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판발행 2023.10.05
초판발행 2022.05.04
역사는 심판의 절차가 아니라 이해의 추구이다. 즉, 인간행위의 가능성과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한국인들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오토 폰 비스마르크(Otto von Bismarck)는 “혈과 철”의 사나이(the man of blood and iron), 즉 프러시아의 철의 재상(the Iron Chancellor)이다. 비스마르크 자신이 그 “혈과 철”이라는 문구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는 그 기대를 스스로 충족시켰다. 아니 그는 그 이상이었다. 1862년 9월 23일, 오토 폰 비스마르크는 당시 유럽의 5대 강대국들 중에서 가장 약한 국가였던 프러시아의 수상으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몇 개의 매정한 일격으로 이 초임 수상은 2세대 동안 유럽의 외교를 방해했던 난제를 해결했다. 즉 그것은 어떻게 독일을 통일하고 중부 유럽을 재조직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그는 39개의 국가들로 구성된 소위 독일국가연합이라는 장애물을 극복해야만 했다. 그동안 중부 유럽은 기존의 힘의 균형을 변경할 수 있는 국가의 출현을 항상 불안해하고 그것을 막으려는 프랑스와 러시아에 의해서 주의 깊게 관찰되었다.
비스마르크는 지적으로 자기 시대의 모든 정치인들을 넘어서며 압도했다. 그리고 그의 우월성은 자신의 국민뿐만 아니라 전 유럽의 타국 정치가들에 의해서 인정받았다. 그는 기존의 질서에 도전하여 피와 철로 독일인들의 소망인 독일의 민족통일을 달성한 백색 혁명가(White Revolutionary)였다. 모든 현상타파적 혁명가는 혁명에 성공하는 순간 그 혁명을 수성(守城)하기 위해서 극단적 보수주의자가 된다. 비스마르크(Bismarck)도 예외가 아니었다. 헤겔(Hegel)식으로 말하면 비스마르크는 “세계사적 인물”(a world historical man)이었다. 비스마르크는 독일제국을 창건하는 현상타파에 성공한 백색 혁명가였다. 그리고 그 순간 독일인들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세계인들에 의해서 “천재-정치가”로 인정되고 칭송되었다.
그러나 비스마르크는 19세기 나폴레옹이나 20세기 히틀러와는 달리 스스로 멈출 줄을 알았던 현명한 정치가였다. 그는 독일제국을 수립한 뒤 독일은 “만족한 국가”(satisfied nation)임을 선언하고 더 이상의 야심을 포기하고 현상 유지자가 되었다. 그리하여 다른 강대국들의 경계심을 낮추면서 유럽의 정직한 중재자(a honest broker)를 자처하며 당시 유럽의 국제질서를 관리하여 40여 년간의 국제평화를 보존했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비스마르크는 19세기 외교사에서 가장 빛나는 이름이 되었다. 비스마르크의 회고록인 <감상과 회상>(Reflections and Recollections, Gedanken und Erinnerugen)은 영국의 역사가 조지 구치(George Gooch)가 “통치술의 매뉴얼로서 그것의 가치는 상대할 것이 없다. 그리고 그것은 정치가들, 교사들과 역사학도들의 선택된 친구로 항상 남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비스마르크가 아주 진지하게 공부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본서는 단순히 비스마르크가 외교사에서 빛나는 19세기 유럽에서 가장 위대한 정치 지도자라는 이유만으로 집필된 것은 아니다. 나는 2021년 11월 초에 <헨리 키신저: 외교의 경이로운 마법사인가 아니면 현란한 곡예사인가?>라는 저서를 탈고했었다. 그 저서에서 나는 헨리 키신저가 오토 폰 비스마르크를 얼마나 칭송했으며 키신저가 21세기 미국외교정책은 비스마르크를 본받아 수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음을 전달했다. 그러나 그 저서에서 정작 비스마르크에 대한 얘기는 피상적으로 다뤄졌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적어도 그 책을 읽은 독자들을 위해 오토 폰 비스마르크에 대한 보다 상세한 책을 내야 할 일종의 의무감 같은 것을 느꼈다. 그리하여 키신저의 마법사 같은 경이로운 외교의 원조 격인 비스마르크에 대해 집필의 필요성을 강렬히 느끼고 11월 초부터 본격 집필에 착수하였다. 비록 본서가 용두사미가 될 지도 모른다는 염려가 없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헨리 키신저에 대해 이제 막 출간된 내 저서의 동반서적으로 본서를 집필한 것이다.
나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1980년대와 1990년대 거의 20년에 걸쳐 외교사 과목을 가르쳤다. 그래서 비스마르크는 나에게 너무나 친숙하다. 외교사 과목에서 오토 폰 비스마르크는 가장 위대한 역사적 영웅이며 정치 지도자였다. 그 과목을 가르친 지도 이제 약 30년이 지난 후에 다시 비스마르크로 돌아갈 기회가 이렇게 올 줄 몰랐다. 먼지에 쌓인 옛 관련서적들을 다시 찾아보는 것도 적지 않은 즐거움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관련된 책들을 내가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마저 거의 잊고서 살아갔을 것이다. 마치 옛 친구를 다시 만난 듯 관련 문헌을 조사하면서 옛 밑줄과 간단한 코멘트들을 발견하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었다. 그리고 집필의 속도도 비교적 빨리 이루어졌다. 왜냐하면 이제는 비스마르크의 전설적인 스토리는 역사에서 거의 표준화되었다 해도 결코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본서를 집필하는 과정에서도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 이영석 한국지정학연구원 이사장은 여전히 나의 계속되는 집필을 격려했고 고려대학교 정보보호대학의 강찬옥 교수와 한국전략문제연구소의 부소장이신 주은식 장군의 힘든 교정작업도 계속되었다. 이 분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그리고 본서의 집필 과정 내내 자료수집과 참고문헌 작성과 교정 등 전과정에서 애써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원 모준영 박사에게도 거듭 감사한다.
그리고 본서의 집필의 모든 과정에서 항상 변함없이 내조해준 내 생의 반려자 신혜경 여사에게 마음 깊이 감사한다. 아내 없이는 이 모든 것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의 마음을 언제나 좀 더 풍요롭게 해온 나의 사랑하는 아들 강승온 박사에게 고마운 마음으로 본서를 헌정한다.
2022년 2월 2일
구고서실(九皐書室)에서
강성학
강성학(姜聲鶴)
고려대학교에서 정치학 학사 및 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모교에서 2년간 강사를 하다가 미 국무부 풀브라이트(Fulbright) 장학생으로 도미하여 노던 일리노이 대학교(Northern Illinois University)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그 후 1981년 3월부터 2014년 2월말까지 33년간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평화연구소 소장, 교무처장 그리고 정책대학원 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2014년 3월 이후 현재 명예교수로 있다.
저자는 1986년 영국 외무부(The British Foreign and Commonwealth Office)의 펠로우십(Fellowship)을 받아 런던정치경제대학(The London School of Economics and Political Science)의 객원교수를, 1997년에는 일본 외무성의 국제교류기금(Japan Foundation)의 펠로우십을 받아 도쿄대학의 동양문화연구소에서 객원 연구원 그리고 2005년 말과 2006년 봄 학기에는 일본 와세다대학의 교환교수를 역임하였다. 또한 제9대 한국 풀브라이트 동문회 회장 및 한국의 영국정부장학수혜자 모임인 한국 셰브닝 동창회 초대 회장을 역임하였다. 그동안 한국국제정치학회 상임이사 및 한국정치학회 이사, 한국유엔체제학회(KACUNS)의 설립 사무총장과 제2대 회장을 역임하였고 이것의 모태인 미국의 유엔체제학회(ACUNS)의 이사로 활동하였다.
저서로는 2011년 영국에서 출간한 영문저서 ≪Korea’s Foreign Policy Dilemmas: Defining State Security and the Goal of National Unification≫ (425쪽. 2017년 중국 사회과학원 출판사가 번역 출간함)을 비롯하여 1995년 제1회 한국국제정치학회 저술상을 수상한 ≪카멜레온과 시지프스: 변천하는 국제질서와 한국의 안보≫(688쪽)와 미국의 저명한 외교전문지인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에 그 서평이 실린 ≪이아고와 카산드라: 항공력 시대의 미국과 한국≫(807쪽)이 있다. 그의 대표작 ≪시베리아 횡단열차와 사무라이: 러일전쟁의 외교와 군사전략≫(781쪽) 및 ≪소크라테스와 시이저: 정의, 평화, 그리고 권력≫(304쪽), 또 한동안 베스트셀러이기도 했던 ≪새우와 고래싸움: 한민족과 국제정치≫(402쪽)가 있다. 또한 2007년 대한민국 학술원의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된 ≪인간神과 평화의 바벨탑: 국제정치의 원칙과 평화를 위한 세계헌정질서의 모색≫(756쪽), ≪전쟁神과 군사전략: 군사전략의 이론과 실천에 관한 논문 선집≫(446쪽, 2014년 일본에서 번역 출간됨), ≪평화神과 유엔 사무총장: 국제 평화를 위한 리더십의 비극≫(328쪽, 2015년 중국에서 번역 출간됨), ≪무지개와 부엉이: 국제정치의 이론과 실천에 관한 논문 선집≫(994쪽)을 비롯하여 지난 33년 간의 교수생활 동안에 총 37권(본서의 말미 저서 목록을 참조)에 달하는 저서, 편저서, 역서를 냈다. 저자는 한국 국제정치학자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연구주제인 “전쟁”, “평화”, “한국외교통일” 문제들에 관한 각기 집중적 연구결과로 볼 수 있는 ≪시베리아 횡단열차와 사무라이≫, ≪인간神과 평화의 바벨탑≫ 그리고 ≪카멜레온과 시지프스≫라는 3권의 저서를 자신의 대표적 “학술저서 3부작”으로 꼽고 있다. 아울러 2013년 ≪평화神과 유엔 사무총장≫의 출간으로 “인간神”, “전쟁神”, “평화神”이라는 일종의 “神”의 3위일체를 이루었다. 퇴임 후에는 2016년부터 2019년까지 한국지정학연구원의 초대 이사장을 역임했으며, 2017년 가을학기부터 2019년 봄학기까지 극동대학교 석좌교수였다. 그리고 ≪한국의 지정학과 링컨의 리더십≫(551쪽), ≪죽어도 사는 사람: 불멸의 링컨 유산(김동길 교수 공저)≫(333쪽), ≪윈스턴 S. 처칠: 전쟁과 평화의 위대한 리더십≫(449쪽), ≪조지 워싱턴: 창업의 거룩한 카리스마적 리더십≫ (501쪽), ≪대한민국의 대부 해리 S. 트루먼: 평범한 인간의 비범한 리더십≫(479쪽), ≪헨리 키신저: 외교의 경이로운 마법사인가 아니면 현란한 곡예사인가?≫(843쪽)를 출간했다. 그리고 저자의 일종의 지적 자서전으로 ≪내 저서의 서문들≫(223쪽)을 출간했다.
저자 서문
제1장 프롤로그(Prologue): 혁명과 국제적 불평등
제2장 비스마르크의 가문과 정계의 입문
제3장 1948년 2월 혁명과 메테르니히 체제(the Metternich System)의 붕괴
제4장 거대한 유럽의 국제적 외교무대에 나섬
제5장 프러시아의 철의 수상(the Iron Chancellor): 백색 혁명가(the White Revolutionary)의 등장
제6장 민족통일로 가는 길Ⅰ: 덴마크 전쟁
제7장 민족통일로 가는 길Ⅱ: 오스트리아와 전쟁
제8장 천재-정치가로 등극
제9장 민족통일과 독일제국으로 가는 길Ⅲ: 프랑스-프러시아 전쟁(the Franco-Prussian War)
제10장 독일제국(the German Empire)의 창건
제11장 독일제국의 안정화: 3황제연맹(Dreikaiserbund)
제12장 베를린 회의(the Congress of Berlin, 1878): 정직한 중재자(the Honest Broker)Ⅰ
제13장 비스마르크의 동맹체제Ⅰ: 2국동맹(The Dual Alliance)
제14장 비스마르크의 동맹체제Ⅱ: 3국동맹(the Triple Alliance)
제15장 서아프리카에 대한 베를린회의(The Berlin Conference on the West Africa, 1884-1885): 정직한 중재자Ⅱ
제16장 러시아에 대한 재보장 정책(the Reinsurance Policy)
제17장 피날레: 독일제국 호 파일럿(Pilot)의 하선
제18장 비스마르크의 리더십의 성공의 비결과 덕목들
제19장 오토 폰 비스마르크의 유산(legacy)
제20장 에필로그(Epilogue)
오토 폰 비스마르크(Otto von Bismarck)의 약력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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