영 신문의 침투 66
2. 일본의 언론통제정책과 민간지의 창간 72
제3절  영일동맹과 언론보도 77
1. 영일동맹이 대한제국의 침략정책에 미친 영향 77
2. 영일동맹과 언론보도 80
제4절  러일전쟁과 조선의 언론탄압 96
1. 러일전쟁과 조선의 침략 정책 96
2. 일본의 대 조선 언론탄압 98
제5절  조선통감부시대의 언론통제정책 104
1. 조선통감부의 언론통제정책 104
2. 반 통치체제와 조선 언론의 탄압 112
제5장  1910년 한일병탄시대의 언론통제
제1절  한일합병과 언론통제 정책 145
1. 일제 식민지 조선의 통치기구 145
2. 테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 조선총독의 언론통제 정책 151
제2절  한일병합을 둘러싼 국내외의 언론보도 160
1. 한일병합을 둘러싼 일본의 언론보도 160
2. 한일병합을 둘러싼 영국의 언론보도 177
제3절  매스미디어에 의한 선전과 회유, 강압과 위협 커뮤니케이션 190
1. 선전과 회유, 강압적인 위협 커뮤니케이션 190
2. 「동화정책」과 「내선일체」, 「내지연장주의」 200
제4절  교통통신 정책과 조선의 언론통제 207
1. 조선의 교통정책과 언론 207
2. 조선의 통신정책과 언론 215
제5절  통감부기관지 󰡔경성일보京城日報󰡕의 창간배경과 그 역할 220
1. <경성일보>의 창간배경과 도쿠토미 소호德富蘇峰 220
2. <경성일보>의 역대사장과 신문경영 223
3. <The Seoul Press>와 󰡔매일신보󰡕의 역할 230
제6장  3․1운동과 언론통제정책
제1절  3․1운동과 국내외의 언론 257
1. 3․1운동의 역사적 배경 257
2. 국내외의 언론보도 262
제2절  사이토 마코토齋藤実의 시정방침과 언론정책 273
1. 사이토 마코토의 언론정책과 민간신문의 창간 273
2. 조선에서의 민간신문 <조선일보>, 󰡔동아일보󰡕의 창간 281
제3절  관동대지진과 조선의 언론통제 310
1. 관동대지진과 조선인대학살사건 310
2. 관동대지진과 조선의 언론통제 318
제4절  경성방송국의 설립과 언론통제 330
1. 경성방송국의 설립배경 330
2. 방송미디어를 통한 언론통제 332
제5절  선전영화 및 그 밖의 미디어를 통한 언론통제 354
1. 선전영화와 축음기(레코드)에 의한 여론통제 354
2. 활동사진을 통한 여론통제 361
제7장  대륙 군수기지화정책과 강제적인 언론통제
제1절  조선의 병참기지화와 언론통제 389
1. 조선의 병참기지론兵站基地論의 근거 389
2. 만주사변 이후 조선에서의 사회통제와 언론 394
제2절  「정보위원회」의 설치와 제도적인 언론통제 399
1. 정보위원회의 설치와 여론통제 399
2. 일본의 「정보국」 설치 403
3. 조선중앙정보위원회와 언론정책 407
제3절  법률을 통해서 본 조선의 언론통제 420
1. 조선에 있어서 사상통제와 법규 420
2. 조선의 언론통제와 법규 425
제4절  교육정책에서 본 언론과 사상통제 432
1. 황국신민교육과 언론통제 432
2. 신문용어 사용문제와 창씨개명 437
제5절  중일전쟁과 언론통제 445
1. 국가총동원법과 언론 445
2. 조선에 있어서 물자통제와 언론 448
제8장  태평양전쟁과 언론통제의 강화
제1절  전시하의 조선의 언론통제 471
제2절  조선에 있어서 출판물의 통제 483
1. 출판통제협의회 483
2. 출판물승인 및 추천실시요강 485
3. 출판물용 양지사용 규정요강出版物用洋紙使用規正要綱 489
제3절  정보선전정책과 통신검열실시 493
제4절  전시하에 있어서 법적인 언론통제 504
제5절  <경성일보>의 논조와 일본의 패전 514
제9장  결  론


참고문헌 563
부록[1] 언론관계법규 597
부록[2] 언론관계연표 607
찾아보기 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